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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 강좌 제4강-3-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9. 02 -
자~ 이제 化城喩品(화성유품). 화성의 비유. 법화경은 비유 경이라고 할 만하게 좀 전에 약초의 비유를 봤는데, 여기는 화성의 비유입니다.
화성은 “변화하여 만든 도시” 그런 뜻인데요. 요즘 말로 하면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고, 또 마법의 성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습니다.
일부러 요술로 만든 성이 化成이지요. 요즘 말로 하면 마법의 성이라.
그것이 아주 좋지요. 화성의 비유가 나오기 이전에 대통지승불이라고 하는 아주 길고 긴 우리 마음의 연원을 밝히는 그런 대통지승불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정말 너무나도 오랜 세월 이전에, 이러이러한 부처님이 계셨다. 그래서 그것이 결국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 하면 우리들의 마음의 역사다. 이런 뜻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고 긴 마음의 역사에서 하나의 깨달음의 눈을 얻었을 때, 그 다음에 세상은 우리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나는 또 세상을 어떻게 보게 되는가? 이런 것을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 그런 길고긴 마음의 역사를 내가 더듬어 가는데 있어서 말하자면 한 번에 되지 않고, 그래서 말하자면 三乘이라고 하는 중간 기착지가 있고, 그것은 결국은 마법의 성이다. 그리고 결국 나아가야할 보배의 장소. 그것을 寶城. 그렇게 하는데, 보배의 장소는 우리가 최종적으로 이뤄야할 一佛乘의 경지다. 이렇게 스토리가 되어있습니다. 일단 대통지승불에 대한 이야기를 보도록 하지요. 역시 장문과 게송, 장문과 게송 이런 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제7 화성유품(化城喩品)
一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
1 대통지승불의 이야기
(1) 장문으로 설하다
佛告諸比丘(불고제비구)하사대
乃往過去無量無邊不可思議阿僧祗劫(내왕과거무량무변불가사의
아승지겁)에 爾時有佛(이시유불)하시니
名大通智勝如來應供正徧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
天人師佛世尊(명대통지승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
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其國名好城(기국명호성)이요
劫名大相(겁명대상)이라
諸比丘(제비구)야 彼佛滅度已來(피불멸도이래)가
甚大久遠(심대구원)이니 譬如三千大千世界(비여삼천대천세계)의
所有地種(소유지종)을 假使有人(가사유인)이
磨以爲墨(마이위묵)하야 過於東方千國土(과어동방천국토)하야
乃下一點(내하일점)을 大如微塵(대여미진)하며
又過千國土(우과천국토)하야 復下一點(부하일점)하대
如是展轉(여시전전)히 盡地種墨(진지종묵)이면
於汝等意云何(어여등의운하)오 是諸國土(시제국토)를
若算師(약산사)어나 若算師弟子(약산사제자)가
能得邊際(능득변제)하야 知其數不(지기수부)아
不也世尊(불야세존)하 諸比丘(제비구)야
是人所經國土(시인소경국토)의 若點不點(약점부점)을
盡抹爲塵(진말위진)하야 一塵一劫(일진일겁)이어든
彼佛滅度已來(피불멸도이래)는 復過是數(부과시수)하대
無量無邊百千萬億阿僧祗劫(무량무변백천만억아승지겁)이니
我以如來知見力故(아이여래지견력고)로
觀彼久遠(관피구원)하대 猶若今日(유약금일)하니라
佛告諸比丘(불고제비구)하사대, 부처님이 여러 비구들에게 고하사대,
乃往過去無量無邊不可思議阿僧祗劫(내왕과거무량무변불가사의
아승지겁)에, 과거 無量ㆍ無邊ㆍ不可思議ㆍ阿僧祗劫전에 爾時有佛(이시유불)하시니, 그 때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이름이
大通智勝如來ㆍ應供ㆍ正徧知ㆍ明行足ㆍ善逝ㆍ世間解ㆍ無上士ㆍ
調御丈夫ㆍ天人師ㆍ佛世尊(명대통지승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
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었다.
大ㆍ通ㆍ智ㆍ勝. 큰 大자. 통할 通자. 지혜라는 智자하고, 그 다음에 뛰어나다 할 勝자. 수승하다 하는 勝자지요. 벌써 우리 마음의 근본을 상징하고 있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大ㆍ通ㆍ智ㆍ勝. 크게 통해서 지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 하는 것이 우리 마음자리 밖에 달리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其國名好城(기국명호성)이요, 그 나라 이름은 好城이요,
劫名大相(겁명대상)이라. 겁의 이름은 大相이라.
諸比丘(제비구)야, 여러 비구야, 彼佛滅度已來(피불멸도이래)가, 그 부처님이 滅度이래가 甚大久遠(심대구원)하니, 매우 크고 오래니,
譬如(비여). 비유컨대 三千大千世界(삼천대천세계)의 所有地種(소유지종)을, 땅을 이 말입니다. 三千大千世界를 이 지구라고 합시다. 이 지구에 있는 땅을 假使有人(가사유인)이, 가사 어떤 사람이
磨以爲墨(마이위묵)하야, 그것을 갈아서 먹을 만들어서, 먹을 만들어가지고 過於東方千國土(과어동방천국토)하야, 東方으로 千國土를 지나면서
乃下一點(내하일점)이라. 한 방울을 딱 떨어뜨리는 겁니다. 千國土를 지나서요.
그런데 큰 먹 덩어리 같으면 빨리 소비가 되겠지만,
大如微塵(대여미진)이라. 크기가 아주 작은 먼지만한 먹물 방울을 떨어뜨린다 말입니다. 又過千國土(우과천국토)하야 復下一點(부하일점)하대, 또 千國土를 지나가지고 그런 먼지만한 작은 먹물 방울을 하나 딱 떨어뜨려요. 如是展轉(여시전전)히, 이와 같이 계속, 계속 해서 盡地種墨(진지종묵).땅을 갈아서 먹을 만든 그 먹물 방울이 다할 때 까지 할 것 같으면,
於汝等意云何(어여등의운하)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是諸國土(시제국토)를, 이 모든 국토를 若算師(약산사) 만약에 算師.
수학을 전공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算師弟子(약산사제자)가, 수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제자가 能得邊際(능득변제)하야, 그 숫자의 그 끝을 다 알아서 知其數不(지기수부)아? 숫자의 끝을 알 수 있겠는가?
不也니다 世尊(불야세존)하,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諸比丘(제비구)야 만약에 비구가 是人所經國土(시인소경국토)의, 이 사람이 지나가는 국토의 若點 약不點(약점부점)을, 한 방울 떨어진 곳이거나 떨어지지 않은 곳을 盡抹爲塵(진말위진)하야, 다시 또 그것을 다 갈아서, -千國土를 지나서 한 방울 떨어뜨린다고 했지요? 여기는 두 번째는 그 떨어진 국토나 떨어지지 않은 국토. 그 모든 또 다 갈아서 먼지를 만들어서 一塵一劫(일진일겁). 그 먼지 하나를 1겁으로 친다 하자.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彼佛滅度已來(피불멸도이래)는, 저 부처님이 열반한 세월은,
復過是數(부과시수)어라. 이 숫자보다도 더 지나간다. 얼마나 더 지나가는가? 無量ㆍ無邊ㆍ百千萬億阿僧祗劫(무량무변백천만억아승지겁)을 더 지나간다.
我以如來知見力故(아이여래지견력고)로, 내가 如來의 知見을 쓴 까닭으로 觀彼久遠(관피구원)하대, 더 멀고 오랜 세월을 관하되, 그런데 如來의 知見의 입장에 있어서는 猶若今日(유약금일)이라. 마치 今日과 같다. 오늘일 같이 그렇게 본다. 그렇지요. 時空을 초월한 경지니까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경지니까 아무리 오랜 세월이라 하더라도 뭐라고요?
一 念 卽 時 無 量 劫. 無 量 遠 劫 卽 一 念(일념즉무량겁. 무량원겁즉일념) 이니까요. 말하자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우리 마음의 역사에 있어서는 그 까짓 것. 이것보다 또 더 억만 배 오랜 세월이라 하더라도 역시 한 순간입니다. 이것을 중송으로, 게송으로 거듭 설하는 것은 생략을 하고요.
(2)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我念過去世(아념과거세) 無量無邊劫(무량무변겁)에
有佛兩足尊(유불양족존)하시니 名大通智勝(명대통지승)이라
如人以力磨(여인이력마) 三千大千土(삼천대천토)하대
盡此諸地種(진차제지종)히 皆悉以爲墨(개실이위묵)하대
過於千國土(과어천국토)하야 乃下一塵點(내하일진점)하고
如是展轉點(여시전전점)하야 盡此諸塵墨(진차제진묵)하대
如是諸國土(여시제국토)에 點與不點等(점여부점등)을
復盡抹爲塵(부진말위진)하야 一塵爲一劫(일진위일겁)이어든
此諸微塵數(차제미진수)에 其劫復過是(기겁부과시)라
彼佛滅度來(피불멸도래)는 如是無量劫(여시무량겁)이어든
如來無礙智(여래무애지)로 知彼佛滅度(지피불멸도)와
及聲聞菩薩(급성문보살)하대 如見今滅度(여견금멸도)호라
諸比丘當知(제비구당지)하라 佛智淨微妙(불지정미묘)하야
無漏無所礙(무루무소애)일새 通達無量劫(통달무량겁)이니라
2 대통지승불의 성도(成道)
佛告諸比丘(불고제비구)하사대 大通智勝佛壽(대통지승불수)는
五百四十萬億那由他劫(오백사십만억나유타겁)이니라
其佛本坐道場(기불본좌도장)하사 破魔軍已(파마군이)에
垂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대
而諸佛法(이제불법)이 不現在前(불현재전)이라
如是一小劫(여시일소겁)으로 乃至十小劫(내지십소겁)을
結跏趺坐(결가부좌)하고 身心不動(신심부동)하대
而諸佛法(이제불법)이 猶不在前(유부재전)이라
爾時忉利諸天(이시도리제천)이 先爲彼佛(선위피불)하사
於菩提樹下(어보리수하)에 敷師子座(부사자좌)하대
高一由旬(고일유순)이라 佛於此坐(불어차좌)하사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시니라
適坐此座(적좌차좌)러니 時諸梵天王(시제범천왕)이
雨衆天華(우중천화)하야 面百由旬(면백유순)에
香風時來(향풍시래)하야 吹去萎華(취거위화)하고
更雨新者(갱우신자)하야 如是不絶(여시부절)을
滿十小劫(만십소겁)토록 供養於佛(공양어불)하대
乃至滅度(내지멸도)히 常雨此華(상우차화)하며
四王諸天(사왕제천)은 爲供養佛(위공양불)하야
常擊天鼓(상격천고)하고 其餘諸天(기여제천)은
作天伎樂(작천기악)하야 滿十小劫(만십소겁)하며
至于滅度(지우멸도)히 亦復如是(역부여시)하니라
諸比丘(제비구)야 大通智勝佛(대통지승불)이
過十小劫(과십소겁)하야사 諸佛之法(제불지법)이
乃現在前(내현재전)하야
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시니라
대통지승불이 성도하는 이야기를 여기서 하고 있습니다.
佛告諸比丘(불고제비구)하사대, 부처님이 여러 비구에게 告하사되,
大通智勝佛壽(대통지승불수)는, 대통지승불의 부처님의 수명은
五百四十萬億那由他劫(오백사십만억나유타겁)이다. 부처님수명이요.
其佛本坐道場(기불본좌도장)하사, 그 부처님이 본래 도량에 앉아서,
破魔軍已(파마군이)에, 마군을 파한 후에,
垂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드리워 얻되, 而諸佛法(이제불법)이 모든 불법이 不現在前(불현재전)이라. 제불의 법이 앞에 나타나지 아니했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540만억 나유타겁을 도량에 앉아서 마군들을 파하고 삼먁삼보리를 얻으려고 했다. 垂得이라고 하는 말은 얻으려고 했다. 그런 뜻이네요. 그런데 諸佛法이 不現在前이여. 如是一小劫(여시일소겁)으로 乃至十小劫(내지십소겁)동안 結跏趺坐(결가부좌)하고
身心不動(신심부동)하대 而諸佛法(이제불법)이 猶不在前(유부재전)이라. 오히려 앞에 나타나지 아니했다. 이것은 禪家에서도 이 문제를 가지고 禪道理로도 이야기를 합니다.
왜 大通智勝佛이냐? 왜 十劫坐道場이냐? 왜 佛法不現前이냐?
이런 세 개의 항목을 가지고 거론하는 하는 그런 선사들도 있었어요.
본래 불법이 나타나고 자시고 할 것이 뭐 있나? 그대로 불법인데요.
따로 무슨 특별한 법이 있으면 나타날지 모르지만... 그렇게도 선문답을 하기도 하고 그럽니다. 爾時忉利諸天(이시도리제천)이, 그 때에 忉利諸天이
先爲彼佛(선위피불)하사, 먼저 저 부처님을 위하사
於菩提樹下(어보리수하)에서 敷師子座(부사자좌)하야,
師子座를 펼쳐 놨어요. 그런데 그 사자좌의 高一由旬(고일유순)이라.
높이는 一由旬이라.
佛於此坐(불어차좌)하사, 부처님이 여기에 앉아서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시니라.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라고 하느니라.
適坐此座(적좌차좌)러니, 마침 이 자리에 앉으니
時諸梵天王(시제범천왕)들이 雨衆天華(우중천화)라. 하늘에서 온갖 꽃들을 비 내려서, 面百由旬(면백유순)에, 말하자면 그 면적이 100유순이나 된다.
香風時來(향풍시래)하야, 香風은 때에 맞추어서 불어와서,
吹去萎華(취거위화)하고, 시든 꽃은 다 불어서 보내버리고,
更雨新者(갱우신자)하야, 다시 새로운 꽃을 또 비 내리듯 내려서,
如是不絶(여시부절)을, 이와 같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를
滿十小劫(만십소겁)토록, 十小劫이 차토록 그렇게 했다.
供養於佛(공양어불)하대, 그러면서 부처님께 공양하되
乃至滅度(내지멸도)에 이르기까지 常雨此華(상우차화)라.
항상 이 꽃을 비 내렸다.
꽃이라고 하는 것은, 예를 들어 묘법연화경도 연화의 이치와 같은 아주 깊고 오묘하고 또 아름다운 그런 진리의 가르침이다 하는 그런 뜻이지만,
꽃을 비 내린다하는 것도, 부처님이 성도하려고 앉아 있는데 하늘에서 꽃이 비 내린다 하는 것도, 말하자면 꽃과 같이 아름다운 진리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행복하고 평화롭게 만든다 하는 그런 의미들이 깔려 있습니다.
四王諸天(사왕제천)이 爲供養佛(위공양불)하야, 부처님께 공양해서
常擊天鼓(상격천고). 항상 天鼓. 하늘의 북을 울리고, 또
其餘諸天(기여제천)은, 그 나머지 모든 하늘들은
作天伎樂(작천기악)하야, 하늘의 伎樂을 연주해서,
滿十小劫(만십소겁)하며, 十小劫이 차며, 그런 뒤에야
至于滅度(지우멸도). 滅度에 이르도록 亦復如是(역부여시)하니라.
이와 같이 계속 음악연주를 했다. 諸比丘(제비구)야, 모든 비구야
大通智勝佛(대통지승불)이 過十小劫(과십소겁)하야사, 10소겁이 지난 뒤에야 諸佛之法(제불지법)이, 제불의 법이 乃現在前(내현재전)이라.
그 때야 비로소 앞에 나타났다. 그래서 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3 권속들이 수희하다
其佛未出家時(기불미출가시)에 有十六子(유십육자)하대
其第一者(기제일자)는 名曰智積(명왈지적)이라
諸子(제자)가 各有種種珍異玩好之具(각유종종진이완호지구)러니
聞父得成(문부득성)가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막먁삼보리)하야는
皆捨所珍(개사소진)하고 往詣佛所(왕예불소)어늘
諸母涕泣(제모체읍)하고 而隨送之(이수송지)러라
其祖轉輪聖王(기조전륜성왕)이 與一百大臣(여일백대신)과
及餘百千萬億人民(급여백천만억인민)으로
皆共圍繞(개공위요)하고 隨至道場(수지도량)하야
咸欲親近大通智勝如來(함욕친근대통지승여래)하야
供養恭敬(공양공경)하고 尊重讚歎(존중찬탄)하야
到已頭面禮足(도이두면예족)하고 繞佛畢已(요불필이)에
一心合掌(일심합장)하고 瞻仰世尊(첨앙세존)하와
以偈頌曰(이게송왈)
大威德世尊(대위덕세존)이 爲度衆生故(위도중생고)로
於無量億歲(어무량억세)에 爾乃得成佛(이내득성불)하시니
諸願已具足(제원이구족)이라 善哉吉無上(선재길무상)이로다
世尊甚希有(세존심희유)하사 一坐十小劫(일좌십소겁)토록
身體及手足(신체급수족)을 靜然安不動(정연안부동)하며
其心常澹泊(기심상담박)하야 未曾有散亂(미증유산란)하고
究竟永寂滅(구경영적멸)하야 安住無漏法(안주무루법)하며
今者見世尊(금자견세존)이 安隱成佛道(안은성불도)호니
我等得善利(아등득선리)하야 稱慶大歡喜(칭경대환희)하노이다
衆生常苦惱(중생상고뇌)하야 盲暝無導師(맹명무도사)라
不識苦盡道(불식고진도)하며 不知求解脫(부지구해탈)하고
長夜增惡趣(장야증악취)하야 減損諸天衆(감손제천중)하며
從冥入於冥(종명입어명)하야 永不聞佛名(영불문불명)이더니
今佛得最上(금불득최상) 安穩無漏道(안온무루도)하시니
我等及天人(아등급천인)이 爲得最大利(위득최대리)라
是故咸稽首(시고함계수)하야 歸命無上尊(귀명무상존)이니다
其佛未出家時(기불미출가시)에, 그 부처님이 未出家時에, 출가하기 이전에 有十六子(유십육자)하야, 16왕자가 있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말하자면 왕의 지위를 이어받을 입장에서 출가를 했잖아요. 그래서 왕이 출가한 것으로 그렇게도 칩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이 모델이 되고, 그 뒤에 경전에 나오는 온갖 부처님의 이야기는 석가모니처럼 왕의 출신으로, 또는 왕자의 출신으로 출가해서 성불한다 하는 그런 이야기로 늘 꾸며져 있어요. 아무튼 확실한 것은 석가모니부처님입니다.
그 외의 이야기는 전부 부처님이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얼마나 됐습니까? 솔직하게... 여기에 나오는 햇수라고 하는 것은, 이 지구가 생기기보다도 훨씬 더 오랜 세월입니다. 경전에 기재되어 있는 시간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요. 그러니까 아주 길고긴 그런 세월. 그것은 곧 아주 깊고 깊은 마음의 깊이. 끝 모를 마음의 깊이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이해를 해야지, 지구역사 뻔한데요 뭐... 사람의 역사는 기껏해야 아무리 오래 됐다고 4ㆍ5만년 밖에 안 되고, 생물의 역사는 기껏해야 40억년 밖에 안 되고요. 지구가 식은 것이 기껏해야... 생물의 역사는 60억년? 기껏해야 그 정도 밖에 안 되거든요. 그래 여기서 이야기하는 숫자하고는 게임이 안 될 정도로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우리가 뻔히 눈을 뜨고서 그냥 얼버무려 넘길 일이 아닙니다. 그럼 그것을 합리적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상식에 맞게 해석이 되어져야 됩니다. 또 해석해야 되고요. 얼마든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억지 해석이 아니고, 아주 합리적인 그런 해석이 가능합니다.
-늦게라도 오시는 분 얼마나 고맙습니까. 아무튼 성문이 많아야 됩니다.
일단은 학습주의자가 많아야 됩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16왕자가 있었다. 其第一者(기제일자)는, 그 第一子는 名曰智積(명왈지적)이다. 지혜 智자 쌓을 積자. 여기 지적인데 저~기 또 뒤에 품에 지적이라고 하는 보살이, 다보여래를 따라온 보살중의 한 사람이 또 지적보살이 있다고요. 지혜가 쌓여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지혜제일 문수보살하고 말하자면 한게임 붙는 그런 장면이 뒤에 나옵니다. 문수보살하고 어떻게 붙는가? ㅎㅎㅎ 그것을 살펴보면 좋지요.
諸子(제자)가, 여러 아들들이 各有種種珍異玩好之具(각유종종진이완호지구)러니, 온갖 아주 장난감. 그 장난감이 뭐겠습니까? 돈이요 명예요 권한이요. 그런 것입니다. 무슨 그야말로 아이들 장난감을 가지고하는 소리는 아니겠지요.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가 聞父得成(문부득성). 들었다 말입니다. 무엇을? 아버지가 깨달음을 얻었다.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막먁삼보리).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하는 소리를 듣고는, 皆捨所珍(개사소진)이여. 각각 아주 귀중하게 여기던, 보물로 여기던 온갖 재산ㆍ명예ㆍ온갖 사람ㆍ권한ㆍ권세ㆍ이런 것을 다 버리고, 往詣佛所(왕예불소)어늘, 모두 부처님 처소에 나아갔다.
그래요. 참 깨달음의 경지. 이 세상에서는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여기, 이것을 알고는 여기에 모두 반해가지고 그 동안 좋아했던 것도 다 버리고 거기에 심취하고 거기에 매진해야 하겠는데, 어찌 다시 세속적인 어떤 가치에 끄달리고 거기에 빠진다면 이것이 앞뒤가 안 맞는 것이지요.
여기 보십시오. 자기들은 아주 온갖 세속의 가치로서 정말 멋진 것을 많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것 다 버려버리고 往詣佛所어늘, 부처님 처소에 나아갔다. 이 겁니다. 그러니까 아들들이 다 가니까 어떻해요? 諸母涕泣(제모체읍)하고, 어머니들은 그냥 울고불고 야단이지요. 涕泣하고 而隨送之(이수송지)라. 할 수 없이 보내주는 것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아들들 출가한다면 어머니는 ‘가나~’ 하고 그냥 이렇게 바라볼 뿐입니다. 그리고
其祖轉輪聖王(기조전륜성왕)이, 그 할아버지 전륜성왕이
與一百大臣(여일백대신)과 그리고 그 나머지 及餘百千萬億人民(급여백천만억인민)으로 더불어 皆共圍繞(개공위요)하고, 그러니까 할아버지인 전륜성왕. 온 천하를 통솔하는 천자가 있고, 또 그 밑에 아버지가 있고, 그 밑에 16왕자가 있었다. 이렇게 되겠지요. 3대가 지금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간의 왕노릇을 하던 아들이 출가를 해서 성도를 했는데, 손자들도 다 가 버렸고 그러니까, 할아버지도 할 수 없이 一百大臣과 나머지 百千萬億人民을 데리고 隨至道場(수지도량). 따라서 도량에 이르렀다.
道場은 항상 깨달음의 장소. 그렇습니다.
이 도량이라고 하는 의미를 우리가 잘 살려야 돼요. 사찰을 도량이라 하지요. 어디든지 道場. 참 좋은 말입니다. 깨달음의 장소. 깨달음이 지상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장소. 도량이라는 것이 이런 뜻입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절을 도량이라고 한다.
거기 사는 사람은 깨달음을 지상 최고의 가치로, 그리고 최고의 목표로 두고 산다 이러지요.
도량에 이르러서 咸欲親近大通智勝如來(함욕친근대통지승여래)하야,
모두들 大通智勝如來를 다 친근하고자 해서, 供養恭敬(공양공경)하고 尊重讚歎(존중찬탄)해서 到已頭面禮足(도이두면예족)이라. 다 거기에 와가지고는 머리와 얼굴로서 발에다 예배했다. 우리가 머리를 딱~ 땅에 대고 손을 이렇게 약간 올리는 것은, 발을 받드는 그런 의미잖아요.
그러니까 머리로써 발을 이렇게 받드는 것이 최고의 예다.
경전에 이렇게 頭面禮足이라고 탁 나와 있습니다. 頭面으로써 발에다 예배한다. 복 달라고 이렇게 올리는 것이 아니지요.
繞佛畢已(요불필이)하고, 부처님을 빙빙 도는 것도 하나의 예법입니다. 그런 일을 마치고 一心合掌(일심합장)하고 瞻仰世尊(첨앙세존)하와,
以偈頌曰(이게송왈), 게송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大威德世尊(대위덕세존)이 爲度衆生故(위도중생고)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於無量億歲(어무량억세)에 爾乃得成佛(이내득성불)하시니, 이에 불도를 이루게 됐다. 성불을 하게 됐다.
諸願已具足(제원이구족)이라. 여러 가지 願이 이미 다 具足했다.
善哉라 吉無上(선재길무상)이로다. 아주 훌륭하고 길하다. 그리고 가장 높다. 世尊甚希有(세존심희유)어라. 세존은 매우, 매우 희유한 분이다.
一坐十小劫(일좌십소겁)하야. 한 번 앉아서 十小劫 을 지내.
身體及手足(신체급수족)을 靜然安不動(정연안부동)이라.
고요해서 편안히 움직이지 아니하며,
其心常澹泊(기심상담박)하야, 그 마음은 항상 澹泊하여 아주 깨끗하고 조촐하다. 未曾有散亂(미증유산란)이여, 일찍이 산란한 바가 없어.
究竟永寂滅(구경영적멸)하야, 끝내 길이 적멸해서 安住無漏法(안주무루법)하며, 無漏法에, 샘이 없는 법에 安住 하며,
今者見世尊(금자견세존)이, 지금 보니 세존께서
安隱成佛道(안은성불도)호니, 편안하게 불도 이룬 것을 보니
我等得善利(아등득선리)라. 우리들은 善利. 좋은 이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稱慶大歡喜(칭경대환희)하사오니, 정말 경사스럽고 큰 환희라고 말합니다.
衆生常苦惱(중생상고뇌)하야, 중생들이 항상 고뇌해서,
盲暝無導師(맹명무도사)라. 어둡고 어두워서 우리를 인도해 주는 스승이 없었는데, 그래서 不識苦盡道(불식고진도)하고, 苦가 다하는 그 길을, 고를 다 없앨 수 있는 그런 길을 알지 못하며, 또 不知求解脫(부지구해탈)하고, 解脫을 구하는 길도 알지 못하고, 長夜增惡趣(장야증악취)하야,
인생의 그 길고 긴 밤에 악한길만, 나쁜 길만 더욱 더 불어나서
減損諸天衆(감손제천중)하며, 온갖 훌륭한 대중들은 차츰차츰 감해지고, 從冥入於冥(종명입어명)이라. 어두운 데로부터 또 어두운 데로 들어간다.
이것이 부처님이 없으니까, 불교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세상사는 일이, 어떻게 살지를 모르는 겁니다. 그나마 부처님이 없는 세상에서도 그나마, 聖人이라고 하는 분들이 여기 저기, 좀 부족한 성인이라 하더라도 그런 분들이 세상에 나타나서 사람들을 잘 인도하고 해서, 그나마 세상이 이만치 된 것이지요. 부처님이라고 하는 분은 그 가운데서도 더욱 확실한 그런 성인입니다. 진짜성인과 좀 부족한 성인의 차이점은 그거에요.
모든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볼 줄 아느냐? 모르느냐? 이것이 성인과 좀 부족한 사람의 차이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모든 존재의 실상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느냐? 못하느냐? 여기에 진짜성인이냐? 아니면 좀 부족한 성인이냐? 하는 그런 차이점을 우리가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을 죄업 많은 중생이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무슨 어떤 존재의 종이라고 본다든지 하는 것은, 이것은 올바른 인간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성인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혹 방편으로 그런 말을 잠깐 하면 몰라도, 인간에 대한 실상을 정말 제대로 꿰뚫어 본다면 인간은 정말 훌륭한 존재이고, 지극히 고귀한 존재이다 라고 이렇게 이해해야 됩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그렇게 못 보잖아요. 불교에서도 다른 저급한 불교에서는 그렇게 못 보는 겁니다. 인간을 아주 죄업 많고 업장 많고 그래서 T V틀면 끊임없이 참회. 웬 죄가 그리 많아서 참회를 그리 많이 하는가요? 그것 할 것도 없어요. 사실은 참회 할 것 별로 없어요.
그것은 인간의 허물만 보는 겁니다. 못난 면만 자꾸 보고 하는 겁니다. 왜 못난 면을 봅니까? 잘난 면을 봐도 다 못 보는데요? 우리에게는 아주 뛰어난 면이 있는데요. 그 뛰어난 면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것을 자꾸 드러내고 그것을 보려고 하고, 그것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려고 해야지, 아주 부족하고 못나고 잘 못하고 하는 그것만 초점을 딱 맞춰놓고 하려니까 계속 참회해야 되는 겁니다. 그것이 참회한다고 되는 일도 아닙니다.
그것 참 불교를 잘 모르니까 그런 일들이 많이 생기는데 결코 그런 참회하는 것. 물론 자기 허물을 뉘우치는 일은 좋아요. 그렇지만 그것이 결국은 우리 인간을 자꾸 왜소하게 만들고, 업장 많은 중생으로 만들고 위축 되게 만들고, 사람을, 인간을 자꾸 위축 시키는 겁니다.
그러잖아도 다른 종교에 비해서, 또는 세상에 비해서 위축되고 그러는데 아, 불교자체에서 자꾸 위축 시키는 겁니다. 그래 어디 가서 고개 못 들게 만들고요. 그것이 뭐하는 짓입니까? 당당하게 만들어야지요 당당하게...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너는 못 났다. 너는 고개 숙이고 살아라.”항상 “어디 가서 말도 하지 말아라. 너는 너무 못난 놈 아니냐?” 이렇게 가르치는 부모가 어디 있어요? 그런 부모는 세상에 없어요. 아무리 못났어도 용기를 주고 격려해주고,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진짜 성인의 가르침은요. 모든 인간을 그렇게 격려해주고 당당하게, 또 그런 면이 아주 충분히 있으니까요. 너무너무 확실하게 우리 마음자리에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자꾸 들추어가지고... 그저 눈에 안 보이면 몰라도 보이는데 그 점을 들추어서 “그것이 너의 본 모습이다.” 라고 이렇게 일깨워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훌륭한 성인이고 진짜 좋은 성인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뭐 “죄업 많다. 참회해야 된다.” 자꾸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그것은 무슨 저의가 있는 그런 종교에서 하는 일입니다. 무슨 속셈이 있어가지고 그런 식으로 사람을 이끌고 가는, 그런데서 하는 것이지요.
衆生常苦惱니, 어두운 데서 또 어두운 데로 들어가서
永不聞佛名(영불문불명)이라. 영원히 부처의 이름을 듣지 못하고, 그동안 세상이 그랬다 하는 겁니다. 우리가 불교를 잘 모르면, 또 안다 하더라도 어름하게 엉터리로 알고 있으면 자꾸 인간을 그렇게 어두운 데서 어두운 데로 들어가게 하는 그런 식으로 가르치고 하는 것이지요.
영원히 부처라고 하는 이름을 듣지 못했더니, 今佛得最上(금불득최상) 安穩無漏道(안온무루도)하나니, 지금 부처님께서 最上. 그리고 편안한,
安穩한 그런 無漏의 道를 얻었으니, -대통지승불이 성불했다 이 말이지요.
我等及天人(아등급천인)이, 우리와 그리고 天人들이
爲得最大利(위득최대리)라. 가장 큰 이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是故로 咸稽首(시고함계수)하야, 그런 까닭에 다 머리를 조아려서
歸命無上尊(귀명무상존)하나이다. 無上尊. 최상의 높은 어른에게 歸命하나이다. 대통지승불이 성불하니까 권속들이 隨喜하며, 따라 기뻐하면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지요.
4 십육왕자가 법을 청하다
爾時十六王子(이시십육왕자)가 偈讚佛已(게찬불이)하고
勸請世尊(권청세존)하야 轉於法輪(전어법륜)할새
咸作是言(함작시언)하대 世尊說法(세존설법)이
多所安穩(다소안온)하사
憐愍饒益諸天人民(련민요익제천인민)이라하고
重說偈言(중설게언)하니라
世雄無等倫(세웅무등륜)하사 百福自莊嚴(백복자장엄)하시고
得無上智慧(득무상지혜)삿다 願爲世間說(원위세간설)하사
度脫於我等(도탈어아등)과 及諸衆生類(급제중생류)하시며
爲分別顯示(위분별현시)하사 令得是智慧(영득시지혜)케하소서
若我等得佛(약아등득불)이면 衆生亦復然(중생역부연)이라
世尊知衆生(세존지중생)의 深心之所念(심심지소념)하시며
亦知所行道(역지소행도)하고 又知智慧力(우지지혜력)과
欲樂及修福(욕락급수복)과 宿命所行業(숙명소행업)이라
世尊悉知已(세존실지이)시니 當轉無上輪(당전무상륜)하소서
爾時十六王子(이시십육왕자)가, 그 때에 16왕자가
偈讚佛已(게찬불이)하고, 부처님을 게송으로 찬탄하고 나서
勸請世尊(권청세존)하야, 세존을 권청해서
轉於法輪(전어법륜)할새, 法輪을 굴리기를 청할세.
咸作是言(함작시언)하대, 世尊說法(세존설법)이 多所安穩(다소안온)이라. 부처님의 설법은 편안하게 한다 말입니다.
安心法門이라고 해서 사람을 편안하게 해줘야 됩니다.
불안하게 해주면 안 된다고요. 막 그냥 죄업 많은 중생. 업장 많은 중생.
막 윽박질러가지고 불안하게 하면 그것은 제대로 된 종교가 아닙니다.
이것 봐요. 多所安穩이라. 世尊說法이 多所安穩이라. 그랬잖아요.
많이 안온한 바가 있으니 憐愍饒益諸天人民(련민요익제천인민)하사,
諸天人民들을 불쌍히 여기고, 또 그래서 饒益하게, 아주 유익하게 또는 이익하게 한다 하고 重說偈言(중설게언)하니라.
世雄無等倫(세웅무등륜)하사, 세존에 짝할 이가 없다.
百福自莊嚴(백복자장엄)이라. 100가지 복으로써, 온갖 복으로써 저절로 장엄되었다. 得無上智慧(득무상지혜)를 얻으셨다.
願爲世間說(원위세간설)하사, 원컨대, 世間을 위해서 설하십시오. 그래서
度脫於我等(도탈어아등)과, 우리들과
及諸衆生類(급제중생류)하시며, 그리고 모든 중생류를 제도해 주시며,
그리고 爲分別顯示(위분별현시)하사, 분별해서 顯示하사
令得是智慧(영득시지혜). 이 지혜를 얻게 좀 해주십시오.
若我等得佛(약아등득불)이면, 만약에 우리들이 부처님을 얻게 된다면,
衆生亦復然(중생역부연)이라. 중생들도 또한. 다른 중생들도 또한 행복할 것입니다. 이 말입니다.
世尊知衆生(세존지중생)의 深心之所念(심심지소념)이라. 중생들의 저 깊은 마음에서 생각하는 바를 세존이 잘 아시사,
亦知所行道(역지소행도)하고, 또한 행할 바의 도를 알고,
又知智慧力(우지지혜력)과 그리고 欲樂及修福(욕락급수복).
중생들이 뭘 좋아 하는지ㆍ뭘 즐기는지ㆍ욕심은 뭔지 그리고 복은 또 얼마나 닦고 있는지 宿命所行業(숙명소행업). 과거 생에 어떤 행업을 닦았는지ㆍ무슨 짓을 했는지 이런 것을 전부 다 알고 있다.
世尊悉知已(세존실지이)하시니, 세존께서 다~, 다 알고 계시니
當轉無上輪(당전무상륜)하소서. 마땅히 無上, 최상의 법륜을 굴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