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보다 귀한데 한국에만 없네...전세계가 목매는 ‘하얀 석유’ [뉴스 쉽게보기]
박재영 기자), 임형준 기자입력 2023. 3. 11. 09:03 댓글12개
리튬 원석/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요즘 부쩍 관심도가 높아진 자원이 있어요. ‘하얀 석유’라는 별명이 붙은 금속인데요.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이에요. 지난 6일에는 세계 주요 매체들이 ‘하얀 석유의 대규모 매장지가 이란에서 발견됐다’라는 소식을 주요 뉴스로 전하기도 했죠.
이 금속은 바로 ‘리튬’이에요. 사실 리튬은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큰 관심을 받는 자원은 아니었어요. 배터리 산업이 성장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죠. 리튬은 배터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 원료거든요.
지금까진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자원이 ‘석유’였다면, 이젠 배터리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어요. 전기자동차는 물론 스마트폰과 로봇 등 미래를 이끌어갈 물건들은 모두 배터리를 동력원으로 사용하니까요. 은백색을 띠는 리튬을 두고 ‘하얀 석유’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죠.
2021년 이후로 리튬 가격은 7배 이상 올랐어요. 지난해 말 이후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가격이 소폭 하락했지만,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거란 전망이 우세하죠.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에 리튬 수요가 2020년의 40배 이상으로 급증할 거라는 분석도 내놨어요.
자료=트레이딩 이코노믹스 *탄산리튬은 주로 가전제품·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됨
리튬에 특히 관심 많은 한국
리튬은 우리나라에 굉장히 중요한 자원이에요. 전기자동차와 배터리는 한국의 차세대 핵심 산업이니까요. 그런데 아쉽게도 한국에는 쓸 만한 리튬이 매장되어 있지 않아요. 사실상 전량을 수입하죠. 리튬을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수입해올 거래처를 찾는 게 아주 중요한 상황이에요.
현재 한국은 리튬을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해요. 중국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요. 국제 리튬 가격은 중국 화폐인 위안화를 기준으로 매길 정도로 중국의 영향력이 커요.
2020년 기준/자료=KOTRA, 관얜텐샤 *수산화리튬은 주로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됨
중국이 리튬 강국이 된 비결
중국에 아주 많은 양의 리튬이 매장돼 있는 건 아니에요. 세계 매장량의 5% 정도에 불과하죠. 중국의 영향력에 비하면 작은 규모예요. 대신 중국 정부는 다른 나라에 매장돼 있는 리튬에 주목했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리튬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어요. 아직 수요도 많지 않고 남아도는 자원이란 인식이 강했죠. 하지만 일찌감치 중국 정부는 전기차와 배터리를 미래 산업으로 점찍고 리튬 확보에 공을 들였어요.
중국은 리튬이 많이 매장된 국가들과 연달아 채굴 계약을 맺어왔어요.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세계 리튬 매장량의 56%는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 칠레 3개국에 몰려 있어요. 호주와 아프리카에도 상당량이 매장돼 있죠. 그런데 이중엔 리튬 매장량은 풍부하지만, 채굴할 기술은 부족한 나라들도 있어요. 중국은 이런 국가들에 ‘어차피 직접 채굴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우리가 가격 잘 쳐줄 테니까 채굴권을 파는 게 어때’라면서 계약을 맺은 거예요. 직접 리튬 매장지를 사들이기도 했죠.
자료=미국 지질조사국(USGS)
또 리튬은 채굴 후 정제 과정을 거쳐야 해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유해 물질이 많이 배출돼 이 작업을 기피하는 국가들이 많죠. 하지만 중국은 환경오염을 감수하고 직접 중국 땅에서 정제하기로 했어요. 다른 나라에서 확보한 리튬을 중국에서 직접 정제하는 방식으로 리튬 생산 강국이 된 거죠. 인건비가 저렴하고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점도 중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몫했고요.
“우리 리튬, 다른 나라엔 못 줘”
최근 리튬의 중요성이 주목받으면서 중국 외에 다른 국가들도 이 자원에 사활을 걸기 시작했어요.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건 주요 리튬 매장지인 남미 국가들인데요. 남미 국가들은 연이어 ‘국유화’를 선언하고 있죠. ‘리튬은 중요한 국가 재산이니 민간 기업이나 다른 국가들은 더 이상 군침 흘리지 말라’는 의미예요.
지난 1월 아르헨티나 일부 지역에선 리튬이 ‘전략 광물’로 지정됐어요. 동시에 민간 기업들이 보유한 채굴권이 정지됐죠. 칠레는 조만간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리튬 생산기업을 설립할 예정이에요. 리튬 매장량 세계 10위인 멕시코는 지난해 주요 매장지에서의 탐사·채굴을 국가가 독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죠.
리튬 매장국 간에 힘을 합쳐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도 관측돼요. 석유를 생산·수출하는 주요국들의 모임인 석유수출국기구(OPEC)처럼요. 최근 아르헨티나와 칠레, 볼리비아, 브라질은 리튬 협의체 설립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죠.
일부 남미 국가들은 전기차·배터리 사업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어요.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의 약 5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부품이거든요. ‘어차피 리튬은 풍부하니까 우리가 직접 배터리랑 전기차를 만드는 건 어떨까’라고 생각한 거죠. 물론 이 나라들이 배터리와 전기차를 직접 생산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요.
미국 눈치까지 봐야 하는 한국
모두가 리튬 확보에 사활을 거는 와중에 한국 기업들의 고민거리가 또 생겼어요. 앞으론 아무 리튬이나 사용할 수 없게 됐거든요. 생산지가 어디인지도 살펴봐야 하는 처지가 된 건데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리튬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이 법은 미국에서 친환경 전기차를 구매하면 한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에 달하는 소비자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죠.
그런데 소비자가 지원금을 받기 위해선 여러 조건을 만족해야 돼요. 그 중엔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데 사용된 원료(광물)는 일정 비중 이상이 미국 혹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채굴된 것이어야 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죠. 중국 등 미국이 지정한 ‘우려 국가’에서 생산한 원료는 쓰지 말라는 의미예요. 지금은 이 ‘일정 비중’의 기준이 40%지만, 2027년부터는 80%로 상승할 예정이에요.
1000만원에 달하는 지원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전기차는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잖아요. 당연히 전기차 업체들은 지원금 조건을 만족하는 배터리를 찾을 테고, 한국 배터리 기업들도 이 조건을 맞출 수밖에 없겠죠. 사실상 앞으로 중국이 생산하는 리튬은 쓰지 말라는 의미예요.
이번에 대규모 리튬 매장지가 발견됐다는 이란도 한국엔 별 도움이 안 될 것으로 보여요. 이란은 중국, 러시아와 함께 미국이 지정한 ‘우려 국가’ 중 하나거든요.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받으려면 이란에서 생산되는 리튬도 사용하면 안 되죠.
좀 밝은 소식은 없어?
우울한 소식만 들려오는 건 아니에요. 한국 기업들이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거든요. 국내 기업 중에서는 포스코가 2018년에 아르헨티나에 한 리튬 매장지의 채굴권을 사들였죠. 포스코 측에 따르면 최근 아르헨티나가 ‘국유화’를 선언한 지역과는 무관하다고 해요. 포스코는 수년 내로 아르헨티나에서 리튬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어요. LG화학과 SK온도 각각 캐나다와 호주·칠레에서 안정적으로 리튬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어요.
우려할 만한 심각한 리튬 부족 현상은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나와요. 이란 사례처럼 추가로 매장지가 발견될 수 있다는 건데요. 리튬 채굴 기술이 발전하면 그전까진 경제적 가치가 없던 것으로 평가받던 매장지가 활용 가능해질 거란 분석도 나오고요. 리튬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세계가 이 자원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이죠.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하얀 석유’에도 이제 관심을 가져봐야겠네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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