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만에 k선생님을 뵈었다. 제자들 가운데 두엇이 성인이 되기로 하였다는 '복된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런데, 과연 '성인'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공자나 퇴계면 성인인가? 이순신이나 곽재우면 성인인가? 예수나 마호메트면 성인인가? 전태일이나 문익환이면 성인인가? 43년간 나병환자를 돌봐주고 소록도에 편지 한장 남긴 채 고향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마리안 수녀와 마가레트 수녀면 성인인가?
나에게 '성인됨'이라는 어떤 메타적 정체성이 있다면, 나의 그것은 바로, "흔연히 훼손(毁損) 되기를 선택하는 삶"이다.
유다가 그 빵 조각을 받는 순간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 예수님이 유다에게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식탁에 앉은 사람들 중에는 왜 예수님이 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요한복음서 13:27~28)
성인이란 무릇 크고 작은 '기적'을 일상에서 행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 기적의 중핵에는 "나의 성인됨이 훼손될만한 모든 관계에 나를 충실히 맡긴다"는 남다른 발심이 있어야 한다. 세속을 향해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을 건네는 노릇이 성인됨의 시작이자 완성이다.
세상에 선한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은 기쁘고 축하할 일이지만, 성인은, 선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무서운 인간으로, 굳이 따지자면, 인간이 좀 아닌* 인간이다.
*근자에 회고록을 낸 이해찬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평하면서 "인간은 좀 아닌 분, 인간+a라고밖에 칭할 수 없는 분"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언급할 뿐, 더 구체적인 평을 내어놓질 않는다. 나는 이해찬의 이 평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어떤 성인됨을 분명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a"의 "+a"는 인간 김대중이 세속을 향해 몸을 내어던졌기에 얻어졌던 그 무엇일테지만, 이해찬은 "+a"에 이희호 여사를 배치시킨다. 역시, 노련한 승부사의 면모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람(+a를 제대로 짚어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지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이해찬은 "선거에서 지는 이유를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언급도 서슴치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 말("지는 이유를 모두지 알 수 없다")의 비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성인까지는 되지 못하였더라도, 성인의 그늘에서 이미 많은 것을 깨달은 사람이며, 그리고 다시,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해찬을 길러낸 김대중의 성인됨은 또 한번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