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
📌19년 여운형, 일본 정부 초청으로 일본 방문, 29일 상해로 귀환 📌27년 이리 청년회 사건 발생. ML조선공산당 조직 |
📌32년 윤봉길, 일본오사카형무소에서 사형당함 (1908)
▶ 1932년 12월 17일 오늘 윤봉길, 일본오사카형무소에서 사형당함 (1908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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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 남조선 과도 입법의원 개원(의장 김규식) |
📌49년 대한 청년단 조직(총재 이승만).
▶ 1949년 12월 17일 오늘 대한 청년단 조직(총재 이승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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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10억원 위조지폐단 검거 📌58년 야당 의원들이 점심 시간에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보안법 개정안이 3분만에 국회 법사위 통과. 📌60년 전국 시·읍·면의원 선거 실시 📌64년 존슨 미 대통령,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오청 하는 친서를 송부 📌70년 국무총리에 백두진 임명, 일부 개각 📌75년 김종필 총리 사임. 후임 최규하 📌80년 입법회의, 방송 광고공사법 의결 📌80년 연합통신 창립 총회(81년1월4일 창간) 📌80년 중앙정보부를 81.1.1부터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키로 결정 📌82년 한국, 브라질 제4회 세계대학생 탁구선수권 대회 에서 남녀단체, 남녀 개인 단식·복식, 혼합복식 우승 📌83년 국가안전기획부, 정계·군부 침투기도 간첩 3개망 12명 검거 발표 📌84년 신한민주당 발기인대회-이민우.김동영.최형우등 |
📌84년 홍콩반환 정식서명 영국-중공, 50년동안 현체제 유지
▶1984년12월19일 영국·중국, 홍콩반환협정 조인 영국 대처 수상(왼쪽)과 중국 조자양 수상이 홍콩반환협정에 조인한 후 악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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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김현규의원등 민한당 현역의원 9명, 집단 탈당 📌88년 노동부, 89년부터 해외 취업허가제 폐지하고 완전 자율화 결정 📌89년 제147회 정기국회가 90년도 예산안 22조 6894억원의 예산안과 30개 법안을 처리하고 폐회 📌90년 재무부, 한국에 첫 진출한 소련의 월드미디어 무역회사 와 국내 남일상사의 합작회사 법인설립 인가 📌90년 정부, 소주 주정 배정제도와 自道酒 의무판매 제도를 92년말까지 완전 폐지키로 📌90년 정부, 철도요금을 평균 12.3% 지하철 요금 24.6% 부산 27.4% 인상. 국내 항공료를 22% 등 인상 📌90년 서울, 강도사건- 뺑소니 사고차량 식별 위해 택시 뒷 유리창에 황색 야광 페인트로 차량번호 기재키로 📌91년 노태우대통령, 개각을 단행, 국방. 상공. 건설. 체육청소년. 문화. 총무. 정무제2 등 7개부처 장관 경질 📌91년 유럽공동체, 한국 홍콩 싱가포르를 ` 선진국 으로 간주한다'고 관세 무역일반협정(GATT) 회의 발표. |
📌92년 김대중, 정치은퇴 선언
▶1992년12월19일 김대중, 정치일선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 김대중 민주당 후보(오른쪽)가 자신의 의원직 사퇴를 공식 선언한 뒤 당사를 떠나면서 이기택 대표, 김영배 의원 등과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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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가 유효표 의 42%인 997만 7332표를 획득 당선
▶ 1992년 12월 17일 오늘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가 유효표 의 42%인 997만 7332표를 획득 당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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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국회, `12.12' 및 `5.18' 관련자 처벌을 위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안' 의결 📌95년 5공 율곡비리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 소환 📌97년 국민회의 김대중대통령후보 제15대 대통령당선 (40.3%인 1032만6275표 획득) 📌97년 아시아 개발은행, 한국의 금융부문 구조조정 자금으로 40억달러를 지원키로 결정 📌99년 헌법재판소, 동성동본 혼인 가능하다고 밝힘 |
2000년대 |
✿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노무현 후보 당선
▶ 제16대 대통령 선거는 2002년 12월 19일목요일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로 치러졌다. 선거 전까지 각축전을 벌인 유력한 후보는 15대 대통령 선거에 나와 김대중에게 패배한 제1야당 한나라당의 대표 '이회창'과 여당 새천년민주당에서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가 된 '노무현'이었다.
대선 재수생인 이회창 후보는 경험이나 세력 면에서 노무현 후보보다 대권 고지에 좀 더 유리할 것으로 점쳐졌으나, 그 점이 오히려 발목잡기가 된 측면이 있는지 이전 대선부터 불거진 두 아들의 병역기피 논란, 노사모로 대표되는 네티즌의 영향력, 월드컵 4강 바람을 타고 선거 몇 달 전 갑자기 대권주자로 떠오른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쟁취 등의 영향으로 노무현 후보가 최종 승리하게 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