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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장 28-44절.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1. 예수님께서 평소에 가장 사랑하시던 가정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동편 베다니에 살고 있는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실 때면, 이 집에서 식사도 하시고, 주무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2. 그래서, 다급한 누이동생들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사람을 예수님께로 보내서, 어서 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급히 달려오실 예수님이 급한 소식을 듣고도, 웬일인지 도무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이 나사로가 없으면, 누이동생들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아갈 길이 막연했습니다.
오빠가 죽자 마르다와 마리아는 슬픔에 잠겨 울었습니다.
3. 나사로는 죽은 당일에 동굴 속 무덤에 장례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많은 조문객들이 연일 찾아와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조문하고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오셔야 할 예수님은 웬일인지 도무지 오시지 않았습니다.
4. 멀지도 않고, 바로 한나절이면 걸어서 오실만한 거리에 있으면서도, 웬일인지 도대체 예수님은 오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자주 들리시고, 사랑의 관계를 가지셨던 예수님이시건만, 막상 가정에 가장 큰 어려움을 당했을 때는, 전혀 모른 체 시는 것이었습니다.
5.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심히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신뢰했던 마음도, 사랑했던 마음도, 모두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모든 인생이 허무해졌습니다.
마리아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어쩌면 사람이 그토록 배신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그 분이 메시아인 줄 알았는데, 그토록 매정한 사람이었단 말인가...? 아쉬울 때는 찾아오고, 정작 힘들고 어려울 때는, 난 몰라라고 외면한 사람이었단 말인가...? 그 분이 베풀었던 기적 사건들도 모두 거짓된 것이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드리고, 서운하게 한 것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아, 못 믿을 것이 사람이구나...>
6. 이처럼, 3일 동안이나 낙심과 절망에 빠져있었는데, 4일째 되어서, 예수님이 모습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자, 언니인 마르다는 형식적으로 예의를 갖추어서,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겠습니다”라고 원망 섞인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 오라비가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르다는 “세상 마지막 부활 때는 살 줄 압니다”라고 실망 조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네가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주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예수님께 대한 이전의 신앙을 회복했습니다.
7. 그러자, 예수님은 낙심되어 울고 있는 “마리아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28절)
28절.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she had said this, she went away and called Mary her sister, saying secretly, "The Teacher is here and is calling for you."
이 말을 하고
καὶ τοῦτο εἰποῦσα,
and these things having said
직역하면 ‘그녀가 이것들을 말하고’란 뜻입니다.
‘말하고’(εἰποῦσα)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aid) 마르다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신앙고백을 단호하게 말 한 후를 가리킵니다.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ἀπῆλθεν καὶ ἐφώνησεν Μαριὰμ, τὴν ἀδελφὴν αὐτῆς λάθρᾳ εἰποῦσα
she went away and called Mary, the sister of her, secretary having said
‘돌아가서’(ἀπῆλθεν)와 ‘불러’(ἐφώνησεν)와 ‘말하되’(εἰποῦσα)는 모두 부정과거인데, 마지막 것은 부정과거 분사로서(went away, called, having said) 모두 과거에 일어난 확실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Ὁ Διδάσκαλος πάρεστιν καὶ φωνεῖ σε.
the Teacher is come and He calls you
‘오셔서’(πάρεστιν)와 ‘부르신다’(φωνεῖ)는 모두 현재형으로서(is come, He calls) 예수님이 지금 오셔서 부르시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 그러자, 마리아가 급히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29절.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hen she heard it, she got up quickly and was coming to Him.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ἐκείνη δὲ ὡς ἤκουσεν, ἐγείρεται ταχὺ καὶ ἤρχετο πρὸς αὐτόν·
she then when she heard, rose up quickly and was coming to Him
직역하면 ‘그때 바로 그녀가 듣고, 급히 일어나서 그에게로 나아가매’란 뜻입니다.
‘듣고’(ἤκουσεν)과 ‘일어나’(ἐγείρεται)는 둘 다 부정과거로서(she heard, rose up) 과거의 확실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키고, ‘나아가매’(ἤρχετο)는 미완료 과거로서(was coming) 마리아가 계속 예수님께로 가고 있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1. 마리아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너무도 믿고 사랑했던 분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오직 예수님을 유일한 소망 삼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만큼 낙심도 컸던 것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은 소식 한 마디도 없더니, 갑자기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울던 자리를 박차고 급히 일어나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2.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꿇어 엎드려 발을 붙들고 웁니다.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이 말의 속뜻은 “오시라고 할 때는 왜 오시지 않았어요. 그토록 기다렸건만 오시지 않더니... 이제야 오셨군요... 오라비는 죽고 말았어요...”란 뜻입니다.
30절.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Jesus had not yet come into the village, but was still in the place where Martha met Him.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οὔπω δὲ ἐληλύθει ὁ Ἰησοῦς εἰς τὴν κώμην,
not yet had come the Jesus into the village
‘들어오지’(ἐληλύθει)는 대과거로서(had come) 마르다를 맞이한 때 보다 이전에 들어오지 않고 계신 것을 가리킵니다.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ἀλλ’ ἦν ἔτι ἐν τῷ τόπῳ ὅπου ὑπήντησεν αὐτῷ ἡ Μάρθα.
but He was being still in the place where met Him the Martha
직역하면 ‘마르다가 그분을 만났던 곳에 그분은 그대로 계셨다’는 뜻입니다.
‘만나셨던’(ὑπήντησεν)은 부정과거로서(met) 과거에 만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계시더라’(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He was being) 계속 그곳에 그대로 계신 것을 가리킵니다.
31절.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n the Jews who were with her in the house, and consoling her, when they saw that Mary got up quickly and went out, they followed her, supposing that she was going to the tomb to weep there.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οἱ οὖν Ἰουδαῖοι οἱ ὄντες μετ’ αὐτῆς ἐν τῇ οἰκίᾳ καὶ παραμυθούμενοι αὐτήν,
the then Jews who being with her in the house and consoling her
‘있어’(ὄντες)는 현재분사이고, ‘위로하던’(παραμυθούμενοι)도 현재분사로서, 함께 있으면서 위로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ἰδόντες τὴν Μαριὰμ ὅτι ταχέως ἀνέστη καὶ ἐξῆλθεν,
having seen the Martha that quickly she rose up and went out
‘보고’(ἰδό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een) 확실히 본 것을 가리키고, ‘일어나’(ἀνέστη)와 ‘나가는’(ἐξῆλθεν)도 부정과거로서(she rose up, went out) 단호하게 일어나서 확 나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따라가더니
ἠκολούθησαν αὐτῇ,
they followed her
‘따라가더니’(ἠκολούθησ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followed) 따라갔다는 뜻입니다.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δόξαντες ὅτι ὑπάγει εἰς τὸ μνημεῖον
having supposed that she goes to tomb
‘가는 줄로’(ὑπάγει)는 현재형으로서(she goes) 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생각하고’(δόξ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upposed) 확실히 생각한 것을 가리킵니다.
곡하러
ἵνα κλαύσῃ ἐκεῖ.
so that she might weep there
직역하면 ‘거기서 그녀가 곡하려고’란 뜻입니다.
‘곡하러’(κλαύσῃ)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she might weep) 확실히 크게 곡하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32절.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이다 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when Mary came where Jesus was, she saw Him, and fell at His feet, saying to Him, "Lord, if You had been here, my brother would not have died."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ἡ οὖν Μαριὰμ, ὡς ἦλθεν ὅπου ἦν Ἰησοῦς,
the therefore Mary, when she came to where was Jesus
직역하면 ‘그러므로 마리아가 예수께서 계신 곳에 가서’란 뜻입니다.
‘계신’(ἦν)은 미완료과거로서(was) 예수님께서 계속 있던 곳에 계속 계신 것을 가리킵니다.
‘가서’(ἦ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she came) 과거의 확실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ἰδοῦσα αὐτὸν, ἔπεσεν αὐτοῦ πρὸς τοὺς πόδας,
having seen Him, fell of Him at the feet
직역하면 ‘그를 뵈옵고 그의 발에 엎드려’란 뜻입니다.
‘뵈옵고’(ἰδοῦσα)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een) 확실히 뵈옵고, ‘엎드려’(ἔπεσεν)는 부정과거로서(fell) 땅에 납작 엎드린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르되
λέγουσα αὐτῷ
saying to Him
직역하면 ‘그에게 이르되’란 뜻입니다.
‘이르되’(λέγουσα)는 현재분사로서(saying) 마리아가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Κύριε, εἰ ἦς ὧδε,
Lord, if You was being here,
직역하면 ‘주여, 만일 당신이 여기 계셨더라면’이란 뜻입니다.
‘계셨더라면’(ἦς)은 미완료과거로서(You had been) ‘당신이 여기 계속 계셨더라면’이란 뜻입니다.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이다
οὐκ ἄν μου ἀπέθανεν ὁ ἀδελφός. die
not anyhow of me died the brother
‘죽지 아니 하였겠나이다’에서 동사(ἀπέθανεν)는 부정과거로서(died) 단언컨대 분명히 죽지 않았을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 그때, 예수님은 인간의 죄와 죽음에 대해서 깊이 비통히 여기시며, 불쌍히 여기셨고, 또한 사람들의 불신에 대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33절.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Jesus therefore saw her weeping, and the Jews who came with her also weeping, He was deeply moved in spirit and was troubled,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을 보시고
Ἰησοῦς οὖν ὡς εἶδεν αὐτὴν κλαίουσαν
Jesus therefore when He saw her weeping
직역하면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녀가 우는 것을 보시고’란 뜻입니다.
‘우는’(κλαίουσαν)은 현재분사로서(weeping) 마리아가 울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보시고’(εἶδεν)는 부정과거로서(He saw) 예수님이 분명하게 보신 것을 나타냅니다.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
καὶ τοὺς συνελθόντας αὐτῇ Ἰουδαίους κλαίοντας,
and the having come with her Jews weeping
직역하면 ‘그리고 그녀와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이란 뜻입니다.
‘함께 온’(συνελθόντας)은 부정과거 분사이고(having come with), ‘우는’(κλαίοντας) 현재분사로서 마리아와 함께 온 유대인들도 울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ἐνεβριμήσατο τῷ πνεύματι καὶ ἐτάραξεν ἑαυτόν,
He was deeply moved in the spirit and was troubled Himself,
‘비통히 여기시고’(ἐνεβριμήσατο)와 ‘불쌍히 여기사’(ἐτάραξεν)는 둘 다 부정과거로서(He was deeply moved, He was troubled) 예수님이 인간의 죽음을 정말 깊이 비통하게 여기시고 정말 불쌍히 여기시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어디 두었느냐?”고 하시면서 곧바로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34절.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said, "Where have you laid him?" They said to Him, "Lord, come and see."
이르시되
καὶ εἶπεν
and He said
‘이르시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He said) 예수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그를 어디 두었느냐?
Ποῦ τεθείκατε αὐτόν;
Where have you laid him?
‘두었느냐’(τεθείκατε)는 현재완료로서(have you laid) 과거에 어디에 두어서 현재 어디에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르되
Λέγουσιν αὐτῷ
They say to Him
직역하면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란 뜻입니다.
‘이르되’(Λέγουσιν)는 현재형입니다(They say).
주여, 와서 보옵소서
Κύριε, ἔρχου καὶ ἴδε.
Lord, come and see.
‘와서’(ἔρχου)는 현재 명령형이고(come), ‘보옵소서’(ἴδε)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see) 단호하고 분명하게 보시라는 뜻입니다.
1. 무덤으로 가셔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35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Jesus wept.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ἐδάκρυσεν ὁ Ἰησοῦς.
wept the Jesus
직역하면 ‘예수께서 우셨다’는 뜻입니다.
‘우셨다’(ἐδάκρυσεν)은 부정과거로서(wept) 예수님이 우신 확실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인간의 죄악과 죽음에 대해서 지극히 동정하신 예수님의 눈물이십니다.
(1) 예수님은 생전에 눈물을 세 번 흘리셨습니다.
여기 나사로가 죽었을 때, 인간 괴롬 아시고 눈물 흘리셨습니다.
(2) 예루살렘 성이 멸망 당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을 내다보시고 우셨습니다.
(3) 인류를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실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면서 우셨습니다.
인류를 사랑하시는 눈물이며,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아 죽을 것을 내다본 울음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을 공감하신 주님이십니다.
찬송가 294장. 친애한 이 죽으니 우리 눈물 흘리며, 슬퍼 머리 숙일 때 주여 위로하소서. 주도 세상 계실 때 우리 슬픔 아시고, 눈물 흘리셨으니 주여, 위로하소서.
2. 예수님을 따라나선 조문객들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나사로는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던가?”하고, 비난의 말을 할 때, 예수님은 다시 한번 불신에 대한 깊은 비통함을 느끼셨습니다.
36절.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e Jews were saying, "See how He loved him!“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ἔλεγον οὖν οἱ Ἰουδαῖοι
were saying therefore the Jews
‘말하되’(ἔλεγον)는 미완료과거로서(were saying) 계속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Ἴδε, πῶς ἐφίλει αὐτόν
behold, how He was loving him
‘보라’(Ἴδε)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확실하게 보라는 뜻인데,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사랑하셨는가’(ἐφίλει)는 미완료과거로서( He was loving) 계속 사랑하고 있었던 사실을 가리킵니다.
37절.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some of them said, "Could not this man, who opened the eyes of the blind man, have kept this man also from dying?"
그중 어떤 이는 말하되
τινὲς δὲ ἐξ αὐτῶν εἶπαν
some but of them said,
직역하면 ‘그러나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이 말했다’란 뜻입니다.
‘말하되’(εἶπαν)는 부정과거로서(said) 단호하게 말한 모습을 가리킵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Οὐκ ἐδύνατο οὗτος ὁ ἀνοίξας τοὺς ὀφθαλμοὺς τοῦ τυφλοῦ, ποιῆσαι ἵνα καὶ οὗτος μὴ ἀποθάνῃ;
not was able this (man) who having opened the eyes of the blind, to have caused that also this (one) not should have died?
‘뜨게 한’(ἀνοίξ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opened) 예수님이 맹인의 눈을 단호하게 뜨게 한 과거의 역사적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죽지 않게’에서 동사(ἀποθάνῃ)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should have died) ‘확실히 죽지 않게’란 뜻입니다.
‘할 수 없었더냐’(Οὐκ ἐδύνατο--ποιῆσαι)에서 앞의 동사(ἐδύνατο)는 미완료과거이고(was able) 뒤의 동사(ποιῆ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to have caused)로서, 나사로가 죽어가는 며칠이 지났는데 그동안 계속 예수께서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고 묻는 것입니다.
38절.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Jesus, again being deeply moved within, came to the tomb. Now it was a cave, and a stone was lying against it.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Ἰησοῦς οὖν πάλιν ἐμβριμώμενος ἐν ἑαυτῷ, ἔρχεται εἰς τὸ μνημεῖον·
Jesus so again being deeply moved in Himself, comes to the tomb
‘비통히 여기시며’(ἐμβριμώμενος)는 현재분사로서(being deeply moved) 예수님이 속으로 계속 비통히 여기시면서 무덤에 가시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가시니’(ἔρχεται)는 현재형입니다(comes).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ἦν δὲ σπήλαιον, καὶ λίθος ἐπέκειτο ἐπ’ αὐτῷ.
it was being now cave, and stone was lying against it
앞의 동사(ἦν)와 뒤의 동사(ἐπέκειτο)는 둘 다 미완료과거로서(it was being, was lying) 이전부터 계속 굴이었고, 전부터 돌로 막아놓은 것을 가리킵니다.
1. 유대인들은 무덤을 동굴 속에 만들었습니다.
땅속에 매장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안장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짐승들이 시신을 먹지 못하도록 무덤 입구를 큰 돌로 막아놓았습니다.
2. 그런데, 예수님이 무덤의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죽은 지가 벌써 나흘이라서 시신 썩은 냄새가 납니다”고 했습니다.
3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Jesus said, "Remove the stone." Martha, the sister of the deceased, said to Him, "Lord, by this time there will be a stench, for he has been dead four days."
예수께서 이르시되
λέγει ὁ Ἰησοῦς
says the Jesus
‘이르시되’(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says)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습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Ἄρατε τὸν λίθον.
take away the stone
‘옮겨놓으라’(Ἄρατε)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take away) 단호하고 확실하게 옮겨 놓으라는 단호한 명령입니다.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λέγει αὐτῷ ἡ ἀδελφὴ τοῦ τετελευτηκότος Μάρθα
says to Him the sister of the (one) having died Martha
직역하면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그분에게 말하기를’이란 뜻입니다.
‘죽은’(τετελευτηκότος)은 현재완료 분사로서(having died) 과거에 죽어가지고 현재 죽어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르되’(λέγει)는 현재형입니다(says).
주여--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Κύριε, ἤδη ὄζει·
Lord, already he stinks
‘냄새가 나아이다’(ὄζει)는 현재형으로서(he stinks) 현재 시체 썩는 냄새가 풀풀 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τεταρταῖος γάρ ἐστιν.
four days for it is
직역하면 ‘왜냐하면 현재 나흘이므로’란 뜻입니다.
여기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t is).
1. 마르다의 이 말은 도저히 다시 살릴 수 없다는 절망과 불신앙을 나타낸 말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네가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Jesus said to her, "Did I not say to you that if you believe, you will see the glory of God?"
예수께서 이르시되
λέγει αὐτῇ ὁ Ἰησοῦς
says to her the Jesus
직역하면 ‘예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란 뜻입니다.
‘이르시되’(λέγει)는 현재형입니다(says).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Οὐκ εἶπόν σοι ὅτι ἐὰν πιστεύσῃς, ὄψῃ τὴν δόξαν τοῦ Θεοῦ;
not said I to you that if you should believe, you will see the glory of the God?
직역하면 ‘만일 네가 믿는다면,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내가 너에게 말하지 않았느냐?’는 뜻입니다.
‘네가 믿는다면’(πιστεύσῃς)은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you should believe) ‘네가 단호하고 확실하게 믿는다면’이란 뜻입니다.
‘보리라’(ὄψῃ)는 미래형입니다(you will see).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에서 동사(εἶπόν)는 부정과거로서(said I) 예수님이 과거에 확실하게 말씀한 사실을 가리킵니다(요한복음 11:23).
1. 그래서 돌을 옮겨 놓자 예수님이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내 기도를 항상 들으시는 것을 감사합니다. 이 무리들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41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ey removed the stone. Then Jesus raised His eyes, and said, "Father, I thank You that You have heard Me.
돌을 옮겨 놓으니
ἦραν οὖν τὸν λίθον.
They took away so the stone
직역하면 ‘그래서 그들이 그 돌을 옮겨 놓았다’는 뜻입니다.
‘옮겨 놓으니’(ἦρ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took away)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단호하고 신속히 무덤 문의 돌을 치운 사실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ὁ δὲ Ἰησοῦς ἦρεν τοὺς ὀφθαλμοὺς ἄνω καὶ εἶπεν
the now Jesus lifted the eyes upward and said
‘들어’(ἦρεν)와 ‘이르시되’(εἶπεν)는 둘 다 부정과거로서(lifted, said) 예수님의 단호하고 분명한 행동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Πάτερ, εὐχαριστῶ σοι ὅτι ἤκουσάς μου.
Father, I thank You that You heard Me.
직역하면 ‘아버지여, 당신이 내 말을 들으신 것을 내가 감사하나이다’는 뜻입니다.
‘들으신’(ἤκουσάς)은 부정과거로서(You heard)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말을 확실하게 들으시는 분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감사하나이다’(εὐχαριστῶ)는 현재형으로서(I thank) 지금 감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42절.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knew that You always hear Me; but because of the people standing around I said it, so that they may believe that You sent Me."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ἐγὼ δὲ ᾔδειν ὅτι πάντοτέ μου ἀκούεις·
I and I had known that always Me You hear
직역하면 ‘당신이 항상 내 말을 듣고 계시는 것을 내가 과거에 이미 알았습니다’란 뜻입니다.
‘들으시는’(ἀκούεις)은 현재형으로서(hear) 언제나 항상 지금도 듣고 계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알았나이다’(ᾔδειν)는 대과거(pluperfect)로서(had known) 이미 과거 예전에 알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ἀλλὰ διὰ τὸν ὄχλον τὸν περιεστῶτα εἶπον,
but because of the crowd standing around I said
직역하면 ‘그러나 둘러 서 있는 무리들 때문에 내가 말했습니다’란 뜻입니다.
‘둘러 서 있는’(περιεστῶτα)는 현재분사이고(standing around), ‘말했습니다’(εἶπον)는 부정과거로서(I said) 확실히 말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ἵνα πιστεύσωσιν ὅτι σύ με ἀπέστειλας.
that they may believe that You Me You sent
직역하면 ‘당신이 나를 보낸 것을 그들이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란 뜻입니다.
여기서 ‘당신’(σύ: You)이 강죄되어 있습니다.
‘보내신’(ἀπέστειλας)은 부정과거로서(sent)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과거의 역사적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믿게 하려’(πιστεύσωσιν)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they may believe) 단호하고 확실하게 믿는 것을 가리킵니다.
1. 그리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셨습니다.
43절.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He had said these things, He cried out with a loud voice, "Lazarus, come forth."
이 말씀을 하시고
καὶ ταῦτα εἰπὼν,
and these things having said
직역하면 ‘이것들을 말씀하시고’란 뜻입니다.
‘말씀하시고’(εἰπ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aid) 예수님이 단호하고 확실하게 말씀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큰 소리로-- 부르시니
φωνῇ μεγάλῃ ἐκραύγασεν
in a voice laud He cried out
‘부르시니’(ἐκραύγα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cried out) 단호하고 확실하게 부르시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Λάζαρε, δεῦρο ἔξω.
Lazarus, come forth.
‘나오라’(δεῦρο)는 명령형입니다(come).
1. 그랬더니, 죽은 나사로, 썩어서 냄새나는 나사로가 수건을 동인 채로 벌떡 일어났습니다. 할렐루야!
그러자, 예수님은 “얼굴을 싼 수건을 풀어주고, 수족을 동여맨 베를 풀어주라”고 하셨습니다.
44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man who had died came forth, bound hand and foot with wrappings, and his face was wrapped around with a cloth. Jesus said to them, "Unbind him, and let him go."
죽은 자가--나오는데
ἐξῆλθεν ὁ τεθνηκὼς,
came forth the (one) having been dead
‘죽은’(τεθνηκὼς)은 완료분사로서(having been dead) 이미 죽었던 것을 가리키고, ‘나오는데’(ἐξ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came forth) 죽은 자가 살아나온 역사적인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δεδεμένος τοὺς πόδας καὶ τὰς χεῖρας κειρίαις,
being bound the feet and hands with linen strips
‘동인 채로’(δεδεμένος)는 완료분사로서(being bound) 이미 동여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καὶ ἡ ὄψις αὐτοῦ σουδαρίῳ περιεδέδετο.
and the face of him in headcloth had been bound about
‘싸였더라’(περιεδέδετο)는 대과거(pluperfect) 수동태로서(had been bound about) 그 이전에 장사지낼 때 이미 얼굴이 수건으로 싸여 있었던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λέγει αὐτοῖς ὁ Ἰησοῦς
says to them the Jesus
직역하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란 뜻입니다.
‘이르시되’(λέγει)는 현재형입니다(says).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Λύσατε αὐτὸν καὶ ἄφετε αὐτὸν ὑπάγειν.
Unbind him, and allow him to go
직역하면 ‘그를 풀어놓아서 다니게 하라’는 뜻입니다.
‘풀어 놓아’(Λύσατε)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Unbind) 확실하게 풀어놓으라는 뜻입니다.
‘다니게 하라’(ἄφετε--ὑπάγειν)에서 ‘다니게’(ὑπάγειν)는 부정사형 동사이고(to go), ‘하라’(ἄφετε)는 부정과거 명령으로서(allow) 분명하고 확실하게 다니게 하라는 뜻입니다.
1. 오늘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1) 인간의 죄악과 고통과 죽음이 얼마나 처절하게 고통스러운 것인가?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죄인을 찾아와 사랑하시고 심지어 무덤과 썩은 시신까지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3)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생활을 하자는 것입니다.
2. 오늘 설교 제목은 <무덤에 찾아오신 예수님>입니다.
특별히, 오늘 설 명절에 오신 성도님들은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조부님들의 무덤을 찾아 성묘하실 것입니다.
성묘하시면서, 우리 예수님이 장차 우리 무덤에 찾아오셔서, 우리 이름을 부르시면서, <아무개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실 것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인간의 죄악과 고통과 죽음이 얼마나 처절하게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죄악은 행복한 가정을 파괴시키고, 죽음은 이 세상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의 아픔을 안겨줍니다.
(1) 오늘날 얼마나 많은 가정이 죄악 때문에 파괴되고 있습니까?
우리 지역에도, 부부가 이혼하고, 어린 자녀들을 할머니에게 맡겨버린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처럼, 죄악은 수많은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이런 죄의 결과로 죽음이 왔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라.
(3)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을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볼 수도 없게 하는 슬픔과 고통스러운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르다와 마리아 가정도 젊은 오빠의 죽음으로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죄악과 죽음은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나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2.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죄악과 죽음에서 건져주시는 주님이십니다.
(1) 주님의 피는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해주십니다.
요한1서 1:7.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2) 예수님은 우리를 장차 죽음에서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로마서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3. 아름다운 여성이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지 못하고, 창녀 생활을 하다가 가련하게 병들어 죽었습니다.
(1) <나나>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기왓장을 만들어 지붕을 이어주는 사람이고, 어머니는 세탁업을 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집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2) 그런데, 늘 부잣집 아이들의 호화로운 생활이 부러웠습니다.
<나도 커서 저 사람들처럼 맘대로 한 번 즐기면서 살아 봤으면...>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3) 그런데, 이 <나나>는 얼굴도 아주 예쁘고, 육체도 풍만하고, 마음씨마저도 아주 착하고, 인정이 많은 처녀였습니다.
그래서, 자랄수록 많은 남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4) 드디어 <나나>의 미모는 귀족 사회에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돈 많고 권력 많은 사람들일수록 <나나>를 독차지하려고 야단들이었습니다.
(5) 이제, <나나>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인기와 부귀와 향락을 누리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볼 때, <나나>는 고급 창녀에 불과했습니다.
(6) 결국 <나나>는 젊은 나이에, 병들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지옥으로 가고만 것입니다.
이것은 1903년 사망한 <에밀졸라>( Émile Zola, 1840~1902년)가 쓴 작품입니다.
(7) 요즘 청년들은 <빨리 죽어도 좋으니, 이 세상에서 화려한 생활을 한 번 하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도서에는 청년들에게 “젊을 때 창조자를 기억하고, 심판이 있음도 알고, 하나님을 섬기고, 그 말씀대로 살라”고 하십니다.
전도서 11: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전도서 12: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서 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8) 믿는 성도들에게도,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3:4-8.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4. 요즘에는, <돈이면 제일이다. 돈이면 못할 것이 없다. 죄든 죽음이든 돈만 많이 가지면 좋다>는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그래서, 돈 때문에 여러 가지 범죄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심지어는, 가족들끼리도 돈 때문에, 의가 상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차라리 돈이 없었더라면, 서로 죽이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5. 교회에 장로님과 권사님과 집사님과 초신자가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1) 그때, 연로하신 장로님이 초신자에게 물었습니다.
장로님: 성도님이 길에서 돈이 많이 든 지갑을 주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초신자: 솔직히 말해서, 저는 아이들도 많고, 가난하므로, 하나님이 제게 주신 선물인 줄 알고, 가져가겠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이: <그대는 도둑이요>
(2) 다시 장로님이 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장로님: 집사님, 길에서 돈 지갑을 주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집사님: 아, 그야 물론 임자를 찾아 돌려주어야 하지요.
장로님이 무어라고 했게요?
장로님: <그대는 바보요!>
(3) 다시 장로님이 권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장로님: 권사님, 돈 지갑을 주었는데, 어떻게 할까요?
권사님: 네,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유혹에 약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달려있습니다.
장로님이 무어라고 했겠습니까?
장로님: <그대 말이 맞소.>
(4)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데모데전서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히브리서 13:5-6.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세상 죄악을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불륜들을 결단하고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2. 돈을 사랑하여, 온갖 죄를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3. “주님께서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않으시고, 과연 떠나지 아니 하시리라”는 말씀을 믿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죄인을 찾아와 사랑하시고 심지어 무덤과 썩은 시신까지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1. 예수님은 낙심하고, 원망 불평하는 성도에게도 찾아오시고, 죄인에게도 찾아오시고, 죽어서 썩어버린 냄새 나는 시신까지도 찾아오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1) 예수님은 낙심하고, 원망 불평에 사로잡힌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기쁨을 안겨주셨습니다.
(2) 예수님은 불신 죄인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불신앙의 유대인들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할 수 없더냐?”고 비난했어도, 그들에게 부활의 능력을 보여주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3)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어서 썩은 냄새 나는 시신이 되었지만, 무덤까지 찾아가서 말씀으로 살려주셨습니다.
우리도 오늘 무덤 속 같은 우리 육체 속에서 우리 영혼이 불신앙으로 썩고 있을 때, 우리 예수님은 이 시간에도 “아무개야 나오라”고 생명의 초대를 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찾아오셔서, <아무개야 나오라>고 부르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히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우리가 아무리 더러워도 예수님은 사랑으로 찾아오십니다.
(1) 만주에서 선교사와 한 장로님이 교회들을 순방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중국 성도님의 집에 초청을 받아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인 성도님이 좋아서, 음식을 더 드시라고 막 권했습니다.
(2) 그러나, 장로님은 음식을 먹을 입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밥상 위의 그릇들은 언제 닦았는지, 더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성도는 자기가 먹던 수저와 젓가락으로 음식을 선교사님과 장로님에게 막 덜어드렸습니다.
그리고, 중국 성도의 이빨은 한 번도 닦지 않았는지, 누렇게 때가 껴있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먹었던 음식이 도로 나오려고 해서, 도저히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핑계를 대고, 수저를 놓았습니다.
(3) 그런데, 옆에 계신 선교사님은 음식을 맛있게 잘 들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아유, 잘 먹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까지 했습니다.
(4) 그래서, 그 집을 나오면서, 장로님이 선교사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선교사님, 방금 전에 식탁에서 더러운 그릇들과 누런 이빨을 보셨습니까?”
그랬더니, 선교사님이 무어라고 했게요?
“아니요, 저는 못 보았습니다. 어째 내 눈에는 안 보였을까요?”
그래서, 장로님이 속으로 말하기를, “사랑하면, 더러운 그릇이나, 누런 이빨도 보이지 않는구나!”
(5)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허물도 덮어지는 법입니다.
똑같은 행동도, 미운 눈으로 보면 얄밉게 보이고, 사랑의 눈을 보면 귀엽게 보이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3. 하나님은 기생의 자식도 사랑합니다.
(1) 일본에서 기생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정치가였고, 어머니는 기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4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5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의붓어머니 밑에서 서럽게 자랐습니다.
다행히 할머니가 계셔서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2) 15세 소년 때에, 구세군 전도 대원에게 전도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그러자, 이 소년은 전도 대원에게 물었습니다: “기생의 자식도 사랑하나요?”
전도자 여집사: “그렇고말고요. 예수님은 모든 죄인을 다 사랑하십니다.”
(3) 이 소년은 예수님을 믿고,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신학교 2학년 때 폐병에 걸려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모든 것이 절망이었습니다.
(4) 의사가 3년 안에 죽는다고 했습니다.
이 청년은 생각했습니다: “누워서 죽는 날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어려운 사람들을 돕다가 죽겠다.”
(5) 당시 일본에는 기생들이 낳은 사생아들을 돈 5전 받고, 굶어 죽게 하는 <살인청부업자 할머니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이런 사생아들을 맡아서, 먹이고 길렀습니다.
생명을 죽지 않게 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러는 도중에, 점점 생명을 사랑하는 기쁨이 생겼고, 사랑이 샘솟았습니다.
그러다가, 자연히 병이 나아버렸습니다.
(6) 그 후로, 1920년경 일본의 한국 침략과 중국 침략을 규탄하다가,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1940년에는, 중국에 가서 일본의 침략행위를 사죄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7) 그 후에 유럽과 미국에 가서,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고, 전도했습니다.
미국에서 프린스턴 신학교도 나왔습니다.
(8) 이승만 대통령 당시에는 한국에 와서, 일본의 침략행위를 사죄했습니다.
그는 <일본의 성자>라는 칭호를 받고 있습니다.
(9) 한국의 <맨발의 성자>라는 최춘선(1921~2001년) 할아버지는 이 목사님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10) 70세까지 장수하면서, 사회사업과 전도에 열중했습니다.
이분이 바로 <하천풍언,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님>( 賀川豊彦, 1888~1960년)입니다.
(11) 한국의 청년들이 일본 사람이 다 밉다고 하다가도, 이 하천풍언 목사님만 생각하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는 분이십니다.
이분은 <기생의 아들도 사랑하신다>는 예수님을 믿고, 성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어떠한 죄인이라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9:11-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죽음과 같은 절망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십시오!
그래서 예수님이 성도님들에게 부활의 생명과 기쁨을 주셔서, 모든 절망과 역경을 이기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생활을 하자는 것입니다.
1. 오늘 성경 본문을 볼 때, 예수님이 생명을 살리는 역사는 마르다가 무덤의 돌문을 열고, 또 사람들이 나사로의 얼굴에 덮인 수건을 풀어주고, 몸을 동여맨 천을 풀어줄 때,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전도와 구제의 역사는 우리들이 봉사하고, 수고할 때, 이루어집니다.
(1) 예수님께서는 혼자서 사람을 살려주실 수 있지만, 우리가 협력하고 봉사하여, 사람 살리는 일에 동참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 오늘도 주님은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시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십니다.
로마서 12:10-11.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베드로전서 3: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2. 앞에서 말씀드린 하천풍언 씨는 병이 들어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인데, 열심히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다가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세계 석유왕이라는 <록펠러>(Lewis John Davison Rockefeller, 1839~1937년)도 48세에 죽게 되었는데, 고아원, 양로원, 병원 사업 등, 열심히 선한 사업을 하다가, 기쁨과 건강을 되찾아, 98세까지 살았습니다.
3. 그래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요 의사인 <알프레드 애들러> (Alfred Adler, 1870~1937년) 박사는 “마음이 병든 사람은 2주간만 열심히 이웃을 위해서 살면, 마음의 건강을 되찾는다”고 했습니다.
성경 이사야 58장에도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하면,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흑암 중에 빛이 비추리라>고 하셨습니다.
시편 112편에는 <이웃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라. 그리하면, 부귀 영화와 자손의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4. 미국 최고의 호텔 경영자는 <스타틀러>입니다 (Ellsworth Milton Statler, 1863-1928년)
(1)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13살 때, 여관의 급사로 취직을 했습니다.
(2) 거기서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직장인 줄 알고, 최선을 다 해서, 봉사했습니다.
그래서, 호텔 종사자들이 <스타틀러>에게 ‘봉사’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을 많이 해왔습니다.
(3) 그래서 38세 때, 일류 호텔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손님 접대법>을 교육하는 유명 강사가 되었습니다.
(4) 1921년에는, 일곱 개의 호텔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호텔 업계의 대부가 되었습니다.
(5) 그는 <손님 접대 보감>이란 책을 저술했습니다.
거기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은 봉사다. 성공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봉사를 잘한 사람일 뿐이다>
5. 유명한 <워싱턴 인더스트리>(Washington Industry)를 창설한 사람은 <죤 맥코넬>(John McConnell, 1958년~) 회장입니다.
그는 매년 5백만 달러의 순이익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고위 행정관리들이 그의 성공적인 경영비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성공 비결을 마태복음 7장 12절이라고 말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So whatever you wish that others would do to you, do also to them). “이것이 율법과 선지서를 총괄한 말씀이라”( this sums up the Law and the Prophets)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기독교 황금률>이라고 합니다.
6.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요한일서 4장 7-11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목숨 바쳐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삽시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히 얻으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