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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앙상불이 여름에 이제 없었는데 다시 복귀를 해서 다시 시작을 했고 우리 찬양대도 휴가를 가셨던 분들이 한두 분씩 돌아오게 돼서 감사합니다. 우리 9월부터는 우리 찬양대에도 큰 부흥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주일마다 기드온 찬양대를 통해서 듣는 그 찬양이 물론 하나님께도 영광, 당연히 영광이지만 저희한테도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더 아름다운 찬양이 계속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가기를 소망하고 거대했어요. 에베소는 바울의 꿈이었습니다. 에베소를 고대하고 고대하고 또 고대했는데 3차 전도 여행에서 드디어 그곳에 도착하게 됐어요.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에베소에서 바울이 3년 동안 사역을 합니다.
오늘은 그 바울의 사역 바울은 거기서 어떤 사역을 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신앙에 도움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는 성령 세례 사역을 했습니다. 6절 7절을 보면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함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심으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12 사람쯤 되니라
바울이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있었고 또 아블로라는 사역자가 사역을 하다가 고린도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뭔가 부족한 게 있는 거예요. 전문가인 바울 바울이 도착해서 보니까 이 사람들이 신앙을 받은 것 같기는 한데 뭔가 부족한 거예요. 복음을 어디선가 들어서 누구에겐가 들어서 이제 공동체가 형성이 돼가고 있는데 그러나 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있었어요.
바울이 탁 집어서 얘기합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우리는 성령이라는 거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역시나 그래서 바울이 다시 묻습니다.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요한의 세례만 알 뿐입니다. 이 사람들은 기독교라고 하는 공동체에 몸을 담았지만 온전한 복음, 온전한 신앙을 갖추지는 못했어요. 예수님을 경험하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 복음을 풀어주었어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 신앙의 대상이 누구인지,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그러자 그들이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돌아왔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그리고 손을 얹고 안수를 하자 성령의 능력이 그들에게 임해서 어떤 이는 방언도 하고 어떤 이는 예언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가장 좋은 은사들이 임하는 역사가 일어났어. 12명에게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에 12명은 작은 숫자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우리 여기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였는데 12명 그러나 에베소라고 하는 그 영적으로 척박한 곳에서 12명은 120명 1200명의 가치가 있는 사건이었어요.
이제 놀라운 부흥이 사도바울을 통해서 에베소에서 일어나기 시작을 합니다. 복음, 성령 세례 그리고 세례 이 세 가지는 마치 신앙생활의 삼위일체가 같은 겁니다. 바울이 가서 보니까 이 세 가지를 먼저 세우지 않으면 온전한 공동체가 안 되는 거예요.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 복음을 깨닫고 마음으로 믿어 받아들이면 구원이라고 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요.
본 어게인 다시 태어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복음을 받아서 주님을 만나서 구원받는 역사가 있어야 돼요. 우리가 교회를 다녀도 공동체에 속해서 봉사하고 헌신해도 구원받지 못했거나 구원의 확신이 없거나 그냥 그런 개념 없이 이 문제를 점검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그게 집사님이든 권사님이든 안수 집사님이든 목회자 장로들 가운데도 사실은 어느 단계를 밟아서 신 교회 생활을 하다가 그 위치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주님을 못 만난 사람이 있어요. 복음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일단 우리가 생명을 얻어야 하는 거예요.
바울은 그 일부터 시작했어요. 복음을 풀어서 그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거,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확증해 주시는 거룩한 역사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내면 세계를 변화시켜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에게 능력을 부어주셔서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넘어설 수 없어요. 성령 없이 신앙생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그리스도와 내가 한몸 되었음을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도 죽고 그분이 부활하실 때 우리도 부활했다고 하는 그리스도와 내가 운명 공동체라고 하는 걸 고백하는 거예요.
또 한 가지는 그리스도 공동체 주님의 영적인 몸인 교회에 오피셜한 멤버십을 갖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라고 하는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고 섬기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구원 성령 세례,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받는 그 물 세례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질 때 우리가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온전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에베소 교회는 이 모든 것이 부족했어요. 주님에 대한 복음도 정확하게 몰랐고 성령 세례를 받지도 못했고 또 물세례도 받지 않았어. 특별히 성령 세례. 성령 세례가 빠지면 교회와 성도는 생명력을 잃습니다. 빈들의 말은 불 같습니다. 모양은 있지만 생명이 없어요.
성령은 생명의 영입니다. 그분이 예수 믿는 거듭난 우리에게 들어오시면 마른 막대기 같은 에스겔 골짜기에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 뼈 같은 가죽만 덮여 있는 그런 존재들에게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요.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군대로 만드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바울이 여기서 이제 성령 사역을 시작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교회가 역동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 에베소라고 하는 아주 영적으로 촉박한 그곳이지만 그곳에서 교회가 세워지고 그곳이 이 소아시아의 복음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셔서 약속하시고 보내주셨던 초대교회에 내려오셨던 에베소에 임했던 그 성령의 역사가 우리 교회 공동체, 그리고 저와 여러분 한 분 한 분 위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미 내 속에 와 계신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생명으로 넘쳐나셔야 돼요. 그래야 우리가 살아있는 신앙생활 할 수 있고 그렇게 신앙생활해야 우리 신앙생활이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바울의 두 번째 사역은 말씀 사역이에요. 바울은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바울은 보통 한 곳에 가면 3주 4주, 제일 길었던 것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그런데 이 에베소에서는 이 바울의 에베소에 대한 그 사랑은 대단했던 것 같아요. 3년을 머물러요. 3년을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이곳에 머무르면서 바울이 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역은 말씀 사역이에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가르치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이야기하며 성도들을 양육했습니다.
20장 31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가 일깨어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서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돌아서 이제 이제 3차 전도여행을 복귀할 때 에베소에 가지는 않았지만은 밀레도라고 하는 곳에 가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해가지고 마지막 설교를 합니다. 고별 설교예요. 유언과 같은 설교예요. 거기서 언급한 말씀이에요.
내가 3년 동안 있을 때 이게 3년이라는 근거가 이겁니다. 있을 때 밤낮 눈물로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했다. 말씀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으로 그들을 양육하고 그들을 지도했어요.
여러분 3년을 재구성해봤습니다. 회당에서 약 6개월, 거기서 3개월 가르치다가 두란노 서원으로 옮긴 거로 돼 있지만 또 회당에서 또 말씀을 더 전한 것으로 봐서 약 6개월 정도를 학자들은 잡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집에서 몇 개월 이렇게 해서 약 3년을 있었는데 특별히 두란노 서원에서 2년을 사역을 한 거예요. 2년 2년 동안 말씀을 가르쳤는데 2년을 한번 계산을 해보자 이거예요. 날짜로 말하면 2년이니까 730일 더 되나요? 730일 정도 365일 두 해니까 우리하고 비교를 해보면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잖아요.
그죠 그걸 이제 그걸 하루로 잡아야 돼. 그것도 많이 봐줘가지고 근데 바울은 그때 보통 전했다 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 안 해. 나중에 그 두루와에서는 두루아에서는 말씀을 길게 밤늦게까지 전하니까 유독을 하는 청년이 그 난간에 걸터 앉았다가 꼬박 졸다가 떨어져 죽었어요. 그런 정도로 길게 말씀을 전합니다.
근데 우리는 이제 일주일에 한 번 와가지고 제가 조금 설교를 길게 하는 편입니다. 오늘 처음 오시고 이렇게 손님으로 오신 분들은 양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처음 어떤 부부가 오셔서 부인은 너무 좋아했어요. 너무 예배 분위기가 좋고 근데 이제 등록을 해야 되는데 남편 집사님이 굉장히 이 결정을 못하는 거예요. 이유가 뭐냐 이렇게 긴 예배를 어떻게 드리냐 이거예요. 3년 동안 앞으로 주재원이 끝날 때까지 설교도 길고 예배도 길고 근데 결국은 부인의 말을 따라서 등록을 하고 이제 가실 때쯤 이제 고백을 하는 거 너무 그래 너무 좋았다고 부인 말을 듣는 것이 잘하는 거죠.
대개 그런 부인들은 현명하고 그런 부인을 따라가면 그 남자 성도들은 복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여성들만 아멘하네. 아이고 참 하여튼 우리는 이제 너무 짧은 설교에 익숙해 있어요. 하나님 말씀 듣는 시간이 너무 짧아 그래가지고 1부 2부 3부 드려야 되니까 막 20 30분 제가 한국 가서 설교하려고 막 딱 20분에 정해놓으면 이게 정말 정신이 없어요.
근데 이제 그게 익숙해져 있으면 25분이 되면 막 견디지를 못하는 거야. 몸이 그러다가 요즘은 우리가 유튜브도 5분짜리 못 보잖아요. 막 다 쇼트로 봐가지고 넘겨야 되는 조금만 기름 막 넘기는 그런 데 익숙해 있는데 이게 하나님의 말씀은 좀 차분히 앉아서 길게 듣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게 이제 오늘날 우리의 문제예요. 그리고 예배 끝나고 나서 우리가 별 게 없잖아요. 예배 끝나면 이 파리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좋으냐면 예배 끝나면 다음 스케줄이 별로 없어 그냥 집에 가서 저녁 드시는 거니까 예배를 천천히 좀 여유를 가지고 마음에 새기면서 또 교회 예배 끝나고도 금방 가지 마시고 서로 만나서 권면하고 얘기도 하고 이렇게 아마 여러분 평생에 그런 시간은 여기밖에 없을 거예요.
한국 가면 못합니다. 그런 그렇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근데 하여튼 뭐 하루를 잡아준다고 해요. 우리가 30분 40분 듣는 설교를 하루로 잡아줘도 이 바울이 두란노에서 가르친 것을 따져보면 52주 그러면 이게 15년 정도를 가르친 것과 같아요.
그러니까 바울이 2년 가르친 것은 그것을 우리한테 그냥 그 시간을 1시간 정도를 하루로 잡아줘도 약 15년을 이게 집중적으로 말씀을 배운 거예요.
우리가 그런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너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우리 기독교 교리를 배우는 일에 너무 소홀해요. 그래서 신앙의 체계가 안 서는 거예요. 누가 푹 찌르면 그냥 넘어지는 거예요. 말씀으로 아주 견고하게 세워지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근데 이 두란노의 사역은 대중 사역은 아니에요. 예수님도 그러셨어요. 5천 명 2천 2만 명을 대상으로 말씀을 전할 때도 있었어요. 오경이를 행할 때 남자만 5천 명, 부인들은 당연히 5천 명, 애들은 몇 명 낳았을 테니까 2명 3명 그러면 2만 명 2만 5천 명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다.
이거 그러나 어떤 시간은 12 제자만 딱 데리고 가셔서 가시라 빌립보에서 진짜 중요한 말씀을 전하시는 거예요.
바울도 대중을 향해서 복음을 전할 때와 이렇게 딱 핵심 멤버 앞으로 교회를 이끌어갈 사람들 앞으로 차세대 지도자가 될 사람들을 딱 데리고 가서 가르쳤는데 거기가 두란노서원이에요. 여기서는 바울이 아주 집중적으로 그들을 양육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8절 9절에 보면 바울이 그들을 떠나 따로 세우고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했다. 이렇게 교육받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끌고 갑니다.
우리 교회도 이제 그런 분들 요즘은 최근에는 제자 훈련을 못 했는데 우리 교회가 개척해서 여기까지 오면서 교회에 헌신하고 한 분들이 다 그런 1년 내지 2년을 집중 교육을 받았던 분들이에요.
또 우리에게도 그런 기회를 만들어야 됩니다. 이제 그 세대들이 많이 지나갔기 때문에 다시 집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되는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말씀 사역에는 저항도 있어요. 내면의 저항 이게 말씀 배우기가 쉬운 게 아닙니다. 이게 막 누구든지 성경을 배우고 싶고 막 읽고 싶고 그럴 것 같지만 진짜 성경책을 펼쳐드리기가 쉽지 않아요.
그때까지 이번에 아프리카에 가서 3박 4일 목회자들 세미나를 하고 왔어요. 이따 광고 시간에 잠깐 보여드리겠지만 그래서 이제 쭉 하루에 6시간씩 강의를 했는데 그 목사님들한테 궁금해서 한번 질문을 했어요. 성경을 1도 이상 하신 분 있습니까 했더니 몇 분 안 들어 깜짝 놀랐어요. 5도 이상 아주 드물어 10도 이상은 아예 없어요.
근데 거기 그 한인교회 사모님이 저 오도 했어요. 목사님은 몇 십 독 했고 우리 한국 목사들은 보통 수십 독 합니다. 그래도 성경을 보면 모르는 게 많아 하나님 말씀 근데 이분들이 성경을 안 읽고 성경 공부를 안 하고 목회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방에 가면 그래도 그 거기는 장로교회 목사예요. 인텔리전트한 교단이에요. 그런데 시골에 내려가면 교회는 교회인데 목회자들이 성경으로 양육이 안 돼 있고 성경을 제대로 모르니까 혼합주의에 빠져 있어요.
거기 지방 토석 신앙하고 막 섞여 있어 건강한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지도자 교육 아프리카 사역을 위해서 제가 지도자 교육이 이제 필요하다 생각을 한 거예요.
성경으로 양육대학 교회도 건강하게 양육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내면의 그 저항을 이기고 말씀을 여러분도 읽으셔야 돼요. 결단하셔야 돼요. 그러고 이상하게 성경만 읽으면 졸립잖아요. 그게 내면의 저항입니다. 그게 저항 막 유튜브나 이런 걸 막 그 피곤해도 이러면서 보면서 성경은 그저 몇 장 열면 졸려 그게 영적 저항이 일어나는 거야.
또 이 에베소에서는 외부에서 말씀 사역을 방해하는 세력이 많아 그래서 바울의 사역을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그리고 여기는 영적 전쟁의 현장이에요. 아르테미스 성경에서는 아데이라고 하는데 아르테미스라고 하는 고대 여신 동방 세계는 서방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여신숭배가 강력합니다.
그리고 아르테미스라고 하는 나중에는 이제 그게 로마 지역으로 가면 비너스 그다음에 저쪽 그리스에서는 아프로디테 여러 이름으로 여신들이 나타나는데 이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아데이 아르테미스라고 하는 그 여신이 있는데 다 산의 여신입니다. 지금도 가서 보면 막 이렇게 유방이 스물몇 개가 달려 있어요. 징글징글합니다. 그걸 이제 시누라고 섬기는데 그 아르테미스의 센터가 있는 곳이 에베소예요.
그러니까 거기는 사탄의 사탄의 보좌가 있는 곳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까 아주 강력한 저항이 일어나는 거예요.
사도바울은 나중에 로마의 감옥에 있으면서 에베소서를 쓸 때 이걸 언급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영적 전쟁이다. 말이야 강력한 영적 세계가 있어서 그들과의 전쟁이다. 본인이 에베소에서 겪은 거예요. 말씀을 전하면서 성령 사역을 하면서 얼마나 강력한 저항이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이 복음 사역을 하는 곳에는 강력한 영적 저항이 있어요. 제가 한국에 사역할 때도 한국에 여름 되면 이제 집회 청소년 집회나 또 시골 지방 집회들을 나가는데 정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현장에는 반드시 악한 영들의 역사가 있어요. 그 저항이 있고 그 아프리카에 갔더니 아프리카는 저녁 이제 낮에는 우리 복음 캠프를 하고 저녁에 집회를 하고 낮에 또 전도하고 저녁에 집회하면 악한 영들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지난번에도 그러고 지난번에도 막 은혜롭게 집회를 하는데 막 한쪽에서 이제 그 사람을 장악하고 있던 악한 영이 이제 말씀을 들으니까 이게 이제 그 안에서 저항을 하면서 막 발작을 한 거예요. 그래가지고 집회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막 소리를 지르고 막 구르고 그러니까 거기에 아프리카 목사님들이 다 달라붙어가지고 막 이제 소리 지르고 아수라장이 되는 거예요. 그게 이제 말씀을 방해하는 역사예요. 그래서 이제 따로 불러가지고 그 귀신을 쫓아냈어요.
그런 여러분 영적 실체가 있어요. 신앙생활은 그녀 그냥 내가 예수 믿는 걸로 끝내는 거 아니라 내가 예수 믿고 영적 생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할 때 악한 영들도 동시에 역사하고 방해합니다.
그것이 강했던 곳이 바로 에베소예요. 그러니까 바울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프랑스에는 없냐 프랑스에도 희한한 것들이 많아요. 여기도 여기는 굉장히 인본주의의 나라예요. 계몽주의 시대에 무실론이 가장 강력했던 곳이에요. 휴머니즘을 빙자한 그런 무실론 쪽으로 가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매우 미신적인 게 강합니다. 그래서 그 파이엉스라고 해서 그 뭐야 그거 점쟁이들이 요즘은 잘 안 보이는데 제가 처음 왔으니까 깜짝 놀라게 송트로코 맥시나 이런 데는 어느 한 달 정도 막 쫙 깔아놓고 가서 점 보는 거예요.
사람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나서 사람들이 공허하니까 누구를 찾아가냐 점쟁이를 찾아가는 거예요. 거기서 만족을 얻는 거예요. 그 틈을 타고 마귀들이 역사하는 거예요.
근데 어저께 이제 우리 어제 우리 결혼식이 있어서 제가 금요일날 아프리카에서 돌아와 가지고 잠깐 새벽에 왔는데 쉬고 그래도 이제 이발을 해야 되겠다. 그래도 나도 예쁜 모습으로 주례를 봐야지 깔끔하게 그러고 이제 하고는 이제 많이 못 걸어가지고 저 14위에서부터 우리 집으로 이제 걸어오고 있었어요. 걸어오는데 누가 전화를 딱 해 보면 보통 제가 이름이 기록 안 된 전화는 안 받습니다. 거의 99% 보이스피싱이에요. 그래서 제가 좀 착해가지고 자꾸 속아 보이스피싱 하면 진짜로 막 제가 믿기도 하고 막 그런데 안 봤다가 아이고 이게 혹시 또 급한 분이 하는 거 아닌가 그래가지고 받았어 로 그러니까 뭐라고 자기 이름을 막 이렇게 해요.
그래서 튜브 그랬더니 죄지 그런 거예요. 그래 아이고 내가 뭐 잘못 들었나 쥐지스 그러는 거예요. 쥐지어스 그래가지고 잘못 들었나 그래서 기에델라 파레이 세바스티오 성 그랬더니 주시 제주 허브이 그러는 거예요. 재림 예수래요 재림 예수 내가 잘못 들은 거 너무나 황당하잖아요. 잘못 들은 거 가지고 부제트 뱅성 내가 그랬어요. 왜냐면 내가 이제 아프리카 가면서 뱅성이라고 하는 꼬뜨디브아르 사람하고 어떻게 비행기를 한 번 갈아탔는데 두 번 같이 옆에 탔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이번에 꼬뜨디브아르가 태권도로 은메달을 땄는데 그 코칭 스태프야. 그리고 전 세계를 다니면서 그걸 리드라고 그래서 또 격투기를 하는 사람인데 너무 둘이 친해졌어요. 그래서 이제 파리 오면 연락하겠다고 그러고 근데 이 사람이 이제 와가지고 연락 안 하는 줄 알고 아까 방상인데 아까 황상 이 사람은 화를 내는 거야. 죄지 허분이 그래가지고 한번 들어보니까 재림 예수잖아.
이게 또 여기 프랑스에도 미친 놈이 있구나. 한국만 있는 줄 알았더니 한국이 한국은 재림 예수가 50명 있습니다. 오피셜만 한국은 아주 정말 종교적인 나라예요. 자기가 저기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유사 재림 예수가 한 300명 된대.
근데 이제 오피셜멍 자기 어떤 종교 그걸 만들어가지고 하는 게 50명 정도 된대요. 근데 프랑스도 만만치 않은 나라거든. 근데 요즘 없는 줄 알았더니 그 재림 예수가 어떻게 내가 목사인 줄 알고 나한테 전화를 해가지고 그래서 좀 듣다가 아이가 그래서 그냥 끊어버렸어요. 끊었더니 집에 왔더니 3분 50초짜리 막 저기 메시지를 남겼어. 그래가지고 주스 세주의 허브이 쥬스 또 자기가 천사래 또 뭐 슈크레아 로스앤젤레스 로스앤젤레스를 창조했고 주스 갸르디앙 들어갔대.
그래 땅에 뭐고 니가 내 말을 안 듣는 걸 보니 뭐 말쇠로구나 뭐 이러면서 막 저주를 퍼붓는 그걸 지금 제가 가지고 있어요. 이따 듣고 싶은 사람들은 따로 개인적으로 만나면 제가 보내드리겠습니다.
여기도 만만치 않은 영적 전쟁이에요. 우리가 그냥 아름다운 파리만 눈부시도록 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이 뒤에는 악한 영들의 역사가 있는 거예요.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포기하지 않고 그 교인들을 말씀으로 양육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그리고 견고해졌어요. 나중에는 이 에베소 교회가 소아시아 지역의 핵심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말씀이 중요해요. 이 혼란한 세대에서 영적 전쟁의 현장 이 현장에서 우리가 영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되고 체계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냥 성경만 읽어서 되는 게 아니고 그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그게 이제 그 말씀에서 신앙의 액기스를 뽑아낸 걸 뭐냐 하면 독트린이라고 그래요. 그 독트린을 공부해야 돼. 바울의 세 번째 사역은 능력 사역이었습니다.
11절에 보면 바울이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압치반을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기도 나가더라.
초대교회 사도들의 사역은 반드시 능력이 따라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 능력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이건 어떤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따르는 능력이기 때문에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성경에 이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사역은 능력 사역과 함께 갑니다. 건강한 교회는 이 두 가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의 체계를 세우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말씀이 사건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좋은 어떤 철학 사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이에요. 구약의 약속, 신약의 약속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거예요. 약속을 왜 해요? 지키려고 한 거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그 말씀을 반드시 지키신다. 그래서 우리가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면요. 하나님의 말씀이 사건이 됩니다. 그걸 세상 사람들은 너무 신기하잖아요. 그래서 미라클이라고 하는 거예요. 귀족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에는 미라클이 미라클이 일상이 되는 거예요. 말씀의 역사가 안 일어나는 것이 이상한 거야. 근데 요즘은 그런 게 일어나면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을 하라. 참 희한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가지고 사역을 하자 그가 가지고 있던 손수건만 얹어도 역사가 일어납니다.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림자만 덮여도 악귀가 떠나고 역사가 일어났어. 희한한 능력이라고 누가는 기록합니다. 희한한 능력이 나타난다.
예수님도 오셔서 말씀을 전하는 현장마다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자가 나음을 얻고 눈 먼 자가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났어요. 우리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러나 그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사도들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동일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사도행전 5장 15절 이하에도 베드로의 사역을 그렇게 표현을 했어요. 그림자만 지나가도 역사가 일어났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을 동반합니다.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이에요. 말씀 속에는 생명의 씨앗이 있어요. 그것이 떨어지면 반드시 싹이 나고 잎이 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속에 받으면, 그리고 그 말씀이 전해지면 여러분 그 말씀이 현실이 되고 사건이 됩니다. 우리는 그 신앙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이게 이제 이 능력 사역.
요즘에는 19세기 20세기 초반에 오순절 교회가 생기면서 이 부분이 많이 보편화가 됐어요. 그전에 이제 개혁교회는 이 부분을 많이 축소시키고 성령의 역사를 그저 우리 내면을 변화시키는 성화시키는 걸로만 했지만, 오순절 교회가 나오면서 이 능력 사역 하나님의 말씀이 초대교회처럼 역사하는 것을 보여줬어요.
근데 이게 나타날 때 우리가 주의해야 될 게 있어요. 이제 안 나타난 것을 정상으로 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야. 하나님 말씀은 반드시 역사가 일어나게 돼 있어요.
그런데 또 역사가 일어날 때 이게 주의하지 않으면 그 이단으로 빠져버려요. 첫째는 뭘 주의해야 되느냐 흉내내기와 무분별함입니다. 흉내내기 자기가 능력이 없는데 구원받은 바도 없고 아니면 구원받았지만 성령께 순종하지도 않고 말씀에 대한 확신도 없고 능력을 받은 바도 없는데 권능이 안 임했는데 남들이 하니까 자기도 하겠다고 흉내내지 마라는 거 그건 거짓입니다.
에베소에도 흉내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19장 13절에 오늘 본문에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바울을 보니까 자기 것보다 뛰어나거든 기가 막히거든 그러니까 흉내를 낸 거예요. 스게의 아들들이 이 제사장의 자녀들이니까 이 영적 세계를 아는 거예요. 어느 정도 그래서 예수의 이름을 믿은 게 아니고 주술로 사용해 주문처럼.
근데 이제 확신이 없으니까 아직은 그게 확신이 없으니까 주문도 좀 희한하게 사용합니다.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말이 길어졌죠. 이게 사이비입니다. 그래가지고 딱 했더니 그 귀신이 떠난 게 아니고 귀신이 나는 바울도 알고 예수도 아는데 너는 어떤 놈이냐고 확 달라들어버렸어. 그래가지고 놀래가지고 막 혼비백산해서 도망가는 것이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지 않고 주술 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큰 범죄예요.
그리고 거기는 이런 부끄러움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이제 그런 일들이 많았어요. 우리 한참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때 막 이제 지방 교회나 이런 데 가서 복음 전하고 전도하러 막 무당집에도 가고 막 그랬는데 하다 보면 굉장히 영적 저항을 많이 받아요.
근데 이런 역사들이 일어나고 하니까 어떤 전도사가 능력도 안 받았는데 자기도 해보겠다고 막 그 악한 영이 역사하니까 귀신아 떠나라 막 그렇게 한 거야. 그랬더니 귀신이 처음엔 깜짝 놀라다가 보니까 능력이 없거든. 빙그레 웃으면서 너 기도 좀 더 하고 와라. 이 새끼야 정말 부끄러움을 당해.
저희가 그냥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능력이 나타나더라도 이게 성령의 역사일 수도 있고 악한 영의 역사일 수도 있어요. 영을 분별해야 돼. 처음에는 성령의 역사로 시작을 했다가 자기 내면 관리를 못하고 자꾸 이제 막 능력이 나타나고 그러니까 이게 헷가닥 헷까닥 하다가 나중에 교만해져가지고 자기가 예수의 자리에 올라가야 돼. 그래가지고 주스 제주의 허니 엿따구 소리나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의 이단들의 대부분은 다 이런 영적 파워를 경험한 사람들 해보니까 재밌거든 막 사람들이 막 따르거든. 스타처럼 막 따르고 요즘도 유튜브 스타들이 있어요. 유튜브 스타의 복음을 빙자한 그래야 사람들이 전 세계 사람들이 막 따르고 그러는데 그거 주의해야 합니다.
주의 성경이라는 캐논에 근거해서 평가를 받아야 되고 스스로도 주의해야 되는데, 특히 한국분들은 그런데 그 영적 팬덤이 형성돼가지고 막 쫓아다니고 그러는데 그것도 주의해야 돼. 처음에는 성령의 역사로 시작했다. 육체로 맞힐 수가 있어요.
또 처음에는 건강하게 시작했다가 나중에 잘못된 마음을 가지면 거기에 사탄이 역사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멀쩡한데 저걸 믿고 따라갈까 저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어요. 저런 저런 방송에도 나오고 다 이러는데 거기 가서 막 자기 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어 이단이나 그런 사이비의 역사는 영이 있어요.
우리가 성령이 역사하시듯이 크리스찬들에게 그런 영이 있어서 우리는 도무지 안 믿을 것 같은데 믿어버려 그걸 주의해야 합니다. 능력이 없는 것을 건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고, 그리고 모든 그 영적 역사를 다 그냥 무조건 따라가서도 안 돼요.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돼요. 그러나 현대 교회는 특히 우리 장로교회 제가 속한 장로교회는 조금 더 성령님의 역사 하나님이 오늘도 역사하신다는 이 사실에 마음을 열고 우리는 이 교리나 이런 쪽은 어디보다도 견고하잖아요. 그러나 더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종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에베소 사역을 정리해 봤는데 이 세 가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 말씀 그리고 능력 이 세 가지가 우리 인생이나 교회에 건강하게 균형 있게 나타날 때 우리가 행복한 신앙생활 할 수 있고 또 이 시대에 맡겨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요. 그런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