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우리 내외는 자식들 보다 먼저 길을 나섰습니다.
아무래도 충북 괴산은 생각 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먼 곳이라 약속 시간을 만만하게 생각 할 곳이 아닙니다.
비록 한 주간이라지만 내내 집에만 틀어 박혀서 아기를 가진 딸애의 모처럼 친정 나들이에 입에 맞는 음식 봉양을 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젖을 때느라 젖몸살을 앓고 있는 며느리 수발에 손녀까지 돌보아야 하던 아내에게는 생각보다는 힘든 주간이었을 것입니다.
단식을 하면서 아내와 둘이 싱긋이 웃어가며 "우리 단식이 끝나면 시장 바닥을 훑으며 요것 조것 맛 난 군것질을 한번 해 보자"라는 다짐을 하던 것도 생각이 나서 가는 도중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닭 꼬치도 사 먹고 호떡이랑 떡 볶기로 점심을 대신하기도 했답니다.
청주, 미원을 거처 화양동 계곡 상류에다 귀틀로 흙집을 짓고 기거하는 김용달 선생네 집에 도착 한 것은 그래도 저녁이 다 되어서였습니다.
이슥한 산골짜기에는 두부 쑤는 냄새며 고기 삶는 내음이 진동을 하고 이미 연천이나 서울 부산은 물론이고 울진, 밀양, 군산, 부안, 강진, 영암이나 나주 산청 등 먼 곳에서 온 회원들은 이미 당도해 있고 저녁을 먹을 무렵에는 제주에서 오는 이도 도착을 해서 이튼날 새벽까지 밤새 다도를 하고 곡차도 들며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며 때때로 사는 이야기도 나누면서 삼십 여명이 재미난 밤을 보냈습니다.
아침에는 아직도 잔설이 하얀 속리산 줄기를 오르기고 하고 물푸레나무를 베어다 염료를 뽑아 무명 천에다 물을 들여보기도 하며 여기 저기 모여서 색[色] 공부를 하느라 정신 없이 바쁘게 한나절을 보냈습니다.
두어 시가 넘어서야 그 동안에 먹고 남은 반찬이며 안주 꺼리를 모아 커다란 양푼에 쓸어 넣고 뻘겋게 비벼서는 여럿이서 한 숟갈씩 요기를 하고 나서야 길이 먼 이들부터 한 둘씩 아쉬운 석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봄 모임은 꽃비 내리는 사월에 전라남도 강진에서 돼지를 한 마리 잡아가며 다시 만나 회포를 풀기로 하고 여름 모임은 내포 땅 당진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약조를 하였습니다.
게중에는 돼지 훈제를 만드는 공부를 한 이들도 몇몇 있어서 벌써부터 칼을 갈고 있으니 아마도 푸짐한 밤이 될 듯 싶어 꽃비 내릴 그 길이 그려 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냥 헤어지기는 아쉽던지 염색의 대가이신 토벽 정옥기 선생과 부인이신 기둥님, 나주 다시면에서 커다란 차밭을 하고 있는 무송선생, 지리산 뒷자락 산청에서 야생 다원을 하고 계시는 권선생, 영암에 계신 오공 최선생 그리고 거창에 계시는 천선생과 두 분 김 선생, 또 부산에 계시는 노초 선생 이렇게 아홉이서는 불원 천리하고 우리 집까지 오셔서 어제 밤 밤새 다도를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토벽 선생과는 연초의 단식 모임에서도 한 이불을 덮어가며 밤 낯 사는 이야기로 웃고 우는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낯선 방문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에는 함박눈이 풀풀 내려 온통 눈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겨우 몇 시간 밖에 눈을 붙이지 못한 이들이 나이를 잊고선 수북히 쌓인 눈 위에다 발자국을 찍으면서 사진을 박기도 하고 눈싸움에 즐거워들 하는 것을 보면 이런 하이얀 눈 세상에서는 어른과 아이가 따로 없는 가 봅니다.
離者는 定會요, 會者는 定離라 하던가 다시 사월에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지면서도 얼싸 안은 손을 한참동안 풀지 못했습니다.
두려운 눈길이 자꾸만 갈 길을 재촉해 가고 있어 겨우들 떠나가고 수북히 눈 쌓인 산 속에는 평생 세월이라는 짐을 같이 지고 가는 아내와 둘 만이 남아서 보위 차 한잔을 더 나누고 있습니다.
풀풀 날리던 눈발도 잦아들고 춥다는 예보와는 다르게 날은 구순해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정답습니다.
우리 내외 둘만이 오붓하게 겨울을 나던 우리 집에는 근 열흘 가까이나 사람들로 가득 찼었습니다.
둘이면 둘만으로도 족하고 열에 열이 더 모여 같이 지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만남 안에다 사랑이라는 특별 할 것도 없는 이름을 가져다 둔다면 행복한 인생을 살아 갈 것입니다.
아마도 이번 모임에 뜻을 같이한 이들도 사람이라는 거친 무명 천에다 사랑이라는 염료를 섞어 행복이라는 아름다운 색을 내고 싶어하는 이들의 모임이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