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크와의 만남은 내 인생에 몇 안되는 귀한 인연이었다. 근 10년 전 우연찮게 이 카페에 조인했다. 얼띤 무지랭이 이민자에게 사이버 공간의 카페는 낯설기만 했다. 가입하고 댓글 한번 올리지 않은 채 반년여 동안 눈팅만 했다.
그러다 부랴부랴 첫 글을 올린 건 듀크와 아톰이 배낭여행 간다는 공고를 본 때문이었다. 그들이 나와 비슷한 연령대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 먹었다. 60 근처의 나이에 배낭여행이라니…
나는 두 인물이 궁금했다. 만나고 싶었다. 이민생활은 그렇고 그렇게 누에가 뽕잎을 먹듯이, 송충이가 솔잎을 먹듯이 단순한 삶 아닌가. 어제가 오늘인 듯, 오늘이 내일인 듯, 거저 꿈틀거리며 사는 단세포적 존재의 세포가 살아났던 것이다. 나는 첫사랑을 고백하듯 조심스럽게 글을 올렸다.
고백컨대, 나의 글은 미끼였다. 놀랍게도 바로 신호가 왔다. 배낭여행 중이었던 대어가 입질한 것이다. 이 카페라는 웅덩이에서 가장 큰 듀크라는 물고기가 입질하니 이 어찌 가슴설레지 않을쏘냐.
다소 주접스럽기도 한 내 글에 “감동입니다”란 듀크의 댓글을 지금도 기억할 때마다, 감동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듯이 귀찮니즘에 쩔은 나를 듀크의 칭찬이 일깨웠다. 독수리 타법으로 다시 힘들게 글을 올렸고, 그 대어는 여지없이 입질했다. 그렇게 나의 화려한(?) 카페 생활은 시작됐다.
아기다리 고기다리…
그로부터 6개월 후 고국 방문길에 그와 상봉했다. 마치 드라마처럼… 당시 운 좋게도 아톰과 데이빗도, 실콘짱도 만났다. 살다 보면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사람을 만날 때처럼 설레는 일이 없고, 헤어질 때처럼 쓸쓸할 때도 없다.(물론, 시원 섭섭하다는 절묘한 표현으로 안도한다)
일타 쌍피. 아니, 일타 삼피. 그때 나는 한꺼번에 듀크와 아톰, 그리고 데이빗까지 이 카페를 이끌었던 주역들을 동시에 만났다. 삼 인의 당시 인상이 지금도 생생하다.
같은 지역에 거주한 덕에 데이빗을 먼저 만났고, 그와 더불어 시내에서 아톰을 만났다. 그들 외에 실콘짱과 그밖의 부부 두 사람을 만났다.(불행히도 그 두 부부를 지금은 기억 못한다) 나는 스스로를 질책했다. “대체 이게 웬 주책이람. 대학 첫 미팅 때도 이렇게 설랜 적이 없었는데…”
데이빗은 진지한 인상에 메너 좋은 신사였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경청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에 비해 아톰은 신사 같은 외모에 비해 청년 같은 활달함이 인상적이었다. 수더분하게 풀어나가는 그의 화술 덕분에 나는 금방 그의 친화력에 감동했다.
나는 처음 만날 때 수다스러운 사람을 말 없는 사람보다 정말 정말 높게 평가한다. 사람은 처음 만난 상대에게 본능적으로 경계하기 마련. 경계심을 허무는 수단은 대화보다 더 좋은 게 없다. 그의 수더분함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읽었다.
아톰의 좌중을 압도하는 화술 덕에 나의 찌질한 경계심이 사라졌다. 난 그의 수다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진 거라는 사실을 굳게 믿는사람이다. (침묵은 금, 수다는 다이아몬드. 그러니 회원분들 오프라인에서 주책맞는 수다로 상대를 배려하시라)
수더분한 성격 이면에 감추어진 그의 또다른 모습 역시 인상적이다. 직접 본 인간적 모습보다 오랜 세월 카페에서 헌신하는 그의 모습은 일견 경외심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는 카페 곳곳을 넘나들며 세심하게 관리했다. 가끔 시간이 널널할 때 카페의 이곳저곳을 클릭하다보면 그의 세심하다 못해 워커홀릭 같은 성실성에 기가 질릴 정도이다.
듀크와의 추억
그다음 나의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듀크이다. 제주에서의 상봉. 그와 제주에서 5일간의 추억은 꿈처럼 아늑했다. 오죽했으면 나와 함께한 마눌이 바람난 남편 보듯 질투의 눈길을 보냈을까. 그의 첫인상은 수더분했으나 그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풍진 세월에 맺힌 옹이가 군데군데 보였다.
글에 대한 진지한 태도. 앞으로 인생을 글쟁이로 살겠다는 굳은 결심에 나는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글에 별로 자신 없었고, 그닥 진지하지도 않았다. 그는 토씨 하나라도 틀린 걸 발견하면 얼굴이 붉어진다는 장인 정신에 투철했다.
반면 나는 감각적이고 비유가 곁들인 장난스런 글을 좋아했고, 그걸 위해선 토씨나 철자의 오류, 비문이 쓰여져도 괜찮다는 상당히 아마추어적인 여유(?)를 갖고 있었다. 그를 만나서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의 글쓰기가 달라졌다. 최소 두세 번은 읽으면서 오 탈자를 점검했고, 가끔은 이상한 비문을 고치느라 끙끙거리기도 했다. 단단한 옹이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던 것이다.
누가 뭐라해도 듀크는 나에게 가장 특별한 친구이다. 그는 나를 글벗이라 칭했다. 이 같은 호칭은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최상의 상찬 아닌가. 그는 오프라인에서나 온라인에서나(주로 편지로) 나와 글에 대해 가장 많은 견해를 나눈 진정한 글벗이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글 쓰기에 대한 시각이 나와 상이한 점이 많았으나 나는 개의치 않았을 뿐 아니라 약이 되었다. 글뿐이 아니었다. 세상사에 대한 견해, 정치적인 견해(공통된 점이 많지만 약간씩 다른 견해도 있었다)를 나눴다. 약간은 고집스러울정도로 주장이 강한 것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각자 생긴 것이 다르듯이 견해가 다른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내가 그를 좋아하는 점은 내숭 떨지 않는 진솔함이었다. 그는 때때로 무모할 정도로 솔직했고, 솔직함이 지나쳐 당황할 정도였다.
이런 일화가 있다. 뉴욕과 뉴저지를 오가는 좁은 셔틀버스 안에서 우리는 뭇사람의 시선도 의식하지 못한 채,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훗날 그는 그때 나에게 들은 이야기에 충격받았다고 기억했다. 그 이야기인즉슨, “글을 쓴다는 건 광장에서 벌거벗는 일과 같다”는 어느 작가의 표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글은 더욱 더 솔직해졌고, 그만큼 아슬아슬했다.(내 소심한 관점에서)
헌데, 친구여… 잠시 당시 내 요지를 변명해야겠다. 대다수 글을 쓰다보면 자기를 미화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약점은 감추고 멋진 부분을 강조한다. 게다가 글은 속성상 윤문과 곡필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아무리 미화해도 속내를 감출 수 없다.
처음 한두 편까지는 독자들이 속아도 계속해서 작가의 글을 읽으면 독자는 속속들이 작가의 내면을 알게 된다. 작가가 의식하지 못한 잠재의식까지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글을(계속적으로) 쓰는 것은 광장에서 벌거벗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했다. (나는 발가벗는 용기가 부족해 글쓰기를 망설이곤 한다)
나는 듀크의 영원한 글벗으로 남길 원한다
이런 그가 분란의 한 중앙에 서있다. 나는 우선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한동안 카페를 멀리한 까닭에 쉽게 이해가 안 됐다. 어느 정도 사태를 파악한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진실한 마음으로 그를 위한 진정한 글벗의 의무감으로 글을 썼다.
요지는 대략 이렇다. 지기라는 가시적 지위보다 10년 후를 돌아봐도 부끄럽지 않는 명예를 선택하라는 것. 이유불문코 지기라는 멍애를 내려놓으라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그는 즉시 답을 보냈다. 포기할 거라는 긍정적인 답이었다. 나는 기다렸다. 그는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명예를 선택할 것이라고...
한해가 기울고 새해가 왔다. 그런데 기다리던 그날은 오지 않고 점점 사태는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안타깝게도 오랜 세월 카페를 지켜온 멤버들이 하나둘씩 떠났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nola님의 탈퇴였다. 나와는 한번도 댓글조차 주고받은 적이 없던 철저히 가상세계 속 인물인 nola. 그의 댓글에는 봄날의 따스한 향기가 났다. 그가 카페를 떠난 사실에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정녕 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인가…
어쩌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렀는지, 정녕 Spilt Milk인지…
나와 듀크의 개인적 소회를 장황하게 피력한 것은 개인 간의 인연을 공론의 장에서 명확히 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얼굴도 모를 수많은 익명의 회원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글이기도 하다. 떠나지 마시라. 아무리 꼴보기 싫고 참여하기 싫어도 과거의 좋았던 기억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꿋꿋이 버티시라는 조언을 진심으로 드린다.(꿋꿋하라는 말도 사치스럽다. 클릭 한번이면 이 세계는 내 현실에서 사라진다. 그러니 흔들리지 마시라)
솔직 담백하여 드러내면 안 될 것 같은 속마음도 거침없이 드러내는 듀크. 가끔 모난 듯한 그의 글에서 인간적 향기가 나는 그의 글을 사랑한다. 그리하여 나의 영원한 글벗이 그 하잘떼기없는 굴레에서 벗어나 진솔한 인간으로 다시 나타나길 기대한다.
살다 보면 수없이 스치고 잊혀져가는 인간은 부지기수. 하지만 유한한 우리 생애에 등장 하는 인물 역시 유한하다. 평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읊조리는 명시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읊조릴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리는 건 노인성 부정맥 증세가 아님을 고백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첫댓글 이 사태의 초창기엔 추조님에게 카페지기 물러나라는 흐름이 아니었고, 양수호님 사과받아주고 정리해 주면 해결되는 분위기이었습니다. 갑자기 추조님 주변분들이 강성으로 나오고, 추조님이 클릭 4번이면 카페폐쇄할 수 있다는 그 말이 도화선이 된것입니다. 전 솔직히 누가 카페지기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그 솔직하다는 표현의 희생양이 되는 많은이들의 이름을 보며, 그것은 솔직한 것이 아니라, 성품을 자제하지 못하고, 지인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윗글을 쓴 청하님도 먼훗날 그 솔직하다는 글속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릅니다. 전 '에릭손님'까지 비난하는걸 보면서 떠나는게 맞구나 생각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관점에서 실망을 하신 거 같네요. 10년 넘게 지켜봐 오면서
놀라움과 실망을 겪었지만 이번만큼 충격적이었던 건 처음인 거 같아요.
역이민카페의 역사를 이해하는 한 회원으로 조용히 사태의 전말을 기억해두고 있습니다. 먼 훗날 복기와 평가를 할 때 중요한 변곡점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추조님은 많은 좋은 친구분들을 잃으셨습니다.
마지막 남은 청하님같은 좋은 친구를 잃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역이민에서 신입으로 정응중에 거센파도를 맞아 사람공부 인생공부를 한꺼번에 했네요
막~ 여행사랑님의 사진공부 중에 David님께 초대를 받아 저와 결이 비슷한 사람을 찾아 안주하였네요
Good morning!^^*
@ys(영) 다른 곳에서 저의 사진이야기를 보셨군요.
그쪽에서는 사연이 있어 탈퇴하고 이쪽으로 정착하기로 하였습니다.
@여행사랑 1호점에서 yshe 2호점 yskim
이곳 3호점 ys(영)으로 활동하고 있는 I'm a chef!^^*
무쟈게 반갑고 역이민공동체를 쌈지뢀없는 행복으로 알차게 꾸며봅시다요 차오!~~
출근합니다~우향 우~~^^
그렇군요. 아름다운 인연이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남의 생각이 내마음 같지 않아요. 사람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성경에도 있지만 말이 아니라 능력을 보겠다고도 했고 열매로 그 나무를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열매만 봐도 충분히 판단 가능합니다. 늘 부모들 하는 말있죠. 나쁜 친구를 사귀어서 아이가 잘못되었다고요. 그 나쁜 친구는 그 아이가 선택한 겁니다. 코드가 맞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