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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뜸북새2.보리밭
3.잘 자거라 우리아가
牧會歷程(목회역정).
牧會旅程(목회여정).
박인환 목사님 /부부 정문숙사모님 하모니카연주/
박인화 목사님 부부 하모니카 연주
이제 내가 살아도
(2)이 기쁜 소식을
원로목사님 명단
소프라노-
조창식목사님(89세)
, 이재호목사님(83세),
테너-
박인환목사님(82세),
베이스
지한종목사님(87세)
앨토
정문숙사모님(72세)
(1)『하나님의 恩惠로라!』
Text 고前 15:10.
’17. 3. 26. 「늘푸른교회」에서.
설교자 : 박인환 목사.
祈禱 : 에벤에셀이신 우리 하나님, 저희들을 이 시간까지 보호해주시고,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예배를 흠향하시고, 부정한 입술을 지켜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A-men!)
먼저, 선열들의 피로 물든, 민족사에 지울 수 없는, 이 공헌의 터전위에 『늘푸른교회』를 세워주시고,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어려운 가운데 교회를 창립하신 창립멤버 선배님들과, 지금까지 이끌어오느라 노심초사하며, 물심양면으로 수고하시는 운영위원과, 역대 담임목사님을 비롯한 임원진과, 교회를 위해서 음으로 양으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들은 『늘푸른교회』의 심장이고, 주춧돌과 기둥이었기에 개인자격으로,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박경천 목사님으로부터, 설교하라는 말씀을 몇 차례 듣고, 사양하다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섰습니다.
이 시간 처음 하는 설교이니, 저의 정체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평소 농촌 목회를 하면서 체험하고, 터득한 내용을 가지고, 선교 보고 형식으로, 간증삼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나이는 ’38년, 戊寅生, 금년에 80세이며, 고향은 춘천이고, 세간에 알려진, 이주일 Gagman과, 박종환 축구감독이 고등학교 동기생이고, 일반대학과, 육군 만기제대를 하고 감신대에 학사 편입을 했기 때문에, 감신에서는 대부분 저보다 7~8년 아랫사람들과 같이 공부를 했습니다.
신학사, 석사, 박사과정 모두 감신에서 공부했고, 좀 더 폭 넓은 실천신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목회하면서도, 만년학도의 자세로, 기성 서울신학, 기독대학, 연신원, 안양 성결대학 등에서 각각 수료를 했고, 외국유학은 Intensive Course 정도로 공부하였습니다.
박봉배 총장님은, 학부 때에 은사님이고, 이기춘 총장님은 박사원 때 은사님이었습니다.
목회는, 강화 서지방, 『항포교회』에서 20년, 『오상교회』에서 24년 오직 강화에서만 도합 44년을 목회하고, 2010년도에 은퇴한 후, 현재는 김포에 살고 있습니다.
『늘푸른교회』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 지한종 목사님께서 2~3년 전부터 권면하셨는데, 멀어서 용단을 못 내리다가, 지난 ’14년 9월 28 주일날, 두 내외가 와서 Harmonica와 Recorder를 연주하면서 시작한 것이 오늘까지, 선배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참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감신 재학당시, 정동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목회실습을 했는데, ’67년도 정동교회 김광우 목사님과, 곽만영 장로님이, 미국 유학을 보내주시겠다고 했는데, 1~2년동안 목회체험을 먼저 해보고, 유학을 가겠다고, 교회로 보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당시 중부연회 김광우 연회장님과, 박용익 총무님께,
대한민국에서 제일 작은 교회로 보내 달라고 해서, 강화, 섬중 섬마을, 『항포교회』로 자원해서 갔습니다.
그때는 물론, 김포, 강화 사이에 다리도 없었기 때문에, 배를 두 번이나 타야 임지를 갈수 있었습니다.
그때, 박용익 총무님과, 김광우 연회장님, 변홍규 감독님께서 각각 추천서를 써주시면서, 강화 서지방 감리사님에게 갖다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박용익 목사님께서 책을 1권 주시면서, 교회파송 선물로 주는 책인데, “이 책은 우리 아들, 박장원 목사님이 쓴 책이니 갖고 가서 읽어보게” 하셨습니다.
보니까, 박장원 목사님이 쓰신, 《목숨을 걸고》라는 설교집 이었는데, 박장원 목사님이 성경을 들고 두 손을 높이 들고, 계신 표지로 되어있었습니다. 아주 희귀하고, 소중한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박장원 목사님의 靈感과, 精氣를 전수받아 보려고도 했습니다.
찾아간, 『항포교회』의 역사는 60년이 넘었다는, 10여 평의 초가로 된 건물이었고, 8~9명이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저는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부임 당일부터, 기도하고 심방하며 마을의 절간처럼 조용했던, 교회 문을 활짝 개방하고, ‘유치원’과, ‘농번기 탁아소’, 야간으로는, 중학교를 못간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한, 『재건중학교』를 설립했고, 사택은 ‘독서실’로 개방하고, 마당에서는 청년들에게, 태권도 사범을 초빙하여, 운동을 가르치고, Aria 올겐을 사가지고 풍금도 가르쳤습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과, 불우한 청소년들을 모아서 가르침은,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전인교육도, 중요하지만, 배후에 부모님들인, 큰 고기를 잡으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성이 없는 교육은, “약삭빠른 악마를 만들뿐이라”는, ‘프랭크린’의 말을 인용하며, 성경을 위시로, 한문, 고사성어, 영어를 가르치며, 전도를 목적한, 육영 사업과, 문맹 퇴치 등, 다양한 농촌 계몽운동을 하며, 1인 다역 했더니, 심훈 의 ‘상록수’나, 이광수 의 ‘흙’을, 연상하게도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돈은 없지만, “믿음”과 “젊음”이라는 자산과, 勤勉,誠實,正直이라는 ‘가훈’과,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좌우명’
과, 세 가지 성공적인 ‘자화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I can do it:, 할 수 있다는 자화상, Must,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숙명적인 자화상, With God,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자화상이 있었습니다.
성경말씀에서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15:5),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마7:7),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4:13),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다”(마19:28),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너를 도와주리라,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등의 성경말씀을 되뇌었고,
“I made it”(그것을 해냈다), “Never too late(결코 늦지 않았다)”, “My disappointment maybe God's appointment”(나의 실망은 곧 하나님의 계획이다), “No cross no crown, No pain no gain”(십자가 없이는 면류관이 없고, 고통이 없이는 획득이 없다)”, “Never give up”(결코, 포기하지 말아라).
“정신일도,하사불성”, “이농심행,무불성사”, “일근은선지장,일태는악지장”, “백일막허송,청춘부재래”, “일일불작,일일불식”, “일일불독서,구중생형극”, ‘하루라도 책을 안 읽으면 입에서 가시가 난다’는 등의 말을 되 뇌이며, “착기부주”,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다시 뛰라’는 교훈에 따라, 혼신을 다했습니다.
목회학 시간에 배운 대로, ‘신발이 닳도록’ 심방하고, 전도하
고, ‘무릎이, 닳도록’ 꿇고 기도하고, ‘성경이 닳도록’ 읽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서양격언에, “The busy bee has no time for sorrow” 바쁜 꿀벌은 슬퍼할 시간이 없다고 했고,
‘베토벤’은, 자기의 친구 ‘베겔러’에게, 편지하기를, 나는 휴식이란 없다, 휴식은 공상의 샘터 일뿐이다.
“나는 내가 만든 음악에서, 인생의 진미를 찾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라는, 말과 같이, 바쁘고 줄기차게 살았습니다.
2년 이상, 정신없이 “동분서주”, “소의한식”하며, 열심히 뛰었더니, 하나님이 역사하시어, ‘가가호수’마다 조상 때부터, 섬기든 우상도 많이 불태우고, 교회도 부흥되니까, 그 지역뿐이 아니라, 군청, 도청, 내무부까지 소문이 나고, 매스컴도 타며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동리 한 복판에 산자락을 희사 받아, 역사적인 교회신축이라는, 막중한 과업이 착수 되었습니다.
건축에 門外한 저였지만, 산자락을 잘라내고, 1천여 평의 대지위에, 교회, 목사관, 중학교, 생활관, 복지관, 체육관 등, 300여 평을 계단식으로 동시에 착공을 했습니다.
이제 교회 건축은, 나의 숙명적인 필수 과제였기에, 저는, 제 뜻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이곳을 떠나지 않고, 결혼도 안하고, 목사안수도 안 받겠다고, 비장한 각오로, 맨 주먹으로, ‘사생결단’, 전투하는 자세로 덤벼들었습니다. (겁도 없이)
거대한 공사는 시작되었는데, 건축비가 하나도 없어서 고향에 가서 제 결혼자금, 30만원을 미리 받아오고, 교인들의 헌금을 모아 자재를 구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동교회를 중심으로, 세 차례나 모금을 하였고, 나중에는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시멘트, 목재, 철근 등 자재를
지원받아, 거듭되는 실패를 딛고, ‘발분망식’하며, ‘천신만고’ 끝에,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6년 만에 웬만큼 건축이 이루어졌고, 높은 산위를 파서 물탱크를 만들고, 상수도 시설까지 해놨더니 군청, 도청에서 견학을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교육학을, 공부한 정문숙 이라는 규수감, 교장선생님의 딸을 만나서, 36세 노총각의 만혼이었지만, ’73년도에, 정동교회에서 홍현설 학장님의 주례로, 결혼도 하고, 미국유학은 물 건너갔지만, 뒤늦게 목사안수도 받고, 신혼부부가, 되어 혼자 뛰던 길을, Running mate가 생겨서, 둘이 같이 뛰니 새 힘이 났습니다.
아내가 결혼 기념으로 갖고 온, Piano까지 섬마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목회하다가 그곳 항포교회에 간지 20년만인, ’87년도에, 바다건너 강화본도인 오상교회로 목양지를 옮겼습니다.
그동안 서울지역 교회들의, Love Call도 여러 차례 받았으나, 벌려놓은 일들이 많아서 떠나지 못했는데, 농촌의 탈.이농 현상으로 유치원과 중학교도 15년 만에 모두 중단했고, 그 지역에서, ‘공을 세웠으면, 그곳을 떠나라’는 “공성이불거”라는 말도 생각나서, 강력한 청빙에 끌려 나왔습니다.
새로 부임한 오상교회서도, 전임지에서 하던 여세를 몰아, 역시 산자락을 잘라 내고, 2,000여 평의 대지위에 교회, 사택, 기도 굴 24개와 부속건물 등, 500여 평을 건축하고, 교회 연혁사를 90년사와, 103년사를 직접 집필했고, 저는 어디를 가나 무궁화를 보급하며,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역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체험담을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목회역정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순풍에 돛단배는 아니었습니다.
밥해주러 오셨던 할머니가, 한 달 만에 독감으로 돌아가시는 비운.
교회 건축 중 강한 해풍에 교회가 쓰러져 무너지고, 건축하 다가 떨어져서 갈비가 불어지거나, 의식을 잃기도 하고, 손. 발 다치는 것은 다반사.
건축금 모금하러 다니다가, 북아현동 어느 부잣집 부부장로 님네 갔다가, 말 망아지 만 한, 개에게 물려 기절을 하기도 하고,
결혼 안한다고 고자 소리도 듣고, 머리도 안 깎고, 야밤중에 가스 불 켜놓고, 작업한다고 간첩의심도 받았고.
교회에서 준 성미는 작업하는 학생들 몇 번 밥해주면, 식량 이 떨어져서 ‘금식’이 아닌, ‘굶식’을 번번이 해야 하는 등, ‘설상가상’이요, ‘난중지난사’인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백절불굴’하는 믿음과 정신력으로, ‘칠전팔기’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 이란 말처럼, 무식하고,무재, 무능, “천학비재”한 나에게도, ἐγὼ εἰμι Immanuel 하나님께서는 다가오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면 더욱더 함께 해주셨습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마10:25)는, 만고불변의 진리, “生必則死 死必則生”도 체험해봤습니다.
한때는, 교회를 건축할 때에 건축금도 없고, 너무 힘이 들어서 “자살”을 기도한 때도 있었습니다. (덤으로 산다)
그런데, ‘자살’, ‘자살’, 하면서, 자살을 되뇌었더니, ‘살자’ 로 바뀌어 지는 묘한 진리도 깨달았습니다.
기도 응답에는, 4가지가 있는 것으로 체험했습니다. 즉시
응답되는, Yes(그래), Reject, 거절당하는, No(그건 안돼), Wait(기다려라), Here is the better(여기에 더 좋은 것이 있다). 이것은 Solomon,의 기도 응답처럼 요구하지도 않은것까지, 덤으로 더 좋은 것을 받기도 했습니다.
교회를 건축하려고, 대지를 물색하다가, 동리 한복판에 얕으막한 산자락을 봐 두고, 하나님께 “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하고나서, 지주를 찾아가서, 교회와 학교를 건축하게 저 산자락 200평만, 달라고 했더니, 쾌히 승낙하면서, 목사님은 교회 일 뿐만 아니라, 육영사업도하고, 지역을 개발하고 계몽시키며, 새로운 마을로 탈바꿈 해 놓고 있으니, 200평 달라고 했지만, 뽀나스로 500평을 희사하겠고, 만일 더 필요하면 마음대로 사용하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구하지 않은 것 까지 주시는, ‘Here is the better’,‘여기에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기도응답이었습니다. 또한, 교회 건축 중에, 돈이 없어서 목공과 미공에게, 밀린 인건비를 못 주었더니, 이사람 들이 술을 먹고, 지개를 지고 와서 오늘도, 밀린 품값을 안주면, 당신네 밥해먹는 솥과, 서재에 있는 책이라도 지고 가겠다며, 큰 소리를 칩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는데, 마침 우체부가 오더니, 등기편지가 하나 왔으니, 도장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장을 찍고 우편물을 받아보니, 李有喜 라는, 여자분이 보낸 편지였습니다.
즉석에서 개봉해보니, 글씨를 삐뚤빼뚤 쓴 편지 한 장에, 소액환 1만 원짜리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간단한 내용의 편지인데, 자신은 인천 『창영교회』에서 전도사 하다가, 중풍을 맞아 소 대변을 받아내고 있는, 여자 원로 전도사인데, 「새가정」이라는 월간잡지를 보다가, 박 전도
사님의 눈물겨운 수기를(제가 새가정사의 요청으로 수기를 기고해서 게재된 글)읽고, 마침 미국에 있는 외손자가 성탄 때 쓰라고 보낸 돈이 조금 있어서 보내오니, 요긴히 쓰라는 편지였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보고, 세상에는 이런 분도 있구나, 탄복하면서 그 자리에서 울면서 감사 기도를 하고, 우체국에 가서 찾아서 둘이 실컷 먹고 떨어지라고(속마음으로만 말하며), 제 도장하고 준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서 제 손을 잡아주시는 하나님도 만났습니다.
70년도부터는 대한민국에,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새마을 운동의 이념을 보았더니, 【五無風土】 사업이라고, 발표 했는데, 미신 없는 마을, 도박 없는 마을, 노는 땅 없는 마을, 노는 사람 없는 마을, 사치낭비 없는 마을 이었습니다.
내용을 보니까, 이미 예수님은 2천 년 전 부터 하신 일이고, 기독교의 색채가 다분하여, 그때부터 성경말씀 위에다, 새마을 정신을 접목시키며, 목회와 육영사업을 병행하였습니다.
70년대 초에는 내무부에서 오라고해서 갔더니, 저를 보고, 새마을 운동의 ‘선견지명’이 있는 ‘원조’, ‘선구자’, ‘기수’라고 말하기에, 새마을운동의 원조는 예수님이고, 우리 예수님은, 5천년동안 가난과 무지로 찌들었던 흑암과 암울한, 한국민족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민족사의 가슴속에 맺혀있던 천추의 恨을 풀어주신 분이라고 강변했습니다.
그때부터 내무부장관의 명의로, 새마을 정신지도 교관으로 위촉하며, “새마을정신교육”을 하고, “성공사례” 발표를 다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마을 교육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목사님께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일, 그 자체가 모두 새마을 운동이니,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강의하면 된다”며, 하라고 해서, 정부의 각부 연수원과, 전국 각 도청 소재지와 군부대 등, 여러 곳에 다니며 전도와 강의를 다녔습니다.
그 때 부터는, 『재건중학교』도, 『삼산새마을중학교』로, 개명하였습니다.
그러더니, 내무부에서, ‘오명천’이라는, 만화작가에게 의뢰해서, 저를 Model로, 『섬마을 박 목사』라는 제목으로, 한손에는 성경, 한손에는 괭이를 들고 있는, 그림의 표지로 된, 만화책 10만부를 제작하여 전국에, 마을단위까지 무상으로 배포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도리불언,하자성혜(桃李不言下自成蹊)”란 말처럼, 관과 지역에서도, 스님들과 무당들도, 저를 욕하던 사람들도 모두 찾아오고, 교인들도 모여들고, 더 한층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홍현설 학장님은, 저에게 책을 발간할 때 사용하라고, 추천서를 써주셨는데, 저를 과분하게, 프랑스 왈드박, 도서지역에 가서, 가난한 농촌지역을 개발한, ‘쫀 오벌린’ 목사와, ‘알버트 슈바이쳐와’,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에다 비유한 추천서를 써 주셨고, 또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님은, 덴마크의 ‘그룬두비히’ 목사에 비유를 하면서, 제2의 “가나안 농군학교”로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장발머리에, 가스등을 켜놓고 야간작업을 한다고 수상하다며, 혹시 간첩 아니냐 하던 사람들이 경찰서와 직통 경비전화까지 가설해 주고, 군수, 서장들이 새로 부임, 이임할 때 인사를 하러 오며, 부탁할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부탁하라고 접근해 오기도 했습니다.
’86 아시안 게임 때는 중국으로, ’88 Olympic때는 유럽에 10개국에 사절단으로 다녀오기도 했고, “세계이념교육대회” 한국대표로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여운간증문학사”에 기고하라는 권면이 있어서, 『나는 정말 바보인가!』라는 제목으로, 투고해서 최우수상에 입선되었고, 기독교방송국의, “새롭게 하소서”와 아시아, 극동방송국의 “하나 되게 하소서” 시간에 출연하고, 간간이 간증예배 인도로 집회도 다니곤 했습니다.
이와 같이, 격랑을 헤치며, 쉴 사이 없이 숨 가쁘게 달려온, 44년을 회고해보면,
전도와 육영사업과 농촌계몽운동, 그리고 건축 작업으로 얽히고설킨 애절한 사연들과, 때로는 굶주린 나머지 영양실조로 현기증을 일으켜 이리저리 쓰러지면서도, 기도하며 작업을 해야만 했던 험란하고 고달팠던, 수많은 장애물들은, 오히려 나의 심신을 단련시키며 순화시켰고, 과거의 고통은 오늘과 내일을 위해 도약하는 시금석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주어진 여건을 나무라지 않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묵묵히 사역하며, 슬기와 강인한 투지와 집념으로 갈고 닦으면, 보잘것없는 풀한 포기와 돌 한 개도, 모두 진주가 된다는 깊은 진리를 실감나게 터득하였습니다.
지쳐 쓰러져 울고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일어나 어서가자!” 하시며, 강한 손을 내밀며, 여일같이 제 손을 잡아주셨고, 고통의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순간순간 마다 지혜와 용기를 주셔서 대처해 나갈 수 있게 하셨고, 하나님의 일은 돈으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한다는 것도 재삼 알게 하셨고,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고, 하면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지금에 와보면, 땀과 눈물과 피로 젖은, 두 곳의 목양지는, 그 지역의 신앙의 요람이요, 모든 역사의 공헌지와 발상지가 되었고, 그 지역을 이끌어주고 빛내주는 등대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일들을 사역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건강과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하며, 감사드립니다.
요즘, “Bucket list” 라는, 말들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당초에는 영화 제목이었으나, 지금은 죽기 전에 꼭 달성하고 싶은 List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들을 하고 가실 겁니까?
저는, 이런 일들을 하고 싶습니다.
1)“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딤후4:2), 라는 말씀과 같이, 이 생명 다하기까지, John wesley 가 말한대로, “The whole world is my parish!”, 한 말과, Appenzeller의 “Bring christ to the world & universe”라고 말한 것 같이 최후의 순간까지, 악기를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고 싶습니다.
2)저는 가는데 마다, 무궁화를 보급해왔는데, 이 우주 벌판에 무궁화 꽃으로 물결치게 하고 싶습니다.
3)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수집해 놓은 故事成語, 15,000여개 단어를 Computer에 저장 해놨는데, 지금까지 출판 비 때문에 못했는데, 금년에는 8순 기념으로 『故事成語集』을 발행했으면 합니다. 자서전도 쓰고 싶고요!
결론입니다.
바라기는, 본 교회는, 명실 공히, ‘상록수’ 같은 『늘푸른교회』요, 우주교회의 모델인 신선한, 산소탱크 같은 “종가교회”요, “장자의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사모님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넜고, 허기진 배를 웅켜 쥐고, 눈물의 골짜기를 걸어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여러분들은, 민족과 세계 복음화를 위해, 일생을 바쳐, 헌신봉사 해온 자랑스러운 주역들입니다.
그 고귀한 희생적인 노고는 살아있고, 발자국과, 눈물과 땀방울로 얼룩진 그 목장은, 오늘에 와서는 구원의 전당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자부심과 긍지를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여호수아에게도(수1:8), 야곱에게도(창28:15), 사무엘에게도(삼하7:9), “네가 어디로 가든지(Wherever),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KING JAMES나 NIV 영어성경)
한문에도, 이와 같은 “수처작주,입처개진”이란 말이 있는데.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나도 만사가 형통하고, 주인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욥은 모년에 더 큰 복을 받았고, 바울도 노후에 들어서, “이제 후로는 면류관 받을 일만 남았다”(딤후4:7~8)고 말 했듯이, 여러분 모두는 상 받을 일만 남아있습니다.
120세 시대가 도래 되었습니다.
미래학자, John Naisbitt는 자신의 저서, 〈Megatrends 2000〉이라는 책, 서론 맨 첫줄에, “지금 우리는 새 시대의 여명을 맞이하고 있다”라고 말 했습니다.
우리는 황혼의, Setting sun만 생각하지 마시고, 욱일승천하는,
Rising sun인, 새벽이슬 같은 새로운 인생, 제 2막을 여는 순간, 가슴이 뛰고 있다고 생각을 바꾸십시오!
아프지 마시고, 위축되거나 약해지지 말고, 자손들이나, 후배들에게 비굴하거나, 추한 모습 보이지 말고, 매사에 귀감이 되시고, 건강하고 위풍당당하게, 영적인 등불이 되어, 힘찬 도약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기까지, 멋지고 아름답게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感謝합니다.
A-men! <End>
祈禱 : 尊貴하신 하나님!
부족한 종이, 말씀을 증거 하였습니다.
잘못된 말씀은 십자가 뒤에 가리어 주시고, 은혜스러운 하나님말씀만, 심령 속에 각인되게 하시고, 우리 모두에게 항상 건강한 여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 해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A-men
(2)늘푸른敎會 說敎(’18.5.13. 午前11時. 어버이主日).
題目 : 『풍수지탄(風樹之嘆)』
風(바람풍), 樹(나무수), 之(갈지), 嘆(탄식할탄)
本文 : 엡6:1~3. 讚頌578章.
오늘도 교통 대란 속에, 원근 경향각지에서 『늘푸른교회』로 찾아오시느라 고생들 많이 하셨습니다.
2년 전에도 ‘어버이 주일날’ 설교하라고 하셨는데, 미루고 그 후에 한바가 있었습니다.
평 주일도 부담이 되는데, 특별주일은 본문도, 설교 내용도, 자료도 부족하고, 제한되어있어, 금년에도 사양했으나, 김연기 목사님께서 재차 말씀하셔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섰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생을 설교만 하고 살아온 설교의 전문가들입니다.
그래도 설교는 매소키즘(Masochism), 즉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 받아서 외치는 하나님의 대변자이기 때문에 일생을 설교했어도 여전히 부담이 됩니다.
저는 44년을 목회했는데, 평균 40년을 목회했다면, 타 교회 부흥회나, 연합 집회 때 설교나, 사경회 인도한 것 말고, 순전히 담임한 교회에서 새벽기도회, 주일 오전 오후 1회씩, 수요기도회, 속회나 금요 철야집회 등 공식적인 설교만도 무려 22,640회 이상을 설교하신 분들입니다.
그러면서도, 목사님들은 설교를 들으러 오라면, 옆집에서 오라고 해도 안가고, 설교를 하러 오라면, 국,내외를 불문하고 비행기를 타고라도 간답니다.
그만큼 목사들이 설교를 하는 것은 전문과 전공이고 일가견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모두 알고 계신바와 같이, 설교의 유형에는 본문설교, 주해, 주제, 주석, 예화, 간증설교 등이 있고, 또한 성경본문에 따라서, 천국론, 기독, 성령, 교회, 부활, 내세론 등으로 분류하게 되지요!
성경해석 방법도 “엑세게시스”와, “에이세게시스” 두 가지로 분류한다고 배웠습니다.
1)“엑세게시스(Exegesis)”는 본문 속에서부터, 의미를 끄집어 뽑아내거나, 캐내어서 해석 하는 방법이고,
2)“에이세게시스(Eisegesis)”는, 영어에서, In to 와 같은 뜻으로, 자기의 생각을 본문해석에 집어넣어서,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는 태도의 방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설교의 공식, 혹은, 범위, 범주(範疇)인 Kategorie 라고나 할 까요!
어버이 주일인데요, 8~9순이 되신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부모님을 잘 섬기라는 말씀도 격에 안 맞고, 후손들에게 본이 되고 귀감이 되자는 말씀도 어색하여, 그래도 부모님의 은덕을 기리자는 쪽으로 Focus를 맞추었습니다.
저는 이 시간, 어떤 공식을 초월해서, 다른 분들은 몰라도, 제 자신이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 점을 뒤 돌아보며, 애절한 마음으로 회개하면서 작성한 설교문을 읽어 내려가겠습니다.
우선 오늘의 『風樹之嘆』이라는 설교제목
이 본문에서 뽑아낸 제목이 아닙니다.
제가 작년도에 8순을 기해서 『故事成語總覽』이라는 “고사성어사전”을 발행하고, 여러분에게 함자를 한문으로 일일이 써서 근정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책에 보시면 유사한 단어들까지 여러 개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풍수지탄』이란 말을, 모르는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부모님께 효도를 다 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를 수 없는 슬픔을 이르는 말”입니다.
‘풍목지비’, ‘풍수지감’, ‘풍수지비’, ‘풍수지탄’ 모두 대동소이한 말들인데, 이 말은,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라는, ‘孝’와 관련된, 옛 글귀에서, 유래된 단어이며, 그 뜻은 ‘나무가 조용히 서 있고자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또는 ‘자식이 부모에게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고, 이미 세상을 떠났다.’ 는 비유인데,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을 가리키는 말로, ‘부모가 살아계실 때에, 효도를 다 하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어쩌면 저를 보고 만들어 낸 단어 같아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 단어를 도입하였습니다.
‘목회 한다’ 앞세우고, 부모님께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은 솔직한 고백입니다.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도 저와 비슷한 분들이 계시겠지요!
본문에서 주시는 교훈은, ‘자녀들아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그리하면 장수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➀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생명이 길리라’
10계명 중에서도, 세상을 향한 6가지 계명 중에, 제일 첫 번째 계명이지요!
부모님을 잘 섬긴 사람이 받는 복은, 성경말씀 외에도, 네 가지 축복, 壽, 美, 樂, 力을 말합니다.
➁출21:15.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지니라’
➂출21:17.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지니라’
➃마15:4.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➄‘하무라비법’에도, 부모를 학대하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되어 있답니다.
여기서 무슨 주석이 필요하겠습니까?
부모님께 효도하고 공경하라는 말씀은 ‘삼강오륜’과 신라의 화랑 5계에도, ‘부위자강’, ‘부자유친’, ‘사친이효’라고 했고, ‘孝’는 ‘百行之本 萬福之源’이라, 했습니다.
EX: ➀효도 ‘孝’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늙을로 (耂) 밑에, 아들자(子)가 있습니다.
아들이 부모를 머리위에 모시는 것이 효도 효(孝)자입니다.
➁등 돌릴 효(耂), 얼마 전에, 김포 공항 지하통로 벽에, 큰 액자에다가 등 돌릴 효(耂)자를 크게 써서 달아놓은 것을 본 일
이 있습니다.
늙을로(耂) 밑에, 아들자(子)를, 반대로 뒤집어 놓은 자입니다.
아들이 부모를 배신하고, 등을 돌린 자라는 것입니다.
➂불효효(耂)자도 있습니다.
늙을로(耂) 밑에 아들자(子)자가 있는 것이 효도 효(孝)자인데, 불효 효(耂)자는, 아들자(子)자가 늙을로(耂) 머리꼭대기에 올라앉아 있습니다.
부모님 머리꼭대기에 올라가 앉아있으니 불효효(耂)자지 뭡니까?
저는 오늘, 저희 두 내외의 현실과 모습을 자화상으로 그려봤습니다.
EX:엄마 아빠 비둘기 두 마리가, 여러 마리의 새끼들을 낳아서 모두 키워, 짝지어 각자의 갈 곳으로 날리어 보내고, 빈 둥지에 둘이 앉아서 날려 보낸 새끼들이 이때나 저때나, 혹시 오지 않나하고, 목을 길게 뽑아 올리며,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그려봤습니다.
여러분 ‘어버이 親’자를 기억 하시지요?
설립(立) 밑에, 나무목(木)이 있고, 볼견(見)자가 합쳐진 자를 ‘어버이 親’이라고 하지요!
자녀가 집에 오기를 기다리던 부모가 혹시, 이때나, 저 때나, 오지 않을까 하며, 바람, 바람 나가서 언덕에 올라가, 뒤꿈치를 쳐들고 바라보아도 자식이 오는 것이 안보이니까, 나무 꼭대기 올라가서 자식이 오는 쪽을 바라본다는 글자가 ‘어버이 親’자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거의가, 부모님은 이미 하늘나라에 가셨고, 현재 우리 자신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지만, 오늘만은 내 자신이, ‘아들이고 딸이라’는 자세로 각자의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렸으면 합니다.
EX: 여러분, “祭如在”=➀제사를 지낼 때는, 제사 받는 사람이 그 앞에 현장에 함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정성으로 제사를 드려야하고, ➁예배드릴 때에도,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앞에 계신다고 생각하고, 정성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요4:23~24에서 “爲 禮拜 神靈眞情”(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라고, 말했습니다.
“身體髮膚는 受之父母니 不敢毁損이라”(몸과 머리카락, 피부 모두 부모님으로부터 이어받았으니 훼손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무엇이든, 모두 주시려고 하는데, 자손들은 그 공을 모르고 효도하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이런 예화 한번 이상은 다 활용 하셨을 겁니다.
EX:“꽃구경가요!” 아들이 어머니를 “고려장”으로, 산에다가 버리려고, ‘어머니 꽃구경가요’ 하며, 지게에다 지고 깊은 산길로 들어가는데, 지게에 업혀서 산길로 들어가는 어머니는, 나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들이, 길을 못 찾아갈 가봐 솔잎을 뜯어서 길가에 뿌렸다고 하지요!
그때에 어린 아들도 함께 갔는데,
아버지가 지
게를 버리고 오려고 하니까, 함께 따라갔던 아들이 하는 말, “아버지 지게는 왜 버리고 가요?
갖고 가야, 이다음에 아버지도 내가 지게에 져다가 버리지 않습니까?” 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게에 져다 버리는 풍습이 없어졌답니다.
어떤 젊은 부부가 자기 어머니를 제주도에 갔다가 버리고, 실컷 돌아다니며 놀다가 집에 왔더니, 며칠 전에 제주도에서 버린 어머니가 먼저 집에 와 계시더랍니다.
아이고,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을까요?
‘어머니 어떻게 찾아 오셨어요? 어머니를 잊어버려서 찾아 헤매다가 이제 왔는데요!’
했더니, ‘이놈들아! 누가 모를지 아느냐? 나를 제주도에다가 버리고 오면 내가 못 찾아 올 줄 알았지?’(현대판 고려장이지요)
EX: 아파트 이름을 70년대는 짧게 회사이름을 따서 현대, 삼성, 금성 이라했는데, 그 다음에는 외국말로 혀도 안 돌아가는 말로 길게 하다가, 지금은 다시 또 짧게 이름을 바꾼답니다.
그 이유는 당초에 아파트를 건축하는 회사 이름으로 간단하게 두자 정도 현대, 금성, 삼성 등으로 아파트 이름을 지었더니, 시골에 계신 시부모님들께서 너무 잘 찾아오셔서, 자주 찾아오지 못하게 하느라, 혀도 안돌아가는 외래어로 길게 이름을 지었더니, 이제는 시부모님들이 혼자 찾아 올 수가 없으니까, 옆 동네 시누이네 식구들까지 몰고 와서 떼 손님들이 찾아와서 복가 치더랍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차라리 전에처럼 쉽게 이름을 짓고 시부모님 한두 분 오시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으로 다시 아파트이름을 짧게 짓는답니다.
그러기 전에 1년에 한두 차례씩이라도 자진해서 먼저 모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EX:현재, 아파트 이름이 제일 긴 곳은, 파주에 있는데, ‘가람마을10단지 동양 앤파트 월드메르디앙’이고, 남양주에, ‘해밀 마을5단지반도 유보라메이풀타운’등 20자에 육박함.
오늘 어버이 주일을 기해서 돌아가셨던, 생존에 계시던 부모님 은혜를 생각하며 하루를 지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서적으로나, 과학적으로도 120세 시대에 살고 있음을 직시하고
늙었다는 개념을 버리시고, 젊었다는 마인드로 살아가십시오!
EX:여러분! 老? No! 원리가 있습니다.
老(늙을로)? NO(아니다)!
당신 늙었습니까?
NO! 아닙니다. 늙지 않았습니다.
80세=傘壽, 81세=望九, 88세=米壽, 90세=卒壽, 91세=望百, 99세=白壽, 100세=上壽, 108세=多數, 111세=黃壽, 112세=天壽, 120세=聖壽. “Moses 壽 하옵소서!”
모세 수 하시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늙었다고 생각 마십시오!
우리는 이미 부모님께서 하늘나라 가신분이 많겠지만, 부모님의 은덕을 기리고,
마음속으로 공경하고, 후손들에게도 부끄러움 없이 귀감이 되며, 부모님을 잘 공경한 야곱이 받은 축복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A-men! 感謝합니다.
(3)『늘푸른敎會』第3次 說敎文(’18.11.25) A.M 11時, 늘푸른敎會)
(聖靈降臨 後 마지막 主日인 第 27主) (說敎者 : 朴寅煥 牧師)
Theme :『더 멋진 後半戰을 산 Moses』
Text : 行 7:30~36. Hymn : 347.384·354章 中에서.
‘Moses’는 모두, 잘 아시는 대로, 120年을 살았는데, Pharaoh의 宮殿에서 40年(行7:22), Midian廣野 ‘Jethro’의 牧場에서 40年을 살았고,(出2:16-22;18:3-4).
나머지 40年間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Israel’을 ‘Egypt’에서 解放시키며, 廣野를 橫斷하여, Canaan 福地 門 앞에 까지 引導하였습니다(出3:1-10).
EX:1)요즘, 사람들이 關心을 갖는 말 中에 ‘Half Tim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折半의 時間”, 或은, “半의 時間이 지나갔다”는 뜻이시지요.
運動 競技에서 ‘Half Time’이라는 말을 使用하는데, 蹴球로 말하자면, 前半戰 45分이 끝나고, 休息時間 15分이 지난 後, 後半戰 45分을 ‘Half Time’이라고 말하지요.
그런데, 運動 競技는 大部分 前半戰 보다는 後半戰이 더 重要합니다.
아무리 前半戰에서 이기고 있다 하더라도, 後半戰에 가서 뒤집어지면 아무 所用이 없습니다.
(日本말로 ‘ばんかい(반가이)’라고 말 하지요!)
그러기에 前半戰을 잘 못했다고 하더라도, 後半戰에 가서 挽回하면, 勝利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念慮할 것 없습니다.
요즘 일어나는 ‘Half Time’ 運動은, 人生의 後半戰을 어떻게 보람 있게 살아 갈 것인가를 苦悶하는 運動입니다.
그러면 人生의 ‘Half Time’이 언제라고 生覺하십니까?
우리나라의 平均 壽命은, 이미 80歲를 넘어
100歲를 向하고 있습니다.
❶創6:3에 보면,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120歲 까지 살 수 있다’고, ❷사65:20에는, ‘100歲의 죽음은 아이들의 죽음’이라고,
❸箴10:27에는 ‘하나님 믿으면 長壽 한다’고 말씀했는데, 120歲 ‘Moses壽’를 前提하면, 60歲 以上이 ‘Half Time’입니다.
120歲를 “聖壽”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德談을 아시지요?
"99 88 2340", “99歲 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日間만 앓다가, 3日 만에 죽고, 永遠한 나라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詩人 김달진은, 自身의 글에서, 60代는 해마다 늙고, 70代는 달마다, 80代는 날마다, 90代는 時間마다, 100歲 代는 分마다 늙는다고 말 하여, 늙어가는 速度에, 加速度가 붙습니다.
그런데 只今은 그 말이 無色할 程度로,
모두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
’18.4.14. 聯合News紙에 依하면, 100歲 以上 長壽者가 10年 사이에 50%가 增加되었답니다.
그래서 이애란의 「100歲 人生」이란 노래도, 「150歲 人生」으로 更新되었답니다.
“100歲에, 저 世上에서 나를 데리러 오거든, 하늘나라 갈 날을 찾고 있다고 傳해라”, “150歲에 저 世上에서 또 나를 데리러 오거든, 나는 이미 天國世界에 와 있다고 傳해라”.(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只今 새롭게 更新된 歌詞는 다릅니다.
“100歲에 저 世上에서 나를 데리러 오거든, 不動産 판 殘金 받아가지고 갈 테니, 再促 말라”하니라.
“150歲에 저 世上에서 나를 데리러 오거
든, 相續財産 整理中이니 기다리라” 하거라.(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이렇게 바뀌었답니다.
人間들의 平均 壽命이 延長되는 것은 事實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모두는 거의가, 人生의 ‘Half Time’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❶노사연의, “바램”(‘...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 ❷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❸서유석의, “가는 歲月”, 또는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❹이애란의, “150歲 人生” 等의, 世上 노래들은 모두 무엇을 노래하고 있습니까?
늙지 않으려고 百方으로 努力하고, 防禦해도 밀물처럼 밀려오는 늙음은 막을 길이 없다는 恨歎의 하소연입니다.
그래서 ‘의탁’이라는 사람은,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는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白髮 막대로 치렸더니, 白髮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라는 有名한 말을 남겼지요!
EX:2)‘Douglas MacArthur’ 將軍의 몇 가지 逸話(Episode)가 있습니다.
①“信念이 있으면 젊고, 疑心이 있으면 늙는다.
自信을 가지면 젊고, 疑心을 가지면 늙는다.
希望을 품으면 젊고, 絶望을 품으면 늙는다”는 말.
②“Old soldier i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老兵은 결코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③記者들이 MacArthur 將軍에게 늙지 않는 秘訣을 물었습니다.
執務室로 데리고 들어가서, 바람壁에 써 붙
인 글句를 보입니다. (“Look at of there!”)
❶“How state young? (어떻게 해야 젊음을 머물게 할 수 있을까요?)
❷It's just one way!(그것은 한 가지 방법뿐임!)
❸Believe you Jesus christ!”(예수를 믿으세요!) 라고 써있더랍니다.
極히 信仰的입니다.
EX:3)MacArthur 將軍의 主祈禱文.
’50.9.28. 서울이 收復되던 날 景武臺 Veranda에 올라가서 李承晩 大統領과 함께 國民들을 向하여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以下 省略)”하며, 主祈禱文을 朗讀했다고 하니 信仰的인 사람입니다.
우리는 後半戰을 더욱 멋지게 잘 살기 爲해서는 信仰的인 準備도 必要합니다.
人生이 ‘Rising sun’ 卽, 떠오르는 해만 重要한 것이 아니라, 黃昏의 ‘Setting sun’ 지는 해가 더더욱 重要하기 때문입니다.
Solomon도 傳7:8에서 始作보다, 끝이 더 重要하다고 하였습니다.
지는 해를 더욱 重要하게 여기고, 後半戰을 더욱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합니다.
人生은, 後半戰에 가서 더 더욱이 氣勢를 올리는 멋진 ‘Climax’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人死留名, 虎死留皮”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는데, 먼 훗날에 未來의 世代가 우리의 삶의 痕迹을 바라 볼 때에, 感動 받을만한 偉大한 信仰的인, 아름다운 발자취의 痕迹을 남겨야 합니다.
오늘 本文에는 ‘Moses’가 登場하는데,
‘Stephen’은 여기서 ‘Moses’의 一生을 세 部分으로 나누어서, 40年씩, 3 Round인 120歲 산 것을 說明하고 있습니다.
①Nile江 물가에서 건져진 後 40年間, ‘Pharaoh’의 宮殿에서 산 것이, 1 Round 였고,
②애굽에서 도망친 後, 曠野에서 40年間을 산 것이 第 2 Round입니다.
③그리고, 指導者로서 40年間의 삶인데, ‘Moses’의 삶은 처음 80年 보다, 마지막 40年이 더욱 燦爛합니다.
이렇게 되어 ‘Moses’의 人生 3 Round가 모두 끝납니다.
‘Moses’가 처음 80年보다, 마지막 40年을 ‘Charisma’가 넘치는, 더 멋진 삶을 살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오늘 함께 禮拜드리는 牧師님과 師母님들 모두가 7,8,90代 이십니다.
말하자면 人生의 後半戰을 進入한지도 좀 되신 분들입니다.
그러면 이제까지 살아온 삶보다 남은 時間을 어떻게 살면, 더욱 아름답고 有益하며, 品位 있고 成功的인 後半戰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現在의 便安함에 安住하지 말아야 합니다.
히11:24에 “믿음으로 Moses는 長成하여 Pharaoh의 公主의 아들이라 稱함을 拒絶하고” 라, 記錄 되었습니다.
現在의 王宮에서 便安한 皇太子의 꿈을 拍車고, 새로운 삶을 選擇할 때, 그에게는 새로운 삶이 열리기 始作합니다.
EX:4)Israel民族이 430年 동안 애굽의 고기 가마 옆에서 安住하다가, Moses의 引導함에 따라, Exodus 했기 때문에
,
Canaan 福地에 入城하는 하나님의 百姓이 되었고, 永遠한 애급의 종살이를 벗어났습니다.
EX:5)鷄卵 속의 병아리는, 힘들어도 그 딱딱한 껍질을 깨고 나와야 살고,
EX:6)姙産婦의 胎中에 있는 아기는 엄마 뱃속이 아무리 凶豊이 없고, 아늑하고 便安해도 10個月이 되면, 苦痛스럽고 힘들어도 無條件, 世上 밖으로 나와야 삽니다.
萬一 안 나오면 産母도, 애기도 둘 다 죽습니다.
그곳이 아무리 便安해도 거기서 永遠히 安住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現在의 便安함에 安住하지 말고, 좀 더 움직이며, 未來와 宇宙를 向해, 새로운 挑戰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挑戰, 信仰의 挑戰, 人生의 挑戰입니다.
여러분이, 只今까지의 이룬 것, 只今 가진 것, 거기에 滿足하지 말고, 꿈을 접지 말고, 諦念도 하지 말고, 새로운 挑戰을 믿음 안에서 始作하십시오.
결코, 絶對로 늦지 않았습니다. (Never too late!)
恒常 只今부터, 새롭게 始作한다고 生覺 하십시오! (From now begin!)
8.90歲 되면 ‘이제는, 죽는다’고 하는 固定觀念부터 깨 버려야 합니다.
EX:7)“老(노)? NO(노)!의 原理”
老(노)?=(여러분 늙었습니까?)
NO(노)!=(아니요! 안 늙었습니다!)
(한글로는 같은 ‘노’이지만, 漢文과 英語로는 뜻이 다릅니다)
99歲의 延世大學校 김형석 名譽敎授는, 「100年을 살아보니」라는 自身의 著書에서, “젊은 늙은이가 너무 많다며, 誠實한 努力과 挑戰을 抛棄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長壽의 秘訣도 ‘繼續 움직이고, 活動하라’며, “老後에 일이 없는 사람은 가장 不幸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미리부터 힘 빼고 身世타령이나 하고, 축 늘어져 있을 必要는 없습니다.
여러분, 이런 老人(늙은 사람)은 되지 마십시오!
이런 勞人(일하는 사람, 勞力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런 努人(힘쓰는 사람)도 되십시오!
한글로는, 똑 같은 ‘노인’이나, 漢文으로는 엄청난 差異가 있습니다.
늙어서 죽을 때 죽더라도 미리부터 모든 것을 斷念하고, 諦念하며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잘못된 處事입니다.
또한 죽더라도 不信者처럼 地獄의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에, 두려워 할 것 없습니다.
EX:8)요즘 地獄과 天國에서는 Remodeling 하느라 바쁘답니다.
왜냐하면, 世上에 뜨거운 찜질방도 많고, 싸우나가 많아서, 사람들이 거기서 뜨거운 訓練을 많이 받고 地獄에 갔기 때문에, 웬만한 뜨거움은 거뜬히 견디므로 더 뜨 겁게 溫度를 높이는 作業을 한답니다.
天國에서도 Remodeling을 하는데, 世上 사람들이 前에 보다 富裕하고 잘들 살아서, 天國에 가도 별거 아니기에 天國느낌이 없어서, Up grade 하여 더욱 華麗하게 만든답니다.
하나의 우수개 소리이고요!
우리 모두는 天國 市民權을 받아 놨으니 分明히 天國 간다는 來世觀도 確實해야 합니다.
聖經에 이름이 밝혀진 長壽者들을 보면, Adam, Seth, Kenan, Jared,Methuselah, Noah 等은 모두 900살 以上 長壽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本文의 主人公인 ‘Moses’는 80歲 때부터 새 일을 始作했고, Abraham은 75歲 때에 부름 받았고, Caleb은 85歲 때부터 活動하였습니다.
箴16:31에 “白髮은 榮華의 冕旒冠이라!”했고, 20:29에는, “늙은 者의 아름다움은 白髮이니라!” 하였습니다.
흰 머리는 勳章입니다.
나이는 數字에 不過합니다.
나이 많은 것 때문에 氣죽지 말고, 믿음과 精神力으로 所望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分明한 것은, “枯木生花”, “枯木發榮”,
枯木 나무에서도 새 싹이 터 오릅니다.
둘째,過去 좋지 않았던 記憶은 버려야 합니다.
統計에 依하면 一生에 있어서, 한番도,
失敗도, 失手도, 苦痛도 體驗해 보지 못한 사람은 成功 確率이 아주 적다고 합니다.
獨逸의 文豪 ‘Goethe’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人生을 말할 資格이 없다!”고 喝破했습니다.
苦生도 해보고, 失敗도 해보고, 모래알도 씹어본 사람이라야 그 體驗을 발板으로 삼고 成功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Moses’는 40歲에, 同族을 爲해 鬪爭하다가 逃亡者의 身世가 된 아픔이 있는 人物이었습니다.
‘Jacob’은 妻家살이 20年 만에, 큰 財閥이 되어 나왔지만, ‘Moses’는 그런 주변머리도 못되어, 40年 동안 머슴처럼 妻家살이만 했습니다.
80살이 되어도, 自己 家業하나 이루지 못한 所望이 없는 늙은 ‘Moses’, 그 ‘Moses’를 하나님은 記憶하고, 다시 불러 道具로 쓰십니다.
‘Moses’를 通해보니 그러한 傷處는 ‘轉禍爲福’으로 도리어 補藥이 되었고. 自身의
‘Handicap’은 삶의 原動力이 되었습니다.
山戰 水戰과, 모든 傷處와 아픔을 딛고 이곳까지 오신 여러분을 向해, 하나님께서는 恒常 함께 하시며, 順風을 불어 주실 것입니다.
셋째,未來의 不安함을 버려야 합니다.
出애굽 3章에 보면, ‘Horeb 山’에서 羊을 치던 ‘Moses’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가서 너는 내 百姓을 救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Moses는 過去의 失敗를 生覺하며, 다섯 番이나 拒絶합니다(出3:11,13, 4:1, 10,13)(Reject)
하지만, 그러던 Moses는 오늘 本文 35,6節을 보면, 하나님의 能力을 믿고, 나가서 奇蹟을 베풀며, 民族을 救援해 냈습니다.
‘Moses’도 人間인지라, 過去의 失敗를 生覺하며, Trauma로 때로는 不安 해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Canaan 福地를 주신다는 約束만을 바라보며 ‘一路邁進’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未來의 不安感으로 苦悶하지 말고, 一新一新又一新 跳躍해야합니다.
常綠樹처럼, 名實 共히 늙지 않는 ‘늘푸른 敎人’답게 每日, 每日 새롭게 更新하십시오!
여러분의 앞날을 하나님이 責任져 주실 것을 믿고 活氣차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Jehovah Jireh로”, 여러분의 健康을 爲해서, ‘늘푸른 Doctor’, ‘主治醫’이신 朴章遠 牧師님을 『늘푸른 敎會』에, 特使로 보내주셔서, 私備로, 좋다는 藥은 世界 各國으로부터 모두 購入하여 나누어 드리며 健康을 지켜주시니 얼마나 感謝합니까?
또한 ‘늘푸른 Doctor’를 도와드리는 助力者인, 아름다운 看護師 ‘せきれい(세끼레
이)’ 執事님까지 보내주셔서 여러분의 健康을 보살펴드리니, ‘錦上添花’요, ‘命也福也’입니다.
옛날 같으면 自他를 毋論하고, 모두 高麗葬에 들어가 계실 분들인데,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祝福으로, 壽命도 延長되었고 活氣 넘치게 살아가고 있으니, 하나님을 爲해서 奉仕하고 宣敎해야합니다.
우리 모두는 過去 現職 때처럼, 억매이고 限定된 區域이나, 敎會에 발목 잡힌 牧會者가 아니라, 넓고 넓은 宇宙를 向해 宣敎 할 수 있는, 自由로운 “宇宙 宣敎師(Universe Missionary)”들입니다.
바야흐로, 文明의 尖端, 第 4次 産業革命의 時代에 걸 맞는 “宇宙 宣敎師”들입니다.
未來와 宇宙를 向해 挑戰하고 꿈을 꾸고, 그 Vision을 成就하도록 最善을 다해야합니다.
우리 모두 過去에 어떤 마음 傷했던 일만 生覺하지 말고, ‘해바라기’가 해만 바라보고 따라가는 것처럼, ‘主바라기’가 되어, 主님만을 바라보며, 主안에서 健康하시고, Moses와 같이, ἐγὼ εἰμι(에고 에이미)Immanuel 하나님이 恒常 同行하시어, 後半戰이 더욱 멋지고, 燦爛하여, 活氣 넘치는 福된 삶으로 새 出發 하시기를 主님의 이름으로 祝願합니다.
A-men!
感謝합니다.
이)’ 執事님까지 보내주셔서 여러분의 健康을 보살펴드리니, ‘錦上添花’요, ‘命也福也’입니다.
옛날 같으면 自他를 毋論하고, 모두 高麗葬에 들어가 계실 분들인데,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祝福으로, 壽命도 延長되었고 活氣 넘치게 살아가고 있으니, 하나님을 爲해서 奉仕하고 宣敎해야합니다.
우리 모두는 過去 現職 때처럼, 억매이고 限定된 區域이나, 敎會에 발목 잡힌 牧會者가 아니라, 넓고 넓은 宇宙를 向해 宣敎 할 수 있는, 自由로운 “宇宙 宣敎師(Universe Missionary)”들입니다.
바야흐로, 文明의 尖端, 第 4次 産業革命의 時代에 걸 맞는 “宇宙 宣敎師”들입니다.
未來와 宇宙를 向해 挑戰하고 꿈을 꾸고, 그 Vision을 成就하도록 最善을 다해야합니다.
우리 모두 過去에 어떤 마음 傷했던 일만 生覺하지 말고, ‘해바라기’가 해만 바라보고 따라가는 것처럼, ‘主바라기’가 되어, 主님만을 바라보며, 主안에서 健康하시고, Moses와 같이, ἐγὼ εἰμι(에고 에이미)Immanuel 하나님이 恒常 同行하시어, 後半戰이 더욱 멋지고, 燦爛하여, 活氣 넘치는 福된 삶으로 새 出發 하시기를 主님의 이름으로 祝願합니다.
A-men!
感謝합니다.
說敎文 Copy 해서 보냈다.
➀申光俊 牧師님께. ’18.11.26. E-mail로.
➁趙春在 師母님께. ’18.11.27. E-mail로.
➂金載命 牧師님께. ’18.12.02. 複寫 印刷物로 直接 傳함.
➃秋淵浩 牧師님께. ’18.12.10. 宅配로 『故事成語總覽』과 함께 同封.
(4)「늘푸른敎會」第4次 說敎文(’19.08.11.A.M 11時) (說敎者 : 朴寅煥 牧師)
(聖靈降臨 後 第9主, 北韓宣敎主日, 光復紀念主日, 南北平和統一
共同祈禱主日, 節氣 上으로는 末伏)
Theme : 『至上命令』(宇宙宣敎師)
(Text : Mat 28:19~20)
본문 말씀을 가리켜서,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의 『至上命令』이라고 말 하지요!
철학적으로는 Categorical Imperative 즉, 肯定的 명령,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명령이며, 누구나 따라야 할 도덕적 명령을 뜻합니다.
영어로는 The Great Commendment, 혹은 The Great Commission 이라고도 합니다.
한문으로는 ‘이를지’(至), 혹은, 지극할지, ‘윗상’(上), ‘목슴명’(命), ‘명령할 령’(令)을 씁니다.
『至上命令』이란 뜻은, 至高의 명령, 最高의 명령, 더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제일 크고, 가장 높은 최상의 명령, 절대적으로 복종해야할 예수님의 명령을, 『至上命令』이라고 말하지요.
(제가 나누어 드린 “고사송어사전” p.588쪽을 보십시오! 임금이나 王이 명령하는 것을 ‘御名’이라고는 말하지만 “지상명령”이라고는 말 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명령만을 “지상명령”이라고 말 합니다.)
이 “지상명령”의 내용은 본문에 나온 대로 국경, 우주공간, 인종, 사상을 초월하여 “복음을 전하라!”, “전도하라!”, “선교하라!”는 말씀이 바로 더할 수 없이, 가장 높은 지고의, 또는 최고의 명령이란 말씀입니다.
EX:1)오래전에 관악지방 장로 수련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상명령”이라고 쓸 때에, 한문으로 어떻게 쓰느냐고 물었더니, 많은 사람들이 따지(地)로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地上에서 활동했으니까 따지 자를 쓴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100% 틀렸습니다)
장로님들뿐이 아니라, 현대 젊은 교역자들도 “至上命令”이라는 말을 따地 자를 쓰고 있는 이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할 단어가 있습니다.
‘전도’라는 말과 ‘선교’라는 말입니다
.
‘傳道’는 무엇이고, ‘宣敎’는 무엇입니까?
前에는 교단본부에서도 전도국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선교국이라고 말합니다.
연회나, 지방회에서도 前에는 전도분과위원회, 남전도회, 여전도회, 전도부 등으로 말해왔지만, 지금은 모두 바꾸어서 선교분과위원회, 남선교회, 여선교회, 선교부 등으로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같은 뜻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傳道라는 말은 전할 傳자에 길道 자를 씁니다.
宣敎라고는, 베풀宣자에 가르칠 敎자를 씁니다.
영어로도 구분이 됩니다.
전도는, Evangelism〔이밴저리점〕이고, 선교는, Mission입니다.
뜻을 음미해보면,
➀전도=좁은 지역, 내 집 마당, 가까운 이웃 동네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➁선교=산을 넘고, 강을 건너, 멀리 타 지역, 타도, 타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라고 한다고 배웠습니다.
EX:1)예를 들면, Peter는 예루살렘 주변에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傳道를 했고, Paul은 전 世界를 1~4차까지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선교를 했다고 구분합니다.
전도라는 말이나, 선교라는 말의 궁극적인 뜻은 모두 복음을 전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福音’이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➀한글로는 ‘기쁜 소식’, ➁한문으로는 복복(福)자, 소리음(音)자, ‘福音’인데요, 그런데 한문도 한국에서 쓰는 한문과 중국에서 쓰는 한문이 다릅니다. 복음이란 말을 중국에서는 ‘호소식(好消息)’이라고 말 합니다. 중국 발음으로는 ‘好消息’을 ‘하오 쌰오 씨’라고 발음 합니다. 차제에 또 말씀 드림은 한문이 중국 글이 아니고, 본래가 한국의 글인데 중국에서 도둑질해갔습니다. ‘임어당’ 이라는 중국의 석학도 그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➂영어로는 ‘Gospel’, ➃희랍어로는 ‘eῠγγeλίον’, (유앙게리온), ➄히브리어로는 ‘빼소라’(혹은,바싸르), ➅독일어로는 ‘Evangelion’(에방게리온), ➆일본어로는 ‘ふくぃん’(후구이응)등으로 말하지요!
또한 희랍어성경 롬1:16에 복음이라는 단어는 ‘유앙게리온’이라고 말하지않고, ‘δυναμιs’(뚜나미스)라고 기록 되어있습니다.
이 ‘뚜나미스’라는 말을 英語로 다시 번역하면, ‘Dynamite’(다이나마이트)입니다.
즉, 폭발력, 힘, 능력으로 해석 됩니다.
이와 같이 복음의 위력은 폭발력까지 갖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1. 그러면, 복음은 언제 傳해야 됩니까?
신속히 빨리 전해야합니다.
➀딤후4:2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
EX:2)미국 캘리포니아 ‘갈보리교회’ ‘척스미스’ 목사는, 1초라도 빨리 전하기 위해서 설교 할 때에 강단에서, 강대상까지 마구 뛰어나온다고 합니다.
그렇게 초고속으로 위급한 상황에 있는 것 같아서 복음을 빨리 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은 신속히 전해야 합니다.
이렇게도 비유를 합니다.
EX:3)홍수에 떠내려가는 동생을 빨리 구해야 하는 상황과 같음.
지금, 자기 동생이 홍수가 난, 급유에 떠내려가는 것을 아버지께 빨리 알려서 건저 내야하는 것처럼 급하게 신속히 전해야합니다.
EX:4)(어슬렁 어슬렁 걸어가서) “아-버-지!- 있-자-나-요-! 저-기- 저-, 내- 동-생- 아-무-개-가- 지-금- 흙-탕-물-에- 떠-내-려-가-고- 있-어-요!” 하면서 늑장 피울 수가 없습니다.
빨리 아버지께 달려가서, “아버지! 아버지! 큰일 났어요! 동생이 지금 홍수에 막 떠내려가고 있어요!”
라고, 하며 동생을 건져 내야하는 것처럼, 복음은 그처럼 빨리 많이 전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희랍어로 복음을 ‘유앙게리온’이라고 말하는데, 이 원어를 풀이해보면, ‘전쟁터에서 아군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빨리 마구 뛰어서 후방에 전달하는 것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주변 열강들에게 수많은 침략을 당했기에 뼈아픈 노예생활을 체험해본 민족입니다.
EX:5)
우리나라는 왜정치하에 36년 동안, 아니 36년 前後로 해서 70여년 동안을 일본에게 노예생활을 해왔고, 지금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것은, 일본이 한국을 보자, 보자 하니까 옛날에 종살이 하던 ‘조센진’(한국을 얏잡아 보고 비하 하는말)이 경제적으로 일본을 능가하게 되니, 이러다가는 안보적인 면에도 일본이 한국에게 당하게 되겠으니까, 아예 원천봉쇄하는 작전이 금번의 조치입니다.
저는 1945년 해방되던 해에, ‘곡고민 각고 이찌 넨세이 데스네’(초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자유가 없고 우리나라 말도 못하고 일본말을 해야 합니다.
하루는 학교에 갔는데, ‘쇼라’라는 일본담임선생이 출석을 불렀습니다.
‘쇼라’라는 일본선생이 아침에 60여명의, 반 학생들 각자의 일본이름으로 부를 때에 모두 한결같이 일본말로, “하이”(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짓밟고 들어와서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모두를 강제로 약탈하는 것이 억울하고 미워서, 8세 밖에 안 된 어린 아이였지만, 항상 적개심이 있고, 울분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 이름이 일본말로 “우에노 인쇼꾸”였습니다. ‘쇼라’ 선생이 “우에노 인쇼꾸” 라고 제 이름을 불렀을 때, 저는 ‘하이’ 하지 않고, 뻐젓이 한국말로 ‘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쇼라 선생이 쓰고 있던 안경을 내려서 코에 걸고 안경 너머로 저를 째려 보면서, 또다시 같은 방법으로, “우에노 인쇼꾸” 라고 불렀습니다. 그래도 저는 ‘하이’ 하지 않고, 또 한국말로 ‘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세 번째로 또 같은 방법으로 “우에노 인쇼꾸” 라고 불렀는데, 저는 여전히 ‘하이’ 하지 않고, 요번에는 저도 짜증이 나서, “네-에!” 라고 힘을 주어서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쇼라’ 선생이 화가 나서, 코에 걸고 있던 안경을 벗어버리고, 저를 보고 “고찌 고이!”(이리 나와!),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할 수 없이 저는 천천히 앞으로 나갔더니, 또 “하야꾸 고찌고이”(빨리나와)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저는 부들부들 떨면서, ‘쇼라’ 선생 앞에 나가서자마자, 그 큰(그 당시에는 출석부가 크고 두껍고 딱딱한 표지로 되어 있었습니다) 출석부로 나의 얼굴을 마구 때리더니, ‘쇼라’는 자기 분에 못 이겼던지, 출석부도 집어던지고, “나니가, ‘네’까?”(‘네’가 무어엇이냐?) “오마이 가가루까?”(너 나하고 싸우자는 거냐?), “빠가야로”, “콘나야로”, “나니키사마!” “오자 꼬나야쓰”, 등등 있는 욕설을 다 퍼 대며, 주먹으로 마구 때리더니, 그다음에는 검은 구두 발로 저를 마구 찼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가 쓰러진 것 까지만 알고,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까무러쳐서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 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아까 매 맞던곳은 1학년 교실이었는데, 제가 두러 누어있는 곳은 교무실이었습니다.
누었던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선생들도, 학생들도 모두 집에 갔고 박재수(현재 춘천남지방 광장교회 원로장로님)씨라는 소사 한분과 저만 남아있었습니다. 몇 시간이나 정신을 잃고 누어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아래 하체는 차겁고 지독한 악취가나며, 저의 하체 앞에와 뒤에 모두 분비물이 흥건하게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를 잔혹하게 일본선생이 구두 발로 짓밟고 때려서 놀라며, 정신을잃고 까무러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앞뒤로 분비물을 쌓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3km떨어진 집으로 혼자 왔고, 그다음부터는 일본선생이 무섭고 싫어서 한 달 정도 학교를 가지 않았고, 이어서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그다음에 8월15날 해방이 되었습니다. 해방 되던 날 춘천에는 안개가 많이 끼고 부슬비가 왔는데, 우리는 부모님들하고 산속으로 피란을 가, 있다가 해방되었다고 하여 춤을 추며 하산했고, 저희 아버지는 언제 감추어 두었던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장롱에서 태극기를 꺼내들고 거리로 뛰쳐나가 만세! 만세! 만세!를 목이 터지도록 불러댔습니다.
그때의 해방되었다고 하는 즐겁고 기쁜 마음은 말로 형언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자유’라는 것도 처음 느껴 보았습니다.
이처럼, 전쟁에서 적군에게 지면 노예가 되고, ‘자유’가 없고 종 사리하다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은 굉장히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福音’은 그처럼 기쁜 소식입니다.
Good massage입니다. Good news 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전도는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최고의 명령인 『지상명령』입니다.
2. 어디서 누구에게 전해야 합니까?
➀막16:15에, “온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➁행1:8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➂영국 Bristol에, John wesley가 전도하던 곳에 가 보면, “The whole world is my parish!”라고, 땅바닥에 신주로 크게 새겨져있는 글귀를 볼 수 있습니다.
사명의식에 불타는 격조 높은 명언의 문구입니다.
➃Appenzeller는, “Bring christ to the world & universe!”, 그리스도를 온 세계와 우주까지...!
또한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십니다.
결코 복음은 특정지역이나, 특정 집단, 특정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 규모가 世界的이고, 宇宙的인 것을 가르쳐주는 명령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個敎會主義’의 팽배와 더불어 ‘超 大形 敎會主義’를 목표로 하는 기형적인 발전의 현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눈 여겨 볼 단어는 ‘Universe’인 ‘宇宙’라는 공간입니다. Cosmos 이고, Space입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오대양 육대주’인 세계와 지구를 초월하여 우주라는 공간까지 복음을 전해야할 시대적 사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의 설교 부제를 『宇宙宣敎師』(Universe Missionary)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영국선교사, 미국선교사, 독일선교사 등으로 말하듯이, 우리는 시대적으로 세계를 초월하여, ‘우주’를 선교해야 하는 막중하고도 야심찬 사명이 있음을 시사한 내용입니다. EX:6)가나다의 문명비평가인 Marshall Mcluhan은, 1988년도에 ‘Global village’라는 ‘新造語’를 발표하여서, 전 세계를 통합하여 한 마을로 보아, ‘地球村’이라는 말을 제창하여 지금도 사용하고 있듯이, 저는 ‘우주선교사’(Universe Missionary)라는 말을 지난 ’18년 11월 25일 설교 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주제넘게 사용해 봤습니다.
왜냐하면, 왕상 8:27, 느9:6등, 성경 10여 군데에서 하늘은 하나가 아니고, Heavens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을 지으셨다’고,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의 복수로 기록된 곳들이 있습니다.
이미 과학자들도 천체인, 태양계는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이며 그래서 ‘이티’라는 외계인이 있다고 학문적으로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구촌’에서만 복음을 선교 할 것이 아니라, ‘화성’, ‘금성’ 또 다른 태양계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어야 하겠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가지고 우주를 넘나들며,
선교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우주선교사’라는 신조어를 썼습니다.
3. 그리고,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합니까?
➀눅14:23에, “길과 산을 가로 막고,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➁행21:13에,“바울은 죽을 것도 각오하고 복음을 전했다”. 필사적으로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죽을 각오를 갖고 전했습니다.
➂사58:1에, “목소리를 아끼지 말고 나팔 같이 크게 외치라”는 등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4. 복음 전하는 일은 운명적임을 말하고 있다.
➀고전9:16에,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 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이며,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고, 필수적으로 傳해야 하는, 영어에서 Must입니다)
➁렘20:9에, “내가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다”고 말하여, 복음전파의 운명적인 소명감을 실토하기도 하였습니다.
➂살전2:4에, “우리는 복음을 전할 부탁을 받았다”
5. 마지막으로, 현대 한국교회의 모습과 양상을 진단 해 봤습니다.
교회는 전도하고 선교하는 교회만이 살아남을 수 가 있습니다.
➀신학자 Emilburenner는, “불은 탈 때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교회는 전도 할 때만이 존재 한다”고 말 했습니다.
불신자를 새로 전도해서 구원시키려는 주의보다는, 남의 양을 훔쳐오거나, 뺏어오는 강도의 행각을 벌리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남의 양을 강제로 끌어가는 강도입니다.
그것은 전도가 아니라, 이미 믿는 기성교인들의
수평적 이동입니다.
교회는 크게 보면, 모름지기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예배하기 위하여, ‘모이는 교회’, Come structure, Come church입니다.
둘째는 전도하기 위하여, ‘흩어지는 교회’, Go structure, Go church입니다.
이렇게 균형과 조화 있는 발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의 실정을 보면, ‘모이는 교회’(Come structure)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네 교회로만 전도해 오려고 전쟁을 합니다.
‘만석의 대농을 하는 부잣집 농부가, 가난한 농부의 머리위에 있는 티 꺼풀 하나를 욕심낸다’는 속담처럼, 대형교회에서는 Bus를 십 수대씩 동서남북에 배치해놓고 운행하며, 주일날이면 운전기사끼리 싸움을 하면서 작은 교회 가는 사람들을 마구 끌어갑니다.
한 사람 끌어오는데 머리수를 따져서 돈을 얼마씩 계산해서 주는 교회도 있답니다.
그래서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전도해서 내 교회로만 인도하려는 독식주의는 그릇된 전도방법입니다.
문서전도나,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터미널, 전철역, 공항, 부두 가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이 시간에도 외치며 전도지를 나누는 ‘거리의 선교사’도 있고, ‘대화의 선교사’도 있습니다.
악기나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전도하는 이들도 있고, 군목, 경목, 교목, 병원목, 형목들은 교파나 어떤 특정교회로 전도하지 않고, 어느 교회라도 나가며 구원받게 하기를 권면 하고 있습니다.
EX:7)인천 화수동에 있는 “인천방주교회”를 소개합니다.
이 교회는 박장원 목사님께서 천신만고 끝에 개척
하셨고, 박보영 목사님이 시무하다가, 작년도에 은퇴하고 지금은 임 철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입니다.
이교회는 교인들에게 매월 한주일은 다른 교회에 나가서 전도도하고, 11조와 각종헌금도 하라고 본 교회는 문을 닿는답니다.
남들은 한사람이라도 끌어가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는데, 한 달에 한 주일씩 다른 교회에 가서 전도도 해주고, 헌금도 해주라고 내 보내는, 아주 희귀한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사모님 여러분!
이 ‘지상명령’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신이고, 선교의 특사인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일생을 한눈팔지 않고, 목양지에서 죽을힘을 다해가며, 전도하고 교회를 건축하는 등, 희생적으로 혼신을 다하여 목회하다가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때로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했고, 금식기도, 철야기도로 실신하는 등, 갖가지의 난관을 겪고 있을 때, 어디선가 위대하신 예수님의 크신 손길이 다 달아서, 여러분의 손을 붙들어 주심으로, 칠전팔기 끝에 승리하신 자랑스러운 예수님의 제자들이요, 복음 선교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사명에 불타, 열정적으로 사역하던 복음의 투사들이었지 않습니까?
지금은 모두 늙어 힘이 쇠잔하여 젊었을 때처럼 뛰어다며, 전도하지 못할지라도, 그래도 나는 ‘우주선교사’라고 하는 긍지를 갖고 기도하면서, Mind, 그런 마음만이라도 우주선교에 동참한다는 정신으로, 세계와 우주 복음화를 위해,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최후의 순간까지 준행하는 ‘우주선교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A-men! 감사합니다. -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