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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아버지! (隨筆)
影園 김 인 희
가을이 오는 길목이다. 하루를 유영하던 태양이 서산으로 자진한 후 가을벌레들의 아우성이 야단이다. 밤새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목까지 차오르는 그리움 하나 소환한다. 아버지!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두 눈에 가득 차오르는 눈물이다.
당신이 나고 자라고 평생을 살았던 백금리 백토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 마을이다. 마치 산으로 동그랗게 병풍을 친 모양과 흡사했다. 작은 마을에는 스무 가구 남짓한 이웃이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사이좋게 살았다. 삼백육십오일 집집마다 누구네 제사가 언제인지, 대처에 나간 자식이 왜 다녀갔는지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보듯 훤했다. ‘옛날 옛날에 어떤 마을에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살았다.’라고 시작하는 동화 속의 마을이었다.
당신은 이웃마을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큰댁 옆에서 살면서 동분서주(東奔西走)했다. 당신의 아내는 절손 가문의 마지막 손이었다. 아내의 어머니는 남편이 죽자 시댁과 친정의 강권으로 어린 딸을 두고 재가했다. 아내를 키운 할머니는 손녀의 얼굴을 자주 보고 살자고 이웃마을에 사는 당신에게 출가시켰다.
큰댁에는 형수 혼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개월 후 형마저 돌아가셨다. 큰댁에서는 안방에 아버지상을 모셨고 건넛방에는 형상을 모시고 슬픔에 갇혀있었다. 그때부터 당신은 매사 큰댁 일이 우선이었다. 봄부터 시작되는 농번기에 한시도 편히 앉아있지 못하고 달려 다녔다. 이른 봄 못자리를 하는 것도 그 모가 자라서 모내기를 하는 날에도 큰댁이 우선이었다. 큰댁 논이 푸르게 채색된 후라야 당신 논에 모들이 들어설 수 있었다.
딸의 유년 시절은 풍족하지 않았다. 어느 해는 모내기 철에 비가 오지 않아서 논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졌다. 천수답을 운명처럼 끌어안고 밤마다 한숨을 토해내는 당신의 목소리는 어린 가슴을 할퀸 스크래치였다. 그때도 당신은 큰댁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밤을 새워가면서 펌프를 했다. 당신의 아내가 꼬물꼬물 육남매와 실랑이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던 고단한 시절이었다.
가을에 추수를 끝내고 볕에 나락을 말리는 일은 일 년 농사의 중대사였다. 소나기 한 방울이라도 내리면 고사리손이라도 달려들어 마당에 펼쳐 널었던 나락을 긁어보아 담아 들여야 했다. 한두 방울 내리는 빗방울이 후드득 굵어지면서 쏟아졌다. 당신은 우리 나락을 담다가 팽개치고 큰댁으로 달려갔다. 아내는 고사리손에 의탁하고 묵묵히 빗방울에 젖는 나락을 담아 들였다. 아내는 당신을 큰댁과 나눠야 하는 운명을 일찍이 받아들였으리라. 조무래기들도 당신의 큰댁 우선주의를 하소연할 수조차 없는 불가침의 영역으로 받아들였다.
아내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처가 마을 사람들은 처가의 재산을 당신 앞으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아내가 가문의 유일한 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찾을 필요조차 없다고 했다. 당신은 정중히 거절하고 한 푼도 챙기지 않았다. 아내가 몇 날 며칠을 설득하고 어르고 달랬으나 아내는 출가외인이니 먼 친척에게 돌려주자는 당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여 당신은 살면서 아내의 하소연을 덤으로 들어야 했다.
당신은 풍족하지 않은 살림에도 마음이 넉넉한 아버지였다. 당신이 농번기 힘든 일을 할 때 부르던 콧노래는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처럼 가벼웠다. 당신이 집채만 한 나뭇지게를 지고 올 때 하늘이 품 안에 들어왔다. 당신은 산처럼 웅장했다.
천수답을 짓던 시절 가뭄에도 누군가 열어 둔 물꼬를 막지 않았던 당신이었다. 어린 딸이 고사리손으로 물꼬를 막으려 했을 때 호통치고 일어서게 했다. 가을 추수할 때 밤을 줍다가 한 줌씩 사방을 향해 던지면서 눈을 동그랗게 뜬 딸에게 다람쥐의 겨울 양식이라고 했다. 당신의 넉넉함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자식들은 처소에서 당신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당신이 베푼 이웃을 향한 적덕(積德)의 결정체는 산골 마을에 버스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전옥답(門前沃畓)을 선뜻 내놓은 일이었다. 가난한 농부였던 당신은 평생 땅을 파고 살면서 이룬 전 재산의 일부를 찰나의 망설임 없이 내놓았다. 딸은 팔순의 당신이 마을에 버스가 들어오게 되었다고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했을 때 달려갔다가 버스정류장으로 변한 논을 보고 목놓아 울었다. 백발의 당신은 마을에서 평생 은혜를 입고 잘 살았으니 마을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덕(積德)했으니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고 세상을 향해 선(善)을 행하라고 당부했다.
당신의 솜씨는 기계보다 정교했다. 겨울에 목화솜처럼 흰 눈이 대지를 덮으면 농한기였다. 그때도 당신은 한시도 쉬지 않고 일했다. 사랑방에 산더미처럼 짚을 쌓아두고 새끼를 꼬고 삼태기를 만들었다. 당신의 아내와 가마니를 짰다. 마을 사람들은 애경사가 있을 때마다 당신을 찾았다. 아내는 실속 없는 일에 불려 다닌다고 푸념했지만 당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껄껄껄 웃음으로 넘겼다.
당신의 어머니께서 노환으로 돌아가셨을 때, 당신의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어린 딸은 당신의 처연한 모습을 보고 하늘이 무너지고 산이 꺼지는 슬픔을 배웠다. 당신의 어머니 장례를 마친 후 얼마 있다가 어머니 상을 모셔둔 채로 큰댁이 대처로 이사를 갔다. 그때도 아무런 저항 없이 당신과 아내는 두집살이를 했다.
당신은 어머니상을 모신 큰댁에서 잠을 자고 아내는 아이들과 집에서 잠을 자고 할머니 상에 상식을 올리기 위해 밥은 큰댁으로 가서 했다. 당신의 자녀들도 ‘왜 그렇게 해야 하나요?’라고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의 엄위한 표정과 아내의 숙연한 모습을 종교처럼 받아들였다. 당신도 아내도 위대했다. 남들에게는 가정에 지진이 날 수위의 일들을 불협화음 없이 잔잔하게 해냈다. 당신이 몸소 살아낸 부모를 섬기는 효(孝)와 사람답게 사는 올바른 인성(人性)을 자식들이 고스란히 받아 안고 실천하고 있다. 당신의 가르침은 종교보다 위대했다.
당신의 믿음이 스러지던 순간 힘 잃은 무릎을 보았다. 하늘 같은 당신, 산 같은 당신의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고 어린 딸은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기뻐서 웃게 하고 싶어서 몸부림쳤다. 당신의 일손을 도와 농사일을 할 때 까르르 웃으면서 뛰어다녔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서 1등 성적표를 갔다 바치고 당신의 웃음이 머무는 눈언저리를 주목했다. 당신이 딸에게 상업학교를 나와서 취직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을 때, 어린 딸은 눈물을 삼키고 활짝 웃으면서 순종했다.
당신의 처연한 모습을 상상조차 하기 두렵다. 당신의 출가한 셋째 딸이 육 개월짜리 젖먹이를 놓고 사고로 죽었을 때 당신은 죄인이었다. 병풍 뒤에서 잠자듯 누워있는 딸의 얼굴을 보고 황소 같은 눈물을 삼키고 옷깃을 여미고 대청으로 가서 사돈댁에게 “제 딸의 죽음으로 정초부터 사돈댁에 불미스러운 일을 끼쳐서 죄송합니다.”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스무 살 사회초년생 딸의 손을 거세게 잡아끌면서 “인희야, 그만 돌아가자. 이제 언니는 없는 거다.”했다. 딸이 울면서 “아버지, 형부는 어떻게 살아요. 어린 조카는 누가 돌봐요. 제가 도와주어야 해요.”하고 당신의 손을 뿌리쳤을 때 불꽃같은 눈빛으로 천둥 같은 목소리로 꼼짝 못 하고 당신을 따르게 했다.
딸이 당신에게 걱정을 준 것은 결혼을 미루는 것이었다. 동생이 먼저 결혼하여 아기를 낳기까지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이 큰 걱정이라고 했다. 그 딸이 배필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엄청 기뻐하였다. 당신은 그때까지 딸 넷을 출가시키면서 혼수 장만을 할 때 아내에게 위임하고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보내는 딸을 위해서는 이불집에 음료수를 사 가지고 가서 이불 예쁘게 잘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서 아내는 별일도 다 있다고 했다.
당신의 삶은 참으로 고단한 여정이었다. 아내는 젊은 시절 도시로 나가서 살자고 했다. 산골에서 아이들 답답하게 키우지 말고 도시로 나가서 잘 키우자고 했다. 아내는 당신과 둘이서 뭔들 못하겠느냐고 도시로 이사하자는 꿈은 좀처럼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아내가 64세 되던 해 된서리 내린 가을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 아내는 말년에 ‘자식들에게 고생시키지 않고 저 세상으로 갔으면 좋겠다. 잠자다가 아무도 모르게 살짝 떠날 수 있는 복을 갖고 싶다.’라고 노래했다. 아내는 그렇게 노래처럼 당신을 곁을 떠났다. 당신이 못 견디게 괴로운 것은 아내의 소망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당신이 큰댁 우선으로 달려 다녔을 때 아내 혼자서 가정을 건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나 후회했으나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당신은 아내를 동구밖에 뉘고 날마다 두 차례씩 아내의 묘를 찾았다. 아내의 묘에 국화를 심고 가꾸면서 살아생전 못했던 연가를 불렀다. 자식들이 말리면 운동할 겸 다녀온다고 너스레로 위로했다.
딸은 친정을 드나들면서 홀로 있는 당신 때문에 울고 다녔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당신의 말년은 가혹했다. 친정에 화재가 났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갔을 때 당신만 무사하고 모든 것이 소실되었다. 당신의 노년이 편안하기만을 빌고 빌었는데 팔순에 닥친 참담한 모습에 할 말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집을 다시 짓기로 하고 공사가 시작되었다. 당신은 친척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마을 회관에서 기거하면서 공사현장에서 벽돌을 나르면서 함께 일했다.
딸은 당신이 마을 사람들에게 초라하게 보이는 것이 견딜 수 없어서 날마다 달려갔다. 당신의 옷이 공사현장에서 묻은 흙 때문에 얼룩졌을 때마다 세탁했다. 그때 당신은 마음을 쏟아냈다. “내가 잘못한 한 가지는 너를 공부시키지 못한 것이었다. 너는 유난히 똑똑해서 공부를 잘했지. 너는 착하게 잘 커 주었단다. 마음이 여린 것이 흠이지만... 그때 너를 제대로 가르쳤어야 했어.” 당신이 그렇게 말했을 때 딸은 “아버지, 후회하지 마세요. 그때는 환경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그리고 늦게 공부해서 더 간절하고 열심히 했을지 누가 알아요. 저는 아버지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요. 아버지, 기운 내시고 오래오래 곁에 있어주세요.”하고 말씀드렸다. 폐허를 극복하면서 날마다 당신과 딸의 마음에 따뜻한 사랑이 깃들었다.
그렇게 새집을 짓고 살면서 2년도 안되어 당신은 하늘나라로 떠났다. 당신의 운명을 예견하고 침대 옆에 아들의 전화번호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딸의 전화번호를 적어두었다. 당신이 갑자기 쓰러져서 구급차로 모시고 갔다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다급한 전화 목소리를 듣고 천안 순천향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응급실에 누워있는 당신을 만났다. 언니들이 퉁퉁 부은 눈으로 “아버지께서 인희 너를 기다리시고 계신 것 같다. 왜 아니겠니? 네가 아버지께는 아들 같은 딸이었잖니? 아버지 집도 네가 지어드렸는데. 어서 응급실로 들어가 봐.”라는 말을 듣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딸은 침대에 누워있는 창백한 당신의 모습 앞에서 울부짖고 싶었다. 병원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짐승처럼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신의 고귀한 인품 앞에 헝클어질 수 없었다. 하늘 같은 당신의 인격과 산 같은 당신의 삶의 역사 앞에서 당신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드려야 했다. 당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아버지, 사랑했어요. 아버지, 하늘 아래 어떤 사람보다 가장 존경했어요. 아버지 딸이라서 행복했어요. 앞으로도 착하게 잘 살겠어요. 안녕히 가세요.”하고 또박또박 말씀드렸다. 당신을 붙잡고 있던 의료기가 멈추고 다급하게 달려온 의료진들이 당신이 운명했다고 하면서 울부짖는 딸을 억지로 떼어 냈다.
동화처럼 당신과 이별을 했다. 당신과 아내를 합장하고 산에서 내려올 때 눈물 속에 투영되는 진달래를 보았다. 논두렁을 건너면서 노랗게 춤추는 개나리를 보았다.
<그 해 겨울은 따뜻했습니다.>
影園 김 인 희
내 유년의 어느 겨울
밖에는 연신 눈이 내렸습니다.
사랑방에서
차락차락 볏짚 다듬어 새끼 꼬는 아버지
어흠하는 기침소리로
산 같은 당신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어머니는
밥을 짓고 있었습니다.
된장찌개 냄새를 안고
굴뚝에서는 구름 같은 연기가 피었습니다.
온 종일
하늘에서 목화솜이 켜켜이 내려
차가운 대지를 차곡차곡 덮어주고 있었습니다.
하루를 유영한 태양의 몸부림은
서쪽 하늘을 코럴빛으로 수놓았습니다.
나는
따뜻한 아랫목에 턱을 괴고 누워서
창호지 문에 핀 과꽃을 보았습니다.
텔레비전 잠재우고
스마트폰도 없었던 그 시절
아버지 무릎에 누워서 별을 노래하고
어머니 품에 안겨서 사랑을 찾았습니다.
그 해 겨울은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2019. 12. 10 作)
<고 향 에 서>
影園 김인희
설 명절
고향을 방문했다.
부모님이 없는 고향은 낯설다.
나는
순수를 탕진한 집시가 되어
이리저리 배회한다.
참나무 골 좁은 길
산처럼 큰 나뭇지게 지고 오는 아버지
뱀골 언덕
호미 들고 콩밭 매는 어머니
고샅길에서
막걸리 주전자 들고 낑낑 걸어오는 꼬마
주섬주섬 보따리에 담아 왔다.
자식들 대처로 떠난 고독한 산골
산자수명 찾아 서울에서 오는 사람들
고향은
수레바퀴처럼 돌고 있었다. (2020. 02. 04 作)
<아버지의 대지>
影園 김인희
청양군 남양면 백금리
당신께서 한시도 떠날 수 없었던 땅
홀어머니와 홀 형수 곁에 모시고
노심초사 달려 다닌 청춘
하늘을 보고 농사하던 천수답
당신께는 육 남매 키워낸 성지.
서울로 이사 간 부잣집 땅 소작하면서
대학 간 아들 자랑에 껄껄 웃고
고단한 시간 유수처럼 흐르고
자식들 민들레 홀씨처럼 떠나보내고
젊은 날 대처로 떠나자고 조르던 아내
동구밖에 뉘고
십수 년 동안 그 무덤가에
꽃을 심고 잡초를 뽑으면서
무슨 말을 했을까?
마을버스 들어오던 날
당신의 땅 싹둑 잘라 정류장 만들고
지팡이 짚고 미소 짓던 백발의 아버지
자식들 앞날 잘되라고 덕을 쌓았지
겸허하게 들려주신 고백.
자식에게 의탁할 수 없던 노년
동화처럼 작별하고
주인 잃은 대지도 몸살을 앓았다.
그토록 금지옥엽 키워낸 자식들은
당신을 지키지 못한 것처럼
거룩한 당신의 땅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세요! (2020. 09. 22 作)
<아버지의 사계(四季)>
影園 김인희
산비탈 진달래가 미소를 터뜨릴 때
소 몰아 쟁기질로 대지를 깨우시던
당신은 천하지대본 신토불이 지킴이
뜨거운 태양 아래 구릿빛 땀방울과
정직한 노동으로 씨 뿌려 가꾸었던
곡식은 아들 딸 되어 탐스럽게 익는다
황금색 들판에서 춤추는 허수아비
함지박 미소 짓고 콧노래 부르시던
작대기 장단 맞추어 춤을 추던 짐 지게
함박눈 소복하게 대지를 잠재우는
농한기 계절에도 일없이 한순간도
지낼 수 없었던 농부 보고 싶은 아버지
<여름 단상(斷想)>
影園 김인희
태양의 입김이
넓은 호박잎 축 늘어뜨린 계절
막 세수를 한 상추가족
소쿠리 안에 비집고 앉아 있던
아욱 된장국에 보리밥이 전부였던 식탁
둥근 두레 밥상에 앉아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운 저녁식사
모깃불에서 매캐한 연기 피어나고
사랑방에서 간간이 들리는 아버지의 기침소리
밀짚 멍석 위에 하늘 보고 누워
어머니가 들려주는
견우와 직녀의 사연을 듣던 여름밤
밀짚의 거친 촉감이 등을 간질일 때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지는 별똥별 하나
장대비 내리는 밤
별 하나 그리움에 떨고 있다 (2021. 06. 10)
< 호 미 >
影園 김 인 희
엄마가 호미 들고 밭에 가면
하루를 유영한 태양이
별을 초대하는 시간에 돌아왔다
날카로운 호미
엄마의 희망을 심고 恨을 캐내고
닳고 닳아 손잡이만 남으면
청양장에 가서 새 호미를 사 왔다
엄마는 호미 들고
아침 먹고 콩밭으로 가고
자고 나면 고추밭으로 가고
연일 비가 내려도 바쁜 엄마
장독대 돌아가며 과꽃을 심고
담장 아래 봉숭아를 심고
호미도 휴식이 없다
산비탈 밭에서 호미 들고
손가락 마디 휘어지도록
땅을 파고 평생을 지낸 당신
결혼하기 전 사위 될 사람에게
“여보게, 우리 인희 손에 호미 들리면 안 되네.”
엄마의 한 마디 유언으로 남고
그 남자
정원에 잡초를 뽑으려고
호미를 사자는 말에 도리질을 한다. (2021. 07. 01 作)
<어머니의 장독대>
影園 김인희
뒤켵으로 난 부엌문 열면
펼쳐지는 당신의 파노라마
철쭉이 폭발하고 과꽃이 성벽을 이루던
누구도 범접 못 할 당신만의 성지였습니다.
당신의 정성과 열정을 잉태하고
해산을 기다리는 배부른 항아리.
장맛이 꿀맛이구나!
군자 같은 할머니 말씀에
당신의 얼굴에 번지는 수줍은 미소.
나르시시즘의 환희
장독대 위에 놓은 정화수는
조각달이 잠기고 별들이 유영하는
당신이 끌어들인 우주였습니다.
그 앞에서
합장하고 무엇을 염원하셨을까?
아, 어머니
과꽃 피는 계절이 오면
그리움에 몸서리칩니다. (2019. 09. 01. 作)
<어머니의 계절>
影園 김 인 희
유년시절 당신을 떠올리면
쪽물 짙게 물든 하늘 아래
바지랑대 꼭대기 고추잠자리 졸고
황톳물 곱게 물든 마당가에
밀가루 풀 입혀 창호지문을 바르셨지요.
소나기 퍼붓던 날
견우와 직녀의 사연을 들려주며
장독대 돌아가며 과꽃을 가꾼 뜻은
창호지문에 꽃잎 조각조각 붙여두고
함박눈 내리는 날조차 가을을 보고 싶으셨지요.
비탈진 언덕에서
함초롬한 구절초 수줍게 고개 숙일 때
황금비단 펼쳐진 대지를 향해
함지박 미소를 짓고
풍성한 계절을 예찬하며 좋아하셨지요.
자식들을 위해
청춘을 고스란히 제물로 드리고
아낌없이 전부 내어주고
나목이 되어 들려주신 동화 같은 이야기
내리사랑이란다.
어미에게 효도하려고 애쓰지 마라
너도 나처럼 자식에게 정성 듬뿍 주어라.
자식도 제 자식에게 사랑 쏟을 게다.
사랑은 물 흐르듯 그렇게 흐르는 거란다.
아, 어머니
해마다 당신의 계절이 오면
선홍빛 그리움이 과꽃이 됩니다.
첫댓글 눈물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국장님.^^
오호! 이제야 읽었네
효심인지 그리움인지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