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입술소리 저자 이화인 출판 홍두깨 | 2019.1.1. 페이지수 179 | 사이즈 132*205mm
책소개 한국문예협회 시선집 이화인 시집 [가벼운 입술소리]. 《그리움이 싸락눈처럼 내리는 날》,《어머니는 나를 잊었습니다》, 《지상에 가장 따뜻한 밥상》,《가파도는 외상술이 없다》,《천 리 밖을 헤매고》등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제1부 저문 강가에서
010 그리움은/011 그리움이 싸락눈처럼 내리는 날/012 그립다는 말/013 젖은 꽃/014 저문 강가에서/016 이브의 달/018 어둔 길/020 떠도는 자의 슬픔/021 나비/022 바람 길/023 눈송이/024 개구쟁이 휘파람새/026 초승달/027 햇살의 등이 굽다/028 할미새/029 돌담을 쌓으며/030 어머니는 나를 잊었습니다/032 저도 그립습니다/033 우리는/034 휘파람새/035 아픈 꽃이 향기가 진하다
제2부 지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
038 고봉밥/039 화접花蝶/040 햇살의 이/041 빛이 희미하다/042 물들이다/043 꽃이 진다/044 꽃 진 자리/046 지상에 가장 따뜻한 밥상/047 기러기/048 그 꽃/049 돌 꽃/050 어두워질 무렵/051 첫눈/052 나도 꽃이다/053 은비네 카페/ 054 뜨거운 강/056 어둠을 밝히는/057 머언 기억/058 한 끼의 밥/059 저녁기도/ 060 가장
제3부 제주도에 가면
062 섬/063 우도/064 바다를 물들이다/065 함덕 연가/066 제주도에 가면/067 가파도는 외상술이 없다/068 바람/069 우도와 소/070 서귀포 칠십 리/071 그리운 서귀포/072 제주 바다/073 바람꽃/074 제주의 4월/075 바다에 이르지 못하면 강이 아니다/076 억새꽃/077 게걸음/078 민들레/079 선흘리 동백꽃/080 사람과 새와 별/081 돌아온 탕자/082 사이
제4부 사랑이란 이름으로
084 사노라면/086 상처는 더 깊은 사랑이다/087 어쩌자고/088 기억하게 하소서/089 천 리 밖을 헤매고/090 평등심/091 만추/092 천사/093 잔설/094 꽃그늘 아래 서면/095 꽃 멍/096 참회/097 성화聖畵/098 살다 보면/099 수선화에 묻다/100 하찮은 것들이 봄을 가져온다/101 사랑은/102 사랑이란 이름으로/103 미소/104 지금/105 참 좋은 인연/106 희망을 구걸하다/107 참꽃/108 천년
제5부 적멸寂滅의 집
110 궁극/111 마음/112 사리를 빚다/113 도량석/114 내소사 꽃살문/115 망부석/116 등신불/117 누더기 달빛을 걸치고/118 목어의 꿈/119 먼 전생/120 제법무아諸法無我/121 개심사/122 안개/123 황새 경전 뱁새 법문/124 적멸寂滅의 집/125 법고/126 배알미리/127 허공의 크기/128 풀꽃 한 송이/129 해찰하다
제6부 가벼운 입술소리
132 말랑말랑한/133 해바라기/134 야무나강 강가에서/136 종이꽃/137 꽃지게/ 138 너이기에/139 어느 날 문득/140 축복/141 등불/142 거룩한 손/143 노을/ 144 나뭇잎 편지/145 노숙자/146 꽃을 피울 때/147 황사/148 부끄러움/149 한 시절 인연/150 가벼운 입술소리/151 촛불/ 152 변절/153 그루터기
154 詩評 시에 든 보석의 빛을 보며
적멸 寂滅의 집을 찾아 나서는 시학 -이화인 시인 시집 『가벼운 입술소리 』에 붙여 - 이충재 (시인, 문학평론가)
*돌담을 쌓으며
태풍에 무너진 돌담을 쌓았다
크고 작은 돌덩이가 맞물려 비바람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손과 손을 움켜쥐었다
돌담이 되기 위하여 부둥켜안고 때로는 부딪치고 가끔은 적당한 간격으로 밀어냈다
아픔은 아픔으로 받아주고 기쁨은 기쁨으로 밀어주었다
맞물리는 일은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일
해지는 노을빛에 기우뚱거리며 걸어가는 두 사람
굳게 잡은 손과 손이 살아온 세월의 간격을 메웠다.
*고봉밥
찾아올 줄 알았던 어머니는 따가운 햇볕에도 하얀 쌀밥을 수북이 차려놓았다
어머니 기억 속엔 볕 좋은 담장 아래 아린 듯 주린 배 움켜쥐고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던 구겨진 아들의 모습을 평생 지울 수 없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갈 길을 묻는 떠돌이 아들에게 따스운 쌀밥 한 그릇 먹이고 싶었다
무덤가에 이팝나무가 어머니 부탁으로 하얀 쌀밥을 듬뿍듬뿍 고봉으로 담아 올렸다.
*돌 꽃 -수석
바닷가 여문 물살 속에서 반질반질한 돌 하나 꺼냈다 돌 등에 핀 꽃이 곱다
파도에 깎기고 비바람에 무너지고 꽃을 피우려고 돌의 몸에도 뜨거운 피가 흘렀으리라
가시밭길 고난이 꽃으로 피기까지 거친 물살에 깎일 때마다 속으로 피 울음 울었으리라
사는 동안 몇 번을 쓰고 찢은 삶의 사직서 등에 옹이 아닌 꽃이 피었다.
*바다를 물들이다
노을이 하루를 마감하는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성급히 길을 나선 조각달이 노을 한 자락 이끌고 서쪽으로 가고
파도를 딛고 날갯짓하던 놀란 새들 발바닥이 붉다.
*제주도에 가면
제주도에 가면 바다가 술이고 바다가 안주다 술잔을 비우면 이내 파도가 술을 채우고 등대가 안주를 집어주었다
제주도에 가면 나보다 바다가 먼저 취하고 취한 나를 등대가 먼저 끌어안았다
등대의 무릎을 베고 누우면 파도가 부르는 자장가에 한라산이 한달음에 달려와 이불이 되어주었다.
*제주 바다
제주에 가면 바다가 묻고 바다가 대답한다 온종일 저 혼자 조잘댄다
바닷새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고 새들이 날아간 하늘을 향해 외로워서 저 혼자 소리치곤 한다
내가 슬픔에 젖은 날 바다는 몇 날 며칠 소리 내어 울었다 서러운 건 난 데 바다가 대신 울어 주었다
제주 바다는 어깨를 조신하게 들척일 때보다 목 놓아 소리쳐 울 때 더 아름답다.
*제주의 4월
유채꽃 바다에 나비가 파닥거림을 잊었다
지나가던 바람이 숨을 멈추고
일렁이던 바다는 멈칫했다
해와 달과 별들도 그 빛을 거두었다
제주의 4월은 그러했다.
*은비네 카페
중산간 마을 은비네 카페는 이름도 허접한 헛간이다
대문도 변변한 간판도 없어 낮에는 새들이 몰려와 놀고 밤엔 별들이 놀다 간다
어쩌다 가끔은 호기심에 새끼 노루가 기웃기웃 기웃거리고
어쩌다가 가끔씩은 길을 잃고 헤매던 다람쥐가 새끼들을 데려오고
바닷길에 지친 바람과 산마루 넘어온 숨 가쁜 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머물다 간다.
*뜨거운 강
참으로 긴 겨울이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봄이 깜짝 찾아와 남녘 산에 뻐꾹새가 울자 북녘 산에도 뻐꾹새가 울었다
남녘 뻐꾹새가 고향이 그리워 북녘으로 날아가고 북녘 뻐꾹새가 제 피붙이 찾아 남녘으로 날아오고 산 산 산에 뻐꾹새 눈물 자리마다 진달래꽃이 활짝 피었다
남녘에 언 강물이 흐르자 북녘 강물도 꽁꽁 얼었던 몸을 풀고 다시는 얼지 않겠다고 남 강물 북 강물 하나가 되어 동해로 서해로 흐른다
뒤 강물이 앞 강물을 뒤받치고 앞 강물이 뒤 강물을 이끌어주며 한데 여울져 뜨겁게 바다로 흘러간다 샛바람도 거침없이 남과 북을 넘나든다.
*노을
썰물 지는 갯벌 노랑부리저어새가 제 발자국에서 노을을 건져 올리고 있다
한 입 뱉어낼 때마다 뚝뚝, 눈물진다
뒷걸음치는 바닷물이 붉다.
*천년
천년에 한 번 우는 새가 있고 천년이 지나야 한 번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고 천년에 한 번 제 몸에 물줄기 트는 강이 있고 천년을 기다려야 한 번 빛나는 별이 있다
사랑아! 너는 그렇게 더디게 더디지만 아주 귀하게 찾아왔다.
*어둠을 밝히는
어둠을 밝히는 것은 촛불 하나가 시작이다
어둠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새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모두가 체념할 때
새벽을 이끄는 것은 남루한 그림자조차 사치스러운 민중들이다.
*어둠을 밝히는
어둠을 밝히는 것은 촛불 하나가 시작이다
어둠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새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모두가 체념할 때
새벽을 이끄는 것은 남루한 그림자조차 사치스러운 민중들이다.
*지상에 가장 따뜻한 밥상
숨어버린 해를 찾으려고 돌담을 넘어온 산이 마당 깊숙이 드러눕자
바다 건너온 섣달 바람이 거친 파도 길어와 물독을 가득 채웠다
저물녘 하늘에 별들이 어둠길 내려와 팽나무 가지에 걸판스런 밥상을 차렸다
지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이다.
*꽃그늘 아래 서면
벚꽃 그늘 아래 서면 바람에 휘날리는 꽃잎들
아, 어쩌면 좋아요 눈꽃처럼 흩날리는 꽃잎에
봄이 날아갈까 봐 내 마음 꽃 멍이 들까 봐 난 걸을 수 없어요.
*꽃 멍
벚꽃 길을 걷다 눈꽃처럼 흩날리는 꽃잎에 눈이 시리다 봄소식에 꽃망울 맺더니 요 며칠 바짝 더워진 날씨에 제 몸에 화들짝 불을 댕겼구나
꽃잎에 꽃 멍들겠다 그대 얼굴도 꽃 멍이 져 붉다.
*참회
구하는 마음을 버리고서야 한 줄기 빛이 보였다
눈물이 없었던 내 기도
눈 덮인 산속에서 연꽃을 피우는 일이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사막을 건너가는 노련한 상인은 낙타에게 먹일 소금을 따로 챙겼다
낙타도 소금을 먹지 못하면 살지 못하고 지나치면 병이 되었다
적당히 먹으면 보약이 되고 잘못 먹으면 독약이 되는 소금은 약일까 독일까
사랑이란 이름으로 너에 대한 집착이 그러했다.
*참꽃
꽃처럼 고운 당신 그대는 참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참꽃입니다
영원히 시들지 않을 그대는 참꽃입니다.
*망부석
허공이 꽃대 하나 밀어 올리고
바람이 지나가다 꽃을 피웠다.
각시붓꽃 그 꽃을 사랑한 나비
꽃도 지고 잎도 지고 하늘엔 눈발도 지고
각시붓꽃 마른 줄기에 풍장 한 고치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