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김삿갓문학상
부부가 ‘붑’이 되기까지 / 정대구
예수님은 결혼도 못한 서른세 살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 하고
부처님은 야소다라비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두었다지만
아직 달콤한 신혼이나 다름없는 29세에 집을 나왔다 하고
공자님 역시 외아들 鯉를 낳지만 집에 붙어 있지 못하고
상갓집 개처럼 세상을 떠돌았다*하니
일찍이 장가들어 생기는 대로 아이 낳아 키워내고
은혼 금혼을 넘어 회혼을 바라보는 나는 누군가
젊었을 때는 아옹다옹 티격태격 사랑싸움도 하면서
우려내는 퀴퀴하고 시금털털한 맛 묵혀왔지만
나이 들어갈수록 점점 심해지는 눈 흘김과 꽥 소리 지름
온갖 참견 그 많은 구박 다 받아가며 까닭 없이 들들 들볶이며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결혼생활 힘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이혼을 꿈꾸며 꿈으로 끝내고
모멸과 수치의 나날을 살아가는 나 왜 사는지
전지전능하고 대자대비하고 생이지지했다는 그들이 알까
다른 건 몰라도 애송이 예수님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결혼 초반에 가정을 버린 부처님도 마찬가지 나를 모를 것이고
가부장적 권위만을 앞세워 마나님을 쫓아낸 공자님도 다를 게 없어
쇠심줄같이 질기디 질긴 부부의 끈을 이어가며
부부夫婦가 부부婦夫로 어느새 자리바꿈하고
다시 부夫의 존재가 마모되어
부부는 일심동체 부부婦夫가 둘 아닌 붑이 되기까지
견디어온 아픔 정말 장하다 할까
어리석다 할까
21세기 대한민국의 남편들
실은 부처님 오신 날이면서 부부의 날인 오늘
몇 송이 꽃을 바쳐 볼까
맛있는 외식으로 유도해 볼까
몇 번의 경험으로 미루어
일심동체一心同體는 결코 쉽지 않아
백방百方이 백방白放으로 끝날 수도 있어
붑의 꿈도 물 건너가고
말짱 도루묵 나무아미타불 아멘
나무관세음보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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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김삿갓문학상 공동 수상 작품 중 시 '붑'은 정대구 시인이 마주친 아내와 상호 모순적 상황에서의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했던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품고 있어, 심사위원들에게 "삶의 발자국에 비춰 김삿갓 문학과 생애, 그리고 시 문학 연구에 크게 기여할 뿐만 아니라, 김삿갓의 해학과 시사성을 뛰어넘어 민중의 정감을 담백한 시력으로 형상화하였다."라는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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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아내와 아들
석가모니의 아내 야소다라는 아들 라훌라가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고 나서 혼자 살았습니다. 라훌라는 열심히 수행하여 번뇌를 다 끊고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부처님의 이모(양모)인 마하파사파제가 출가할 때 같이 따라서 출가하여 비구니스님이 되었습니다. 출가한 후 열심히 수행하여 도를 얻었습니다.
https://naver.me/5TXNfO72 야소다라
https://naver.me/FpX4qnCL 라훌라
공자의 생이지지(生而知之)
논어<論語>의 「계씨편季氏篇」일부
공자왈: "생이지지자상야, 학이지지자차야, 곤이학지우기차야, 곤이불학 민사위하의."
孔子曰: "生而知之者上也, 學而知之者次也, 困而學之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상급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이 그 다음이고, 곤경에 처해서 배우는 사람은 또 그 다음이며, 곤경에 처해도 배우지 않으면 사람이 하급이 된다."
*배움의 4단계- 생이지지:성인, 학이지지: 현인, 곤이학지: 보통사람, 곤이불학: 최하
자왈: "아비생이지지자, 호고, 민이구지자야."
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나면서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재빨리 그것을 탐구한 사람이다."
https://naver.me/xhnHVozs
즉 아무리 성인 공자라 해도, 생이지지의 대상은 '의리 즉 인간으로서의 바른 도리'일 뿐이지, 그이외의 것은 그 역시 배워서 알았다..는 말을 하는 게다. 태어나면서부터 세상만사 모든 걸 아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후 생이지지라는 글자는, 공자와 같은 성인을 은유하는 말로도 쓰이게 된다.
https://naver.me/5i0na3JC
공자의 아들 공리 孔鯉
1.생애
자는 백어(伯魚)이다. 아버지가 공자이고, 어머니는 송나라 계관씨의 딸이다. 공자가 20세 때 그가 태어났는데, 노 소공이 사람을 보내 이어(鲤魚, 잉어)를 하사했다.
공자는 군주에게 예물을 하사받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아들의 이름을 공리(孔鲤)로 지었다.
1) 세 가지 교훈
일찍이 공자의 제자인 진항(원항)이 공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분(공자를 뜻함)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공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은 아버지가 정원에 서 계시다가 제가 총총걸음으로 지나가자 저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詩)를 배웠느냐?’ 제가 배운 적이 없다고 하자, ‘시를 모르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러나와 시를 배웠습니다. 또 어느 날 아버지가 정원에 서 계셨는데, 제가 총총걸음으로 지나가니 저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禮)를 배웠느냐?’ 제가 배운 적이 없다고 하자, ‘예를 모르면 사회에서 설 수 없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러나와 예를 배웠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를 들었을 뿐입니다.”
이에 진항이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 가지를 묻고 세 가지 교훈을 얻었다. 시와 예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았고, 군자는 자기 아들만을 편애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2)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다
유학(儒學)에 정통했던 공리를 노 애공이 격식을 갖추어 초빙했는데 병 때문에 응하지 못했다.
그러다 노 애공 12년 겨울, 기후가 이상한 날에 향년 50세로 공자 앞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처는 그가 죽은 후에 재가했다.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 중용 저술
자사(子思, 기원전 483년? ~ 기원전 402년?)는 노나라(魯)의 유학자이다. '자사'는 자이며, 성씨는 공(孔), 이름은 급(伋)이다. 공자의 손자이자, 공리(孔鯉)의 외아들이다. 할아버지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제자가 되어, 유교의 학맥을 이어갔다. 보통 자사와 그의 학파에서 나온 맹자의 학맥을 유학의 정통 노선으로 간주한다.
중용(中庸)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저술한 책이다. 논어, 맹자, 대학과 더불어 사서에 속하며, 유교의 기초가 되는 책이다. 원래는 대학과 마찬가지로 예기 제31편 중용편에 속한 글이었으나, 남송 시대 정자와 주자 등의 성리학자들에 의해 독립하여 출간되었다.
공자의 아내
https://naver.me/x3qeoKds
아내를 까다롭게 대한 경우의 대표자는 단연 공자이다. 그는 열아홉 살 때 어머니의 권유로 노나라에 와서 살고 있던 송나라 사람 계관 씨의 딸과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까다로운 성미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버렸다는 설이 있다.
그가 결혼한 지 1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는 '논어'의 기록 이외에는 아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또 “여자는 소인배와 같다”, “다루기 어렵다”느니 하는 그의 여성관으로 보아 이러한 설이 옳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