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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마지막 날 경상도의 오지 를 가다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는 세상과 멀리 떨어진 별개의 세상인양 백두대간에 꼭꼭 숨어있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면 수원 천안을 거쳐 제천 영주로 들어서고 봉화쪽으로 천천히 달리게 된다
이어 춘양 분천 양원을 거쳐 승부역과 종착역인 철암으로 백두대간 협곡을 달리게 되는데 창밖을 내다보며 느림의 미학을 만끽할 수 있으니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모처럼 여유를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잠깐씩 역에 정차하면 기념사진 한 장 남길수 있는데 여기 분천역은 산타마을로 제법 괜찮다
터널출입구 양벽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다녀가며 걸어놓은 메모지들이 빼곡하다 외지사람구경 하기도 힘들 이 오지마을에 이처럼 많은 사연들이 남겨져 있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게
그만큼 현대인은 스피디한 삶에 지치고 슬로슬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동경이 많다는 것이 아닐까
숨을 크게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보면 엥엥거리는 도회의 소음도 먼 나라 이야기같고 그저 조용하고 느긋한 시간을 느낄 수 있다
1956년 이 산간오지에 철도가 개통된 것은 가히 혁명이랄 수 밖에 없겠다
1970년대에 상업용 벌채가 이뤄지면서 봉화 소천면과 울진군 금강송면에서 베어진 춘양목들이 여기 분천역을 통해 각지로 날라지며 사람들이 모여들고 꽤 번성하기까지 했으나 벌채업의 쇠퇴로 다시 산간마을로 돌아간 분천리
원래 분천역앞에는 커다란 바위산이 있었는데 1991년 봄날 지나가던 점쟁이가 " 이 바위산이 호랑이를 닮아 사람들이 무서워서 여길 오지 않는구나 저 산을 깍아 잘라내면 이곳에 천호가 들어설 것이다" 라고 예언을 하였는데
그 점쟁이의 예언이 맞을라고 그랬는지 이곳에 자갈공장이 들어서며 그 바위산을 잘라 호랑이의 형태가 없어지고 우연인지는 몰라도 2013년 폐역이 될 뻔한 이 철도노선에 V-Train 과 O-Train 이 생기며 다시 살아났다
석탄과 목재가 아닌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해서 산타마을이 생기고 산타열차가 다니면서 불과 반 년만에 1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다녀간 것이다
이제 바다를 찾아 울진으로 나선다 노루재 터널을 시작으로 분천터널과 자마터널 꼬치비재 터널등 백두대간을 뚫고 지나가노라면 금강송면으로 들어서고 적송들이 빼곡하다 불영계곡을 지나는 36번 국도는 참 쾌적하고 좋다
중간에 약 2,000평의 사랑바위 휴게소가 있는데 잠시 쉬어가자
옛날 아주 오랜 옛적에 이 산속에 부모가 호랑이에 잡아먹혀 졸지에 천애고아가 된 오누이가 약초를 캐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날 꿈에 신령님이 나타나 옥황상제가 병이들어 영약인 삼지구엽초를 찾는데 이 불영계곡에는 산양들이 다 뜯어먹고 바위 절벽에만 있으니 그걸 구해오면 큰 상을 내리겠노라 하고 사라졌단다
오누이는 천신만고끝에 깎아지른 바위 절벽을 기어올라 삼지구엽초를 발견하고 오빠가 손을 뻗으려다 그만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누이는 사흘 밤낮을 통곡 하다가 같은 곳에서 뛰어내려 죽었다
이후 누이의 통곡소리가 온 산에 울리고 그 산 이름을 통곡산 (현재- 통고산)이라하고 오누이가 흘린 피가 소나무에 묻어 껍질도 속살도 붉은 적송(또는 금강송)이 되었다 한다
이를 안타까이 여긴 신령님이 오누이를 바위로 만들어 그 절벽아래서 떨어지지 않도록 꼭 껴안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정말 너무나 닮은 형상이다
여행에 이런 전설 하나쯤은 없으면 재미가 덜하다 그래서 불영계곡을 지날 때면 쉬멍 놀멍 주위를 둘러보자
36번 국도는 봉화에서 부터 울진까지 현재 직선화되고 확장되는 중인데 이 도로가 개통되면 불영계곡은 잊혀지지 않을까 나는 곧고 넓게 획일적으로 만들어지는 도로를 싫어한다
어느덧 왕피천을 따라 달리다 보니 울진에 다다랐고 어둠이 내려 앉을 때 죽변항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밤에 산책겸 둘러보는 항구의 모습도 너무나 이색적이고 좋다
1박2일의 짧은 여행길에서 돌아 오는 아침 길가에는 온통 노란 금계국이 지천이고 들꽃들이 무수히 피어있다
모를 심은 논은 벌써 땅내를 맡아 벼가 꼿꼿이 서 있고 논두렁에 자란 풀잎에서사랑을 나누는 이름모를 곤충도 눈에 띈다
내가 돌아오는 길에는 다른 볼거리도 많다 예천 지경에 접어들면 유명한 회룡포가 있고 기차가 서지 않는 용궁역앞 박달식당에는 특별한 용궁순대가 기다린다
그리고 봉화의 물야면에는 춘향전의 이도령인 주인공 이몽룡이 나고 자란 옛집이 400여년을 고스란히 견디고 남아있으니 꼭 들러보길 권한다 물론 이몽룡은 소설 속의 이름이고 원래 이름은 성이성이라는 사람이다
2015년도에 내가 다녀왔던 이몽룡(성이성)의 생가다
문경의 점촌재래시장에 이런 국수집이 있다 주인아주머니는 손이 커서 푸짐하게 내준다 손수 담은 김치는 아예 통째로 상에 올려주고 인정많은 손으로 먹기좋게 잘라주는데 정말 정겹다
국수도 바로 삶아 내는데 오색국수가 시각을 사로잡는다 오미자. 뽕잎등의 재료를 써서 만든거란다 열무물김치에 말아 먹으면 시원한 맛이 또한 일품이다 열무물김치에 새싹삼이 2뿌리나 들어있고 거기다가 보리밥 반공기도 덤이다 이렇게 하고도 값은 미안할 정도인 5천원이다
배불리 먹고 후한 인심에 감동하고 맑고 청량한 공기 실컨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잠깐씩 차를 세워 쉬면서 들꽃도 찍어보았다 돈만 많이 드는 유명지에서 사람들에 치이며 바삐 돌아치는 여행보다도 이런 호젓여행이 백배는 낫다
보라색이 너무나 아름답고 촘촘한 패턴의 꽃잎들이 꽉 짜인 이꽃의 이름이 뭘까하고 물어봤더니 수레국화라고 한다(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