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달다!
신형호
놀이터가 바뀌었다. 산에서 물가로 옮겼다. 퇴직 후 오전 용두골 산행은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순간이다. 수십 년 동안 정들었던 장소로 한 주일에 대 여섯 번은 오른다. 지난 사월 초순이었다. 코로나로 세상이 어수선했지만, 산은 늘 어제 같았다. 연둣빛 새잎들이 봄바람에 하늘거리고, 재잘대는 계곡에는 물소리가 정겨웠다. 등산 후 하산길이다. 산을 거의 내려왔을 즈음 갑자기 오른쪽 발바닥이 뜨끔했다. 걸음을 옮기기가 어려웠다.
족저근막염 진단이 나왔다. 엑스레이와 초음파검사 결과이다. 발바닥 끝부분의 뼈가 무리를 해서 튀어나왔다고 한다. 물리치료도 계속 받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자가 치료도 꾸준히 했다. 그동안 운동량이 너무 많았나? ‘별일 아니겠지. 며칠 치료하면 나을 거야.’ 기대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졌다. 한두 주가 지나고 달이 흘러도 차도가 없다. 운동을 안 하면 좋겠지만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어떻게 생활이 될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잘 걷지 못하고 그토록 좋아하던 산에도 못 가니 정신이 함께 무너졌다. 눈앞에서 산 풍경이 아른거린다.
둘째 아이가 폭신한 슬리퍼를 사 왔다. 발이 탈 났다는 말을 듣고 고심하다가 구매한 체중을 분산해주는 편한 신이다. 나쁜 일과 좋은 일은 골고루 오는 모양이다. 본인 걱정도 많지만,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하다. 가족이란 구성원의 고마움이다. 성격이 나를 많이 닮아 감성이 강하고 여리다. 공적인 장소에 갈 일이 별로 없기에 늘 슬리퍼를 신고 다닌다. 병원 의사들이 즐겨 신는다는 실내서 발을 보호해 주는 신도 택배로 보내왔다. 혼자 떨어져 살기에 나는 자주 챙겨 주지도 못했는데, 아빠를 생각하는 정성에 가슴이 찡했다. 슬리퍼를 신을 때마다 따뜻한 마음이 전해온다.
어느 날 번쩍 생각이 떠올랐다. ‘산길은 힘들어도 평지는 무리가 가지 않을 거야.’ 가까운 가창 저수지 길이 떠올랐다. 수년 전에 데크로 둘레 길을 만들었다. 이른 아침이지만 산책하는 사람이 많았다. 슬리퍼를 신고 천천히 걸었다. 하얀 아카시아 꽃향기가 물바람을 타고 흩날리고, 보랏빛 등나무꽃이 바닥을 수놓는 시간 꾸준히 찾았다. 산 그림자가 대칭으로 물에 일렁이는 정경도 아름다웠고, 물새들이 물수제비뜨기도 하듯 뽀얀 물거품을 만들며 날아오르는 모습은 산책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댐 입구의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필 무렵 또 발이 아파졌다. 걷는 것은 역시 무리일까?
산책로 끝부분에 두 개의 정자가 있다. 오래전에 지은 첫 번째 정자에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다. ‘그래! 꼭 걸어야만 하나. 운동을 바꿔보자.’ 걷기보다 오래전 헬스장에서 배운 스트레칭을 하면 어떨까? 낡은 정자는 신을 신고 마구 올라오던 곳이라 지저분했다. 매일 청소하고 매트를 깔고 앉았다. 오래된 기둥에는 벌집 구멍이 여럿 있어 작은 벌들이 나들고 하였지만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느긋이 앉아 고개를 들면 짙푸른 호수 위 흰 구름을 이고 있는 검푸른 산이 우뚝하다. 물가에는 살랑거리는 노란 달맞이꽃이 춤추는 곳이다. 전화위복이다. 이전에는 손바닥 한 면인 산만 찾았지만, 이제는 양면인 산과 물을 가진 놀이터를 갖게 되었다.
오늘도 정자에 오른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 팔자 좋게 누워 먼 숲을 바라본다. KBS 방송 ‘가정음악실’ 클래식에 빠지면 온 세상이 아늑해진다. 장마철 비구름이 산허리에 띠를 이룬 솜사탕 되어 짙어졌다가 옅어진다. 한참 느긋이 보고 즐긴다. 마음은 중국 무협 소설 주인공이 되어 구름 속을 걷는다. 머릿속 어지럽던 증상도 잊는다. 눈부심도 이명 현상도 발 아픔도 아득해진다. 걱정도 불안도 보이지 않는다. 펼쳐진 풍경과 잔잔한 음악 소리에 세상은 비안개 속에 잠겨버린다. 삶이 달콤하다. 문득 현장법사 전기에 나오는 안수정등(岸樹井藤)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나운 코끼리에 쫓긴 한 나그네가 절벽 아래로 피하면서 우물로 뻗은 등나무 넝쿨을 잡고 허우적거린다. 다행히 코끼리의 위험은 피했지만, 옆에는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우물 바닥에는 세 마리의 독룡이 혀를 내밀고 떨어지길 기다린다. 올라가면 코끼리에게, 떨어지면 독룡에게, 그냥 있으면 독사에게 잡아먹힐 지경이다. 설상가상으로 억지로 잡고 있던 등나무 넝쿨도 흰쥐와 검은 쥐가 교대로 갉아먹는 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태다. 그때였다. 이마위로 촉촉한 무엇이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떨어질 때 꿀벌의 집을 흔들어 꿀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이다. 나그네는 그 꿀을 한 방울 한 방울 받아먹으면서 꿀맛에 도취하여, 곧 불행이 닥친다는 생각도, 죽는다는 생각도 다 잊고 만다는 비유적인 이야기이다.
일제강점기 때 용성스님이 ‘만공’ ‘보월’ ‘혜봉’ 등 제자들에게 이 안수정등 이야기를 가지고 물었다. “이 나그네가 어떻게 하면 벗어나서 생사 해탈을 할 수 있는가? 한마디로 말해 보아라.”하니, “어젯밤 꿈속의 일이니라.” “누가 언제 우물에 들었던가?”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지 못하니라” 등의 답이 나왔다. 용성스님은 마침 그 자리에 없던 ‘전강’이라는 제자의 답이 궁금했다. 그 당시 ‘전강’은 엿판을 짊어지고 엿장수로 떠돌고 있었다. 한 사람이 스승의 질문을 가지고 ‘전강’을 찾아가서 물었다. ‘전강’은 손에 든 엿장수 가위를 번쩍 들며 한 마디로 답을 한다.
“달다!”
(《수필문예》 제21집, 2022.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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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문학바탕》 시 등단, 《대구문학》 수필 등단
수필문예회, 대구수필문예대학 강사
제2회 국민잡지읽기수기 은상, 정지용문학관탐방문예 최우수상(시)
대구수필문예대학 11기 수료.
shh197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