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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4: 25. 바다를 걸으심
마 14: 25. 바다를 걸으심 -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
밤 사경(四更) 즉 새벽 3시부터 6시 즈음에 예수께서는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
그는 밤늦게까지 산에 계셨고 새벽녘에 제자들에게 오셨다.
그는 어려움 당한 제자들을 위해 급히 바다 위로 걸어서 오신 것이다.
1] 밤 사경에
유대인들은 밤을 3경으로 나누었다.(일경을 4시간씩) 그리스나 로마는 4경으로 나누었다. 여기서 마태는 로마식을 따른 것 같다. 따라서 1경은 오후 6시부터 9시까지이며, 2경은 9시부터 12시까지, 3경은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그리고 본문에 묘사된 4경은 '새벽 3시부터 6시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 막 6: 48 -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2]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예수가 만유의 주재로서 초자연적 위상(位相)을 나타내주는 부분이다.
밤 사경(四更) 즉 새벽 3시부터 6시 즈음에 예수께서는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 그는 밤새 산에 계셨고 새벽녘에 제자들에게 오신 것이다. 그는 어려움 당한 제자들을 위해 급히 바다 위로 걸어서 오셨다.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 증거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바다 위로 걸어오게 하실 수 있으시다.
바다 위를 걷기 위해서는 세찬 바람과 거친 물결, 지구의 중력을 극복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자연의 사슬들을 지배하시고 그 위에 우뚝 서신 것이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기적 사건은 그 결과가 제자들의 최초 신앙고백, 즉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33절)라고 하는 고백을 하게 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이 생략된 누가복음을 제외한 마태, 마가, 요한복음의 서술이 오천 명을 먹이신 급식 사건 다음에 기술되어 출애굽 사건을 연상케 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다를 건넜지만 예수는 스스로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 바다 위를 걸었다. 모세보다 탁월하신 예수의 신성을 나타내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예수(복음)의 새 시대는 모세(율법)의 옛 시대를 포함할 뿐 아니라 크게 능가(surpass)하고 있다.
3] 물위를 걸으신 예수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일으키신 17번째 기적은 물위를 걸으신 기적이다. 이 기적은 우리의 신상생활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믿음 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1)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 히 11: 6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① 믿음의 정의
* 히 11: 1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막 9: 23 -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 요일 5: 4 -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 고전 13: 13 -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② 믿음을 얻는 방법
* 롬 10: 17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요 14: 6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롬 1: 16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③ 믿음으로 받는 은혜와 축복
* 히 11: 6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갈 3: 26 -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 엡 1: 13-14 –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 엡 2: 8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것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운전면허 시험은 운전기술만 보고 영어통역 시험은 영어 실력만 보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믿음만 보신다.
주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실 때도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 주셨다.
* 막 2: 5 -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그러나 예수께서 나사렛에서만은 기적을 행하시지 아니하셨는데 그들에게서 믿음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① 믿음은 대상을 의지하는 것
ⓐ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다.
* 히 12: 2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롬 1: 16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 고전 1: 18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요 11: 25-26 –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 고전 15: 31 -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 빌 3: 8-9 –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 고후 13: 5 -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것이다.
* 약 2: 1, 7. 22. 26 –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마 7: 21, 24 –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② 믿음은 대상에 절대 순종하는 것이다.
ⓐ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만 충성하는 것
* 마 24: 45-46 –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 고전 4: 2 -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 딛 2: 9-10 – 9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10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 계 2: 10 -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만 순종하는 것
* 벧전 1: 14-15 –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 삼상 15: 22 -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히 5: 8-9 –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 믿음을 가진 자는 예수님께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한다.
* 고전 15: 31 -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 롬 14: 7-8 –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 갈 2: 20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빌 1: 20-21 –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3) 믿음으로 구원받기 때문이다.
* 요 3: 1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①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만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족할 만한 상태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고침을 받는 것, 가난하게 살다가 부유해지는 것, 속박의 상태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포로 중에서의 석방, 전쟁의 참화 속에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 파멸의 위기에서의 재건, 죽음의 자리에서의 구출 받음, 좁은 길이 넓어지는 것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의미하는 구원은 하나님께서 인류나 모든 피조물을 창조 당시의 완전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구원에는 회복의 의미와 완성의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다.
② 구원받아야 할 세상인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의 형편은 어떠한가? 만족할 만큼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시겠는가?
병든 인간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만사가 파멸의 길을 달리고 있다. 인간들에 의해서 오염되고 훼손되어 자연까지도 신음하며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
③ 누가 구원할 것인가?
구원의 주체가 누구냐? 하는 문제를 논의할 때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다.
ⓐ 인간 자신이 노력해서 인류나 세상을 구원해 나가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무신론적인 인간중심주의에서 나오는 사항이다. 역사의 주체는 인간이며 역사의 책임도 인간에게 있으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능력도 인간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인간을 낙관적으로 보면서 유토피아 건설을 꿈꾸고 있다.
ⓑ 인간과 신(神)이 함께 구원을 성취해 나간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자보다는 신앙적이다. 인간이 유한하므로 절대자와 함께 손을 잡고 인간의 유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 스스로가 구원을 위한 능력의 절반 정도는 소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인간의 공로나 노력이 구원의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종교에서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으며 기독교의 일부에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셔야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성경적이며 전통적인 개신교회의 입장이다.
인간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멀어졌고 불행을 자초했으며 파멸의 길을 걷고 있다. 죄 아래 있는 인간, 죄 가운데 있는 인간 스스로가 죄로부터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구원의 손길을 펴실 때에만 인류의 구원이 가능하다.
누가 구원하는가? 이 물음에는 하나님만이 인류를 구원하시고,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신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④ 누구를 구원할 것인가? (구원의 범위)
구원받을 대상과 범위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은 우주 만물과 인류 전체이다. 그러나 그 범위와 수가 정해져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구원의 범위나 조건이 있다고 한다면 ‘믿는 자 마다’(요 3: 16) 라는 믿음이 될 것이다.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반성하신다든지, 창조의 상태로 회복하신다는 개념에서 볼 때 구태여 그 범위와 숫자를 제한하실 필요가 있겠는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창조 질서의 회복을 통해서 구원받는 다는 사실을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범위는 개인에게서 출발해서 가정과 사회와 자연계 전체를 포함하여 이 땅과 저 하늘과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완성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초점을 한 인간에게 맞추고 계시며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원이 인류 구원의 근본이요 시작이요 완성에의 첩경임을 알아야 한다.
이같이 믿음은 구원의 절대적 요소요, 기적의 필수적 요소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신앙생활에 필요적 요소입니다.
(4) 믿음의 두 종류
그런데 믿음에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양이 있다. 부족한 양이 있고 넘치는 양이 있다. 전자를 적은 믿음이라 말하고 후자를 큰 믿음이라 부른다.
마태복음 15장을 보면 두로와 시돈지방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께 찾아와서 딸을 고쳐달라고 매달렸다. 예수님께서 모욕적 언어를 쓰셔도 굴하지 않고 여인은 매달렸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 15: 28)고 말씀하셨다.
믿음이라고 다 같은 믿음이 아니다. 큰 믿음이 있고 작은 믿음이 있다. 본문의 이야기는 오병이어 기적후 밤 4경(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다.
베드로가 믿음으로 물 위를 걷다가 의심하여 빠져들었다. 예수께서는 손을 내밀어 베드로의 손을 잡아 끌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시며 건져주셨다. 적은 믿음이라고 책망하셨다.
그러면 어떤 믿음이 큰 믿음일까? 예수께서는 어떤 믿음의 양을 원하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어느 만큼의 믿음의 양을 원하시는 것일까?
① 예수를 주로 모신 믿음이 큰 믿음이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 '주'라 부르고 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28절)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30절)
하버드대 교수로 또 신시네티 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지도자 연구 센타(Center for leadership studies)를 운영하고 있는 와렌 베니스( Warren Bennis) 박사는 미국 최고의 기업인 500명을 택하여 그중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회사 경영자 90명을 선발하였다. 그리고 3년간 직접 방문하여 그 공통점을 보니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발견되었다.
ⓐ 큰 비젼의 사람이었다.
꿈의 사람이었기에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허풍장이라고 비웃을 정도였다.
ⓑ 끈기의 사람이었다.
아무리 절망적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낙심하지 않았다. 아무리 부정적 파도가 몰려와도 찰거머리같이 매달리는 끈기의 사람이었다.
ⓒ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이었다.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경영하였고, 주님의 뜻대로 돈을 썼다. 주님을 사랑으로 모셨다. 예수를 주로 모신 믿음은 큰 믿음이다.
② 기도에 대한 응답이 있는 믿음이 큰 믿음이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두 가지 기도를 하고 있고, 두 가지를 다 응답받았다.
첫째 기도는 물 위를 걷게 해달라는 기도로 물 위를 걷게 되었다.
둘째 기도는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하였는데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셨다.
다른 11명의 제자들은 기도도 없고 응답도 없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으로 가득 차 있다. 성경의 사람들은 누구나 기도하였고 누구나 응답받았다. 기도할 줄 알고, 응답받을 줄 아는 믿음이 큰 믿음이다.
③ 모험에 도전하는 믿음이 큰 믿음이다.
풍랑이 일고 있었다. 고난의 순간이요 공포의 시간이다. 제자들이 고통 속에 있을 때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 오셨다. 다른 제자들이 구경만 하고 있을 때 베드로는 예수와 같은 믿음으로 예수처럼 걷고 싶었다. 불가능에 도전하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예수께 요청하였다. 드디어 베드로는 물 위를 걸을 수가 있었다. 불가능에 도전할 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큰 믿음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은 상식이다.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의 사람은 미래의 것을 선포하기에 오늘은 미친 사람이다. 그러나 지나 놓고 보면 안다. 선각자의 시계는 5분 먼저 가기에 후각자는 지나야 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였던 12정탐꾼의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10명의 정탐꾼은 지극히 상식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2명은 인간적으로 보면 정신 나간 사람이다. 신앙적으로 보아야 믿음의 사람이다. 시도하다 실패하여도 시도한 것만큼 성공이다.
설거지를 하지 않는 이가 그릇을 깨뜨리는 경우는 결코 없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큰 실패다.
④ 예수의 손에 붙잡힌 믿음이 큰 믿음이다.
베드로는 처음에는 자기가 걸었다. 그러나 실패하였다. 물에 빠져들어 가면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는 손을 내밀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셨다. 풍랑에서 구원받았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손을 붙잡아 주셨다.
내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나를 믿어 주는 단계가 참 믿음의 단계다. 내가 예수 믿는 것은 믿음의 초보다. 그러나 예수가 나를 인정해주고 나를 믿어주는 단계가 큰 믿음의 단계다. 내가 주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붙잡아 주는 단계가 참 믿음의 단계다.
* 요 15: 16 -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⑤ 표적이 따르는 믿음이 큰 믿음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 주님은 "너희가 나를 믿으면 내가 하던 일을 너희도 할 것이요 나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 17-18)
본문의 믿음에는 3가지 표적이 따랐다.
ⓐ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
ⓑ 베드로도 물 위를 걸었다.
ⓒ 바람이 잔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