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국 전 지미 카터 대통령의 인생 2막에 대한 글을 실어봅니다. 그분은 나이 99세시고 건강도 안 좋으신데 쓰러질 듯하다가도 다시 일어나 지금까지 잘 버텨 오신 인생 2막의 승리자십니다.
대통령 때보다 은퇴 이후 인생이 더 빛을 발한다 네요. 우리도 인생 2막 3막이 있죠. 지난날보다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지기를 기도합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다가 하나님 부르시는 날 모두들 안녕하며 떠날 수 있기를...
‘인생 2막의 스승, 카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99세가 되었다. 백(百)에서 하나(一) 모자라는 나이, 백수(白壽)다. 8개월 전만해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대부분 생각하지 못했다. 2월 18일, 카터센터는 그가 모든 병원치료를 중단하고 집에서 호스피스 케어를 받으며 가족들과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마지막 날이 임박했다는 의미였다. 당시 의료진은 카터 전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을 일주일 정도로 보았다. 가족들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 그러나 차분하게 그와의 마지막을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카터 센터의 발표가 나오자 당을 초월한 정치인, 역사학자, 인권운동가 등 각계 인사들은 이 특별한 전직 대통령의 깊은 인류애와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헌을 기렸고, 애틀랜타의 카터 센터에는 방문객들이 몰려들어 그의 평안을 빌었다.
그리고는 계절이 세 번 바뀐 지금 그는 평안하다. 고향 플레인즈 주민들이 마련한 생일 축하행사에 부인 로잘린 여사와 깜짝 등장(자동차 안에 앉아있는 상태로)해 박수를 받았고, 얼마 전 땅콩축제에도 부부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수년 간 암 투병과 낙상으로 건강이 상했고,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 재발 전이되어 몸은 많이 쇠약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그는 여전히 강건한 것 같다. 매일 TV 뉴스를 챙겨보고 현안에 대해 가까운 친지들과 토론하며, 2024 대선 동향을 체크한다고 미디어들은 전했다.
카터의 가장 큰 강점은 놀라운 회복력이다. ‘이제는 끝났구나.’ 싶어 보일 때 아무 일도 없는 듯 벌떡 일어나 멋지게 재기한다. 그렇게 그는 인생 2막을 시작했고, 건강문제가 생길 때마다 담담하게 털고 일어났다. 생의 끝이 임박한 지금도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동안 이 땅에서 의연하게 머물지도 모르겠다.
기대수명이 날로 길어지는 시대에 건강하고 의미 있는 노년은 우리 모두의 숙제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그 좋은 본보기가 된다. 1981년 1월 대통령이라는 최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그는 56세였다.
역대 대통령으로서 드물게 재선에 실패하고, 전 국민의 관심은 온통 로널드 레이건 신임 대통령에게 쏠려 있을 때, 그는 외롭고 초라하게 귀향했다. 땅콩농사 지으며 조용히 여생을 보낼 뿐 그에게 다른 미래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인생 2막이 1막보다 더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증명해보였다.
비결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소명의식, 운동 그리고 행복한 결혼생활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1년 쯤 그는 실패를 곱씹으며 참담한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해야 할 일들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사람들의 삶을 돕고 세계 평화를 돕는 일을 소명으로 그는 카터센터를 설립했다.
아울러 주일학교 성경공부 가르치기를 재개하고 해비 탯 집짓기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신앙을 바탕으로 한 목적이 있는 삶이었다. 타고난 성실과 정직, 올곧은 원칙주의에 인생 1막에서 얻은 경험과 인맥, 정치적 영향력이 합쳐지면서 그는 국제무대에서 가장 신뢰받는 평화 전도사로 부상했다.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을 찾아다니며 중재에 나선 헌신의 결과 그는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대통령 퇴임 20년 후, 제 2막의 활동으로 노벨상을 받은 대단히 드문 케이스이다. 노년에 의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미 역대 대통령 중 최장수 기록을 세운 그는 유전적 장수집안 출신이 아니다. 아버지와 동생들은 모두 췌장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런 그가 건강하게 장수한 비결은 운동이라고 손자인 제이슨 카터 전 조지아 주상원의원은 말한다.
할아버지는 매일 테니스를 쳤고, 어느 도시를 방문하든 조깅을 했으며, 달리기가 힘에 부친 후로는 자전거를 탔다고 손자는 전한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답은 다를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할머니 로잘린 여사를 장수의 첫째 비결로 꼽을 것이라는 말이다.
카터는 역대 대통령 중 최장수 기록에 더해 결혼생활 최장기 기록보유자이다. 1946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카터는 로잘린과 77년을 해로하고 있다. “내가 가장 잘한 건 로잘린과 결혼한 것, 그게 내 인생의 절정”이라고 카터는 말해왔다.
금슬지락 즉 화목한 부부사이가 건강과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바이다. 노년에 부부가 사이좋게 함께 사는 것만큼 큰 복은 없다. 부부가 같이 사니 외롭지 않고, 운동과 건강식 등 건강한 생활습관을 서로 챙기게 되며, 친지들과 어울릴 기회도 더 많아서 활기찬 생활을 하게 된다.
늘 대화하며 함께 사는 삶은 치매 예방효과도 있다. 런던대학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와 사는 노인이 치매에 걸릴 확률은 평생 독신으로 산 노인보다 42%, 사별하고 혼자 사는 노인보다 20% 낮다. 결과적으로 배우자와 함께 사는 사람은 혼자 사는 사람에 비해 평균 2년을 더 오래 산다고 한다.
카터 부부는 어려서 옆집에 살았다. 로잘린이 태어났을 때 3살 꼬마 지미는 엄마 손 잡고 갓난아기를 보러갔었다고 한다. 그 꼬마들이 이제 99세와 96세의 노인들이 되었다. 근 한 세기를 이어온 인연이다. 그 긴 세월 부부는 매일 저녁 손을 꼭 잡고 산보하며 행복했다. 건강과 장수의 가장 소박한 비결이다. 카터의 인생 2막은 영감을 준다.
<권정희 미주한국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