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산 자락의 산막골은 서천 지역 신앙 선조들의 교우촌들 가운데 하나이다. 1839년 기해박해 뒤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곳이다. 서천지역 순교자들 가운데 기록이 남아 있는 순교자는 57명에 이른다. 여러 교우촌 가운데 산막골이 가장 컸다. 산막골은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 페롱 신부가 1858년 부터 거주하며 사목 활동을 한 곳이다. 그가 1858~1865년까지 보낸 서한들 가운데 산마골에서 보낸 편지가 6통 남아 있고, 조안노 신부가 1862년 11월 4일에 산막골에서 보낸 편지가 1통 전해진다.
또한 산막골은 황석두 루카 성인 일가가 충북 연풍에서 이주하여 병인박해 전까지 10여년 동안 살던 곳이다. 이와 함께 찬방산 기슭 광장에 신앙 선조들의 유해가 묻힌 줄무덤 터가 있다. 이곳은 독뫼 공소터와 판교 금덕리의 작은재 공소 터를 이어 주는 고갯마루로 이름없이 묻힌 신앙 선조들의 무덤이 있던 곳이다.
2017년 5월부터 산막골에서 작은재로 이어지는 옛길 3.5km를 복원하는 중이다. 멀리 서해가 보이는 이길은 옛 공소 신자들이 애환을 함께 하며 넘나들던 곳이다.
오산에서 5시 26분에 출발하여, 휴게소에서 잠깐 볼일을 보고 산막골에 도착하니 7시 49분이다.
아무도 없고. 비가 세차게 오고난 후라 새들도 비를 피해서 어디론지 갔는지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 황석두 루카 성인 기거
1856년 연풍에서 이주, 3년여 동안 참회와 보속, 1866년 병인박해로 가족들 치명
*페롱 권신부 및 서양 신부 은거
1857년 입국한 페롱 신부는 황석두로부터 한문과 조선 문화를 배우고 사목을 시작
* 산막동 순교자
황기원 안드레아(1866년 09)치명
황천일 요한(1866년 09)
김요셉 공소회장(1866년 12월)
김 안드레아(1867년 02월)
이경서 (1869년 10월)
박정로 야고보(1869년 10월)
작년에 왔을 땐 집과 예쁜 꽃들의 정원이였는데 무슨 공사를 하는지 공사가 한창이다.
성황석두 루카상
줄무덤이 있는 곳인데 사정이 여으치 않아 그 곳 까지는 못갔다. 아쉬움 폭팔~~
성전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계속 이 곳에 머무르며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다음 순례지를 향하여.아쉬움을 뒤로 한 체 지석리로 출발한다.
그 옛날 이곳에 누군가가 살았겠지. 굴뚝에선 연기가 모락모락나고, 아이들은 마당에서 한 껏 뛰놀고, 대주는 가족들 생계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그렇게 일상생활을 보냈겠지. 이 평화로운 마을에 대원군은 병인박해를 일으켜 가족들을 산산히 부셔 버렸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