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장락(一忍長樂)
옛날, 성격이 급한 장사꾼이 먼 곳으로 행상을 나갔다가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날이 저물어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다가 상인이 스님에게 말했다.
"스님, 제가 평생 살아가는 데 교훈이 될 말을 한 마디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스님은 "제가 뭘 알겠습니까?"하고 사양하다가 상인이 거듭 부탁을 하자 마지못한 듯 입을 열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만, 처사님께서 거듭 말씀을 하시니 한 마디만 해 드리겠습니다.
이건 제가 모시던 스님께서 제게 해 주신 말씀입니다.
저는 젊었을 때 성미가 급해서 작은 일에도 화를 벌컥 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스승님께서는 제게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상인이 성급하게 물었다.
"뭐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스승님께서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에는 잠시 앞으로 세 걸음, 뒤로 세 걸음을 반복해 걸어 보아라'라고 말입니다."
장사꾼은 속으로 '뭐야? 이게 평생 살아가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어?' 하며 스님 몰래 피식 웃고 말았다.
상인은 스님과 헤어져 한밤중에 집에 도착하여 싸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문 앞에 웬 남자 고무신이 아내의 신발 옆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구멍을 뚫고 들여다보니
아내가 머리를 빡빡 깎은 젊은 스님을 꼭 껴안고 자는 게 아닌가!
"이 여편네가 내가 없는 틈을 타서 외간 남자를 집으로 불러들여 정을 통하다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그는 부엌으로 들어가 식칼을 찾아 들고 방으로 막 들어가려는 순간,
바로 조금 전에 스님이 해준 말이 생각나서 앞으로 세 걸음, 뒤로 세 걸음을 걸어 보았다.
그때 부인이, 발자국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고 나오며 반가워하는데,
그 뒤에 젊은 스님이 따라 나오며 "형부! 반가워요!" 하며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젊은 나이에 스님이 되어 언니를 찾아온 동생이 안쓰러워 꼭 껴안고 잠자는 것을
급한 성격에 칼로 찔러 죽일 뻔 했으니...!
그는 바로 조금 전에 헤어진 스님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참는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욕심을 참고, 화냄을 참고, 어리석음을 참는다면
우리네 삶이 한 단계 올라 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인장락(一忍長樂). 한 번 참으면 오래도록 즐겁다는 이 말을 잊지 말고
실천하면서 오래오래 즐겁고 행복하게 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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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공자의 수제자로, 한때 스승이 늙어서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오해하고 잠시 부모님을 뵙고 오겠다며 길을 떠나, 고향집에 한밤중에 도착했다가 윗글 속의 장사꾼과 똑같은 상황에 부딪히는 안회(顔回)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는 시장거리에 갔다가 어떤 사람과 다툼이 생겼는데, 공자가 자기에게 엉뚱한 판정을 내린 데 대해 실망하고 공자와 헤어져 고향집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늦은 밤이어서, 그는 부모님을 깨우지 않으려고 건너편 건물의 자신의 방으로 향했지요.
그리고 아내가 자고 있는 내실의 문고리를, 차고 있던 보검(寶劍)으로 조용히 풀고, 컴컴한 침실 안에서 손으로 천천히 더듬어 만져보니, 아니 이게 웬 일? 두 사람의 머리가 만져지는 게 아닙니까?
'내가 없는 사이에 불륜을 저지르다니!' 순간 화가 치밀어올라 검을 뽑아 내리 치려는 순간,
그가 출발할 때 써준 스승의 충고가 떠올랐습니다.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데 함부로 손을 움직이지 말라'고 써준 충고.
얼른 촛불을 켜보니 침대 위의 한쪽은 아내이고 또 한쪽은 자신의 누이동생이었습니다.
"허허, 참! 스승님은 천문을 꿰뚫어보고 계시는 건가, 아니면 점쟁이란 말인가?"
다음 날, 안회는 날이 밝기 무섭게 공자에게 되돌아가서 무릎 꿇고 말했답니다.
"스승님이 충고해주신 말씀 덕분에 제 아내와 누이동생을 살렸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까?"
공자가 안회를 일으키면서 말했습니다.
"회야! 네가 분개한 마음을 풀지 못한 데다 보검을 차고 떠났기에,
너를 자극하는 조그만 일에도 분명 예민하게 반응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본다면 누구나 그런 상황을 미리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는 이어서 말하길 "사실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단다. 네가 집에 돌아간 것은 그저 핑계였고, 내가 내린 판정에 대해, 내가 너무 늙어서 사리 판단이 분명치 못해 더 이상 배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지만 회야! 한번 잘 생각해보아라"하면서, 자신이 왜 그런 판결을 내렸는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안회가 시장거리에서 다툼이 생긴 것은, 어떤 사람이 상점주인과 다투면서
"3×8은 22"라면서 우기는 것을 보고 그가 틀렸다고 참견한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화가 난 그 사람과 말다툼 끝에, 안회는 자신의 관(冠=갓)을, 그 남자는 목을 걸고 내기를 했던 것.
바른 판결을 기대한 안회에게 공자가 "네가 졌으니 네 관을 주어라"라고
'엉터리 판결'을 했기 때문에 안회가 분개했던 것입니다.
"회야, 들어보아라. 내가 '3×8은 22'가 맞다고 하면 너는 그저 머리에 쓰는 관 하나 내주는 것뿐이지만,
만약에 내가 '3×8은 24'가 맞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목숨을 내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회야, 말해보거라. 관이 더 중요하더냐, 아니면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더냐?"
안회가 비로소 이치를 깨닫고 공자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리면서 말했습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대의를 중요시하고 보잘 것 없는 작은 시비를 무시하는
스승님의 그 도량과 지혜에 탄복할 따름입니다."
그 이후부터 안회는 스승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참아야 한다는 것은 알면서도 하찮은 일에 화를 내는 것이 소인배의 일상이다.
명심, 또 명심해서 화가 나더라도 참는 사람, 아니 현명하게 대처하고 현명하게 걸러내는 것이 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