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문과에 합격한 사람의 이름을 적은 명부이다. '용방'은 <梅泉野錄(매천야록)> 甲牛以前條(갑우이전조)에 "문과를 용방, 무과를 호방, 소과를 연방, 대과를 주방이라 한다."고 한 것처럼 문과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내제는 '縉紳先生案'이라 하였다. 작성 시기는 內表題에 '光緖十八年壬辰閏六月十八日근수 隆熙四年庚戌正月十五日移安 내표제에 '광서십팔년임진윤육월십팔일근수 융희사연경술정월십오일이안 이라 한 것으로 보아 1892년(고종 29) 윤 6월 18일에 작성되었으며, 1910년 정월 15일에는 다른 곳으로 옮겨 보관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작성자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으며, 현재 제주향교에 보관되어 있다고는 하나 문맥상으로, 처음 어느 곳에 보관되었다가 뒤에 어느 곳으로 이안되었는지 고증할 길이 없다. 급제자로는 조선조 태종 14년(1414) 甲牛榜(갑우방)에 급제한 高得宗(고득종)으로부터 철종 14년(1863) 癸亥榜(계해방)에 급제한 韓錫胤(한석윤)까지 총 56인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큰 글자로 쓴 이름자 밑에는 작은 글씨로 본인의 字와 生年干支를 割書(할서)하고, 그 밑에 급제 당시의 왕의 묘호(예, 태종)와 방명(예, 甲牛榜), 본귀, 급제자 후손, 혹은 祀孫(사손)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일정하지 않고 누락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고득종의 경우, '鄕祠(향사)'라 하여 鄕賢祠(향현사)에 祭享(제향)되고 있음을 附記하였는가 하면, '聯壁(연벽)'이라 하여 형제가 동시에 과거에 급제한 경우(예, 文榮後(문영후), 文徵後(문징후)제, 金繼隆(김계융) 형제, 金英集(김영집)·金英業(김영업)형제)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回榜(회방)'이라 하여 나이 예순에 급제한 경우, '훈록(勳錄)'이라하여 功勳錄(공훈록)에 기록된 경우가 있었으며, '疏建啓聖祠(소건계성사)'라하여 계성사의 건립(철종 5,1854년)을 상소했던 사실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國朝榜目(국조방목)>류와 비교해 볼 때 제주출신 급제자의 많은 수가 누락되어 있으며, 기록방법도 판이하게 다르다. 제주도유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 급제자를 시기별로 분류해 보면, 태종 갑오방 1, 세종 을묘방 1, 선조 신축방 1, 인조 계해방 1, 현종 갑진방 3, 현종 신해방 2, 숙종 을묘방 2, 숙종 경신방 1, 숙종 병술방 3, 숙종 경인방 1, 숙종 병신방 3, 영조(영종)정미방 1, 영조 무오방 3, 영조 계미방 3, 영조 갑오방 3, 정조(정종)신축방 3, 정조 갑인방 7, 순조 갑술방 4, 순조 계미방 1, 순조 을유방 1, 철종 갑인방 3, 철종 계해방 5, 기타(누락) 3으로 되어 있다.
세부항목 지정번호 :유형문화재 제10호 명 칭 :용방록 지정(등록)일 :1991년 6월 4일 소 재 지 :제주향교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