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가 승려 되어 복음 전도로 절이 교회되다/ 정영남
이번 한국성지순례선교회 전문위원들이 한국에서 순교한 분들의 유적지 개발을 위해 2박 3일, 전라도 일대를 탐사 다니면서 달리는 차 안에서 평택대학 대학원교수 황기식 박사는 가는 곳마다 은혜넘친 이야기로, 순교현장을 이야기 할 때는 듣는이로 하여금 가슴 절이며 눈물을 흘리게하고, 때로는 개그맨보다 더 웃긴이야기로 배꼽을 잡게하면서 우리일행을 위해 애를 쓰므로 듣는 우리들은 신앙으로 도전을 받으며 주의 일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도 하면서 이곳 저곳을 다녔다.
자청 가이드로 활약하는 황목사의 이야기 중 한 선교사의 선교활동을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홍콩 道風山교회의 이야기다.
1890년경 노르웨이 칼 라이헬트 선교사는 2년간 중국어를 배우고 절과 불교신자가 많은 홍콩에 도착했다 한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했던가?
이 선교사는 더 깊게 불교의 철학과 문화를 연구하여 승려와 불교신자와도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아예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도풍사 절에 들어가 승려들과 함께 먹고자고 같이 생활을 했다. 그는 승려들과 대화를 하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런 결단을 내렸지만 본국에서는 난리가 났으며 3번이나 소환명령을 받았고 교계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까지 목사가 중이 되었다고 수근거렸지만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결단이기에 흔들림이 없었고 언제나 변함없는 태도였다.
3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험난한 비난의 날들이 지나고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겠다고 복음을 받아드린 승려가 무려 72명이나 되어 세례를 받은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대장이 항복하면 졸병들은 거의 다 굴복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모든 승려가 성도로 바뀌면서 道風寺절은 道風山교회가 되었다 한다.
그때의 사찰 시설들이 교회로, 기독교 수양관과 문화센터로 바뀌었고 이소문에 도처에 퍼지자 성도뿐 아니라 모든 목회자들이 도풍산교회를 보기 위해 세계각국에서 일부러 홍콩 도풍산교회를 찾는다고 한다. 황교수가 있는 충청도 목회자들은 상당수 다녀왔단다. 그뿐 아니다 부산에 있는 목회자들도 다녀왔고 이 소식을 접한 분들은 상당 수 그곳을 찾아간다고 한다.
우리 한국성지순례팀도 멀지않은 날 가지않을까 싶다.
홍콩 道風山교회
문화센터와 수양관으로 사용한 곳
첫댓글 사진과 글이 생생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