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묘
여섯 살 무렵에는 색맹이 뭔지도 몰랐다. 여섯 살의 나는 또래들보다 그림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고 엉뚱한 상상을 자주 하는 아이였다. 그 무렵까지 나는 왜 24색 크레파스 통에 같은 색이 두 개씩 들어있는지. 그리고 옆자리 짝궁은 왜 그림을 그릴 때 같은 색 크레파스를 수십 번 바꿔 쓰는지 궁금해했다. 내게 단풍잎의 빨간색은 고동색으로 보였고 신호등 초록색은 회색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 글을 적어 내려가는 지금도 그것은 크게 변하지 않는 생각이다.
색깔은 내게 말장난이나 다름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 나는 내가 남들과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가을마다 산을 수놓는 단풍잎이 무슨 색인지 몰랐으며 무지개가 왜 일곱 빛깔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나는 한동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글을 쓰지만, 나는 오래도록 그림을 그렸다. 오늘은 색맹이 있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소묘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색맹 판정을 받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이후 나는 알 수 없는 패배감에 사로잡혔다. 어렸을 적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색맹 판정을 받은 이후 나는 그림을 완성해 본 적이 없었다. 내 그림은 언제나 연필 스케치 단계에서 끝났다. 덕분에 내 미술 수행평가 점수는 언제나 바닥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미술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칠판에 문장 하나를 적었다. 단단한 분필 소리가 좁은 교실 안에 울려 퍼졌다. '자화상 그리기' 몇몇은 싫은 소리를 내뱉었지만, 수업이 시작되자 탄식은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평소 단원평가로 지쳐있던 아이들에게 자화상 그리기 수행평가는 여름철 단비 같은 존재였다. 아이들은 손거울과 백지를 번갈아 보며 저마다 색깔로 도화지를 채워나갔다. 그러나 나는 한참 동안 연필만 만지작거렸다. 미술에는 정답이 없을지 몰라도 색깔에는 정답이 있었다.
아이들 중 제일 먼저 스케치를 끝마쳤지만, 이번에도 나는 색칠 단계에서 망설였다. 그때 미술 선생님이 다가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선생님 물음에 나는 색칠 준비물이 없다고 둘러댔다. 내 가방에는 분명 24색짜리 크레파스가 들어있었지만, 내 얼굴색이 무슨 색으로 칠해질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던 나는 함부로 크레파스를 꺼내 들 수 없었다.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주머니에서 미술용 연필 하나를 내게 쥐여주었다.
그때까지 나는 미술용 연필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일반 연필과는 달랐다. 미술 연필을 쥐고도 망설이는 내게 선생님은 이 연필은 색칠용이라고 말했다. 나는 단단한 검은색 심과 도화지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어딘가에서 무언가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소묘 기법을 배웠다.
나는 선생님 조언에 따라 힘을 조절하며 내 얼굴을 색칠했다. 내 도화지는 금세 연필 자국으로 가득 찼다. 그날 그린 그림은 교내 우수작으로 뽑혀 학교 중앙현관에 걸리게 되었다. 친구들은 너도나도 내 그림 앞에 몰려들어 내 미술 연필을 부러워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묘 세상 속 빨간 사과는 검정이었고 장미꽃과 단풍나무 역시 검정이었다.
미술 연필로 그린 그림에서는 광택이 났다. 나는 더욱더 집중해서 내가 본 것을 그대로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소묘 세상에서는 색깔을 상상하며 억지로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었다. 연필 선의 세기만 조절하면 나는 어떤 물건이든 도화지에 담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검정과 흰색 그리고 회색으로 이루어진 소묘 세상은 내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기도 했다. 素 본디 소에 描 그릴 묘 한자를 쓰는 소묘. 나는 내가 본디 본 것을 그린다.
그러나 본디 본 것을 묘사하고 싶다는 나의 소망은 입시 미술의 벽 앞에서 가로막히고 말았다. 소묘는 미술의 가장 기본 같은 것이라서 소묘만으로는 미술학원 입시 반에 들어갈 수 없었다. 처음 써본 수채화 물감 역시 영 나와 맞지 않았다. 물통을 엎지른 나는 번져가는 도화지 속 연필 자국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수채화 물감 통에 색깔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여전히 내 세상 속에서 단풍은 고동색이고 신호등은 회색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스케치를 열심히 해도 나는 24색 팔레트 앞에서 망설였다.
그렇게 나는 입시 미술을 그만둔 채로 고등학교 생활을 맞이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책상 앞에 앉아 모의고사 독서 지문을 분석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여전히 내 가슴 한편에는 본디 본 것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내게 문학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 것은 작년 초이다. 흰 종이와 검은 글씨로 이루어진 줄 글 안에는 화려한 색 못지않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툴렀지만 나는 다시 연필을 잡았고 처음 미술을 시작했을 때처럼 글을 써 내려갔다. 본디 본 것을 그린다는 뜻의 소묘. 나의 두 번째 소묘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글 안에 내가 본 것들을 그린다. 나의 가슴 속 아주 깊은 곳에 자리한 이야기부터, 슬프고 화나는 이야기까지. 초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이 내게 해주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날 선생님은 텅 빈 교무실에 나를 앉혀두고 이렇게 말했다.
“비록 네가 색맹이 있지만 앞으로 네가 채워나갈 인생은 정말 무궁무진해. 그러니까 좋아하는 걸 포기하지 마.”
좋아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 일.
그리고 오늘 소묘라는 글제를 받은 나는 오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내 이야기를 글 속에 잘 풀어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심사위원에게 나라는 존재를 잘 소묘할 수 있을까. 흰 도화지 같은 종이를 앞에 둔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육각형 연필 촉감이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치 10년 전 처음 미술 연필을 잡았을 때처럼.
내가 앞으로 채워나갈 흰 도화지는 정말이지 무궁무진했다. 그러니 나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향해 정진해보려 한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본 것을 소묘할 것이다. 그러니 글의 마침표를 찍는 지금 나는 모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소묘는 무엇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