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문린가직성(聞隣家織聲)」 이웃집 베틀 소리를 듣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웃집 베틀소리를 듣고 읊다’라는 칠언고시(七言古詩) 「문린가직성(聞隣家織聲)」은 거제도 유배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거제 유배작품이다. 그는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던 중,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거제도로 유배되었다. 그러다가 1694년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지평으로 기용되었던 대표적인 노론 정객으로 거제의 반곡서원(盤谷書院)에 제향된 문신(文臣)이다. 이 글은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문린가직성(聞隣家織聲)」은 1690년 김진규(金鎭圭) 선생이 거제시 거제면 배소(거제여상 터)에서 늦은 밤 잠결에 이웃집 베 짜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베 짜는 여인의 고달픔을 적은 글이다. "날마다 밤새도록 베틀의 고된 작업이 고달파서, 거제 여인들은 베틀과 비슷하게 생긴, 거문고는 보기만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으나 생황악기, 우생에는 그 화음이 아름다워 좋아했다"고 시구(詩句)를 통해 전하고 있다.
○ 누구나가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육아와 가사, 그리고 생계를 위해 밤새워 잠을 참아가며 베짜기를 했다. 농사는 농한기라도 있지만 길쌈은 일년내내 한가할 여가가 없는 고된 노동이었다. 당시 거제도 여인들은 밤늦도록 옷을 짜도 집의 아이는 바지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지난겨울 동안 관솔불을 등불 삼아 고된 옷을 짰다. 어느듯 봄이 되었지만, 아직도 못 다 짠 길쌈 실이 남아 있다.
특히 거제섬의 여성들은 평생 일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다. 맷돌 방아 농사 육아 등, 날 저물고 밤이 깊어서 아침까지 행해지는 일에 익숙해져, 거제 여인은 강하고 독립적이며 확실해졌다. 운명은 결코 녹록치 않았지만, 그러나 봄바람에 파도가 밀려오고 동백꽃이 붉게 피고 지면, 동백기름 머리에 바르고, 거친 손을 내려놓고 조신한 여성이고자 했다. 이에 우리의 옛 어머니들은 시아버지, 남편, 시동생과 시누이, 아이들의 옷가지 하나만을 걱정한 채, 오직 씨실 속에 시름 담고 날실 속에 인생을 담아 용기와 희망, 그리고 인내를 잃지 않았다.
◉ [물레와 베틀, 베짜기] 베틀은 각 원료에서 실을 뽑아낸 다음 피륙을 짜는 마지막 단계에서 사용하는 도구이다. 어떤 원료로 피륙을 만드는가에 따라 직기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명주 무명 모시 삼베를 짤 때에는 공통적으로 베틀을 사용한다.
물레는 목화의 솜이나 고치에서 무명이나 명주실을 잣는 연장으로 섬유를 자아서 실을 만드는 수공업적인 도구이다. 회전축을 이용 용도에 따라서 방차(紡車)·도차(陶車)·선륜차(旋輪車) 등으로 부른다. 지름이 50~60cm되는 바퀴에 줄을 걸어 빠른 속도로 가락을 돌리면서 거기에 솜을 먹여 실을 잣는 길쌈연장의 하나이다.
삼베의 시작은 신석기 궁산패총에서 뼈로 된 바늘에, 마사가 감긴 것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삼베를 짜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기술이 발달되어 중국으로 수출되기도 했다고 전한다. 옛날처럼 사람의 손으로 직접 직조하는 전통방식의 삼베 한 폭을 얻기까지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삼베를 베어 쪄서 삼껍질을 이어 실을 만드는 '삼기'를 하고 무릎에 비벼가며 실을 꼬아 질기게 하는 물레질을 한다. 잿물에 삼껍질을 담가 껍질을 씻어내는 '이기기'를 하고 씨줄과 날줄을 만드는 '나르기'를 한다. 여기에 습한 날에는 화로도 사용해야 하는 씨줄에 풀을 매기는 '베매기'를 한다. 그러고 나서야 베틀에 씨줄을 걸고 날줄을 북에 넣어 두 손과 한발을 이용하여 짜게 된다. 베틀에 앉으면 허리에 부테를 매고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일해야 한다. 낮에는 습도가 낮아 날실이 끊어지기 때문에 주로 이른 새벽과 밤에 베를 짜야 했다. 낮엔 들에 나가 일하고, 삼시 세끼를 챙기며 새벽과 밤에 베를 짜는 삶은 참으로 고달팠다.
◉ [거제유배 김진규(金鎭圭)] 한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는 조선후기 노론의 대표적 정객으로 스승 송시열(宋時烈)의 입장을 고수했던 인물이다. 문장에 뛰어나 반교문·교서·서계 작성을 많이 했으며, 전서·예서 및 산수화·인물화에도 능했다. 그는 거제반곡서원 터에서 귀양살이를 5년간 했다.(1689~1694) 문집으로 『죽천집(竹泉集)』, 편저로 〈여문집성(儷文集成)〉이 있다. 거제 반곡서원(盤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청이다. 그는 1679년에 거제면 반곡 골짜기로 유배 온 스승 송시열(宋時烈)과 같은 곳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복권되어 서울로 올라갔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전서·예서와 산수화·인물화에 모두 능하였고 거제의 반곡서원(盤谷書院)에 배향되었다. 그는 거제도 3대 유배문인으로, 그의 『죽천집(竹泉集)』에 약 240여편의 거제 유배 작품을 남겼다.
● 다음 ‘庚’ 운목(韻目)의 칠언고시(七言古詩) 「문린가직성(聞隣家織聲)」은 거제도 유배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이다. 죽천 선생이 1690년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배소(配所)에서 밤늦도록 들려오는 베틀소리를 듣고 지은 글이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거제도로 유배된 선생은 슬픔과 어려움 괴로움을 토로하면서 이를 억제하려고 노력하되, 유배현실을 개인의 일로 한정하지 않고 국가와 가족의 문제와 연결시켜 범주를 확장했으며, 현실적인 층위에서 일어난 가족 전체의 일을 내면화의 방법을 통해 가족으로 정서를 전환하였다.
내용은 이러하다. 당시 거제도 여인들은 밤늦도록 옷을 짜도 집의 아이는 바지가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 지난겨울 동안 관솔불로 등불 삼아 고된 옷을 짰다. 어느 듯 봄이 되었지만, 아직도 다 못 짠 길쌈할 실이 남아 있다. 아, 슬프다. 계속된 베틀 작업이 고달파, 베틀과 비슷하게 생긴, 현악기 거문고는 보기만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으나 생황 악기의 일종인 우생에는 그 화음이 아름다워 좋아했다고 김진규 선생이 시구를 통해 비유하고 있다.
*「문린가직성(聞隣家織聲)」* 이웃집 옷 짜는 베틀소리를 듣고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札札復札札 "찰카닥 찰각" 다시 "찰각 찰카닥“
卧聽隣家織布聲 이웃집 베 짜는 소리 누워 듣는다.
不知機中誰氏女 옷 짜는 여인은 어느 성씨인지 알지 못하나
側耳想像辛勤情 귀 기울어 상상하니 참으로 고된 일이로다
海島地瘠木綿稀 거제도 땅은 메말라 목면이 귀하여
居人被服多不贏 거제 주민의 의복이 모자라서 포개 입는데
夫壻無衣兒無袴 남편은 웃옷이 없고 아이는 바지가 없고
妾身雖寒猶可輕 며느리는 비록 몸이 차가워도 오히려 가벼이 여긴다.
經冬已蓄紡績工 지난겨울 길쌈한 실은 이미 쌓여있으니
盡日催將機杼鳴 진종일 베틀 북소리를 재촉하누나.
夜深人靜響轉急 밤이 깊어 사람 소리 조용하니 더욱 급히 울리고
映壁松炬當燈明 관솔불로 벽을 비추며 당연히 등불로 삼았네.
手倦脚疲眉幾嚬 손이 느려지고 발도 피곤하여 눈썹을 얼마나 찡그리는지.
十日未能一匹成 10일 동안 아직 한 필도 만들지 못했다네.
翻驚節序又蠶月 도리어 바뀐 절서에 놀라 돌아보니 누에 치는 3월이라,
柔桑漸綠鳴倉庚 어린 뽕잎 점점 짙어지고 꾀꼬리 울고나.
年年女紅長如此 해마다 길쌈하는 여인, 늘 이러한데도
不見衣裳箱篋盈 상자 속에 가득 찬 의복, 보지를 못했네.
吁嗟民生各有職 아~슬프다 백성의 생활이여, 각기 직분이 있는데
女事繅織男耘耕 여인은 고치 켜서 옷을 짜고 남자는 김매고 밭을 갈구나.
願將此聲遍人耳 원컨대, 이런 소리 사람 귀에 두루 퍼지니
輟却琴瑟停竽笙 거문고(琴瑟)에는 물러나 버리나 우생엔 머무른다.
聞來可識身上衣 몸 위에 입을 옷임을 알고 소문 듣고 왔지만
一絲成處千愁生 한 가닥 실 만드는 곳엔 갖은 수심 어린다네.
[주1] 여홍(女紅) : 여인들이 하는 바느질 등의 일을 가리킨다.
[주2] 우생(竽笙) : 삼국시대부터 널리 쓰던 관악기의 하나로 생황이나 소(簫)와 비슷한 악기. 처음에는 죽관이 36개였으나 뒤에 19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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