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9장 11-16절. 에베소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침. 요약설교
11절.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통하여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복음 전하는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입증하시는 좋은 사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16장에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귀신을 쫓으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하셨습니다.
12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 바울 사도가 두란노 서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강론하니까, 하나님이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는데, 바울이 말로 꾸짖으면 귀신이 떠나가고, 손을 얹으면 병이 낫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바울의 말이나 안수를 통해서만 아니라, 바울이 사용하는 손수건이나 앞치마만 갖다 얹어도 병이 낫고 귀신도 떠나갔습니다.
그래서 희한한(놀라운)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15-16절에서는 베드로가 지나가는 길에 병자들을 침대나 요에 데려다 눕혀놓고, 베드로의 그림자만 덮이게 되어도 병자들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베드로도 말이나 안수로 병을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그림자만 덮여도 병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희한한 능력의 역사입니다.
여기서 손수건이란 바울이 눈병이 있으므로 늘 흐르는 눈물과 눈곱을 닦기 위해서 가지고 다니는 손수건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앞치마란 바울이 천막 만드는 일을 할 때 입고 사용하는 앞치마를 가리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는 더러운 천 조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능력이 얼마나 컸든지, 사람들이 바울의 몸을 만지는 것만이 아니라 바울이 가지고 있는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몰래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기만 해도 병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다가 병이 나은 적이 있었습니다(눅8:42-48).
이처럼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의 종으로 사용하시고, 능력의 종으로 한번 사용하시면, 그 사람 자체만이 아니라, 옷자락이나 그림자나 손수건이나 앞치마조차도 능력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3절.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 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이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마술하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유대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섬기면서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행19:9)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 9절에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타 종교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나 겉으로는 종교인인 척 하지만 실상은 마귀의 종들이 많습니다.
유교와 불교가 제사하는 것도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2. 이처럼 마술하는 유대인들이 본래는 마귀를 힘입어서 속임수로 마술을 가지고 사람들을 현혹하고 돈을 받았는데, 하도 바울 사도를 통한 신기한 역사가 이루어지니까,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여 귀신에게 나가라고 시험 삼아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술사들이 볼 때, 자기들이 하는 마술 보다 바울이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들을 고치고, 심지어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로 병자들을 고치는 일이 훨씬 더 능력 있는 것을 알고, 한번 바울과 같은 더 높은 경지에 이르러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술 하는 사람들이 기술적으로 바울이 하는 것을 따라서 익혀보려고, 그냥 바울처럼 예수님 이름으로 명하면 귀신이 나가는 줄 알고, 시험적으로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아 나가라’고 해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병자들을 낫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심지어 손수건이나 앞치마로 병자들을 낫게 하는 것은 마술사가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나 목사들조차도 잘 하지 못하는 정말 사도적인 놀라운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실력은 마귀가 먼저 알고, 안 나간다고 하고 무시해버립니다.(행 19:15)
그래서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귀신을 쫓아내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왜 우리는 못 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마가복음 9장 29절에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모방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14절.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 에베소에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는데, 이 유대인의 회당에 유대인의 제사장 노릇을 하던 사람이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냥 제사장 노릇을 한 것이 아니고, 대제사장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에베소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을 경건히 섬겨야 하는데, 마귀의 종노릇 하면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 전도를 대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3개월이나 에베소 회당에서 전도했어도, 이 대제사장 때문에 모든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행 19:9).
그런데 이 제사장 이름은 스게와이고 그에게는 일곱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스게와가 대제사장이면 그 아들들은 제사장들입니다.
왜냐하면 아론이 대제사장이면 그 아들들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엘리 대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들이었듯이)
일곱 아들의 아버지 대제사장이 마귀의 종노릇하면서 바울의 복음 전도를 비방하니까, 그 아들들도 마술을 하면서 마귀의 종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사장 스게와의 아들들이 마술사들이 하는 짓을 본받아서,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아 나가라>고 하자, 오히려 귀신이 달려들어서 몸을 상하게 하고, 옷을 벗기고 도망가게 했습니다.
이것은 거짓된 유대교 지도자들이 창피를 당하는 모습입니다.
15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 스게와의 아들들이 악귀에게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하자, 악귀가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고 오히려 달려들었습니다.
여기서 악귀가 예수님도 알고 바울도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안다는 것이고, 악귀가 예수님을 사랑하거나 바울을 사랑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16절.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 스게와의 아들들이 악귀 들린 사람에게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가라>고 했는데, 귀신이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악귀 들린 사람이 스게와의 아들들에게 뛰어올라 눌러서 제압해버리고, 이겼습니다.
그러니까 스게와의 아들들이 상처를 입고 옷을 빼앗긴 채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쳤습니다.
유대교의 최고 대제사장의 일곱 아들들이 이처럼 악귀에게 제압당하여 벌거벗고 도망했으니, 에베소에서 유대교가 얼마나 수치를 당했겠습니까?
2. 사도행전 19장 14-16절은 영적 대결의 사건입니다.
마치 열왕기상 18장의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영적 대결과 같습니다.
즉 바울과 유대교 일곱 제사장들의 영적 대결 사건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말과 안수만이 아니라 손수건과 앞치마로도 귀신들을 쫓아냈으나, 유대교 일곱 제사장들은 귀신에게 억압당하여 벌거벗고 도망쳤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전도에서는 유대교인들이 바울을 더 이상 핍박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유대교인들이 바울을 심히 핍박했습니다.
즉 사도행전 18장의 고린도에서는 바울을 죽이려고 고소했고, 17장의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도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해서 도망했습니다.
14장의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쳐 죽여서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에서는 바울이 승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데미 숭배자들이 군중을 선동하여, 3만 명이 연극장에 모여 바울을 대적하는 데모를 했으나, 서기관이 모임을 해산시켜서, 데모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 충만을 받으시고, 영적 대결에서 항상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평안한 생활을 하시고, 복된 교회와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