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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5일 수요일 <하나님의 뜻과 성경의 계시, 신상필벌과 사랑, 하나님의 관리를 받는 삶>
[김용호] [오전 3:12] 굿모닝입니다~^^ 오늘도 달립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위해~!!!
앞으로 문창극 씨 덕분에 혹 한국 교계에서 "하나님의 뜻 논쟁"이 벌어질지 모르니 다음과 같이 미리 관전 요령을 올립니다(이는 서구 신학의 오랜 딜레마인 신정론의 비평 기준이기도 합니다).
육에 속한 인간은 매사를 자기중심, 그리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 중심으로 파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도 자기 입장에서 유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뜻은 필연적으로 입장에 따라 서로 상충되는 주장을 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문창극 씨가 모범 사례를 제공한 셈이지요.
한일합방이 한민족을 연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한민족의 일원인 문 씨의 주장인데 문 씨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일본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한일합방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주장할 것입니다. 육에 속한 인간들은 상황을 파악할 때 결코 자가당착, 아전인수, 이현령비현령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정의도 자기에게 유리한 것이 정의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육에 속한 인간이니 상황 파악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따라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유추도 그에 따라 춤을 출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육에 속한 인간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결코 파악할 수 없다."
만약 하나님의 뜻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육에 속한 자들의 다양한 어리석은 주장들을 관람하는 호사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땅의 현실 문제와 관련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경 말씀은 육에 속한 자들과 영에 속한 자들을 구분하여 계시되어 있습니다. 이 구분을 명확히 전제하지 않은 모든 성경해석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유추는 자가당착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요.
1. 끝까지 육에 속한 자로 남아 있게 될 자들에 대한 계시는 멸망에 대한 계시뿐입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성경은 아무런 애정도 관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죽을 때까지 내버려 두실 뿐입니다.
2. 앞으로 영에 속한 자, 즉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될 자들에 대한 계시는 징계에 대한 계시와 회개를 촉구하는 계시 그리고 소망을 주는 계시입니다.
3. 이미 새로운 피조물로의 재창조를 체험하였으나 앞으로 계속 진보해야 할, 진보하게 될 자들에 대한 계시는 바로 율법, 즉 사랑의 행동 강령들에 대한 계시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들은 이 율법 조항들을 일거수일투족의 기준으로 삼아 행동하고 동시에 더욱 깊은 회개와 간구로 나아가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것은 육에 속한 자들에게는 회개와 관련된 계시 외에는 어떠한 계시도 그들과는 무관한 계시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현실에서의 삶은 성경의 계시와 무관하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육에 속한 자들의 일상생활에 대해 어떠한 뜻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고통스럽게 하셨다는 것 외에는 말이지요.
따라서 육에 속한 자들이 신학자입네, 크리스찬입네 하면서 자신들의 삶에 하나님의 뜻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따라서 사람마다 다른 의견과 주장을 내놓는 것은 필연입니다. 개개인에 대해서도 이러할진대 국가나 민족, 인류 등 육에 속한 자들이 모인 세속 공동체의 역사와 현실을 놓고 하나님의 뜻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이상으로 하나님의 뜻 논쟁의 관람 기준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우리의 전도 현장에서 수시로 부딛히게 될 문제에 대한 대응 기준이기도 하지요. 주님의 교회 화이팅~!!!
이와 관련해 내세 구원에 대한 말씀 하나 추가합니다. 최후의 심판의 자리에서는 또 하나의 현실이 전개됩니다. 값없이 생명수가 주어지는 상황이 바로 그것입니다. 따라서 현실을 이 땅의 현실에만 국한시키고 최후의 심판 자리에는 오로지 심판만 있다고 보는 것은 심각한 오류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자리에서 생명수를 받게 되는 사람과 받지 못하게 되는 사람의 구분 기준이 명확히 계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누구도 이 땅에서 완벽한 삶을 살고 그 자리에 나아가게 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생명수를 받지 못하게 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상대적으로 명확한 기준이 계시되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면서 오늘 새벽 수다를 마무리 짓겠습니다.^^
(계 21:5-8)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 22:14-15)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으으음.... 거짓말.... 그런데 계 22장 15절의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에서 두 동사가 헬라어 원문에서 현재 시제로 되어 있다는 점이 눈에 확 띄네요. 영어 번역본들도 현재형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최후 심판의 자리에서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자라는 의미일까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전체 문맥으로는 안 맞는 것이 문제입니다. 음행하는 자들이 그 자리에서 음행하고 있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음행하는 자들은 명사입니다만^^) 이와 관련된 호크마 주석의 주석을 소개합니다.
"개들과 불 못에 들어갈 다섯 부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두루마기를 빨아 구속에 참여한 자들과는 달리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며 둘째 사망에 참여하는 자들이다(20:13-15). 한편 혹자는 본 절에서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이미 현재에 결정된 사실로 이해한다(Caird). 그러나 이것을 현재 사실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14절에서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미래에 그 복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아 본 절도 미래에 성취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Johnson, Mounce, Ladd)."
마지막 문장에서 내세 구원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상당히 비슷한 이해를 보이는 신학자 세 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흥미진진입니다.^^
[예레미야] [오전 6:18]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요 9:2~3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이 말씀이 문창극씨가 했던 이야기들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위해 장님으로 태어났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묵상을 해보면서도 많이 조심스러웠는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김용호] [오전 6:22] 그 사람이 장님으로 태어난 것은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주신 형벌의 일환으로서 자연의 인과관계에 의한 것
이고 다만 그 상황을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메시야이심을 드러내시는 일에 사용하고 계신 것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 말고도 장님은 많거든요. 그 많은 장님들 중 한 사람을 사용하신 거지요. 길 가의 돌멩이도 들어 쓰시는 하나님^^
문창극 씨와 같은 부류의 오류는 육에 속한 자들의 집단인 자기 민족을 하나님이 행복하게 해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극히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성경의 계시와 현실을 해석하려고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잘 되든 못 되든 그것이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지요.^^ 한 마디로 말해서 잡신 신학의 정수입니다. 스케일만 좀 크다 뿐인데 그 스케일도 사실은 하나님 시각에서는 먼지보다 못한 크기지요.
서구 기독교의 모든 오류는 공주병 왕자병 환자들이 모여 있다는 점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신다.
말 자체는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전제를 생략하고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이 문제지요. 옛사람은 반드시 죽이신다는 전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시작점이지요. 이 핵심적인 과정을 생략해버리고 하나님은 좀비를 사랑하신다고 보거나 예수 믿는 좀비를 사랑하신다고 보기 때문에 계시가 이해되지를 않고 엉뚱한 소리들을 하게 되는 거지요. 공주병 왕자병 걸린 좀비들이 모여 있는 곳이 서구 교회이고 그들이 만든 신학이 서구 신학인 것이지요. 저들이 신학자건 설교자건 평신도건 모두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은 모두 그 때문입니다. 논리가 성경에 맞게 전개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정진호] [오전 8:28] 계시록 21:5-8에서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 받는다고 했는데 이 귀절이 현세구원과 내세구원의 연결 지점으
로 보면 될까요? 이기는 자가 overcome으로 번역되어 있던데 이긴다는 것은 이 땅에서 우리가 구원의 과정에서 이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물론 이겼는지의 판단은 하나님이 판단하시겠지만요.
[김용호] [오전 8:31] 좋은 의견이십니다. 성경에서 이김은 극히 중요한 개념인데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다고 했고 세상을 이긴 우
리의 이김은 우리의 믿음이라고 요한일서에서 말씀합니다. 우리 옛사람을 이김, 싸르크스를 이김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말씀하신대로 이 이김은 현세 구원에 대한 핵심적 개념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최후 심판의 자리에서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를 이김은 현세 구원과 내세 구원을 연결 짓는 극히 현실적인 개념이라고 생각됩니다.
[정진호] [오전 8:41] 현세에서 내가 이겼다고 확신하는 것은 종의 자세가 아니겠지요. 종은 주인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뿐이고 그 결
과는 주인이 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자세가 종의 자세이겠구요. 다만 주인한테 인정받기를 소망하는 자세를 잊어서는 안 될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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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오전 8:42] 예. 자기를 이김이 바로 하나님의 종이 됨이지요. 물론 자기 힘으로 자기를 이기는 것은 아니구요.^^ 성령을 훼
방하는 자기를 이김이 회개의 중요한 개념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능력은 성령께서도 어찌 하실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물론 다양한 우회 전략을 구사하시지만요.
[임지웅] [오후 3:27] 전도사님은 사형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용호] [오후 3:27] 절대 반대~!!!!
[정진호] [오후 3:28] 회개의 기회를 인간이 빼앗을 수는 없다고 보시는군요.
[김용호] [오후 3:28] 성경적으로 그렇지요. 에스겔 33장 공평 논쟁과 예수님 말씀 “미워하는 것과 살인은 동일한 범죄다” 따라서 살
인을 이유로 사형시키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범인이 사람을 무차별로 죽이는 현장에서 사살하는 것까지야 세상 사람들 입장에서 어쩔 수 없겠지만 이미 잡아서 가두어 두었는데 죽이는 것은 지나치다는 인간적 생각도 하구요.^^
[임지웅] [오후 3:33] 예전에는 사형제 극렬 찬성자였는데 법을 배우면서 또 성경을 알아가면서 생각이 바뀌네요.
[김용호] [오후 3:33] 사형은 정의 구현보다는 보복 실현의 개념이 더 강한 것 아닐까?
[임지웅] [오후 3:34] 네 사후적으로는 보상심리에 불과한 것 같아요. 사전적으로는 위하효과를 말하는데 그건 무의미한 것 같구요.
겁주는 거죠. 죽이면 너도 죽는다. 형벌의 일반 예방적 효과라고도 하고요.
[김용호] [오후 3:35] 으음~ 일벌백계^^ 세상 사람들의 공동체 유지 수단이지. 그런데 표현이 아주 거룩하군.^^
예수님이 죄인을 위해 왔다고 하시면서도 동시에 회개 않는 죄인은 추방하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그런 사람이 공동체에 섞여 있으면 신상필벌 시스템이 가동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도 바울도 단호하게 추방하고 있지요.
[임지웅] [오후 3:41] 정죄를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을 보신 거겠죠?
[김용호] [오후 3:42] 그런 사람은 신상필벌 외에는 통제 방법이 사실 없으니 공동체 전체가 신상필벌 시스템의 수렁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라는 거지. 푯대를 공유한 사람들끼리만 모여 있는 경우가 아니고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신상필벌뿐인 거지. 그 순간 사랑은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게 되고~ 바로 서구 교회가 빠져 있는 함정이야. 어거스틴 덕분에~^^
[정진호] [오후 3:50] 신상필벌의 기준이 다르니 필연적으로 보수 기독교와 진보 기독교가 갈라질 수밖에 없겠네요.
[김용호] [오후 3:55] 그런 면도 있지요^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에는 통제나 처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같이 갈 것이
냐 헤어질 것이냐 외에는 없는 거지요.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회개하겠노라고만 하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받아들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두세 명이, 마지막으로 공동체 차원에서 이렇게 세 번을 권면해도 회개를 거부하면 단호히 헤어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도 처벌은 아니지요. 심판은 하나님만이 하시니까요.
[정진호] [오후 4:21] 그러네요. 처벌이 아니네요.
[김용호] [오후 4:21] 그렇습니다^^ 반면에 구약의 율법에는 보복이 아주 중요한 항목으로 다루어져 있습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지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들에게는 새 언약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상필벌 외에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유지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이에는 이가 아니고 원수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심으로써 율법을 완전케 하셨는데 그 완성된 율법의 기반은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라는 특수한 공동체인 것이지요.
육에 속한 자들이 원수 사랑을 외치는 것을 보면 웃음도 안 나옵니다. 저 사람들 뒷감당을 어찌 하려고 겁도 없이 저런 소리를 하는 거지? 역시 조직신학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도 보복은 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잠재적인 전도 대상자니까요. 그렇다고 저들의 신상필벌 시스템을 두고 훈수를 하면 안 됩니다. 그 자리에서 돌을 맞아 죽게 되거든요. 그런 걸 전문용어로 개죽음이라고 부릅니다.^^
[정진호] [오후 4:30] ㅋㅋ
[김용호] [오후 4:41]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세상을 향해 훈수를 둘 일이 없습니다. 전혀 시스템이 다르니까요. 서구 기독교가 세상에
대해 그토록 열심히 훈장질을 하고 있는 데에서도 그들의 조직신학이 본질적으로 방향성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도 어거스틴 덕분입니다.^^
[한금옥] [오후 5:59] 대사관 인터뷰 8/21로 안내 메일 받았습니다. 출국은 8월 말이 될 듯합니다. 막상 가야 하니 떠밀려 가는 기분
이에요. ㅠ 제 선택이었지만... 가보고 아니면 back해야죠. ㅋ
[김용호] [오후 6:04] 하나님의 뜻? ㅎㅎㅎ
[한금옥] [오후 6:05] 제 집요함의 끝! ㅋㅋ
[김용호] [오후 6:08] 두 번째 믿음을 가지게 되면서부터는 하나님의 직접관리 하에 있게 됩니다.^^
[정진호] [오후 6:11] ㅋㅋ 감사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말이네요.
[김용호] [오후 6:13] 양면성이 있어보이지요? ㅋㅋ
[한금옥] [오후 6:13] 무섭죠. 감사는 좀 더 성장한 후에 나올 거 같아요. ㅋ 지금은... 모... 요즘 감사가 나올 때가 있다면 기존의 신
앙 생활하는 친구들과 대화 하면서 아찔할 때... 나도 저랬는데,, 하며^^
[김용호] [오후 6:15] 예. 자매님 맞습니다. 떨림은 조금씩 줄어들고 즐거움은 조금씩 늘어가게 되지요. 그런가 하면 내버려 두시는
경우도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시면 신나지요. 간섭을 안 하시니까~ 그러나 겁나지요. 무능하니까~ 그래서 잡신신학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나에게 상관하지 말고 나를 지원만 하세욧~!!!
양쪽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뽑아낸 거지요.
그런가 하면 양쪽에서 불리한 것만 뽑아낸 것이 진보기독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없이~라는 구호가 그것이지요. 왜 그러는 걸까요? 자신만만한 소경들이라서 그렇습니다.^^
[정진호] [오후 6:24] 어쨌든 금옥자매는 하나님이 직접 관리 들어간 거니까 약속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겠지요.
[김용호] [오후 6:24] 아멘~ 그렇습니다~!! 우로 가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좌로 가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어디에 가
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로 성장하기 때문이고 어디에 가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정진호] [오후 6:27] "선"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데 참 오랜 시간이 필요했네요. 시행착오도 참 많이 했구요.^^
[김용호] [오후 6:28] ^^ 정말 기적이고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 환난과 인내와 연단은 반드시 양이 차야 하나
봅니다. 지름길은 없는 듯~^^
그에 대한 상대적인 비교는 무의미한 일이지요. 각자에게 꼭 필요한 형태의 연단과 그 절대량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음 방에 들어설 때마다 또 반복되는 순서이긴 하지만 첫 번째 방에 들어갈 때의 그 황당함은 더 이상 반복되진 않지요.
나에게 원하시는 게 도대체 뭐야 ㅜ.ㅜ
도대체 날더러 뭘 어쩌라고 하시는 거야 ㅜ.ㅜ
[한금옥] [오후 6:38] 하나님의 관리에 들어갔다고 하시니.. 등 떠밀리는 기분이네요 ㅋ 왠지 무릎 꿇어야 할 거 같은 떠밀림... 급 불
안(두려움) 하네요. 아닌 거 알지만 온 몸이 소스라치도록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불안...
[김용호] [오후 6:41] 병원에서는 의료진을 믿어야 하고 제자도에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
다보면 치료비와 입원비만 늘어나지요. 물만큼 물었잖아요. ㅎㅎ
[한금옥] [오후 6:45] ㅋ. 제가 의심이 많아서... 눈 딱 감고가 안 되네요.
[김용호] [오후 6:45] 문제는 돌팔이냐 아니냐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인데 그 확인이 끝났다면 무조건 믿고 나를 맡기는 것이 당연
합니다.
[한금옥] [오후 6:45] 그러네요. 전 이번에 수면 내시경 하고나서 의심했어요. 정말 나 검사 한 거 맞는지 ㅠㅠ
[김용호] [오후 6:46] 와~ 엄청난 의심입니다. 귀한 재능을 가지셨네요.^^ 하나님께서 꼭 맞는 은사를 더하셔서 그 재능을 귀하게 사
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무조건 믿으면? 무조건 잡신신학의 포로가 되지요.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라는 말씀을 돌팔이들이 많이 사용하지요. 하지만 그 말씀은 무조건 믿고 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육신의 눈으로가 아닌 방법으로 알게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거지요. 만약 무조건 믿고 보는 것이 옳다는 의미였다면 당장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하셨을 겁니다. 무조건 믿고 무조건 일하라고 하시지 않았겠습니까?
무조건 믿어라~
믿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나가서 뛰어라~
아멘~ 저 나갑니다~
그리고는 개죽음을 당하지요. 잡신신학의 처참한 결말입니다.^^
[한금옥] [오후 6:55] 하나님이 돌팔이가 아니란 걸 의심 하지는 않지만 체감 하지 않았으니 아직은 하나님의 관리에 기쁨이 아닌 두
려움의 반응이 당연 한 거 같습니다. 성령님 오시라고 잡아끌어 내릴 수도 없고... 이전 교회 생활할 때는 성령임재 기도.. 뭐 이러고 끌어 내리려고 애쓰는 모습을 많이 보였지만요. ㅋ
[김용호] [오후 6:58] 체감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양이 덜 찬 거겠지요.^^
[한금옥] [오후 7:03]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난다고 했나요? 그것을 체감 하면 기쁨으로 하나님 관리를 즐길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오겠죠. 언젠가는.. ㅠ
[김용호] [오후 7:20] 소망이 바뀌고 성경의 푯대가 내 푯대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엄청난 직접 관리의 결과입니다. 극한의
신비지요. 본능이 제어 당한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설교 때든 대화 때든 붕 띄우는 감언이설을 극도로 경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얼씨구나 하면서 엉뚱하게 본능이 푯대를 움켜쥐는 심각한 오류가 나올 위험이 다분하거든요. 만약 그렇게 되면 참으로 먼 길을 돌고 돌아야 합니다. 15일이면 갈 수 있는 가나안을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빙글빙글 돌았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푯대를 내 푯대로 받아들었다는 것은 보통 사건이 아닌 것입니다. 자매님은 이미 하나님의 관리 하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갈 길이 멀고 먼 것은 우리가 모두가 마찬가지지만요.
오락가락은 세 번째 믿음의 경우만이 아니고 두 번째 믿음에서도 수시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푯대가 보였다고 안 보였다가, 푯대를 보았다가 안 보았다가 한다고 해서 본질적인 차원에서의 하나님의 관리를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임지웅] [오후 7:30] 아멘. 제 맘에 콕콕 들어와 박힙니다. 매일매일. 그럴 때마다 흠칫 놀라면서 잠깐 정신 차리고 다시 또 옛사람
ㅋㅋ 긍휼히 여기시길....
제가 로스쿨 올 때 스스로 다짐했던 게 이혼사건은 수임 안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번 과제가 이혼소송 문제네요. 근데 풀다보니 재미도 있고 필요한 경우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김용호] [오후 7:33] 오우~ 첨예하고 복잡한 이해관계의 충돌^^ 아마 당사자들도 모르는 이유까지 있을걸~ 저~~ 깊은 무의식 차원
에서.^^
[임지웅] [오후 7:33] 이전투구의 극단. 세상에 둘도 없던 사랑이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로.
[김용호] [오후 7:35] 모세 율법에 이혼증서만 써주면 무조건 이혼해도 된다고 하신 이유는? 이혼 못하게 하면 살인이 날까봐서~ ^^
원한과 증오가 극한까지 가는거지.
[임지웅] [오후 7:36] 참 사람이란... 여튼 이 직업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게 내가 뭐라고, 난 의뢰인이나 대표가 시키면 일하는 대리
인일 뿐인데 라고 생각이 요즘 들어요...신앙도 마찬가지지요. 내가 주인이 아니라 난 주인님이 시키면 하는 종놈일 뿐... 끽해야 대리인. 눈이 뜨인다는 건 정말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랑 마찬가지 -되는 일 같다는 생각을 요즘은 현실에서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네요.^^
[김용호] [오후 7:45] 반갑고 감사한 소식이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