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대사를 가장 잘 전하고 있는 역사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다. 하지만 두개의 역사서에는 조금 차이가 있다.
<삼국사기>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기이한 역사는 배제하고 역사 사실에 충실한 '정사'의 성격이 있다면, <삼국유사>는 절과 민간에서 전해오는 설화, 이야기까지 모두 기록한 '야사'의 성격이 있다. 또한 <삼국사기>가 고려 인종때 김부식 등에 의해 쓰인 일종의 국가 주도 편찬 사업이었던 데 반해 <삼국유사>는 그보다 100여년 뒤 고승인 일연 스님이 개인적으로 저술한 역사서이다.
그렇다고 <삼국사기>가 정통이고 <삼국유사>는 역사적 가치가 없는 야사로만 평가 내릴 수는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삼국유사>가 우리나라 역사의 시작인 단군신화를 최초로 기록한 역사서기 때문이다. 어쩌면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단군 신화를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단군신화' 가 <삼국유사>에 쓰여진 덕분에 우리 나라 역사는 중국 요임금 시기에 해당하는 BC 2300년 전까지 올라간다. 즉, 반만년 역사가 증명된 것이다. 일연 스님이 어떠한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쓰기로 마음먹었는지는 남겨진 바가 없지만, 아마 <삼국유사>가 쓰여진 당시는 고려가 몽골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던 만큼, 일연스님은 단군신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영웅심을 고취시키고 한민족의 우수성을 심어주기 위함이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최남선 선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 하나를 택해야 될 경우를 가정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다"라고 평가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문맹인이 많던 당시 우리사회에서 역사는 소수 기득권 세력들의 전유물이었다. 대다수의 민중들은 글을 읽지 못했을 뿐더러, 어렵게 쓰여있는 역사서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삼국유사>는 민중에서 떠도는 이야기, 향가들을 정리하여 민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민중들은 <삼국유사>속 인물들을 통해 자주성과 애국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이것이야말로 <삼국유사>의 가치다.
그래서 <삼국유사>는 이런 평가를 받는다.
"정녕 우리 역사를 지식인의 역사에서 민중의 역사로,
사대의 역사에서 자주의 역사로 바꿔놓은 책"이라고. 참으로 멋진 말이다.
역사서의 저술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무한한 인내와 역사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또한 바탕이 되야 한다.
사마천이 궁형의 처절한 고통속에서도 끝내 불굴의 역작 <사기>를 씀으로써 중국 역사의 뿌리를 튼튼히 한것 처럼, 한권의 위대한 역사서는 문장'이라는 자양분으로 민족의 뿌리를 단단하게 하는 여정이다.
고승의 집념, 5년간 인각사에 머물며 <삼국유사>를 써내려가다
일연스님은 9세에 출가하여 78세에 국존이 된 고승이다. 그는 국사에서 은퇴한 후 한 절에 은거하며 <삼국유사>를 완성했다. 그 절이 바로 군위에 있는 인각사다. 인각사 유래를 듣고 나면 왜 그렇게 군위 곳곳에 '삼국유사의 고장'이란 홍보문구가 걸려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각사는 일연스님이 중창하고 입적한 사찰로, 그는 이곳에서 5년간 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삼국유사>를 집필했다.
인각사 주변 풍경
인각사에 가는 길.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구불 구불 2차선 도로 양쪽으로는 날렵하게 깍아지른 암벽 풍경이 계속된다. 거침없는 자연의 풍경에 오싹해지면서도 그 위세가 웅장하고 힘차 가슴이 트인다. 의외의 절경에 인각사 가는 길이 한층 설레인다. 일연 스님이 이곳에 왔을 때에는 도로가 없을 때였으니 꽤나 오지 중의 오지였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무언가에 전념하고 집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다. 이 풍경 또한 아마 <삼국유사> 탄생에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사는 다른 사찰과 달리 평지에 위치해있다. 사찰 주변으로는 거친 바위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있고 앞에는 수많은 백학들이 서식하였다는 운치있는 학소대가 있다. 요즘은 이런 오지가 더 인기 여행지가 되는 시대라, 알고보니 인각사 주변은 이미 유명한 노지캠핑, 차박장소가 됐다.
인각사는 화려하지 않으며 소박한 가람배치다.
극락전과 몇개의 법당이 옹기종기 모여있지만, 웅장한 팔공산 산자락 때문에 초라한 느낌은 없다.
경내에는 일연스님의 부도탑과 비문이 있다. 탑의 상층은 불상, 중층은 연화, 하층은 토끼 등 여러 동물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효심이 지극한 일연스님의 마음 때문일까. 아침에 해가뜨면 이 탑에서 광채가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일연스님 노모의 묘를 비추었다고 한다.
일연스님은 인각사에서 머물며 <삼국유사>를 집필했다
탑과 비문
인각사 석불좌상
훼손된 보각국사(일연스님)비명
인각사를 둘러봤다면 군위 군에서 야심차게 조성한 삼국유사 테마파크도 함께 가볼만 하다.
비록 놀이시설, 체험, 숙박 등 다양한 인공적인 공간이지만 공원 곳곳에서 삼국유사 이야기를 숨은 그림처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이곳만의 매력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삼국유사>속 흥미로운 설화, 영웅 이야기들이 가득한데,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뿌리임을 느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삼국유사 테마파크에 들어가자 마자 만나는 이 나무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를 모티브로 했다
신단수안에는 삼국유사속 이야기가 그림으로 그려져있다
단군의 형상
이 넓은 공간에 삼국유사 이야기가 가득하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웅녀로 만든 동굴. 꽤 앙증맞은 모습이다
우리 고대설화에는 알에서 태어난 이야기가 많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을 상징화한 공간.
신라부부인 연오랑과 세오녀 동상
나라의 근심을 해결한다는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
삼국유사기념관
테마파크에서 연결되어 있는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