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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국 이기고야 만다
We shall over come someday 함석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금년엔 겨울이 굉장히 서두릅니다. 우리게 무슨 경고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때 보면 초겨울에 날씨가 여러 날 따뜻하면 아늑한 담 밑이나 잔잔한 산 옆에 개나리 진달래가 때 아닌 꽃을 피우는 수가 있습니다. 때아니니만큼 귀엽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제 때가 아니니만큼 꽃답게 피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일년 내내 길러온 망울이니만큼 한번 설 피어 놓면 다음에 정말 봄이 올 때는 그만 못 피고 말 것입니다. 조숙한 천재의 신세란 그런 것 아닐까? 조숙해버린 천재도 아깝지만 한 국민이 시기를 질러 잡아버리면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그리고 개인이거나 사람의 마음에는 때 아닌 꽃을 피워 우선 재미를 보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점이 확실히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서두는 겨울은 도리어 고맙습니다. 갑자기 밀어닥친 추위에 잎은 좀 손해를 봤지만 깊이 움츠린 망울이 오는 해 봄에 꽃을 활짝 피울 것은 정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유를 위한 싸움도 그렇지 않을까? 비상 1호 해제니 4호 해제니 할 때 부끄럽지만, 우리는 봄이 오는가 하고 하마터면 때 아닌 꽃을 질러 피울 뻔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 것이 우리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들 속에 그래도 인간성을 믿었으니 말입니다. 사람인 담엔 사람을 믿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대한다 해서 무턱대고 나를 내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 점에서 예수는 아주 분명하셨습니다. 자기를 보고 흥분해 소리 지르며 따라오는 무리를 보고 불쌍히 여기고 사랑을 해주었지만 자기를 그들게 내맡기지는 않았습니다. 왜? 사람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 다른 사람의 증거를 쓸 필요조차 없이 첨부터 환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쉽게 남을 믿는 것은 결국 자기 아첨입니다. 내가 나를 알려는 사람은 자기를 쉽게 믿지 않습니다. 내가 나의 참 나가 아닌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의 거짓 나를 참 나로 알고 싶기 때문에 남의 거짓 나를 쉽게 믿어줍니다. 욕심이 없으면 속지 않습니다. 따스한 것만 좋아하지 않고 태양의 궤도를 알았던들 진달래가 질러 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보다 자유에서 오는 쾌락을 먼저 바라는 마음이 속에 있지 않았다면 한두 마디 그럴 듯이 하는 문구에 속아 곧 무엇이 오려나 기대는 아니했을 것입니다. 옛사람이 그래서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 리(下達地理)하고 중찰인사(中察人事)하지 않고는 정치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늘을 알고 땅을 아는 사람은 누구를 속이지 않거니와 뉘게 속지도 않습니다. 내가 무엇이며 남이 무엇임을 밝히 알기 때문입니다.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꼭 같이 잘못입니다. 우리는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포드가 오기 전에 무엇이 좀 있을 거다 어쩌구 하며 옅은 말의 꽃을 피우려 했던 우리에게 10월 1일에 예기하지 않았던 한파가 밀어 닥쳤습니다. 그다음 한파는 거듭거듭 왔습니다. 때 아닌 인기의 꽃망울은 그만 겁나 움츠렸습니다. 섭섭하지만 잘됐습니다. 잘 믿어주는 것을 기화(奇貨)로 남을 속인 사람은 벌을 못 면할 것이지만, 하늘은 우리를 아껴 제 때에 참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일을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심정을 말한다면 갈수록 태산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봄이 다 된 듯했던 것이 정말 봄이 아니고 하나의 이상 기후였던 것을 알면 추운 것이 도리어 우리 꽃망울을 길러주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부끄럽고 무서운 경험으로 우리는 우리를 알고 정치가 무엇이며 권력자의 뱃속이 무엇인 것을 알았을 뿐 아니라 영원한 역사의 궤도를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도리어 사는 보람을 느낍니다. 뜻있는 사람은 아랫목을 좋아하지 않고 눈바람과 싸워 자기의 역량을 시험해보는 것을 보람있게 생각합니다. 위대한 민족은 시련 속에서 나 왔습니다.
나는 그제 밤과 어제 하루를 ‘민청사건’ (民靑事件)으로 감옥에 가 있는 사람들의 가족과 같이 지냈습니다. 본래 내가 마땅히 감옥에 가야 하는 것을 가지는 못했더라도 그 가족들의 애타하는 심정은 될수록 같이 나눠보자는 생각에 그들의 모임이 있는대로 늘 따라다니노라 하기는 했지만, 이 며칠은 이 원고 때문에 못 가겠다 하고 집에서 글을 써 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있는데 무슨 소리를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요일 저녁도 그들이 명동의 가톨릭여학생관에서 벌써 나흘째 단식을 하며 기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글 쓸 것을 이유로 아니 가고 있었는데 누가 전화로 나오라고 일부러 재촉을 해주었습니다. 듣는 순간 나는 좀 불쾌했습니다. 왜 나는 나대로 생각해서 하도록 두지 않고 간섭하나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나를 위해 주고, 전체를 위해 주는 생각에서 해주는 권고인 줄 천도 만도 알면서도 계획이 또 다 틀려진다는 짜증에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 생각이고, 받고 보면 역시 거스릴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부인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 달려갔습니다. 가서 문에 썩 들어서는 순간 내 마음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속으로 감사했습니다. 사람이 한 40명 모였는데, 한 사람을 내놓고는 다 여자들이었습니다. 두서너 분은 60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였습니다. 벽에다가는 큰 글자로 “내 남편 내 아들 어서 빨리 석방하라,” “내 남편 내 아들 정치 제물 삼지 마라,” “나라 사랑이 무슨 죄냐, 감옥살이 웬말이냐” 하는 등의 플랜카드를 걸어 놓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그중에도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가「우리 승리 하리라」와「울 밑에 선 봉선화」였습니다. 그리고는 찾아오시는 목사들, 신부들, 또 그 밖의 손님들이 이따금 권면 위로의 말씀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평시에 물과 기름처럼 서로 따로 돌던 신교, 구교의 구별이 거기 도무지 볼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 가족과 공산주의자 가족의 구별도 없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내가 9월 말에 남산에 갔을 때 거기서 그것이 많이 말이 되었습니다. 본래 가을에서 그 기도회를 시작하게 되어 나도 몇 번 참석하는 가운데 내 마음에 좀 이상하게 느껴진 것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인혁당(人革黨) 가족이 오지 않는 것은 물론, 기도 중에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이도 하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분을 보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까지 그들을 차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에 합하지 못하는 일이 아니냐 하는 말을 몇 차례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자는 동의를 얻었는데 그다음 주에 어떤 부인이 나타나서 자기는 인혁당의 가족이라고 하며 이를 위해서 기도해줄 것을 호소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차별없이 대해주기를 시작했는데 그런지 몇일이 아니되여 내가 남산에 가게 됐고, 거기서 그 일에 대한 심문을 받아서 소신대로 대답을 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후 기도 중에 인혁당과 그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해서 목사 세 분이 역시 남산에 불려갔다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오해 받기 쉬운 미묘한 문제란 것을 늘 서로 말하며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와보니 조심 정도가 아닙니다. 아주 알아볼 수 없이 한 가족이 되어 서로 기도하고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되기 어려운 일이 되 졌습니다.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그래 나더러도 무슨 말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주저함 없이 나 스스로도 감사하게 생각되는 말을 하고 나서 나도 같이 그 밤을 거기서 지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열시쯤 되서 다른 이들이 왔다 돌아가게 되는 이들이 있는 기회를 타서 나더러도 돌아가라 권하기도 하고 이미 ‘씨에게 보낼 편지’ 쓸 것을 받았기로 나도 마음을 돌려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자고 깨니 어제 아침입니다. 목요일마다 하는 그들의 기도회가 있고 지난밤에 그들이 밝은 아침 데모 행진을 하여 기도회 장소인 기독교회관까지 간다고 했기 때문에 나도 시간이 되어서 갔습니다. 그들은 조금 늦어서 도착했으나 기도회가 끝날 때까지 나는 도중에서 사건이 있은 줄은 알지 못했습니다. 기도회에서도 그들은 호소문도 읽고「우리 승리하리라」도 여러 번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기네의 데모 과정을 보고했는데 일행 중 네 사람이 기동대에 붙들려 경찰서에 실려 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폐회하고 헤어지려 할 때에 의견이 나와서 대표 세 사람을 보내서 그 네 사람의 석방을 요구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래 있을 방이 없어서 그 회관 로비로 내려와서 거기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다들 쉬이 오려니만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노래와 기도는 계속됐습니다. 기도회에서 많은 사람이 참석했었는데 대부분은 돌아가고 그래도 적지 않은 사람이 남아 있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문밖에는 기동대가 버스를 가지고 와서 투구에 전투복에 만반 태세를 갖추고 지키고 있어서 출입을 한 사람씩 하는 것을 허락하지, 단체로 나가는 것은 일체 허락을 아니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오후가 됐습니다. 가족들은 본래 어젯밤까지 단식을 끝내고 오늘 부터 밥을 먹을 예정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됐으므로 자연 단식이 계속 됐습니다. 전원이 별로 지친 기색도 없고 아주 기운이 가득 차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다만 할머니 두 분만이 다소 피곤해진 기색이 있고 좀 흥분되어 이따금 감정적인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다소 걱정이 되어 그들에게 지금 그들의 싸움이 어떻게 그 의미가 크다는 것과 순수한 맑은 마음만이 참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완전히 일치단결해서만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마는 비폭력 투쟁에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또 한번 더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런데 해가 기울어도 기다리는 사람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대표로 교섭간 사람까지도 오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 전화로 알아도 보았으나 대답은 다 완전히 타협이 됐으니 곧 갈 거라고 하는데 오지 않습니다. 그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식해서 나흘이 되어 지친 사람들입니다. 기도와 찬송의 힘이 아니라면 40명 사람이 그냥 이렇게 무사히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만일 누구 하나라도 참다못해 감정이 폭발 되게 된다면 그 담은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것을 짐작 못할 리 없는데 그저 속이기만 하며 끌고 있습니다. 나는 결과를 보고야 떠날려고 했는데 네 시가 넘도록 소식이 없습니다. 저녁 『장자』공부 시간에 나가려면 이제는 떠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단식자들은 자꾸 못 참겠다 소리를 합니다. 그래도 받은 약속이 있고 마침 학생들이 여럿 와서 노래도 같이 불러주고 함으로 퍽 도움이 됐습니다. 나는 미안하지만 아니 떠날 수 없었습니다. 잠깐 집에 들러 밥을 먹고 젠센 홀로 가서 한편에는 조바심을 품으며 또 한편으로는 그때까지야 나오겠지 하며『장자』공부를 마치고 나니 그때에 한 학생이 나타나며 아직도 나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택시로 달려가니 그들은 여전히 원기 왕성했습니다. 다섯시 쯤 해서 내가 그 자리를 뜨기 좀 전에 네 사람 중 한 분인 제임스 주교가 돌아왔기 때문에 남은 분도 나올 것으로 믿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오래 갈 줄은 참 몰랐습니다. 인간 이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심리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누가 하는 말이 그들은 종류가 다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종류가 다를이는 없습니다. 그 서는 자리가 다르면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 자유하는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지금 이 단식하고 있는 사람 중에도 이렇게 여럿이 같이하지 않았다면 벌써 떨어져나갔을지도 모를 사람이 여럿일 것입니다. 열시가 다 돼서야 세 사람은 돌아왔습니다. 일동이 환성을 올렸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해산하기로 했습니다.「우리 승리하리라」를 또 한번 부르고 애국가를 부르고 나더러 만세를 선창해 달라해서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하고 서로 승리의 기쁨과 감사 속에 헤져갔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 권면을 할 때에 그들의 단식하는 모양을 보니 국민학교 입학식에 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까닭은 이제 앞으로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은 길고 험한 싸움이고 오늘 이들의 이기느냐 지느냐가 그 전체 싸움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결해야 한다는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We shall over come someday
그 someday가 중요합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어느 때 가서는 이길 거다, 막연합니다, 어느 땐지를 모르는 때입니다. 그렇지만 믿습니다. 무슨 이유, 증거가 있어야 믿는 것 아닙니다. 믿어야겠으니 믿는 것입니다. 살려기 때문에 믿습니다. 어쩐지 모르지만 결국엔 이기고야 만다는 이 무서운 신앙이 역사를 창조합니다. 밤이 다 갔습니다. 밝으면 전태일의 추도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엔 이기고야 말 것입니다.
씨알의 소리 1974. 11 38호
전작집; 8- 221
전집; 8-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