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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苑 註 > 1) 이 논문은 (사)내나라연구소의 학술지인 『내나라』 통권21권(2012, 12월)에 실린 필자의 글이다. 이 가운데서 『맹자』의 근간을 이루는 井田法 관련 내용을 발췌하고 일부 수정 보완하여 이해를 돕고자 했다. 2)“子曰弟子 入則孝하고 出則弟하며 謹而信하며 汎愛衆하되 而親仁이니 行有餘力이어든 則以學文이니라(공자 가라사대, 제자가 들어가면 효도하고, 나가면 공경하며, 삼가고 미덥게 하며, 널리 무리를 사랑하되 어진 이와 친할지니, 행하고 남은 힘이 있거든 곧 글을 배울지니라.)”, 『논어』 학이편 제6장 3)“詩云 穆穆文王이여 於緝熙敬止라 하니 爲人君엔 止於仁하시고 爲人臣엔 止於敬하시고 爲人子엔 止於孝하시고 爲人父엔 止於慈하시고 與國人交엔 止於信이러시다(시에 이르기를, 심원하신 문왕이시여. 아! 계속해서 밝히고 공경해서 그친다 하니, 인군이 되어서는 仁에 그치시고 신하가 되어서는 敬에 그치시고 아비가 되어서는 慈에 그치시고 나라 사람과 더불어 사귀는 데는 信에 그치셨도다.)” “所謂治國이 必先齊其家者는 其家를 不可敎요 而能敎人者 無之하니 故로 君子는 不出家而成敎於國하나니 孝者는 所以事君也요 弟者는 所以事長也요 慈者는 所以使衆也니라(이른바 ‘나라를 다스림이 반드시 먼저 그 집을 가지런해 해야 한다’는 것은 그 가족을 가르치지 못하고서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자가 없으므로 군자는 집을 나가지 아니하고도 가르침을 나라에 이루나니, 孝는 인군을 섬기는 바이고, 弟는 어른을 모시는 바이며, 慈는 무리를 이끄는 바이기 때문이라.)” 『대학』 4) 『대학』의 三綱領 八條目의 내용,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는 先治其國하고 欲治其國者는 先齊其家하고 欲齊其家者는 先修其身하고 欲修其身者는 先正其心하고 欲正其心者는 先誠其意하고 欲誠其意者는 先致其知하니 致知는 在格物하니라.” 5)『주역』 乾괘 문언전 제2절의 내용. “子曰 君子 進德修業하나니 忠信이 所以進德也요 修辭立其誠이 所以居業也라 知至至之라 可與幾也며 知終終之라 可與存義也니 是故로 居上位而不驕하며 在下位而不憂하나니 故로 乾乾하여 因其時而惕하면 雖危나 无咎矣리라(공자 가라사대 군자는 덕에 나아가고 일을 닦아야 하니 忠信이 덕에 나아가는 바이고, 말을 닦고 그 정성을 세움이 일에 거처하는 것이라. 이를 데를 알고 이르는지라 가히 더불어서 기미하며, 마칠 줄을 알고 마치는 지라. 가히 더불어 의리를 보존하니, 이런 까닭으로 높은 자리에 거처하여도 교만하지 않으며 아랫자리에 있어도 근심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굳세고 굳세어 그 때로 인하여 뉘우치면 비록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으리라.” |
춘추시대 당시 노나라를 어지럽힌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사를 물었을 때, 공자가 “정사는 바름이니, 그대가 바름으로써 다스린다면 무엇이 감히 바르지 않으리오6).” 하고, “그대가 선을 하고자 한다면 백성들이 선해지리니,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라. 풀 위로 바람이 불면 반드시 눕느니라7).”고 한 이유이다.
또한 제나라 경공이 정사를 물었을 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8).”고 했다. 군주가 이렇게 한다면 온 나라의 집안이 “아비가 아비답고 자식이 자식답고 형이 형답고 아우가 아우답고 지아비가 지아비답고 지어미가 지어미다워져 집안의 도가 바르게 되니, 집안을 바르게 함에 천하가 안정되기9)” 때문이다.
<家苑 註 > 6) “季康子問政於孔子한대 孔子對曰政者는 正也니 子帥以正이면 孰敢不正이리오”, 『논어』 안연편 제17장 7) “子欲善이면 而民이 善矣리니 君子之德은 風이오 小人之德은 草라 草上之風이면 必偃하나니라”,『논어』 안연편 제18장 8)“齊景公이 問政於孔子한대 孔子對曰君君臣臣父父子子니라”, 『논어』 안연편 제11장 9)“父父子子兄兄弟弟夫夫婦婦而家道正하리니 正家而天下 定矣리라”『周易』 風火家人卦 彖傳 |
그렇다면 ‘등 따뜻하고 배부른’ 온포(溫飽)의 단계를 넘어 적어도 소강사회를 이루고 모든 사람들이 인륜도덕을 완전히 회복하여 대동사회를 이루기 위한 기반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맹자는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을 강조하며, “백성은 늘 생산하는 것이 없으면 인륜에 대해 항상하는 마음을 두지 못하여 방종과 아첨과 간사함과 사치함을 두게 되고 결국에는 죄를 짓게 되는데 그런 뒤에 쫓아가서 죄를 준다면 이는 백성을 속이는 정치가 된다.
밝은 임금이라면 백성들이 풍족하게 생산하여 먹고 살 수 있도록 도와 위로는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는 처자식을 길러 풍년에는 종신토록 배부르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하게 한 뒤에야 백성들을 쉽게 선하게 할 수 있다10)”고 하며 정전법(井田法)에 근거한 정사를 베풀 것을 주장하였다.
정전법과 관련해 비교적 자세한 글을 남기고 있는 맹자는 “무릇 어진 정치는 반드시 경계로부터 시작되니 경계가 바르지 못하면 井地가 고르지 못하며 곡록이 고르지 못하리니 이런 까닭으로 폭군과 탐관오리는 반드시 그 경계를 게을리 하니 경계가 이미 바르면 田을 나누고 녹을 짓는 것은 앉아서도 정할 수 있다(夫仁政은 必自經界始니 經界不正이면 井地 不均하며 穀祿이 不平하리니 是故로 暴君汙吏는 必慢其經界하나니 經界旣正이면 分田制祿은 可坐而定也니라11)).”고 했다.
여기서 경계란 농지의 경계이자 공정한 분배의 원칙을 뜻한다. 약육강식의 전국(戰國)시대에 맹자는 제후들을 만날 때마다 인의를 강조하고 정전법을 시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렇지 않고 왕이 利만을 추구한다면 남의 것을 다 빼앗지 아니하고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역설 하였다12).
<家苑 註 > 10) “若民則無恒産이면 因無恒心이니 苟無恒心이면 放辟邪侈를 無不爲己니 及陷於罪然後에 從而刑之면 是는 罔民也니 焉有仁人이 在位하여 罔民을 而可爲也리오 是故로 明君이 制民之産하되 必使仰足以事父母하며 俯足以畜妻子하여 樂歲에 終身飽하고 凶年에 免於死亡하나니 然後에 驅而之善故로 民之從之也 輕하나이다.” 『맹자』 양혜왕상편 제7장 11) 『맹자』 등문공 상편 제3장 12) “王曰何以利吾國고하시면 大夫曰何以利吾家요하며 士庶人이 曰何以利吾身고하여 上下交征利면 而國이 危矣리이다 萬乘之國에 弑其君者는 必千乘之家이오 千乘之國에 弑其君者는 必百乘之家니 萬取千焉하며 千取百焉이 不爲不多矣언마는 苟爲後義而先利면 不奪하여는 不饜이니이다(왕이 말씀하시기를 어찌해야 내 나라를 이롭게 할고 하시면 대부들은 어찌해야 내 집을 이롭게 할고 하며, 사서인은 어찌해야 내 몸을 이롭게 할고 하여 위아래가 사귐에 利를 다투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만승의 나라에 그 인군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천승의 집이요, 천승의 나라에 그 인군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백승의 집이니, 만이 천을 취하며 천이 백을 취함이, 많은 것은 아니지 않건마는, 진실로 義를 뒤에 하고 利를 먼저 하면 빼앗지 아니하고는 족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맹자』 양혜왕 상편 제1장 |
1-1. 정전법의 기초와 共同體
상고시대부터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井田法 혹은 井田制를 통해 토지제도를 비롯한 각종의 사회제도를 정립하였다. 이후 정전제와 그 속에 담긴 원리는 국가운영의 기초가 되었는데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는 먼저 글자 형태를 통해서도 대략 알 수 있다. 뜻글자인 한자는 글자 그 자체에 철학적인 의미와 역사 문화적 배경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이하 拙著 발췌보완13) 拙著, 『千字文易解』357~358쪽, 경연학당, 2008년
인류가 농경생활을 하면서 문명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물과 토지경작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과 멀리 떨어져 있어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받지 못하거나, 토지경작이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을(邑, 里) 자체가 형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농경사회는 샘물이 잘 나오는 우물과 농사 짓기 좋은 땅을 중심으로 읍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井’은 상형문자이면서 농경사회의 특성을 잘 담고 있는 글자이다.
井의 原字인 ‘丼’의 가운데에 있는 ‘점 주(丶)’는 열 길을 판 우물 속에서 샘물이 용솟음치는 깊숙한 물구멍을 뜻하며, 丼의 바깥 글자인 井은 우물 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우물 안에 엇갈려 쌓은 침목(枕木)의 모습을 본뜬 글자이다. 그런데 이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므로 井자는 이후 황하문명권의 모든 사회제도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한 마을이 형성되면 共同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를 조달할 방법을 ‘우물 井’자의 형태에서 찾은 것이다. 공동우물을 쓰는 한 마을 사람들이 각각의 집과 경작지를 소유하는데 반해 우물물은 모든 사람들이 와서 함께 쓰고 관리하듯, 한 마을을 유지하기 위한 공동비용을 조달할 땅으로 공동 경작하는 公田을 두고, 私田은 공동경작하되 생산된 것은 개인 소유로 삼는 것이다. 이후 公田은 국가 제도가 발전하면서 세금 부과의 기준이 되었다.
井田圖에서 볼 수 있듯이 정전제는 가운데(田)를 중심으로 총 아홉 구역의 경작지를 조성하고 여덟 집을 각각 한 단위로 하여 경작케 하는 제도를 말한다. 바깥의 여덟 구역은 각 집이 농사짓는 사전(私田)에 해당하며, 가운데(田) 한 구역은 여덟 집이 공동으로 경작하는 공전(公田)이다.
‘公’자가 ‘八(여덟 팔) + 厶(사사로울 사)’로 이뤄진 것은 이러한 정전법의 이치를 담고 있는 것이다. ‘마을 里(田 + 土, 정전제로 이루어진 땅)’자 또한 이러한 공전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음을 보여주고, 밭을 간다(耕, 밭갈 경)는 뜻 또한 정전법에 의해 구획된 땅을 간다는 의미이고, 共同의 共자는 井田의 아홉 구획을 여덟 집이 함께 한다는 공동체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늘 이를 높여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직분을 다하는 것이 공손하다는 뜻의 恭인 것이며, 너와 내가 다르다(異, 다를 이)는 것은 가운데의 公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떨어져 있기에 여러 면에서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근원은 같다는 뜻이다. 같으면서도 다르기에(同而異)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14).
<家苑 註 > 14)『주역』 38번째 괘인 火澤睽의 대상전 내용으로, 공자는 彖傳에서 “천지가 어긋나 있으면서도 그 일은 같으며, 남녀가 어긋나 있으면서도 그 뜻은 통하며, 만물이 어긋나 있으면서도 그 일은 같으니, 어긋남의 때와 쓰임이 크도다(天地睽而其事同也며 男女睽而其志通也며 萬物睽而其事類也니 睽之時用이 大矣哉라).”고 탄미한 것이다. |
가령 ‘理(다스릴 리, 이치 이)’는 나라 가운데에 구중(九重) 궁궐에 있는 임금(王)이 정전법을 바탕으로 다스리는 것이 이치라는 뜻이다. 경복궁에서 임금이 정치하는 공간을 思政殿이라고 지은 것은, 우물물은 줄어듦도 넘침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면서 마시기에15) 임금은 중용의 정치로 두루 여론을 수렴하여 정사를 펴야 聖人의 정치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16). 聖(성인 성)의 옛 글자인 ‘𦕡17)’에는 두루 의견을 잘 듣고(耳) 中을 잡아(卜) 정전법에 의거해 정책을 베푼다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世宗御製訓民正音’과 ‘訓民正音解例本’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한글의 자모음 또한 모두 정전법의 이치에 근거한다. 이렇듯 글자 속에 쓰이는 井이나 田이 단순히 ‘우물’이나 ‘밭’만을 뜻하지 않고 제도와 문화, 철학적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로 두루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전법의 개념을 맹자는 다음과 같이 분명히 적시하였다.
“바야흐로 마을에 井을 두니 井이 9백 이랑이며, 그 가운데가 공전이 된다. 여덟 집이 다 사전 백 이랑을 받아 함께 공전을 돌보고 공사를 다한 연후에 사전의 일을 감히 다스리니,” 이렇게 되면 “죽고 이사함에 시골을 떠남이 없으니 향전과 동정이 나가고 들어옴에 서로 벗하며 도적을 예방함에 서로 도우며 서로 돕고 도우면 곧 백성이 친목할 것(死徙에 無出鄕이니 鄕田同井이 出入에 相友하며 守望에 相助하며 疾病에 相扶持하면 則百姓이 親睦하리라)”인데, “군자가 없으면 야인을 다스릴 수 없고 야인이 없으면 군자를 기를 수 없다(無君子면 莫治野人이오 無野人이면 莫養君子니라).”고 하였다18).
<家苑 註 > 15)“无喪无得 往來井井”, 『주역』48번째 괘인 井괘의 문왕 괘사 중에서
16) “思曰睿 睿作聖(思를 슬기라 하고 슬기는 성인을 짓는다)”, 『書經』 홍범편 두 번째 五事의 내용 중 17) 『康熙字典』 18) 『맹자』 등문공 상편 제3장 |
위에서 鄕田과 同井은 정전법으로 공전과 사전을 함께 일구며 우물을 함께 쓰는 마을 사람들을 뜻하며, 군자는 위정자이고 야인은 일반 백성인 농부를 말한다. 곧 정전법을 통해 소강사회와 대동사회를 이룰 수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이보다 앞서 공자는 “대개 나라를 두고 집을 두는 자는 나라의 적은 것을 근심하지 않고 백성의 고르지 못함을 근심하며, 가난을 근심하지 않고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한다하니, 대개 고르면[均] 가난하지 않고, 화합하면[和] 적지 않고, 안정되면[安] 기울어지지 않는다19).”고 했는데 이때의 均은 곧 정전법의 시행을 말한다.
주역 48번째괘인 井(
그러므로 공자는 井괘의 木上有水의 象을 보고, 군자는 勞民勸相20), 곧 백성들을 위로하면서 서로 돕도록 권장해야 한다고 했다. 우물물처럼 정전법은 사람을 기르는데 궁하지 않기에21) 井은 “덕의 땅(德之地也)이고, 그 곳에 거처하면서도 널리 퍼져가니(居其所而遷), 이로써 의를 분별(以辨義)한다22) ”고 했다.
그런데 정전법은 상고시대에 하우씨가 9년 홍수를 다스리고 전국을 아홉 주로 나누고23) 토지정비를 한 뒤에 처음으로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 『맹자』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24).
夏后氏는 五十而貢하고 殷人은 七十而助하고 周人은 百畝而徹하니 其實은 皆什一也니 徹者는 徹也요 助者는 藉也니이다 龍子曰治地는 莫善於助요 莫不善於貢이라 貢者는 校數歲之中하여 以爲常하니 樂歲에 粒米狼戾하여 多取之而不爲虐이라도 則寡取之하고 凶年에 糞其田而不足이어늘 則必取盈焉하나니 爲民父母라 使民으로 盻盻然將終歲勤動하여 不得以養其父母하고 又稱貸而益之하여 使老稚로 轉乎丘壑이면 惡在其爲民父母也리오하니이다
하후씨는 오십으로 공법을 하고, 은나라 사람들은 칠십으로 조법을 하고, 주나라 사람들은 백 이랑으로 철법을 하니 그 실제는 다 십분의 일이니, 철은 통함이고, 조는 돕는 것입니다. 용자가 ‘땅을 다스림은 조법보다 좋은 것이 없고 공법보다 선하지 않음이 없는지라. 공법이라는 것은 여러 해의 중간을 비교해서 떳떳한 법으로 삼았으니, 풍년에는 낱알이 흩어져 있어 많이 세금으로 거둔다 해도 포악함이 되지 않으나 적게 취하는 것이고(1/10의 常法에 따라 취할 뿐이고), 흉년에 그 밭을 북돋아주어도 족하지 않거늘 반드시 채워서 취한다면 어찌 백성의 부모가 된 자라 할 수 있으랴. 백성으로 하여금 눈 흘기게 하면서 일 년 내내 부지런히 움직여도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고 또 빌린 것에 이자까지 보태어 맞추게 하여 늙은이와 어린이로 하여금 언덕과 구덩이에서 뒹굴게 하면 어찌 그 백성의 부모 됨이 있으리오.’라고 하였습니다.
이상으로 맹자의 말을 빌려본다면 정전법은 공법(貢法)이나 조법(助法) 철법(撤法) 등으로도 불렀고, 백성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은 결과적으로 1/10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전법이 공자 이전에 이미 무너져 내렸음은, 노나라 애공이 유약에게 세금을 더 거둘 방안을 묻는 내용에서 알 수 있다.
이때 유약은 오히려 왜 철법을 시행하지 않느냐고 묻는다25). 그리고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씨를 위해 염구가 세금을 더 거둘 방안을 제시하여 시행토록 하자 공자가 염구를 엄히 꾸짖은 장면26)에서 당시 이미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거뒀음을 알 수 있다. 맹자의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과중한 세액과 부역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농토를 버리고 떠나 유랑하는 백성들의 시신이 곳곳에 나뒹구는 지경까지 이른다.
가혹한 정사가 호랑이보다 사납게 되어버린 것이다(苛政猛於虎也27)). 정전제가 무너지면서 어진 정치와 밝은 정치의 덕치가 무너진 것이다.
<家苑 註 > 19) “丘也는 聞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하며 不患貧而患不安이라하니 蓋均이면 無貧이오 和면 無寡오 安이면 無傾이니라”, 『論語』季氏篇 제1장 20)『주역』48번째 괘인 井괘 大象傳 21)“井, 養而不窮也”, 『주역』48번째 괘인 井괘 彖傳 22)『주역』 계사하장 제7장 23)『서경』 夏書 禹貢편에 9년 홍수를 다스린 일이 자세히 다루어졌다. 24)『맹자』 등문공 상편 제3장 25)“哀公이 問於有若曰年饑用不足하니 如之何오 有若이 對曰盍徹乎시니잇고.”, 『논어』 안연편 제9장 26) “季氏 富於周公이어늘 而求也 爲之聚斂而附益之한대 子曰非吾徒也로소니 小子아 鳴鼓而攻之 可也니라(계씨가 주공보다 부하거늘 염구가 세금을 더 거두어서 보탰으니, 공자 가라사대 내 무리가 아니니, 얘들아 북을 쳐서 공격함이 옳으니라.” 『논어』 선진편 제16장 27) 『禮記』 檀弓下篇 |
이상의 내용들, 곧 『주역』의 井괘, 『논어』에서 有若이 말한 徹法, 공자의 말씀(註19) 등과 맹자의 정전법과 관련된 말들을 통해서 볼 때 春秋시대와 戰國시대를 나누는 경제적 척도는 바로 井田法의 시행여부와 관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춘추시대에는 정전법의 원리가 일부나마 살아남아 있어 함부로 세법을 고치지 못했음을 알 수 있고, 전국시대에 들어서는 정전법 제도 자체가 아예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맹자가 말하는 왕도정치는 정전법의 경제적 원리에 근거하여 덕치를 베푸는 것이고, 패도정치는 백성들에 대한 과중한 세금 부과와 전쟁을 통한 국토확장 속에서 이익 창출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 後天八卦方位圖와 洪範九疇에 담긴 井田法 사상
위와 같은 사회경제적 토대로서의 정전법이 정치사상에는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살펴보자. 정전법의 철학적 근거는 후천팔괘방위도(後天八卦方位圖28))에 근거한다.
<家苑 註 > 28) 공자가 쓴 『주역』 십익전 중 說卦傳 제1장~제4장에 의거하여 그린 복희씨 선천팔괘방위도를, 제5장의 내용에 의거 재배치하여 그린 그림으로 오랜 옛날부터 통용되었다. |
[그림1] 後天八卦方位圖
④ ☴ | ⑨ ☲ | ② ☷ |
③ ☳ | ⑤ | ⑦ ☱ |
⑧ ☶ | ① ☵ | ⑥ ☰ |
①☵坎 (水) 北 冬 夜 子
②☷坤 西南 立秋
③☳震 (木) 東 春 朝 卯
④☴巽 東南 立夏
⑤中央 (土) -太極-皇極
⑥☰乾 西北 立冬
⑦☱兌 (金) 西 秋 夕 酉
⑧☶艮 東北 立春
⑨☲離 (火) 南 夏 晝 午
[그림1]의 후천팔괘방위도는 선천팔괘도와 함께 황하문명권의 사상적 토대가 되는 것으로 『주역』 설괘전 제5장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帝出乎震하여 齊乎巽하고 相見乎離하고 致役乎坤하고 說言乎兌하고 戰乎乾하고 勞乎坎하고 成言乎艮하니라 萬物이 出乎震하니 震은 東方也라 齊乎巽하니 巽은 東南也라 齊也者는 言萬物之潔齊也라 離也者는 明也니 萬物이 皆相見할새니 南方之卦也니 聖人이 南面而聽天下하여 嚮明而治하니 蓋取諸此也라 坤也者는 地也니 萬物이 皆致養焉할새 故로 曰致役乎坤이라 兌는 正秋也니 萬物之所說也일새 故로 曰說言乎兌라 戰乎乾은 乾은 西北之卦也니 言陰陽相薄也라 坎者는 水也니 正北方之卦也니 勞卦也니 萬物之所歸也일새 故로 曰勞乎坎이라 艮은 東北之卦也니 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일새 故로 曰成言乎艮이라
임금이 진에서 나와 손에서 가지런해지고, 이에서 서로 만나고, 곤에서 役事를 이루고, 태에서 기뻐함을 말하고, 건에서 싸우고, 감에서 위로받고, 간에서 이룬다는 말이라. 만물이 진에서 나오니, 진은 동방이라. 손에서 가지런해지니 손은 동남이라. 가지런하다는 것은 만물이 깨끗하게 가지런해진다는 말이라. 이는 밝음이니, 만물이 다 서로 보기 때문에 남방의 괘이니, 성인이 남쪽을 면하여 천하의 소리를 들어 밝음을 향하여 다스리니, 대개 저 여기에서 취함이라. 곤은 땅이니 만물이 기름을 이루기 때문에 곤에서 역사를 이룬다고 했느니라. 태는 바로 가을이니 만물이 기뻐하는 바이기 때문에 태에서 기뻐한다고 말한 것이라. 건은 서북의 괘이니 음양이 서로 부딪힌다는 말이라. 감은 물이니, 바로 북방의 괘이니, 위로받는 괘이니, 만물이 돌아가는 바이기 때문에 감에서 위로받는다고 함이라. 간은 동북의 괘이니 만물이 마침을 이루는 바이고 시작함을 이루는 바이기 때문에 간에서 이룬다고 말함이라.
이 후천팔괘도는 황하문명권의 기본 방위도를 이루며, 오행사상과 함께 四德과 五德을 낳아 정치대법을 세우는데 기초를 제공해준 내용이다. 이를테면 공자가 “無爲而治者는 其舜也與신저 夫何爲哉시리오 恭己正南面而已矣시니라(하옴이 없이 다스린 자는 그 순임금이로다. 무릇 무엇을 하셨으리오? 몸을 공순히 하고 바르게 남쪽을 향했을 뿐이시니라29)).” 순임금의 밝은 정치인 덕치를 ‘恭己正南面’이라 표현한 것은, 위 설괘전 제5장의 “離也者는 明也니 萬物이 皆相見할새니 南方之卦也니 聖人이 南面而聽天下하여 嚮明而治니라)”의 내용에 근거한 것이고, 후대의 유학 군주들 또한 이를 닮고자 노력하였다. 29) 『論語』 衛靈公篇 제4장
우리나라 경복궁의 남문인 光化門을 처음에는 正門이라고 부르고, 문루의 성가퀴에 후천팔괘를 기본으로 하여 一貞八悔30)의 법칙에 따라 64괘를 그려 넣은 것([옆 그림]는 광화문 4면 가운데 북면 정중앙의 卦圖)은 바로 이러한 주역의 통치사상에 근거하여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러한 주역의 음양사상을 바탕으로 오행이론에 근거하여 통치사상을 정리한 것이 『書經』 周書 洪範편의 내용이다. ‘홍범구주(洪範九疇)’라고 하는 이 통치철학은, 은나라 말기의 현인인 箕子가 주나라의 武王에게 들려주는 아홉 가지 범주의 정치대법[그림3]으로, 이 이치는 우임금이 치수사업을 할 때 썼던 오행대법이기도 하다. 흔히 洛水에서 나온 신령스러운 거북이의 등에 그려져 있었던 그림이라고 하여 洛書라 하고, 정전법의 내용을 담고 있어 九宮數理의 이치를 담고 있다고 한다31). 이 역시 정전법에 근거한다. 기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家苑 註 > 30) 팔괘를 下卦로 하여 다시 팔괘를 각각 한 번씩 上卦로 배치하여(8×8) 64괘를 이루는 방법. 31) “河出圖 洛出書”, 『周易』 계사상전 제11장 |
①五行 : 水火木金土→潤下 炎上 曲直 從革 稼穡→鹹苦酸辛甘
②五事 : 貌言視聽思→恭從明聰睿→肅乂哲謀聖
③八政 : 食 貨 祀 司空 司徒 司寇 賓 師
④五紀 : 歲 月 日 星辰 曆數
⑤皇極 : 皇建其有極 歛時五福 用敷錫厥庶民
惟時厥庶民 于汝極 錫汝保極
⑥三德 : 正直 剛克 柔克
⑦稽疑 : 雨霽蒙驛克貞悔
⑧庶徵 : 雨暘燠寒風時
⑨五福 : 壽 富 康寧 攸好德 考終命
六極 : 凶短折 疾 憂 貧 惡 弱
[그림3] 洪範 九疇
④ 協用五紀 | ⑨ 嚮用五福 威用六極
| ② 敬用五事 |
③ 農用八政 | ⑤ 建用皇極 | ⑦ 明用稽疑 |
⑧ 念用庶徵 | ①五行 | ⑥ 乂用三德 |
初一은 曰五行이오 次二는 曰敬用五事요 次三은 曰農用八政이오 次四는 曰協用五紀요 次五는 曰建用皇極이오 次六은 曰乂用三德이오 次七은 曰明用稽疑요 次八은 曰念用庶徵이오 次九는 曰嚮用五福이오 威用六極이니라
첫째는 가로대 오행이오, 다음 둘째는 가로대 공경하되 오사로써 하고, 다음 셋째는 가로대 두터이 팔정을 쓰고, 다음 넷째는 가로되 합함을 오기로써 하고, 다음 다섯째는 가로대 세움을 황극으로써 하고, 다음 여섯째는 가로대 다스림을 삼덕으로써 하고, 다음 일곱째는 가로대 밝힘을 계의로써 하고, 다음 여덟째는 가로대 생각함을 서징으로써 하고, 다음 아홉째는 가로대 향함을 오복으로써 하고 위엄을 육극으로써 하니라.
기자는 무왕에게 각 항목마다 구체적인 설명까지 덧붙였다. 곧 천지자연의 이치인 4계절에서 오행의 이치가 생성되는 것을 비롯하여 그 성질과 맛을 일러주었고,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사람에게 적용하여 정치지도자로서 지녀야 할 五事를 알려주었다. 궁극적으로는 성인의 정치를 실현하도록 했다.
아울러 정사에서 중요시해야 할 여덟 가지 항목인 八政을 중요도의 순서에 따라 제시해주었다. “첫째는 먹음(食)이고, 둘째는 재화(貨)이고, 셋째는 제사(祀, 곧 禮)이고, 넷째는 사공(司空, 곧 토목 건설 교통)이고, 다섯째는 사도(司徒, 곧 교육)이고, 여섯째는 사구(司寇, 곧 치안질서)이고, 일곱째는 빈(賓, 곧 외교, 사신접대와 교류)이고, 여덟째는 군사라.”라고 하였다. 백성의 의식주와 천지와 조상에 대한 예, 교육을 매우 중시했음을 볼 수 있고, 전쟁은 피해야 하되 예기치 못한 상황에 항상 대비태세를 갖추도록 했다.
임금자리에 해당하는 五皇極에서는 “皇이 建其有極이니 歛時五福하여 用敷錫厥庶民하면 惟時厥庶民이 于汝極에 錫汝保極하리라(다섯째인 황극은 임금이 그 극을 세움이니 이 오복을 거둬서 그 여러 백성들에게 펴서 주면 오직 이에 그 여러 백성들이 네 극에, 네 극을 보존함을 주리라).”라고 하였다. 3천 년 전 봉건군주의 시절이지만 모든 권력은 결국 백성들에게서 나오고 백성들에 의해서 유지됨을 밝혀 군주의 爲政이 곧 爲民임을 나타내었다.
1-3. 中庸의 九經大法
공자는 현실정치에 참여하여 정사를 폈고, 철환주유를 하면서 도를 펼쳤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이에 고향땅에 돌아와서 『주역』에 십익전을 달아 천지자연의 뜻을 밝혀 군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고, 詩書를 정리해 후세의 귀감을 삼게 했다. 당시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무도한 세상32)’이 계속 이어질 것을 우려하여 『춘추』를 집필하였다33).
또한 공자 사후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이 전해지지 못할까를 안타까이 여긴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과 언행을 기록하여 『論語』를 남겼다. 曾子는 스승의 핵심 정치사상을 3강령 8조목에 담아 『大學』으로 엮었으며, 손자인 子思 또한 공자가 남긴 기록과 말씀들을 근거로 『中庸』 34)을 펴냈다. 특히 자사의 『中庸』에는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정사를 묻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답변 속에는 유교사상이 매우 압축적으로 요약이 되어 있는데, 이 역시 정전법에 근거하고 있다. 이를 ‘九經 大法’이라 한다. 일부 내용을 발췌해본다.
∎文武之政이 布在方策하니 其人이 存則其政이 擧하고 其人이 亡則其政이 息이니라
∎人道는 敏政하고 地道는 敏樹하니 夫政也者는 蒲盧也니라
∎故로 爲政이 在人하니 取人以身이오 脩身以道요 脩道以仁이니라(중략)
∎天下之達道 五에 所以行之者는 三이니 曰君臣也父子也夫婦也昆弟也朋友之交也五者는 天下之達道也요 知仁勇三者는 天下之達德也니 所以行之者는 一也니라
∎或生而知之하며 或學而知之하며 或困而知之하나니 及其知之하여는 一也니라 或安而行之하며 或利而行之하며 或勉强而行之하나니 及其成功하여는 一也니라
∎好學은 近乎知하고 力行은 近乎仁하고 知耻는 近乎勇이니라
∎知斯三者則知所以脩身이오 知所以脩身則知所以治人이오 知所以治人則知所以治天下國家矣리라
∎凡爲天下國家 有九經하니 曰修身也와 尊賢也와 親親也와 敬大臣也와 體群臣也와 子庶民也와 來百工也와 柔遠人也와 懷諸侯也니라
∎修身則道立하고 尊賢則不惑하고 親親則諸父昆弟 不怨하고 敬大臣則不眩하고 體群臣則士之報禮 重하고 子庶民則百姓이 勸하고 來百工則財用이 足하고 柔遠人則四方이 歸之하고 懷諸侯則天下畏之니라
∎齊明盛服하여 非禮不動은 所以修身也요 去讒遠色하며 賤貨而貴德은 所以勸賢也요 尊其位하며 重其祿하며 同其好惡는 所以勸親親也요 官盛任使는 所以勸大臣也요 忠信重祿은 所以勸士也요 時使薄斂은 所以勸百姓也요 日省月試하여 旣(饎)禀稱事는 所以勸百工也요 送往迎來하며 嘉善而矜不能은 所以柔遠人也요 繼絶世하며 擧廢國하며 治亂持危하며 朝聘以時하며 厚往而薄來는 所以懷諸侯也니라
∎凡爲天下國家有九經하니 凡以行之者는 一也니라
∎문왕과 무왕의 정치가 펼쳐진 것이 방책에 있으니 그 사람이 있으면 그 정치가 일어나고 그 사람이 없으면 그 정치가 쉬게 됩니다.
∎사람의 도는 정치에 민첩하고 땅의 도는 심는데 민첩하니 대저 정치라는 것은 부들과 갈대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정치를 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으니 사람을 취하는 것은 몸으로써 하고, 몸을 닦는 것은 도로써 하고, 도를 닦은 것은 인으로써 합니다.(중략)
∎천하에 통하는 도가 다섯에 행하는 바는 셋이니, 군신과 부자와 부부와 형제와 벗의 사귐, 이 다섯 가지는 천하의 達道이고, 지 인 용 셋은 천하의 達德이니 행하는 것은 하나일 뿐입니다.
∎혹 날 때부터 알며, 혹 배워서 알며, 혹 곤해서 알게 되니, 그 앎에 이르러서는 한 가지입니다. 혹 편안하여 행하며, 혹 이롭기에 행하며, 혹 힘써 행하니 그 성공에 이르러서는 한 가지일 뿐입니다.
∎배움을 좋아함은 지에 가깝고, 힘써 행함은 어짊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앎은 용맹에 가깝습니다.
∎이 세 가지를 알면 수신을 알고, 수신을 알면 사람 다스림을 알고, 사람 다스림을 알면 천하국가 다스림을 알게 됩니다.
∎무릇 천하국가를 위함에 아홉 가지 벼리가 있으니, 수신과 어진 이를 높임과 어버이를 친함과 대신을 공경함과 신하들을 내 몸처럼 여김과 여러 백성을 내 자식처럼 여김과 백공들을 오게 함과 먼 곳의 사람들을 회유함과 제후들을 포용하는 것입니다.
∎수신하면 도가 세워지고, 어진 이를 높이면 미혹되지 아니하고, 친척과 친하면 제부와 형제들이 원망하지 아니하고, 대신을 공경하면 혼란하지 아니하고, 신하들을 내 몸처럼 여기면 선비들이 보답하는 예가 후중하고, 뭇 백성을 자식처럼 여기면 백성들이 서로 권면(勸勉)하고, 공인들을 오게 하면 재용이 풍족해지고, 변방의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해주면 사방에서 귀순하고, 제후들을 품으면 천하가 두려워합니다.
∎재계(齋戒)하여 밝게 하고 옷을 성대하게 하여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음은 수신하는 바이고, 참소하는 이를 버리고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이를 멀리하며 재물을 천하게 여기고 덕 있는 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어진 이를 권면하는 바이고, 그 벼슬자리를 높여주며 그 녹을 후하게 주며 그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똑같이 하는 것은 친친함을 권면하는 바이고, 벼슬을 성대하게 하고 일을 맡기는 것은 대신을 권면하는 바이고, 충성으로 대하고 녹을 후하게 주는 것은 선비를 권면하는 바이고, 때로 부리고 세금을 박하게 하는 것은 백성을 권면하는 바이고, 날로 살피고 달로 시험을 하여 봉록(희름, 旣稟)을 일에 맞추는 것은 백공을 권면하는 바이고, 가는 이를 전송하고 오는 이를 맞이하며 선한 이를 아름다이 여기고 능치 못한 이를 가긍히 여기는 것은 먼 사람을 부드럽게 하는 바이고, 끊어진 세대를 이어주며 폐지된 나라를 일으켜 주며 난을 다스리고 위태로운 곳을 붙들어 주고 조회(朝會)와 빙례(聘禮)를 때로 써 하며 가는 이를 후하게 해주고 오는 이를 박하게 하는 것은 제후를 포용하는 바입니다.
∎무릇 천하국가를 위함에 九經이 있으니 무릇 이를 행하는 것은 한 가지일 뿐입니다.
<家苑 註 > 32)『주역』 坤괘 文言傳 제1절의 내용으로, “積善之家 必有餘慶하고 積不善之家 必有餘殃하나니 臣弑其君하며 子弑其父 非一朝一夕之故라 其所由來者 漸矣니 由辨之不早辨也니 易曰履霜堅氷至라하니 蓋言順也라(선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고, 불선함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으니,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며 자식이 그 아비를 죽임은 하루아침 하루저녁의 연고가 아니니라. 그 유래한 바가 점차한 것이니, 분별해야 할 것을 일찍 분별하지 못한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니, 역에 이르기를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른다고 하니 대개 순함을 말함이라).” 33)“世衰道微하여 邪說暴行이 有作하여 臣弑其君者 有之하며 子弑其父者 有之하니라 孔子 懼하사 作春秋하시니 春秋는 天子之事也라 是故로 孔子曰知我者도 其惟春秋乎며 罪我者도 其惟春秋乎인저하시니라(세상이 쇠하고 도가 미미하여 사설과 폭행이 일어나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는 자 있으며,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자 있음이라. 공자가 두려워하시어 춘추를 지으셨으니, 춘추는 천자의 일이라. 이런 까닭으로 공자 말씀하시기를 ‘나를 아는 자도 그 오직 춘추이며, 나를 죄줄 자도 그 오직 춘추로다’ 하시니라.”, 『孟子』 등문공 하편 제9장. 34) 中庸이란 『주역』 乾괘 九二爻에 대해 공자가 거듭 해석한 문언전 제2절의 내용에서 근거한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子曰龍德而正中者也니 庸言之信하며 庸行之謹하여 閑邪存其誠하며 善世而不伐하며 德博而化니 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이라하니 君德也라(공자 가라사대 용의 덕이 있으면서 정중한 자이니, 떳떳한 말을 미덥게 하며, 떳떳한 행실을 삼가여 삿됨을 막고 그 정성을 보존하며 세상을 선하게 하여도 자랑하지 아니하며 덕이 넓어 교화하니 역에 가로대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고 하니 임금의 덕이라).” |
<九經>
①修身則道立
②尊賢則不惑
③親親則諸父昆弟不怨
④敬大臣則不眩
⑤體群臣則士之報禮重
⑥子庶民則百姓勸
⑦來百工則財用足
⑧柔遠人則四方歸之
⑨懷諸侯則天下畏之
[그림4] 『中庸』 九經大法
④敬大臣 | ⑨懷諸侯 | ②尊賢 |
③親親 | ⑤體群臣 | ⑦來百工 |
⑧柔遠人 | ①修身 | ⑥子庶民 |
공자가 설명한 위의 九經大法을 정전법에 맞춰 정리한 내용이 [그림4]이다. 공자는 仁政을 이루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을 행하고(所以行之者), 공을 이루는 것(及其成功)’이 결국 한 가지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 한 가지는 곧 자기 몸을 닦는 수신의 도이다.
요순과 하은주 삼대의 삼왕처럼 아무리 좋은 정치의 선례가 있다한들 효제충신의 인륜도덕을 저버리는 사람이 위정자가 된다면 그가 아무리 재주가 탁월하다고 하더라도 결코 仁政을 베풀 수 없고 그 정치는 부패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그 사람이 있으면 그 정치가 일어나고 그 사람이 없으면 그 정치가 쉬게 된다(其人存則其政擧, 其人亡則其政息).”고 하였고, “신령스러우면서 밝게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고, 묵묵히 이루며 말하지 아니하여도 미더운 것은 덕행에 있다(神而明之, 存乎其人, 黙而成之, 不言而信, 存乎德行 : 『주역』 계사상전 제12장 ).”고 하였으며,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도가 헛되이 행해지지 아니한다(苟非其人, 道不虛行 : 『주역』 계사하전 제8장).”고 하였다.
출처 : 孟子易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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