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30(월)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삼하3:9)/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의 왕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매 (삼하3:10)/아브넬이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여러 번 다윗을 너희의 임금으로 세우기를 구하였으니 (삼하3:17)/
→ 아브넬은 암살을 당했으니 참으로 허무하고 애석한 일이기는 합니다만, 그에 대해 좋은 평을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겠다고 맹세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들도 그에게 여러 번 요구했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그런데도 자기 권력을 위해 그것을 이행하지 않다가, 자기가 세운 이스라엘의 왕 이스보셋이 자기의 죄를 지적하자 발끈해서 다윗과 결탁하려 합니다. 하나님과 백성들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다가 자신의 섭섭한 감정 때문에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뜻을 명분으로 해서 다윗에게 붙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겠지요, 하지만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에 속하는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실망스럽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자주 보게되기 때문에 실망스럽습니다.
2023.1.31(화)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삼하6:20)/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삼하6:21)/
→ 미갈이 보기에는, 다윗의 춤 추는 것이 상당히 체통없는 것으로 여겨졌나 봅니다. 그래서 아내로서 남편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랬는데~, 다윗이 화를 냈고, 그후로 자기 신세가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미갈의 입장이 있고 다윗의 입장이 있습니다. 미갈의 생각이 있고 다윗의 생각이 있습니다. 자기 생각에는 이게 맞다고, 다윗이 틀렸다고 충고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님을 봅니다. 나서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습니다. 그랬으면 저주는 받지 않았을 텐데요~. 미갈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는 동일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조심해야겠습니다. 내 생각으로 남을 정죄하는 일, 비난이 들어 있는 말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주님, 제 입술을 지켜주셔서 덕스러운 말을 하게 하소서~!
2023.2.2(목)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삼하14:32)
→ 압살롬은 데려오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뻔 하였습니다. 자기 죄를 알지 못하고 돌이키지 않는 사람을 데려오니 자기가 죄 없는 줄 압니다. 요압이 공연히 이 일을 주선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장래를 위해 그렇게 했겠지요? 그리고는 다윗이 압살롬을 대면하지 않으니 그도 역시 압살롬의 부름에 응하지 않습니다. 압살롬이 불쌍해서 귀국을 주선한 것이 아님을 이로써 알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복잡한 상황들 중에서 다윗에게 분별력이 더 필요했을 듯합니다.
2023.2.3(금)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삼하15:25)/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삼하15:26)/
→ 이 장면을 읽을 때면 언제나 감동이 됩니다! 다윗의 태도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자기가 위급한 상황에 몰려 있지만, 그런 중에도 하나님이 주님이심을 기억하고 인정하는 다윗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으로 삼으셨으며, 이제도 자신의 왕권 유지가 하나님께 달려 있고, 만일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때에 자신이 적합하지 않다면 폐하실 권리도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는 셈입니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시켜 보려고 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아니요, 자기를 지켜달라고 간절히 매달리는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처분에 자신을 온전히 맡겨드리는 다윗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나 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시겠다 하신 것을 알았지만 그것을 막으려고 온 힘을 쏟았는데~, 그 점이 또한 사울과 다윗의 차이이겠습니다.
2023.2.6(월)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 (삼하17:23)
→ 아히도벨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 모략을 내는 지혜가 대단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판단력이 아주 빼어납니다. 지금 기습하여 다윗만 죽이면 압살롬 시대가 열릴 것을 예견했고, 후새의 말대로 하게되면 패배하게 될 것을 예견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이 여기까지인 것을 알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반역자로 잡혀 죽었겠지요. 그렇게 통찰력 있는 사람이 왜 다윗을 배반했을까요? 밧세바가 아히도벨의 손녀이니, 자기 손녀 사위를 죽이고 손녀를 자기 아내로 들인 다윗이 미웠던 것일까요? 압살롬이 정권을 차지하게 될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일까요? 자기 감정 또는 자기 판단을 근거로 스스로의 지혜를 따라 판단했던 것인가 봅니다. 이렇게 뛰어난 사람도 잘못된 판단을 합니다. 사람의 지혜의 한계이겠지요?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아무리 분하고 괘씸하더라도, 아무리 자기 계산이 확실하더라도 먼저는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고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아무쪼록 내가 또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달려가게 하소서 하니 요압이 이르되 내 아들아 너는 왜 달려가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말미암아서는 너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하되 (삼하18:22)/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삼하18:29)/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삼하18:33)/
→ 아히마아스는 참 분별력이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지금 이 소식을 전하는 일은 가급적 피해야 할 일일 듯한데 한사코 자기가 소식을 전하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가서는 압살롬에 관한 언급은 안 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거기까지가 아히마아스의 한계이겠지요! 아히도벨의 한계, 아히마아스의 한계, 그리고 하나 더 다윗의 한계도 나옵니다. 아들의 죽음은 너무 안타깝지만 자기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자기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워 준 군인들이 기뻐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각각 그 모습과 정도는 다를지라도 다들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계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나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나를 도우사 나의 한계를 잘 다스리게 하소서, 잘 넘어서게 하소서~!
2023.2.8(수)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삼하23:1)
→ 이전부터 이 표현이 참 부럽습니다.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 저도 노래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노래 잘 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지요, 얼마나 사모되는 이름인지요! 대구 A 지구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