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무백열(松茂栢悅) / 김석수
40여 년 교직 생활하면서 ㅈ 고등학교는 교사로 한 번, 교장으로 두 번 근무했다. 교사일 적에는 신설 학교였다. 호남의 우수 인재를 기르려고 도 교육청에서 특목고로 야심 차게 세운 학교다. 광주와 전남은 물론 전북과 제주도에서도 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왔다. 개교 당시에는 전국에서 학교 시설을 견학하려고 찾아왔다. 학부모의 교육열과 학교 구성원의 자긍심이 높았다. 전교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교직원 대부분은 오전 일곱 시 전에 출근해서 저녁 열한 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날이 많다. 야간 자율 학습을 감독하는 날이면 학교에서 가끔 잤다.
교장실에 들어가면 ‘송무백열(松茂栢悅)’이란 장전(長田) 선생 편액(扁額)이 눈에 띈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말인데 다른 사람이 잘되면 기쁘게 여기며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의미다. 초대 교장이 걸어 놓은 것이다. 그는 전교생이 모이면 사례를 들어가면서 송무백열을 강조한다. 선배는 후배를 이끌고 후배는 선배를 응원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려고 했다. 긍정적인 마음과 동료애를 가꾸며 남을 돕고 함께 성장하는 정신을 키워 주려고 했다. 학교 체육관은 송백관, 교지(校誌)는 송백지, 정원은 송백원으로 불렀다.
영어 교사로 근무하다 학교를 떠난 뒤 14년 만에 교장으로 부임했다. 학교 일과는 내가 교사로 근무할 때와 같다. 학생은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저녁 열한 시까지 쉴 틈이 없다. 오전 여덟 시에 0교시 수업을 시작한다. 학생 대부분이 수업 중에 책상에 엎어져서 잔다. 기숙사를 점검해 보니 엉망인 곳이 많다. 교내에서 급우와 선후배 사이에 크고 작은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교직원 회의에서 ‘우리 학교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란 주제로 여러 차례 논의했다. 학생회와 학부모회의 의견도 들었다. 학교 구성원이 합의한 점은 0교시를 폐지하고 아침 동아리 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동아리는 학생이 원하는 활동을 조직해서 선택하고 운영한다. 공부하고 싶으면 학술 동아리를 만든다. 운동하고 싶으면 스포츠 동아리에 참가한다. 명상하고 싶으면 요가 동아리에 들어가면 된다.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독서실에서 자율 학습하거나 기숙사에서 아침잠을 더 잘 수도 있다. 동아리 구성은 무학년제로 선후배가 함께 참여한다. 동아리를 자발적으로 운영하도록 교사가 간섭하거나 지도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교사가 관여해서 해결한다.
대학 입시 경쟁이 치열한 시대라 일부 교직원과 학부모의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수능 점수를 높이려면 아침 시간에 교과 보충 수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아리 활동 시간에 생활 지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교사가 함께하지 않으면 선후배 간에 다툼이 일어날 수 있고 남녀 간에 성희롱이 문제될 수 있다. 동아리 활동 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지도 교사가 없는 동아리는 놀이만 있고 교육이 없다. 대학 입시 성적이 좋지 않으면 신입생 모집이 어려울 수 있다. 반대하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여러 가지 논란 가운데도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의 동의를 얻어 내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아리 활동 자원 교사가 함께 참여했지만, 학생이 스스로 운영하는 데 지장이 없으면 지도하지 않도록 했다. 나는 ‘학교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환경 동아리 활동에 참여했다. 아침에 산책하면서 교정에서 휴지를 줍는 동아리다. 희망자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아서 놀랐다. 교무부장은 “교장 선생님이 지도해 준다니까 많이 왔죠.”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학생도 교정에 쓰레기가 많다는 것을 느낀 것 같다. 학생은 각자 학교에 있는 자기 나무를 정한다. 그 나무가 잘 크는지 관심 두고 시간이 되면 주변을 관리한다. 나는 아침 먹고 식당 앞에 모여서 오늘도 힘차게 잘 보내자고 좋은 글귀를 읽어 준 뒤 각자 알아서 활동하도록 했다.
아침 동아리 활동은 처음에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한두 달 지나면서 자리를 잡았다. 무엇보다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이 없다. 아침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학생에게 하루가 즐겁게 시작됐다. 우려했던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선배와 후배 사이가 좋아졌다. 학교 풍토가 배려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으로 바뀌어 갔다. 어느 날 서울의 일류 대학교 입학 사정관이 학교를 방문했다. 그는 내게 “학교를 둘러봤는데 교실에서 조는 학생이 없네요. 교정이 꽤 넓은데 휴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학교 관리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라고 물었다.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특별한 것은 없고요. 우리 학교는 공부보다 우정에 중점을 두고 교육 과정을 운영합니다.”라고 했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 교육청 근무를 마치고 3년 뒤 그 학교 교장으로 다시 부임했다. 동아리 활동 프로그램은 예전과 같이 잘 운영되고 있었다. 교육부의 방침에 따라 대학교에서 수시 모집으로 ‘학생부 종합 전형’을 실시하려던 시기다. 교과 성적과 함께 학교 활동도 입시에 반영해서 선발하는 것이다. 학교생활기록부에 동아리 활동을 다양하게 쓸 수 있었다. 학교 교육 과정 운영이 학생부 종합 전형과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 당시 일반계 고등학교 대부분은 교과 위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느라 동아리 활동은 다양하게 잘 없었던 때다. 우리 학교 학생은 교과뿐만 아니라 교과외 활동 영역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서 대학 입시 결과는 예전보다 좋았다. 송무백열 정신를 강조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