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말씀
또한 니치렌(日蓮)을 공양(供養)하고 또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가 되심은 그 공덕(功德)을 부처의 지혜(智慧)로써도..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7.28 조회수: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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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또한 니치렌(日蓮)을 공양(供養)하고 또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가 되심은 그 공덕(功德)을 부처의 지혜(智慧)로써도 다 헤아리지 못하느니라.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선구(先驅)는 니치렌(日蓮) 일인(一人)이로다.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수(數)에도 들어가리라. 만약 니치렌(日蓮)이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수(數)에 든다면 어찌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지용(地涌)의 유류(流類)가 아니리오."
"말법(末法)에 태어나서 법화경(法華經)을 홍통(弘通)하는 행자(行者)는 삼류(三類)의 적인(敵人)이 있어 유죄(流罪)와 사죄(死罪)에 이르리라. 그러할지라도 참고 견디어 홍통(弘通)하는 자(者)를 옷을 가지고 석가불(釋迦佛)이 덮어 주실 것이로다.
제천(諸天)은 공양(供養)을 할 것이로다. 어깨에 올려 놓고 등에 업을 것이로다, 대선근(大善根)의 자(者)로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위(爲)해서는 대도사(大導師)일지니라고."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천신(天神)·칠대(七代)·지신오대(地神五代)의 신(神)들·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사대천왕(四大天王)·범천(梵天)·제석(帝釋)·염마법왕(閻魔法王)·수신(水神)·풍신(風神)·산신(山神)·해신(海神)·대일여래(大日如來)·보현(普賢)·문수(文殊)·일월(日月) 등(等)의 제존(諸尊)들에게 칭찬받음으로써 무량(無量)의 대난(大難)마저도 참고 견디었느니라."
"니치렌(日蓮)과 동의(同意)란다면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이 아니겠느뇨. 지용(地涌)의 보살(菩薩)로 정(定)해진다면 석존(釋尊)의 구원(久遠)의 제자(弟子)라 함을 어찌 의심하리오."
"말법(末法)에 와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는 자(者)는 남녀(男女)를 가리지 말지니라. 모두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출현(出現)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題目)이니라. 처음엔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불렀으나 이인(二人)·삼인(三人)·백인(百人)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傳)하느니라. 미래(未來)도 또 그러하리라, 이 어찌 지용(地涌)의 의(義)가 아니리오. 더구나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때는 일본일동(日本一同)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게 될 것은 대지(大地)를 과녁으로 하는 것과 같으리라.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다 이름을 세우고 몸을 맡기시라."
"현재(現在)는 뚜렷하게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이니 또한 미래(未來)는 결정(決定)코 당예도량(當詣道場)이 되리라. 과거(過去)도 이로써 미루어 생각하건대 허공회(虛空會)에도 있었으리라. 삼세각별(三世各別)은 있을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노라니 유배(流配)의 몸이지만 희열(喜悅)은 한량(限量)없도다. 기뻐도 눈물이오, 괴로워도 눈물이라"
"현재(現在)의 대난(大難)을 생각하는데도 눈물이오, 미래(未來)의 성불(成佛)을 생각하여 기뻐함에도 눈물을 막을 길이 없느니라. 새와 벌레는 울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 니치렌(日蓮)은 울지 않지만 눈물이 마르지 않느니라. 이 눈물은 세간(世間)의 일이 아니라, 다만 오로지 법화경(法華經) 때문이로다. 만약 그렇다면 감로(甘露)의 눈물이라고도 해야 하리라."
"일염부제(一閻浮提) 제일(第一)의 어본존(御本尊)을 믿으실지어다.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신심(信心)을 강성(强盛)히 하여 삼불(三佛)의 수호(守護)를 받도록 하시라.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行學)이 끊어지면 불법(佛法)은 없느니라. 나도 행(行)하고 남도 교화(敎化)하시라. 행학(行學)은 신심(信心)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一文一句)라도 설(說)할지니라"
《 본문어서 》
또한 니치렌(日蓮)을 공양(供養)하고 또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가 되심은 그 공덕(功德)을 부처의 지혜(智慧)로써도 다 헤아리지 못하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부처의 지혜로써 주량(籌量)할지라도 다소(多少)의 그의 변(邊)을 알지 못함이라」고 하였느니라.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선구(先驅)는 니치렌(日蓮) 일인(一人)이로다.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수(數)에도 들어가리라. 만약 니치렌(日蓮)이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수(數)에 든다면 어찌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지용(地涌)의 유류(流類)가 아니리오. 경(經)에 가로되 「능(能)히 은밀하게 한 사람을 위하여 법화경(法華經)의 내지 일구(一句)를 설(說)한다면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곧 여래(如來)의 사자(使者)요, 여래(如來)가 보낸 바로서 여래(如來)의 사(事)를 행(行)함이니라」고, 어찌 다른 사람의 일을 설(說)하셨겠느뇨. 그러므로 너무나 남이 나를 칭찬할 때는 어떻게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느니라. 이는 칭찬하는 바의 말에서 일어나느니라. 말법(末法)에 태어나서 법화경(法華經)을 홍통(弘通)하는 행자(行者)는 삼류(三類)의 적인(敵人)이 있어 유죄(流罪)와 사죄(死罪)에 이르리라. 그러할지라도 참고 견디어 홍통(弘通)하는 자(者)를 옷을 가지고 석가불(釋迦佛)이 덮어 주실 것이로다.
제천(諸天)은 공양(供養)을 할 것이로다. 어깨에 올려 놓고 등에 업을 것이로다, 대선근(大善根)의 자(者)로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위(爲)해서는 대도사(大導師)일지니라고.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천신(天神)·칠대(七代)·지신오대(地神五代)의 신(神)들·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사대천왕(四大天王)·범천(梵天)·제석(帝釋)·염마법왕(閻魔法王)·수신(水神)·풍신(風神)·산신(山神)·해신(海神)·대일여래(大日如來)·보현(普賢)·문수(文殊)·일월(日月) 등(等)의 제존(諸尊)들에게 칭찬받음으로써 무량(無量)의 대난(大難)마저도 참고 견디었느니라. 칭찬을 받게 되면 자신(自身)이 손상(損傷)되는 것도 돌아보지 아니하며 비방(誹謗)을 당할 때는 또한 자신(自身)이 파멸(破滅)됨도 알지 못하고 행동(行動)하는 것은 범부(凡夫)의 예상사(例常事)니라.
어떻게 하여서라도 이번에 신심(信心)을 다하여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로서 일관(一貫)하고 끝까지 니치렌(日蓮)의 일문(一門)이 되어 나아가시라. 니치렌(日蓮)과 동의(同意)란다면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이 아니겠느뇨. 지용(地涌)의 보살(菩薩)로 정(定)해진다면 석존(釋尊)의 구원(久遠)의 제자(弟子)라 함을 어찌 의심하리오. 경(經)에 가로되 「나는 구원(久遠) 이래(已來) 이들 중(衆)을 교화(敎化)하였다」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말법(末法)에 와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는 자(者)는 남녀(男女)를 가리지 말지니라. 모두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출현(出現)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題目)이니라. 처음엔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불렀으나 이인(二人)·삼인(三人)·백인(百人)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傳)하느니라. 미래(未來)도 또 그러하리라, 이 어찌 지용(地涌)의 의(義)가 아니리오. 더구나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때는 일본일동(日本一同)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게 될 것은 대지(大地)를 과녁으로 하는 것과 같으리라.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다 이름을 세우고 몸을 맡기시라.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허공(虛空)에서 이불(二佛)이 서로 수긍(首肯)하여 정(定)하신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오로지 말법(末法)의 영법구주(令法久住) 때문이니라. 이미 다보불(多寶佛)은 반좌(半座)를 나누어서 석가여래(釋迦如來)께 드릴 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기(旗)를 꽂아 나타내시고,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 대장(大將)으로서 정(定)하신 일이 어찌 헛되리오. 이는 오로지 우리들 중생(衆生)을 성불(成佛)시키고자 하는 담합(談合)이시니라.
니치렌(日蓮)은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경문(經文)을 보건대, 조금도 흐림이 없도다. 또 그 자리에도 있었겠지만 범부(凡夫)이므로 과거(過去)를 알지 못하노라. 현재(現在)는 뚜렷하게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이니 또한 미래(未來)는 결정(決定)코 당예도량(當詣道場)이 되리라. 과거(過去)도 이로써 미루어 생각하건대 허공회(虛空會)에도 있었으리라. 삼세각별(三世各別)은 있을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노라니 유배(流配)의 몸이지만 희열(喜悅)은 한량(限量)없도다. 기뻐도 눈물이오, 괴로워도 눈물이라, 눈물은 선악(善惡)에 통(通)하는 것이니 저 천인(千人)의 아라한(阿羅漢)들이·부처님의 일이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렸고, 눈물을 흘리면서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고 부르시니, 천인(千人)의 아라한(阿羅漢) 중(中)의 아난존자(阿難尊者)는 울면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대답하시었다. 나머지 구백구십인(九百九十人)은 눈물을 벼루의 물로 하여 또 여시아문(如是我聞) 위에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고 써 두었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도 그와 같도다. 이와 같은 몸이 된 것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 칠자(七字)를 홍통(弘通)하기 때문이로다. 석가불(釋迦佛)·다보불(多寶佛)이 미래(未來)의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위(爲)하여 남겨 놓으신 바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와 같이 나도 들었기 때문이니라. 현재(現在)의 대난(大難)을 생각하는데도 눈물이오, 미래(未來)의 성불(成佛)을 생각하여 기뻐함에도 눈물을 막을 길이 없느니라. 새와 벌레는 울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 니치렌(日蓮)은 울지 않지만 눈물이 마르지 않느니라. 이 눈물은 세간(世間)의 일이 아니라, 다만 오로지 법화경(法華經) 때문이로다. 만약 그렇다면 감로(甘露)의 눈물이라고도 해야 하리라. 열반경(涅槃經)에는 부모(父母)·형제(兄弟)·처자(妻子)·권속(眷屬)과 이별하여 흘리는 눈물은 사대해(四大海)의 물 보다 많을지라도 불법(佛法)을 위하여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고 쓰여 있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되는 것은 과거(過去)의 숙습(宿習)이니라. 같은 초목(草木)이라도 부처로 만들어지는 것은 숙연(宿緣)이며 부처라도 권불(權佛)이 되는 것은 또한 숙업(宿業)이니라.
이 문(文)에는 니치렌(日蓮)의 중대(重大)한 법문(法門)들을 썼으니 차근 차근히 읽고 해석(解釋)하여 이해(理解)하도록 하시라. 일염부제(一閻浮提) 제일(第一)의 어본존(御本尊)을 믿으실지어다.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신심(信心)을 강성(强盛)히 하여 삼불(三佛)의 수호(守護)를 받도록 하시라.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行學)이 끊어지면 불법(佛法)은 없느니라. 나도 행(行)하고 남도 교화(敎化)하시라. 행학(行學)은 신심(信心)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一文一句)라도 설(說)할지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공공근언(恐恐謹言).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1359~13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