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과 아합의 동맹
[대하 18장]
[내용개요]
본장에서는 민족의 최대 과제인 국토 분단과 민족 분열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여호사밧이 분열 왕국 시대 이후 최초로 북왕국 아합과 동맹하여 길르앗라못 전투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양국간의 관계를 쇄신해 보고자 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사밧은 지나치게 아합 왕과의 화합만을 염두에 둔 나머지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을 청종하기보다는 아합 왕과 400인의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수락하였던 것이다. 본장은 여호사밧과 아합의 동맹(1-3절), 하나님의 뜻을 묻는 두 왕의 기록이 있다(4-11절). 그리고 미가야의 예언과(12-22절) 핍박받는 미가야에 이어(23-27절) 아합의 전사가 기록되어 있다(28-34절).
[강 해]
아합과 여호사밧의 동맹과 그 동맹을 기초로 하여 벌인 전쟁에서 아합이 죽은 장면이 본장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아합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되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여호와의 신앙에 철두철미했던 여호사밧이 아합 왕과 동맹을 맺은 것은 그의 일생에 있어 최대의 오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아합과 동맹을 맺은 여호사밧
1) 결혼 동맹을 맺음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하게 되었을 때 그 동안 적대 관계에 놓여 있던 북이스라엘 나라와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아합 왕가와 결혼 동맹을 맺었습니다. 즉 여호사밧은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를 아들 여호람의 아내로 삼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연혼은 두 나라의 존립과 번영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여호사밧의 실정이었습니다.
a.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함(대하17:5)
b. 아합으로 더불어 동맹함(대하18:1)
2) 아합의 제안
유다 여호사밧 왕과 동맹을 맺은 아합은 유다 왕에게 함께 길르앗라못을 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아합은 이 제안에 앞서 사마리아를 방문한 여호사밧을 위해 굉장히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아합이 여호사밧에게 함께 칠 것을 제안한 길르앗라못은 요단 동편 갓 지파의 중요한 성읍으로 국경 지대의 고지에 위치한 전략상 주요 요충지였습니다. 아합은 이곳을 쳐서 빼앗으려고 계획하고, 군사력이 강한 여호사밧에게 함께 칠 것을 제안한 것입니다.
a. 경계해야 할 불의와의 야합(고후6:14)
b. 구별되어야 할 하나님의 백성(벧전1:15-16)
3) 아합의 제안을 수락하는 여호사밧
여호사밧은 길르앗라못을 함께 치자는 아합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아합을 매우 친밀히 여기는 표현으로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연합을 강조하여 함께 싸울 것을 다짐했습니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을 섬기는 여호사밧과 바알을 숭배하는 아합과는 연합할 수가 없는데도 이들은 연합하여 결국엔 악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인간 관계를 맺을 때에는 반드시 심사숙고해야만 합니다.
a. 세상과 짝하면 하나님의 원수가 됨(약4:4)
b. 악행하는 자는 환난이 있음(롬2:9)
2. 선지자에게 출전 여부를 물음
1) 거짓 선지자
아합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한 여호사밧은 길르앗라못을 치러 올라가기 전에 아합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자고 하였습니다. 이에 아합은 자신에게 속한 선지자 사백 인을 불러모아 물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선지자 사백 인은 바알 선지자는 아니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의 타락한 종교와 타협한 선지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알 선지자 사백 오십 명은 이미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와 갈멜 산의 대결에서 죽음을 당했기 때문입니다(참조, 왕상18:22-40). 아합에게 속한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일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며 전쟁에 나아갈 것을 예언했습니다. 아무리 그럴 듯한 선지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말씀을 전하거나, 그 반대로 명하신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는 참 선지자가 아니라 거짓 선지자입니다. 따라서 오늘날도 기록된 계시인 성경 외에 다른 내용을 첨가해서 가르치거나 성경에 명백히 언급된 사항들을 일부러 도외시해서 가르친다면 거짓 선지자인 것입니다.
a.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사9:15)
b. 주의 묵시를 받지 못함(애2:9)
2)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속한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는 그들의 말이 의심스러웠던지 아합에게 다른 선지자는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아합은 이물라의 아들 미가야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미가야에 대한 아합의 부정적인 말을 들은 여호사밧은 미가야를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여호사밧과 아합 앞에 나온 미가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전투에서 패하여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질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미가야는 참 선지자로서 아합에게는 미움을 받았습니다.
a. 참 선지자 미가야(대하18:8)
b.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음(벧후1:21)
3) 핍박받는 참 선지자 미가야
참 선지자 미가야가 아합이 길르앗라못 전투에서 패배할 것을 예언하자 시드기야는 미가야의 뺨을 치며 그의 예언이 거짓임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미가야 선지자는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날에 보리라'고 확신에 찬 대답을 했습니다. 아합 왕은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와 같이 아합은 자신의 뜻에 배치되는 예언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죄 없는 미가야를 옥에 가둔 것입니다. 이러한 아합의 행위는 악한 왕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a. 참 선지자를 미워하는 아합(대하18:6-7)
b. 악인에게 핍박받는 자는 복됨(눅6:22)
3. 전쟁과 아합의 죽음
1) 출전하는 아합과 여호사밧
참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아합과 여호사밧은 길르앗라못을 치러 올라가 전투를 벌였습니다. 아합은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 때문에 여호사밧에게 이스라엘의 왕복을 입히고 자신은 변장하여 군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인간의 눈을 속임으로 하나님의 예언으로부터 피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아람 왕은 병사들에게 이스라엘 왕을 집중 공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a. 마음이 완악함(마13:15)
b. 변장하고 전투에 참여하는 아합(대하18:28-29)
2) 아합의 죽음
아합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변장까지 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변장을 하고 병사들 속에 끼어 전투를 하던 아합은 아람 군사가 우연히 당긴 활에 맞아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전쟁이 맹렬하여 부상당한 아합은 전쟁터에서 빠져 나노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성경 저자는 아합의 죽음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었음을 증거합니다.
a. 성취되는 주의 말씀(사55:11)
b. 식언치 아니하시는 하나님(민23:19)
결론
본장에서 우리는 여호사밧이 아합과 동맹을 맺고 전투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열왕 가운데 가장 악한 왕인 아합과의 동맹은 엄첨난 재난을 유다와 다윗 왕가에 끼쳤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어떠한 경우에도 악인과 연합하거나 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단어해설]
1절. 아합, 북왕국 이스라엘의 7대 왕. 폭정과 우상 숭배로 악명이 높았음.
8절. 내시. 왕의 침실 일을 맡아 보던 신하.
16절. 목자. 원래는 양을 치는 사람으로서 성서에서는 백성의 지도자, 또는 하나님을 비유할 때 사용된다.
17절. 흉한 것. 원어 <[r":라>는 모든 것을 망치는 악한 것을 뜻한다.
25절. 부윤. 한 지방을 다스리는 수령이나 통치자를 가리킨다.
[신학주제]
길르앗라못 전투에서의 패배.
본문에서 길르앗라못 전투에서 북왕국과 남왕국의 연합군이 아람 군대에게 패배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 전투에서 아람 왕은 북이스라엘의 아합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아합은 자신의 신분과 얼굴이 아람 군대에게 잘 알려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변장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간교한 행위는 인간의 시선을 피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화살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여호사밧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살아났다. 이러한 사실은 열왕기에는 기록되지 아니한 것으로서, 본서 저자는 여호사밧과 더 크게는 남유다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적교훈]
우연이란 다른 어떤 것과 인과 관계나 연관이 명백하지 않아 그것을 미리 상정할 수 없는 일을 가리킨다.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고, 사건 속에서 활동하심으로써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측면에서 볼 때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 성도들은 자신들의 삶이 모두 하나님에 속한 것임을 고백할 때, 우연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그 섭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출처: 주님의 시선 글쓴이: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