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 김동출 수필
“안 찾으면 나온다”
나이 드는 탓인지 일흔을 넘긴 요즘 자주 소지품을 잊어버린다. 주로 자동차 키와 안경과 신용카드와 현금 조금 든 지갑이다. 그때마다 성품이 느긋한 아내는 ‘안 찾으면 나오니 걱정하지 마라’고 싱긋하게 이르고 자리를 비킨다. 당장 찾아야 외출할 수 있을 때는 기가 차서 나혼자 멀뚱이 허둥대기 일쑤다. 자동차 키는 어제입은 양복저고리에서 찾아 외출하곤하지만, 소소한 소지품은 아예 찾을 생각 않다가 우연히 찾아내니 다소 역설적인 아내 말이 맞기는 맞다.
토요일, 오늘 이웃 동네에 사는 갓 마흔살 아들이 다녀갔다. 아들은 본가에 들릴 때마다 우리의 동태를 순사처럼 살핀다. 안방 약장 서랍도 열어보고 아내의 옷장도 열어보고 마지막으로 얼굴색도 살핀다. 그러고는 마치 의사가 환자 안진하듯 건강이 불편한 곳은 없는지, 대소변은 잘 보는지, 요즘 식단은 무엇인지, 고기는 자주 섭식하는지, 친척들과 안부는 주고받는지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캐묻는다. 그래야 일주일 동안 출장길이 편하단다. 제 부모 병간호하면서 얻은 트라우마일 테지만, 그래도 다정다감한 아들이 반갑다.
이런 아들이 오늘은 점심때 가까운 시간에 예고 없이 닥쳤다. 무뚝뚝한 제 엄마가 내놓은 커피 한잔을 마시고 무슨 결심을 한 듯 이방 저 방을 다니더니 큰 손가방 두 개를 들고나온다. 아 글쎄, 무려 5년 동안 행방을 알지 못해 속앓이했던 아내의 손가방이다. 그중 한 개는 자부(子婦) 혼수품이며 다른 하나는 현직에 있을 때 아내의 생일 기념으로 화자가 사 준 가방이었다. 아내가 즐겨 사용한 오늘 찾은 흑색 가죽 손가방 속에서는 진주 목걸이도 함께 2년 가까운 병원 생활의 주사바늘 같은 아픈 추억이 똬리를 틀고 나를 반겼다.
오늘에서야 미궁속에 빠졌던 사건의 전 말이 해장국 먹듯이 풀렸다. 진주 페넌트 목걸이는 화자가 30년 전 교직에 있을 때 장만해 준 것이었다. 1984년 여름방학 때 ‘UNESCO 국제이해교육’ 초등학생 교재 개발 원고료를 받아 화자의 대학원 학자금 마련을 위해 처분한 결혼반지 대신 장만해준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렇게 소중한 것을, 진중한 아내가 잃어버릴 수가 있나. 아내도 화자도 십 년 묵은 체증 뚫리듯 반가웠다. 5년 동안 이불장 밑 서랍 안에서 우리 모르게 잠자고 있었던 게다. 서울의 병원에서 택배로 보낸 아내의 소지품을 아들이 달랑 받아 그곳에 넣어둔 것을 서로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야기는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자가 2019년 교직에서 정년퇴직한 이후에 갑자기 나빠진 심장병 때문에 지방의 K 대학병원에서 3개월 동안 입원했으나 차도가 없었다. 여름방학 때 내려온 여식이 심각성을 깨닫고 전직 서울 종합병원 간호과장이었던 동료 보건교사의 주선으로 2019년 8월 서울 A 병원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였다. 다행히 사전에 인터넷으로 진료 신청한 L 주치의 선생님의 친절한 진료로 화자의 심장질환에 대한 상세한 검사를 마치고 5일 후 새벽 1시에 노릿한 냄새가 배인 넓은 1인실에 입원하니 ‘살았구나’ 하는 안심으로 아내도 화자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열흘 후 1인실에서 며칠 후 7○○병동의 2인실로 며칠 후 다시 7인실로 옮겨 본격적인 추가 검사를 하였다. 그 결과 심장이식 방법 외는 다른 치료법이 없다는 주치의의 통보와 함께 원내에 있는 장기이식센터에 심장 이식환자로 등록하도록 안내해 주었다. 화자는 그 얼마 후 심장이식 대기 환자로 지정받아 수술대에 올라 이식형 좌심실 보조장치인 엘바드(LVAD)를 왼쪽 옆구리에 달았다. 이 보조장치를 훈장처럼 달고 2020년 4월 29일 심장이식 수술을 받을 때까지 무려 8개월을 견뎠다.
시술 후 3주 만에 퇴원하여 1주일마다 병원을 찾아 심장이식 대기 환자 주치의의 검진을 받아야 했다. 안전하게 통원하기 쉽도록 병원 인근 송파구 방이동에 원룸을 얻어 아내와 초등교사인 여식이랑 추운 겨울을 함께 지냈다. 2019년 추운 연말에는 회사성과금을 받은 아들이 보내준 용돈으로 LVAD를 달고 무리하게 춥고 어두운 밤에 외출한 즐거움의 끝으로 급성 폐렴에 걸려 오랫동안 안 할 고생을 사서 했다. 지금 생각하며 참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었다. 이때 얻은 폐렴 증상이 고질화하여 입원 기간 내내 화자는 물론이고 화자 옆에서 쪽잠 자며 병간호한 아내까지 몸서리나게 괴롭혔다. 어느 겨울밤에는 멈추질 않는 기침 때문에 동료 환자들의 숙면을 위해 간호사실에 붙어있는 긴급환자대기실로 침상을 하루 동안 옮겨 지내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아내가 미는 휠체어를 타고 1층의 텅 빈 광장까지 내려와 돌면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입원 중 내내 제일 견뎌내기 힘든 것은 달고 있는 소변줄과 링거 주사 꽂는 일이었다. 특히 오랜 병상 끝에 혈관이 약할 대로 약해져 MRI 촬영에 앞서 혈관조영술을 할 때 혈관이 터져 검사를 중단했던 일이 한두 번 아니었다. 심장병 등 장기이식 대기 환자는 섬망 현상을 피해갈 수 없기에 매주 1회 정신의학과 교수의 진료를 받아야 했다. 예를 들면 오늘이 며칠이죠? 100에서 역산시켜 보거나 아내를 내 곁에서 밖으로 불러내어 이상 행동이 있는지를 물었다.
8개월 만에 기다렸던 심장이식 수술을 받고 심장외과 회복환자 병실에서 깨어나 일주일간 무균실에서 지냈다. 수혈과 배변을 위한 생명 장치가 온몸을 통나무같이 얽어맨 이 기간이 너무 힘들었다. 너무 고통이 심해 “죽고 싶다”라고 말하다 “‘살기 위해 심장이식까지 받은 환자’가 할 말이냐”라고 간호과장한테 혼이 나기도 했다.
이때 문병 온 아들의 차량편으로 아내의 손가방과 패물을 집으로 보낸 이후 그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때는 그런 사소한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심장이식 후 3년쯤 되어 차츰차츰 일상생활로 회복하고 아내랑 같이 서울 병원 나들이나 주일날 성당에 오갈 때 눈에 익은 아내의 손가방과 목걸이가 빈 것이 내 탓인 것 같아 마음 아팠다. 아내 모르게 찾아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결국 이웃한 백화점에서 외출용 손가방을 구입하고 목걸이는 30년 전에 세공한 금방을 찾아가 예전 것과 똑같게 맞추었다. 그런데 그 행방을 몰라서 애태웠던 문제의 그 손가방 2개와 진주 페넌트 목걸이를 오늘 찾게 된 것이다. 아들이 엄마 가방을 넣어두었던 곳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화자는 요즘 들어 부쩍 “안 찾으면 나온다”라는 아내의 말을 자주 들으며 산다. 비단 이것뿐 아니라 글을 쓸 때도 쓰임에 맞는 낱말이나 지인들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한참 동안 헤매기 일쑤다. 그때마다 아내에게 듣는 그 말 ‘안 찾으면 나온다’라는 그 말을 떠올린다. 다소 역설적인 아내의 말은 나름대로 풀이하면 ‘어떤 것에 집착하면 할수록 그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울 때, 오히려 원하던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라는 깨달음을 준다.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아내 손가방을 되찾은 오늘 일을 계기로 예의 아내 말을 곰곰이 되씹어 보았다. 이처럼 순덕(順德)한 아내 덕택에 기적 같은 나의 삶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니 아내의 심덕이 내게는 더없이 은혜롭다.
이제 우리 부부의 보호자가 된 아들은 오늘 제 엄마 가방 찾아주고 제 엄마가 수북하게 차려낸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갔다. 화자는 오늘 되찾은 아내 가방에 심을 넣어 모양을 세우고 왁스로 닦아 아내 방 서대 위에 놓아두고, 진주 페넌트 목걸이는 새것과 바꿔 달아 아내의 목에 걸어주었다.
오늘 아내의 가방을 찾은 일을 계기로 그동안 잊고 고마움을 잊고 살았던 것을 고해한다. 화자에게 생명의 고동을 주고 가신 고인과 그 가족에 대한 고마움, 화자의 심장이식을 위해 수고하신 서울A병원 심장내과와 협진과 의사 선생님과 의료진, 간호사 선생님과 원내 환자이송 아저씨 여러분께 감사한 마음을 자주 잊고 살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도. 새삼스럽다고 할지라도 뒤늦은 고마움을 진실하게 전해 올린다. 그리고 병중에 있을 있을때 나의 치유를 위해 정성껏 기도해 주신 창원시 N 성당 교우 여러분께도 성탄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도드린다.
2024-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