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염색을 배우다 보니 그 끝은 어디인가 싶을 만큼 빠져 들게 된다. 처음 천연 염색 스카프를 선물로 받았을 때, 천연의 색감이 고와 한 번 배워볼까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섰다.
천연 염색 수업은 매 회기에 생쪽, 메리골드, 황토, 감물, 양파, 복합염 등 배움을 거쳐 얻은 결과물을 받아 들 때마다 만족스럽다. 몇 년에 걸쳐 천연 염색에 매달리다 보니 손끝을 거쳐 나오는 자연의 색감이 신비로웠다. 똑같은 방법으로 염료를 받아 염색 천을 조물거리지만 연출되는 색감은 차이가 난다. 마치 요리 맛은 손맛 있듯 천연 염색도 마찬가지였다. 각각 회원들이 손끝으로 만들어내는 색감은 자연의 흐름 같다. 고정된 색이 아니다. 천연 염색에 취해가는 내가 낯설어질 때가 있다. 천연 염색은 몸으로 하는 작품 활동이다. 염료 배합, 착색, 거풍에서 푸새까지 그 과정은 정신 집중을 통한 애정과 정성을 요하는 일이었다. 염색을 할 때마다 몇 장이라도 더 갖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누군가 나에게 염색 작품을 선물로 받고 기뻐할 모습에 자꾸 더 매달리게 된다. 기왕 하는 일 몇 장 더해 이웃들과 나누고 싶다. 그런 이유로 혼자서 따로 천연 염색 작업에 매달리다 보면 하루가 꼬박 소요되기도 한다. 그런 고된 작업을 거쳐 가장 자연과 가까운 색감의 염색 천을 바라볼 때가 극치감에 이른다. 온 정성을 다해 매달린 염색 천이다. 염색된 천이 마당 빨래 줄 바람 끝에 나부끼는 모양을 바라보면 비로소 마음의 고요와 충족감에 젖는다. 내가 이렇게 색감에 취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닌 사람이었나 싶다. 그 동안 내 삶은 천연 염색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가만히 되뇌어 본다.
그동안은 일상적인 주부로 엄마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종종거리며 다닌 일밖에 없었던 같다. 그렇다면 내가 나를 곱게 물 드릴 여력 없이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천연 염색으로 물들어가는 색감에 빠져드는 것일까. 천연 염색에 관심을 갖다 보니 염색 재료로 쓸 수 있는 소재들이 내 눈앞에 있으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얼마 전 산책길에 버려진 양파 껍질이 눈에 띄었다. 이 좋은 소재가 왜 여기에 있나 싶어 얼른 주워든다. 그때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천만다행이었다. 지금 오는 비에 덜 젖어 내 눈에 발견됨이 커다란 인연처럼 느껴졌다. 후드득 쏟아지는 비방울이 덜 맞게 내 품으로 바짝 당겨 안았다. 빗물이 스며들어 고운 빛깔을 내는 데 차질이 생기면 그 또한 안타깝다. 반가운 임이라도 안은 듯 흥분된 마음으로 달렸다. 이처럼 생각지도 않는 곳에서 천연 염색 소재를 얻으면 마음이 설렌다. 그 소재가 집안에 있다고 여기면 염색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천연 색상이 궁급해진다. 염색할 만한 천을 찾기 위해 집안 구석구석을 들쑤신다. 요리가가 요리를 하듯 천연 염료의 색감에 취해 간다. 어딘가에서 만나는 천연 소재의 천으로 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눈여겨보게 된다. 더 유심히 살피며 옷의 촉감까지 감지한다. 어떤 염료인가. 무슨 천인가. 저런 빛깔은 어떤 방법으로 하면 가능할까 하는 선까지 고민하게 된다. 가만히 있던 내 눈과 머릿속은 바빠진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 있는 옷들은 염료의 색감을 감지하기 위해 다 천연 염색 염료에 다 집어넣는다. 예상외의 색감에 후회도 한다. 여기 저기 널려 있는 염색 천을 보며 넝마주이처럼 온갖 천을 다 염색 하는 거냐는 주변의 핀잔도 있다. 나는 어느 사이 중독자의 심정으로 염색 하는 순간마다 설렌다. 이 소재는 무슨 색상으로 나올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쓰레기로 버려진 붉은 양파 껍질에서 나오는 염색은 화사한 노란계열의 색감이다. 마치 달걀에서 노란 병아리가 나오는 것처럼 경이롭다. 붉은 양파 껍질에서 이런 신비스러운 색이라니.
염색을 할 때마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도록 마음을 단속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지 그렇지만 특히 천연 염색은 그런 여유로운 마음으로 과정을 즐겨야 하는 일이다. 차분하게 마음을 나누듯 해야 하건만 뜻하지 않게 오후 일정이 있어 급했던 모양이다. 기대감보다는 양파 껍질 염색이 제대로 착색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대감에 못 미치니 실망감이 컸다. 가만히 원인을 파악하기 보다는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진다. 염색 도중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염색 과정에 집중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마음의 빈틈을 알고 천연 염색은 얼룩으로 나타났다. 완전한 색에 못 미침이 아쉬워 생각해 보니 그 원인은 순전히 내 탓이다. 염색할 새 천에 풀기를 빼지 않은 탓이었다. 온전한 염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첫 번째 작업 있다. 염색 천의 풀기를 뺀 상태이여야만 한다. 본연의 색을 빼내야만 다른 염료를 받아드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삐 서두르다 첫 번째 작업을 빼 버린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럴 것이다. 남들과 조화롭게 어울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색깔을 지워야만 무리 없이 어울리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원인을 파악하면서 나를 생각해 보았다.
다른 사람들과의 온전한 관계를 이어갈 수 없을 때의 원인을 생각해 보면 나만의 색깔을 그대로 두고, 상대에게 내 색깔을 인정하라고 요구할 때 관계가 뒤틀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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