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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머니는 공황장애였다.
아! 청동의 탑에 갇힌 불쌍한 다나에.
어머니를 보면 페르세우스는 피가 마를 지경이다.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는 게 안타까웠다. 정신과 의사의 소견에 따르면 전형적인 공황장애라고 했다. 마음에 강단이 약한 사람일수록 큰일을 당하거나 놀라면 발생하는 정신질환의 한 증세라고 대수롭잖게 했지만, 어머니에게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병이었다. 평소에 멀쩡하다가 발작 증세가 오면 숨이 멎을 지경이라고 했다. 공황장애는 병이 아니라 증상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그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페르세우스는 생각했다.
그거나 거거나, 약이 필요로 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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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는 제우스의 아들이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였는데, 다나에리는 딸만 있을 뿐 아들이 없었다. 절망에 빠진 왕은 아들을 하나라도 가질 수 있을지 예언자에게 묻지만, 외손자가 태어나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전혀 엉뚱한 예언을 듣는다. 왕은 그 끔찍한 예언을 피하고자 딸인 다나에를 청동으로 만든 탑에 가둔다.
하늘에서 지상을 관찰하던 제우스는 청동 탑에 갇혀 있는 다나에를 보고 그 미모에 반해 사랑을 느꼈다. 청동 탑에는 문이 없었다. 아크리시오스는 조그만 구멍을 만들어 딸에게 최소한의 음식만 넣어줬을 뿐이다. 궁리 끝에 제우스는 황금 소나기로 변신하여 청동 탑 지붕에 나 있는 조그만 구멍으로 스며들어 다나에와 사랑을 나누었다. 열 달이 흘러 탑 안에서 페르세우스가 탄생하게 된다.
페르세우스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다나에와 함께 외할아버지에 의해 조상들의 땅에서 추방된다. 다나에는 왕인 아버지에게 페르세우스가 제우스 신의 핏줄이라며 살려달라고 울며 하소연했다. 아크리시오스는 약간 두렵기도 했지만 자기 목숨이 걸린 문제라 고민하다가 후환을 없애기 위해 딸과 외손자를 궤짝에 넣어 바다에 버렸다. 그들을 차마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대로 바다에 빠져 죽으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마음씨 착한 어부, 디틱스에게 구출되어 그의 세리포스 섬으로 따라가서 자란다.
다나에의 아름다움은 곧 세리포스 섬의 왕 폴리덱테스에게까지 알려지고, 왕은 다나에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한다. 그는 우선 동생인 디틱스를 통해 청혼을 해보았지만 다나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왕은 그녀를 강제로 데려오고 싶었지만, 그것도 간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녀 옆에 장년이 되어 건장한 페르세우스가 떡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폴리덱테스는 눈엣가시 페르세우스를 없애버릴 계책을 하나 마련했다. 그는 거짓으로 이웃 나라 피사의 왕인 오이노마오스의 딸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신하들을 불러 신부 아버지에게 줄 지참금 명목으로 모두 형편에 따라 말들을 바치라고 명령했다. 남의 집에 얹혀사는 형편이라 페르세우스는 바칠 말이 없었다. 그는 왕을 알현할 차례가 되자 자신은 말은 없지만, 왕이 원하시면 메두사의 머리든 무엇이든지 갖다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폴리덱테스는 페르세우스가 자신이 원하던 말을 해주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메두사를 만나 지금까지 살아 돌아온 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페르세우스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렇다면 메두사의 머리를 결혼 선물로 바치라고 명령했다. 최대한 빨리 바치라고 종용했다. 페르세우스는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약조를 되돌리기에는 때는 이미 늦었다.
메두사는 입은 수퇘지의 커다란 이빨이 툭 불거져 나와 있어 무시무시했고, 울음소리는 지옥 불에 던져진 저주받은 영혼들의 비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소름이 끼치고 끔찍했다. 메두사는 원래 인간이었는데 네르바 여신의 분노를 사는 바람에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그만 끔찍한 뱀으로 변하고 말았다. 게다가 누구든 그 뱀, 메두사의 머리를 보기만 해도 돌처럼 굳어버리는 저주까지 받았다. #
*
페르세우스는 진료대기실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 앉은 어머니는 페르세우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생각에 잠겼는지 잠이 드셨는지 모르겠다.
다른 곳은 혼자 다녀도 어머니는 정신과는 혼자서 다니지 못했다. 꼭 페르세우스가 동행해야만 했다.
진료대기실에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붐볐다. 자상하게 상담을 하고 처방한다는 정평이 입소문으로 나 있는 병원이다. 대기자가 아무리 밀려도 원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하게 물을 것은 다 묻고 정신상태를 파악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져도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얘야! 너무 끔찍하구나. 내가 정신과에 오다니? 이걸 누가 알면 어쩌나.
어머니! 세상에는 더 끔찍한 일이 많아요.
페르세우스는 항상 달래지만 어머니는 정신과의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매우 불쾌하고 수치스럽게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에 발견한 증상이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곧 숨이 멎을 것 같다고 호소하셨다. 발작 증세가 오면 사람을 한바탕 휘둘러놓고 사라졌다. 그건 매우 부정기적으로 일어났다. 발작 증세가 지나가고 나면 어머니는 한나절을 기진맥진하여 누워 계시곤 했다. 가장 불편한 것은 사람 만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시는 것이다.
특히나 처음 만나는 사람은 우선 피하신다. 페르세우스의 친구들마저도 그렇다. 하여, 페르세우스는 친구를 절대 집으로 데려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투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셨다.
말은 하기지 않지만, 그 순간이 자꾸 떠오르는 모양이다. 11층 베란다에서 몸을 날리던 아버지의 옷자락을 잡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계셨을 것이다. 119에 신고를 하시고 도움을 요청한 것도 어머니였다.
선거판은 완전히 역전이 되었다.
아버지께선 그 점에 대해 상당히 괴로워하셨다. 선거운동을 나가서 인사를 하면 면전에 대고 야유를 보내는 유권자까지 생겼던 모양이다. 페르세우스는 당시에 군에 있어서 그 내막을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당선이 유력한 후보자였다. 현직 지역구 국회의원이셨고, 아버지께서 국회에 입성할 당시는 여당 의원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야당 의원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런 일은 졸지에 일어났다. 아버지는 재정 특위 소속으로 지난해 정부 예산에 막대한 삭감을 시도했고, 이루어낸 인물이고 여권에서 하는 정책에 대해 부작용을 헤아리고 목소리를 높여 제동을 걸었던 인물이었다. 여권에서는 눈엣가시였다.
비례가 아니라 지역구 출신이었기에 당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청렴도로 따지자면 대쪽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정도로, 자신의 명예와 지역민과의 공약을 철저하게 지키는 깐깐하신 분이었다. 아버지는 여당의 폭정에 대한 구국 정신이라며 삼선에 도전하셨다.
아버지의 정치 고향인 해평갑 지역구였다.
해평갑 지역구는 아버지의 인지도가 제법 높은 곳이었다. 야당의 공천은 당연히 아버지의 몫이었다. 공천까지는 별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당에서 막강한 입심을 행사하시던 인물이었으니 경선도 없이 단독 공천이었다. 차기에는 당을 이끌어갈 인물이라는 평도 자자했다. 페르세우스는 비록 군에 있었지만, 인터넷으로 아버지의 지지도를 살피며 당선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 순조롭게 야당의 공천을 받고 출마해서 선거운동을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혐의는 이권 개입과 금품수수였다.
지극히 명예롭지 못한 혐의였는데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곳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하지만 선거운동에 한창 바쁜 순간에 발목이 잡힌 것이었다.
경찰에서 선거사무실과 아버지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고 연일 지방 신문을 통해 아버지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론조사에서도 압도적으로 앞서가던 유력한 후보였는데 흠집 내기에 지명이 되어 인품에 난도질을 당하셨다. 금품수수의 혹, 후보자로선 대단히 치명적인 혐의다. 선거에 혼선을 주기 위하여 조작된, 이른바 여권 유력인사의 찍어내기 청탁 수사였다.
어머니는 발만 동동 구르며 그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다.
보통 간으로는 버티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연일 매스컴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난도질했다. 아버지의 이름은 갈기갈기 부서져 헛바람에 날리고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선거 홍보용 현수막에 붉은색 스프레이가 뿌려지는 상황에 이르렀고, 아버지가 선거운동이랍시고 나가서 인사를 하면 시내버스를 타고 가던 시민들이 창을 열고 야유를 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방 언론도 그렇고, 그 언론매체를 접한 시민들도 그렇고 참으로 책임 못 질 짓을 했다. 누구의 소행인지 혐의는 다분하지만, 물적 증거가 없었다. 그런 걸 찾아내 항변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증거가 있어요?
이 말은 참으로 사람을 맥빠지게 만든다.
페르세우스는 보지 않았기에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도 아버지는 진실을 믿고 선거운동에 전념하셨던 모양이다.
부재자 투표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한 여론 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역전이 된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상황은 역전이 되었다. 그런 혐의로 조사를 받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하시던 아버지 그 긴박하고 절박한 순간에 어디선가 술을 자시고 집으로 일찍 들어오셨단다. 페르세우스의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술을 좋아하신다면 양주를 거실의 진열장에 진열해 놓고 그것을 보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정도였다.
그날, 집에는 어머니가 계셨다.
지역 정서를 살핀다고 국회의원이었지만 지역구를 떠나지 않고 집은 해평갑에 있었다. 페르세우스도 초중고를 해평갑에서 나왔다. 다른 국회의원처럼 서울에서 살았더라면, 극단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까짓 국회의원 안 하면 그만이지.
페르세우스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버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날, 어머니는 퇴근 시간에 맞추어 방송국 사거리로 선거운동 겸 인사를 나가시려고 채비를 하시던 중에 아버지께서 들이닥치셨다고 했다.
투표를 불과 이틀 앞둔 날이었다.
“박송하님!”
간호사가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어머니는 페르세우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깜빡 잠이 드셨던 모양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름을 부르는 것을 명확히 들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후딱, 대답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페르세우스도 어머니를 따랐다. 뒤를 따라 진료실로 들어가면서 어머니의 쇠잔한 어깨를 보고, 어머니가 이 정도로 연약한 여자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아직도 혼자 오시기가 불편하신 가봐요?”
페르세우스를 힐끔 올려다보고 원장이라는 정신과 의사가 어머니께 물었다. 정신과에는 진료실이라고 해봤자 다른 의료기기가 없고 단순히 책상에 컴퓨터를 한 대 놓고 마주 앉아 상담하는 게 고작이었다. 늘 의사가 묻는 쪽이고 환자는 대답하는 쪽이었다. 어머니는 의사의 맞은편 의자에 다소곳이 앉았고 페르세우스는 어머니 옆에 섰다. 어머니가 먹는 약에는 수면제가 첨가된 모양이다. 그래서 보름치 이상을 처방하지 않는다. 한꺼번에 다 털어먹더라도 치사량에 못 미치는 처방이다. 원장은 그게 정신과의 철칙이라고 못을 박았다. 하여, 페르세우스는 이 주에 한 번 정도는 정신과에 오게 되어 있다. 싫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데는 다 잘 다니는데 여기만 그래요.”
“사모님! 수치스럽다거나 불편한 병원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밖에 대기하는 환자들 다 그렇거든요. 정신이 이상해서 오는 곳이 아닙니다. 잠을 못 잔다거나, 정신에 강한 충격을 받아 오는 환자들이 대부분이지요. 정신적인 충격에 정신이 멍들었다고 할까요. 그동안 불편하신 데는 없었고요?”
의사는 아이를 달래는 투로, 말하고 나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잠을 쉽게 들지 못하는 것 외에는 불편한 게 없었어요.”
“마음을 편히 가지시고, 지난주에는 공황 발작 증세는 없었구요?”
“지난주에는 없었습니다.”
“발작이 오면 절대로 이걸로는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세요. 죽을 것 같지만 절대로 죽지 않아요. 전조증을 이제는 느끼시겠나요?”
“알 수 있어요. 대충 미리 감이 옵니다.”
“이번에도 필요시에 먹는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까, 전조증이 온다 싶으면 미리 잡수세요. 그런데 요즘 경기 그렇게 안 좋다지요? 시장 물가도 상당히 올랐다면서요?”
페르세우스는 안다. 정신과 의사의 진료는 지금부터라는 것을. 환자를 앉혀놓고 이것저것 병과 관계가 없는 것을 한참이나 묻고 대답한다. 그 시간이 상당히 길다. 질병과는 다른 주제로 질문과 대답을 하며 환자의 상태를 면밀하게 살피는 것이다. 그 환자에 대한 질문에 옆에 동반한 사람이 거들면 나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그 환자와 전혀 엉뚱한 얘기를 하면 환자는 마음을 놓고 입을 열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원장이 물가나, 다른 주제에 관해서 물으면 어느 환자나 진료가 끝났다고 마음을 놓는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 정신과에는 갔다가 의사와 상담을 하고 오면 마음이 푸근해진다는 소문이 있다. 그게 입소문을 탄 것이다.
경기와 물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페르세우스는 열린 문을 통해 진료실을 나왔다. 그쯤에서 슬쩍 나오면 어머니는 페르세우스가 옆에 없지만 불안해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학교에 관해 자꾸 걱정하시지만, 페르세우스는 복학할 생각이 전혀 없다.
중어 중문학과를 나와서 밥을 벌기 상당히 힘이 들 것이다.
공부를 뛰어나게 잘 하지는 못했지만, 고등학교 때 학과보다는 학교를 우선시하는 폐해의 피해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걸 페르세우스는 안다. 지방이지만 국립 명문대를 들어가느라고 학과는 따지지 않았다. 나중에 뭘 하겠다는 목적도 없었다. 그냥 담임께서 성적에 맞추어 원서를 써 주시는 대로 넣은 것이다.
그건 지나간 일이니 지금 따질 문제가 아니다. 어머니께서 심리적으로 불편하시겠지만, 중문학과에 다시 복학할 생각은 없고, 아버지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게 우선이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사설탐정 사무실을 차릴 생각이다.
이 땅에는 공권력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신고가 들어와서 수사를 착수하고도 미결로 처리되는 사건이 상당한 실정이다. 뒤에서 나서는 변호사 나부랭이가 아니라 사건의 전면에 나서서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전역을 하고 전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공부를 해서 사설탐정 면허는 냈다.
국회의원을 재선이나 하셨지만, 아버지께서 남겨 놓은 건 빚뿐이다.
이문에 밝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기에 딱 좋을 살림살이였다.
아버진 의정활동을 하시면서 기부를 많이 하셨다. 무의탁 노인 요양병원이나 온정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아버진 너무 잘 알고 계셨다. 그런 분에게 이권 개입이나 금품수수는 거듭 생각해도 당치도 않은 소리다.
선거를 한 번 치르면 그동안 받은 의정비가 다 들어간다는 말도 무리가 아니었다. 실제로 해보니 그랬다. 페르세우스가 대학에 갓 입학하고 아버지의 선거사무실에서 회계를 담당해보아서 그 실체를 안다.
재선에 당선되던 선거였다.
초선을 현역으로 지내고 공천은 이미 받았고, 지역에서 인지도가 있어 유력하다고 했지만. 아무리 아껴도 그 정도의 금액은 들어간다. 경제력이 된다면 얼마든지 무한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게 선거다. 그걸 회계를 담당하고 정산을 해보니 알 수가 있었다.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현직 국회의원임에도 불구하고 페르세우스는 대학을 다닐 적에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아야 했다. 그 정도로 팍팍한 살림이었다.
친구들은 말했다.
누구 염장 지르나? 부드러운 고기만 먹다가 질려서 억센 나물을 찾는 거야?
국회의원 아들이 생색내기로 그런 일을 한다고 빈정거렸지만, 사실은 절실했다. 그때마다 페르세우스는 대답한다.
야! 인마들아, 국회의원은 절대로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야.
입대할 적에도 친구들은 말했다.
국회의원 아들이니 손을 써서 편한 보직을 받겠다고. 하지만, 페르세우스는 말단보병으로 가서 어렵게 군 생활을 하고 만기 전역을 했다. 만기를 채워 전역하는 동안, 선임이나 후임 누구에게도 아버지께서 현역 국회의원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치가 빠른 중대장은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귀대하자 중대장은 위로의 말을 했다.
내가 평소에 존경하시던 분인데, 좋은 데 가실 거야.
아버지는 페르세우스에게 늘 말했다.
어디 가서 책잡힐 짓을 하지 마라. 너도 남의 눈에 표적이 되는 공인이라고 생각하고 처신해라.
아버지의 입에 달린 말이었다.
그 말씀이 페르세우스의 어깨를 짓눌렀기에 군에서 입을 다문 것이다. 중대장을 제외한 선임이나 후임들은 페르세우스의 아버지가 회사에 다닌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다.
의사와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어머니는 좀처럼 나오시지 않았다. 가슴에 든 것을 확, 쏟아버리고 나왔으면 좋으련만.
*4.
법무법인 남일.
법원 앞 상가에는 그렇게 간판이 붙어 있었다. 변호사 네 명이 모여서 법인을 만든 사무실이라고 했다. 사무실은 법원 앞 새로 지은 건물 삼 층에 있었다. 삼 층짜리 건물인데 한 층을 통째로 쓰는 모양이었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지 새로 지은 건물인데 복도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페르세우스는 지저분한 계단을 통해서 삼 층으로 올라갔다.
오후에 나한수에게 전화를 하니 상당히 반가워했고 보고 싶다는 말까지 했으며, 언제든지 사무실로 오라고 하며 사무실 위치를 비교적 상세하게 일러주었다. 사무실은 법원 앞에 있어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나한수는 아버지의 보좌관을 팔 년이나 한 인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졸지에 갓끈이 떨어지자 정치판을 기웃거리지 않고 밥벌이를 찾아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으로 나가고 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잠깐 보고는 처음이다.
페르세우스의 아버지는 현역 국회의원이었지만 국회장으로 치르지 않고 가족장을 조촐하게 장례식을 치렀다. 장례식날이 바로 총선 투표일이었고 국회에서는 경황이 없었을 것이다. 투표용지에조차 아버지의 이름은 지울 틈이 없어 그대로 투표를 했던 모양이다. 물론 기호 2번 아버지의 이름에 투표한 것은 다 무효가 되었지만,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출마였다.
장례식은 어수선했고 쓸쓸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국회의원 이름을 단 화환은 엄청 들어왔지만, 문상을 온 국회의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때 장례식에서 모든 일을 나한수가 맡아서 했다. 일테면, 장례집행 위원장을 한 셈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나한수는 굉장히 비통해했다. 그 정도를 따지면 페르세우스보다 나한수가 더 처참하고 비통한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나한수도 일생일대의 전환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국회의원 보좌관은 자리가 보전되는 게 아니다. 그 국회의원이 낙선하거나 공천을 받지 못하고 불출마를 선언하면 갓끈이 떨어지는 자리다.
나한수도 갓끈이 떨어지자 순발력 있게 밥벌이를 찾아서 나선 것이다. 법무법인 남일의 사무장으로 들어간 것이다. 페르세우스가 알기로는 나한수가 있는 법무법인에는 변호사가 네 명이고 사무장을 두 명으로 두고 있다고 알고 있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다가 그만두면 취업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나한수는 용케도 적절한 곳에 발 빠르게 자리를 마련한 셈이다.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으로는 딱 어울리는 인물이다. 지역에서 폭넓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으니, 그 인맥으로 수임을 받는 사건이 많을 것이다. 생각하니 변호들로서는 나한수를 사무장으로 써서 손해나는 장사가 아닐 것이다. 최소한 남일이라는 법무법인의 변호사들보다는 나한수가 지역에서 폭넓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삼 층으로 올라가니 사무실 문은 두 개였다.
앞에 있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람보다 책상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뭉치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변호사들은 사무실 안에 각기 다른 방을 만들어 그 안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무장이라는 명패를 두고 큰 책상을 차지하고 나한수가 앉아 있다가 들어서는 페르세우스를 보고 손을 번쩍 들었다.
제대로 찾아 들온 것이다.
사무장은 둘이 분명하다. 큰 사무실에 사무장의 책상은 하나는 이쪽 끝에, 또 하나는 저쪽 끝에 두고 마주 앉아 일을 보는 모양이다. 그 중간에 여러 개의 책상이 있고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인 곳에서 사무원이 서너 명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페르세우스가 다가가자 나한수는 벌떡 일어나 악수를 하고 페르세우스를 접객 테이블로 안내했다.
“오랜만이다 민수야! 어떻게 지내냐? 마실 걸 뭐로 줄까? 어머니는 잘 계시고? 학교는 복학했고?”
“한가지씩 물어야 대답을 하죠. 어제 최경욱을 만났어요.”
“최경욱이 누구지?”
“아버지를 수사했던 시경의 수사팀장. 지금 진급해서 도경 강력계로 갔어요.”
페르세우스가 누구인지 일러주자 나한수의 얼굴은 금세 굳어졌다. 기억하기 싫은 인물이라는 티가 역력했다. 나한수도 그 인물에게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여러 번 경찰서에 들락거린 것으로 안다.
“아, 그 독종.”
나한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을 흘리고는 굳은 표정으로 한참을 고민하더니 페르세우스를 불렀다.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정하게 불렀다. 아니, 그게 침울하고 침통한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민수야!”
페르세우스는 대답 없이 나한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한수는 아버지보다는 열 살 정도가 적고 페르세우스보다는 스무 살 정도가 많으니 지금은 오십 전후, 그 언저리가 될 것이다. 정확한 나이는 물어본 바가 없어 모르겠지만. 얼굴에 적힌 세월의 흔적으로 미루어도 그렇게는 보였다. 예전에 선거사무실에서 같이 일을 할 적에는 형이라고 부르라고 농을 했지만 그렇게 부를 수 있는 나이 차이가 아니었다.
나한수가 페르세우스를 한참이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 사건은 더 들추지 않고 그대로 묻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저씨! 왜 그렇게 생각하셔요? 진실은 밝히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그게 자식이 된 도리로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야. 힘을 쓴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나한수는 보기에 안쓰러운지 페르세우스를 달래는 격이었다. 나한수도 어머니와 같은 입장에 서서 페르세우스가 나서는 겅 못마땅해하는 눈치다. 어머니도 늘 그랬다. 그건 지나간 일이니 그만 들추고 복학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이 대명천지에 진실이야 묻히겠어요? 이거 너무 억울하잖아요.”
“억울한 건 알아. 뒤에 사악한 음모론이 있다는 것도 알고. 그러나 그게 이 나라의 정치 번지수야. 우리나라 정치의 뿌리가 그래. 그런데 복학은 했냐?”
나한수는 격분하다가 말꼬리를 슬쩍 돌렸다. 아버지 문제에 대해서라면 나한수도 엄연히 피해자다.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말릴수록 페르세우스의 마음은 기운다.
“아니 복학할 생각이 없어요. 저는 사설탐정 사무실을 낼 거예요.”
“사설탐정? 흥신소 말이냐?”
“그래요.”
“그거 쉽지 않아!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시험이 굉장히 어렵다고 들었는데, 보통 공부해서는 안 돼. 거의 고시 수준이라고 들었는데, 법에 관해서 공부를 엄청 해야 하는 모양이야. 자신 있어? 차라리 다른 시험을 치지. 공인 회계사나, 세무사! 너 수학을 잘했잖아? 그것보다 어려우면 어렵지, 쉽지는 않을 거야.”
“걱정하시지 마세요. 벌써 자격증을 냈어요.”
페르세우스는 그 말로 나한수의 말을 잘랐다.
“그래? 대단하네! 축하할 일이구나.”
나한수는 조금 놀라는 투로 손을 불쑥 내밀었다. 축하하는 뜻에서 악수를 다시 하자는 얘기였다. 페르세우스는 그의 손을 잡아주며 겸손을 표시했다.
“별거 아니에요. 아버지 사건의 진상을 알아보려고 제대하고 바로 공부했어요. 앞으로 잘해야지요”
“그래서 그랬구나. 한번 찾아올 줄 알았는데 뜸하기에 뭐하나 했었지. 그동안 사설탐정 공부를 했었던 모양이구나. 그렇지? 어머니는 어쩌고 계시냐?”
“편안히 잘 계셔요. 이제 마음도 좀 추스른 것 같기도 하고.”
페르세우스는 어머니가 공황장애 때문에 고생하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한수의 애만 닳을 뿐이지 전혀 도움이 되는 말이 아니다.
“어때 이사한 집은 마음에 들어?”
“소형 아파트가 그렇지요. 마음에 들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요? 어머니가 좀 잊고 살면 그걸로 만족해야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을 팔았다. 34평 아파트였는데 어머니는 베란다 쪽으로 통하는 거실문도 열지 못할 정도로 불안해하셨다. 페르세우스도 그 어머니를 보니 불안했다.
이사가 당장에 급한 것이었다.
당시에 어머니께서 선택한 아파트였는데 그 아파트를 살 적에 주택자금 융자를 받은 게 있어서 그걸 팔아서 빚을 청산하고 변두리의 23평짜리 오래된 아파트를 사니 딱 맞았다.
그 집을 파는데 나한수가 앞장섰다.
공인중개사에 알아보고 아파트를 시세보다 조금 싸게 팔았다. 아버지가 11층에서 투신한 집이라, 작은 소도시에서는 소문이 다 나 있었다. 그걸 숨길 수가 없었다. 공인중개사는 그래도 그런 걸 따지지 않는 매수자가 나타나서 그 정도의 가격을 받을 수가 있다고 했다. 서울처럼 아파트를 가지고 있으면 가격이 오르는 아파트가 아니었다. 해평이라는 소도시의 아파트는 오래되면 될수록 가격이 내려가는 것이다. 어머니의 말로는 살 적의 가격에서 손해 보는 게 없다고 했지만, 인플레이션을 따진다면 손해가 분명했다.
다시 이사 갈 집을 알아보는 일도 나한수의 몫이었다.
어머니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페르세우스는 나서지 않고 어머니와 나한수가 집을 보러 다니고 결정을 했다. 어머니는 조용한 곳에 살고 싶다고 했다. 조용한 곳. 그 점을 몹시 강조하셨다. 그래서 교통이 불편한 변두리였다. 페르세우스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어머니의 마음만 편하다면 무조건 따르겠다고 했다.
다행히 변두리에 집을 사고 보니, 아파트 뒤편, 산 아래 공터가 있어 아파트 사람들이 그 공터에 조그만 텃밭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 있었다. 고추나 상추, 오이 등속을 재배하는 서너 평 되는 땅인데 그것도 등기는 없지만 선점한 주인들이 다 따로 있었다. 전 주인에게 덤으로 그 텃밭도 물려받아서 어머니는 그곳에 재미 삼아 농사를 지으며 소일을 하신다.
“사모님께선 만족하시냐?”
“최소한 전번 집처럼 불안해하시지는 않아요. 그것도 이 층이니 고소공포증도 가라앉고요. 아파트 뒤에 있는 공터에 농사를 짓는데 재미를 붙이신 모양이어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건이 일어난 후에 고층 아파트는 싫다고 했다. 맨바닥에 있는 단독주택을 원했지만, 그 가격으로 단독주택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래서 페르세우스는 촌집을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촌집은 옆집의 간섭을 많이 받기에 싫다고 했다. 익명성을 요구하는 전직 국회의원의 집인 까닭이었다. 하여 나한수가 사방팔방 소문을 내서 구한 집이 지금 사는 변두리의 소형 아파트다.
“민수야!”
나한수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나한수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순간적으로 머뭇거리는 티가 역력했다.
“뭐 좀 마셔야 하지 않겠나?”
뭔가 말을 꺼내려다가 딴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건 페르세우스의 눈치로 단박에 알 수가 있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게예요? 괜찮아요. 말씀해 보셔요.”
“네가 사설탐정이 되었다기에 불쑥 생각이 난 건데, 사모님께서 워낙에 너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하셔서,”
나한수는 난처한 투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버지께서 제우스라면 나한수는 포세이돈에 해당한다. 아버지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냉철한 현실감각과 탁월한 지도력은 기대할 수 없다. 그는 이것저것, 요모조모 따지는 타입이 아니다. 술수도 모르고 치밀한 전략이 없이 그냥 먼저 뱉거나 저지르는 인물이다. 그저 순간적인 감정과 느낌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하나는 알되 둘 이상은 모른다. 충동적이며 즉흥적이다. 나쁘게 말하면 성급하고 직선적이며 변덕스럽다. 좋게 보면 순진하고 감상적인 인물이 포세이돈인데 나한수가 그런 꼭 타입이다.
“뭔데요? 시간이 지났으니 상관없어요. 저도 어린애가 아니구요.”
그 말을 해놓고 포세이돈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뒤돌아 앉아 사무를 보던 아가씨가 둘을 힐끔 보고는 다가왔다.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페르세우스는 커피를 달라고 했다. 나한수도 같은 것으로, 라고 짧게 대답했다.
“교통사곤데 좀 심상찮은 사고가 있었거든,”
“교통사고? 누가 아버지가요?”
나한수가 말을 하기 전이었지만 페르세우스는 아버지의 교통사고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자리에서 난데없이 교통사고 얘기가 나올 수가 없는 이치다. 나한수는 또 뜸을 들이고 있었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은데 밖으로 나갈까?”
나한수가 제의했다. 아무래도 담배를 피워야 얘기가 제대로 나올 것만 같은 모양이었다. 페르세우스는 그러자고 했다. 흡연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 모양이다. 그러자고 하고 둘이 일어서자 종이컵 커피를 쟁반에 담아오던 여직원이 커피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저기다 둬요, 나한수가 여직원에게 짧게 말하고 앞장을 서더니 돌아서서 여직원이 들고 있는 쟁반에서 종이컵 커피를 한잔 들고 페르세우스에게 내밀었다. 밖에 나가서 마시자는 투였다. 나머지 커피도 자신이 들고 나한수가 앞장을 섰다. 계단에서 위로 올라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는 상가 뒤편 소방도로를 하나 사이에 두고 새로 지은 법원과 등기소 정원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정원수와 잔디가 잘 가꾸어진 정원이다.
법원이 등을 지고 있는 산에서 해가 넘어가고 있었고 해거름 노을이 흘렀다.
옥사에는 가끔 담배를 피우러 올라오는 모양인지 철제로 된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있었고 철제 테이블 위의 종이컵에는 꽁초가 수북했다.
나한수는 주머니의 담배를 한 대 물고 페르세우스에게도 권하는 투로 내밀었다. 페르세우스는 들고 있던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고는 고개를 저었다. 페르세우스가 담배를 피지 않는 게 아니라 상대가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되는 어른이다. 최소한 나한수 앞에서는 그렇다.
“교통사고가 났거든, 그런데 그게 심상찮다는 말이야.”
나한수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했다.
“그게 언젠데요?”
경찰서에서 아버지의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를 착수하기 보름 전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페르세우스가 군에 있을 적이었다. 사건의 경위는 단순하지만, 불순한 의도가 다분하다고 지역구에 소문이 난 교통사고라고 했다. 교통사고를 위장한 큰 음모의 사건일 수도 있다는 게 나한수의 생각이라고 했다.
선거가 있기 전 해평시의 시민체전이 있었다고 했다. 매년 열리는 체육대회라는 걸 페르세우스는 알고 있다. 아버지는 거기에 참석해 경축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보좌관 중에서 운전자는 승용차의 운전석에 타고 아버지는 뒷좌석에 앉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타고난 언변가이다.
어디를 가던 사전에 원고를 준비하는 법이 없다. 항상 즉흥적으로 연설을 하시는데 경축사를 멋지게 마치고 시장은 그 자리에 남고 아버지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경축사만 마치고 자리를 털었던 모양이다.
개막식은 광평동 체육관에서 했는데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와 수출탑을 돌아 직진 차로에 들어섰는데 맞은편에서 줄지어 오던 레미콘 트럭 중에서 중간에 선 놈이 그대로 중앙선을 넘어서 아버지의 차를 덮쳤다는 것이다. 도저히 사고가 일어날 자리가 아니라는 게 나한수의 말이었다. 대충 들었지만. 위치가 어디쯤 되는지 페르세우스는 짐작할 수가 있었다.
“아저씨도 같이 탔었어요?”
페르세우스의 질문에 나한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나한수는 다른 데서 감사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다.
정면으로 돌진하는 레미콘을 피해서 뒷바퀴 부분에 들이박고 전복은 되지 않고 승용차가 세 바퀴를 돌았는데 뒤따라 오던 레미콘 트럭도 중앙선을 넘었는데 거기에 다시 들이박고, 그다음 반대편으로 밀려가서 인도의 경계석을 박고 멈추었다고 했다. 다행히 운전자인 보좌관과 아버지는 단순 찰과상만 입고 승용차는 폐차를 시킬 정도로 망가졌다고 했다.
“레미콘 두 대가 동시에 중앙선을 넘어오다니, 좀 이상하지 않아? 레미콘 운전자들은 졸음운전을 했다고 진술했지만 금방 신호를 받았는데 무슨 졸음운전을 해? 그것도 두 대씩이나 동시에?”
나한수는 그 점이 상당히 이상하다고 했다. 뭔가가 있다. 페르세우스는 그 점을 직감했다. 경찰서에서 사고조사를 하면서 운전자의 신원을 파악해서 뒷조사를 해보았더니 그 두 대의 레미콘 트럭 운전자는 건설 노조의 간부들이었다는 것이다. 사고가 상당히 수상했지만, 더 조사할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선거가 코앞에 닥쳤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개정되는 노동법에 반대하는 일인 단식 투쟁을 한 직후라고 나한수가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굉장히 찜찜한 구석이 있네요.”
페르세우스는 덤덤하게 말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덤으로 하나를 알게 되었다.
“거기가 사고가 날 자리가 아니거든.”
“그 점도 제가 파악을 해볼게요. 그런데 아저씨는 최경욱에게 경찰서 강력계로 불려 다니며 무슨 조사를 받았나요?”
페르세우스는 본격적인 걸 물었다.
“내용이 무엇이냐? 해평대교의 공사 수주 현황에 대해서 얼마를 알고 있느냐는 거였지. 낙찰받은 업체와의 연결고리를 캐물은 거지. 물은 거 또 묻고 시간 끌기 작전이었지”
그건 최경욱의 말과 일치했다.
“해평교통의 노선 변경과는 조사받은 게 없었나요?”
“그 의혹도 당연히 같이 받았지.”
경찰서 조사를 몇 번이나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대여섯 번 갔었다고 했다.
“대여섯 번이나요?”
그렇다고 했다. 선거운동으로, 초를 다투는 그 바쁜 그 시간에 대여섯 번을 갔었다면 보통 시간이 빼앗긴 게 아니다.
“아저씨는 집히는 구석이 없어요? 어느 선인지?”
“민수야! 그만하자.”
나한수도 지나간 일이라고 말을 아끼는 투가 역력했다.
그때 여직원이 옥상으로 올라와 나한수를 찾았다. 의뢰인이 와서 사무장을 찾는다는 전갈이었다.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상당히 많은 사건과 사고였다. 경찰서 교통사고 조사계에 가면 그 사고의 기록은 남아있을 것이다. 그걸 열람하는 건 쉽다. 운전자 신원을 알아내 뒷조사를 하면 답이 금세 나온다. 페르세우스는 커피를 다 마신 종이컵을 힘을 주어 움켜쥐었다.
나한수가 금방이면 된다면서, 오랜만에 만났으니 조금 기다렸다가 같이 저녁이나 먹고 헤어지자고 했지만, 페르세우스는 친구와 이미 약속이 있다고 둘러댔다. 나한수가 내려가는 것을 보고 페르세우스는 담배를 물었다. 법원 뒷산에 걸려 있던 해는 완전히 넘어갔다. 해는 이미 일수 장부에 붉은 도장을 찍었다. 노을이 붉게 하늘가에 번지고 있었다.
어느 선일까?
캐면 캘수록 석연찮은 구석이 자꾸 생긴다. 그런데 가닥은 전혀 잡히지 않는다.
나한수는 밥을 구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니고 딸이 중학에 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은 벌어야 할 나이가 분명하다. 옛날 일에 매달린 시간이 없어 보인다.
“아! 가엾은 포세이돈이여! 시대를 잘못 만난 거야.”
페르세우스는 나한수가 내려간 계단을 힐끔 보며 그 말을 되씹고 담배를 깊게 빨았다.
어느 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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