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219) 갈등의 봉합
손권이 노기가 충천하여 말하고 있을 때, 불현듯 국태 부인이 장중으로 들어선다.
"네가 무슨 조조더냐? 대업을 눈 앞에 두고, 동오에 장수가 얼마나 된다고 파직한다고 하는 게야!"
손권은 뒤를 돌아다 보며,
"아, 어머님?"
하고, 장수에게 물러가란 손짓을 해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태부인께 말한다.
"아, 어머니. 소자가 요즘 힘든 일이 많아, 홧김에 그런겁니다."
하고, 모친에게 이해를 구했다.
그러자 태부인이 다가오며 말한다.
"군주가 되려면 남들이 참지 못하는 일도 참으며 인의를 가지고 사람을 대해야 한다. 주유는 군에서 위신이 있는데, 네가 그의 수하들을 파직시킨다면, 젊은 장수들은 네 곁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도움 없이 군주 자리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
"어머니.. 허나, 일이 이지경이 되어버려, 소자도 속수무책 입니다."
"방법이 하나 있다. 당장 병부를 공근에게 돌려보내, 대도독 지위를 계속 맡기거라. "
모후가 이렇게 말하자, 손권은 한숨을 쉬며 어머니 앞으로 다가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하! ...어머니, 병부를 돌려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허나, 그때부터 공근은 형주를 공격하여 손유간에 대전이 벌어져서 피차간에 큰 피해를 입게되고, 대국의 꿈도 붕괴될 것입니다."
"음... 대전은 물론이고 대국도 붕괴되지 않을 것이다. 이 에미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전쟁을 곁에서 지켜 보았는데, 그걸 모르겠느냐. 지금은 먼저 군주와 신하간에 하나로 뭉쳐야 한다. 특히 너는 주유와 등지면 안된다. "
"그럼, 어머님 생각은요?"
"음!... 그냥, 상향이를 유비한테 보내, 혼인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지..."
"어머니?.... 원치 않으셨는데..."
"하!.. 그래, 나도 원치않지, 열여덟 귀한 딸을 쉰이 넘은 늙은이 한테 보내려니... 그래도 네 선친과 형이 남긴 가업을 지키려면,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구나."
"어머님!...."
...
손권은 그 길로 몸소 주유의 사가를 찾아갔다.
그의 집 앞에는 경계병이 입시해 있다가 손권을 보자, 부복하며 아뢴다.
"주공! 어인 일 입십니까? 도독께 가서 아뢰겠습니다!"
"공근과는 내가 형제가 아니더냐, 그럴 것 없다."
손권은 이렇게 말하면서 주유의 집으로 그대로 들어섰다.
"도독! 주공께서 납시셨습니다!"
시종 하나가 큰 소리로 주유를 불러내었다.
잠시후, 주유가 장중한 걸음으로 손권이 서성이고 있던 거실로 들어서며 예를 표한다.
"주공을 뵈옵니다."
손권이 뒤로 돌아서며 주유를 한참 바라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어,
"저한테 아직 화가나신 모양이군요."
하고, 말하면서 주유의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공근, 병부를 돌려 드리러 왔소. 받기 싫다고 해도 무조건 받아야 하오."
하고, 말하면서 사정조의 계면쩍은 말을 꺼냈다.
그리고 이어서,
"이번 일은 어찌됐든 내 잘못이오. 그대는 내 어머니를 친모로 섬기고, 날, 아우로 대하셨소. 과거 선형(先兄: 손책을 지칭함)께서 유혈을 공격할 때, 그대는 친척들과 사병을 모두 동원하여 나의 선형을 도와 주었소. 당시 선형의 군사들은 천 여명 뿐이어서 그대가 없었다면 , 오늘 날의 강동도 없었을 것이오. 선형께서는 그대를 친형제 처럼 여기셨고, 임종 전에도 나에게 말씀하시되, 내부 문제는 장소에게 묻고, 외부문제는 그대에게 물으라 하셨소. 이런 것만 보아도 선형의 마음 속에 공근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가 있지 않겠소? 이번 일은 내 잘못이오. 내가 선형의 유언을 어긴 거요. 이렇게 사죄드리겠소."
손책은 말을 마치며 주유을 향해 두 손을 모아 허리를 굽혀 사죄의 절을 하는 것이었다.
"아!? 주공, 소인이 죄를 청합니다!"
주유는 손권의 앞에 무릅을 꿇으면서 주저 앉았다.
엄연히 자신과 손권 사이에는 주군과 신하의 존재로써 감히 주군에게 사죄를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손권이 주유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한다.
"공근, 우린 군신 관계이나, 실은 형제요. 내가 아직 젊고 경험도 적어서 실수를 할 때가 있소. 그러니 형님 입장에서 한번만 용서해 주시겠소? "
"주공, 이제 그만 하십시오."
주유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한다.
"그럼 병부는?"
"받겠습니다. 허나 형주 문제는 ..."
손권이 주유의 말을 자르며 단호한 어조로 대답한다.
"그대의 뜻에 따르겠소. 어찌 했으면 좋겠습니까?"
"좋습니다. 어서 윤허해 주십시오. 유비를 잡고 형주로 진군하라고."
손권이 주유의 요청을 받고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주유...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 하늘이 무너져도 뜻을 꺽지 않는 고집불통의 사내였던 것이다.
손권이 대답을 주저하고 있을 때, 갑자기 단하에 노숙이 나타나며 말한다.
"주공! 그 일은 공근에게 맡기시면 안됩니다! "
"엇, 자경?"
손권도 느닷없이 나타난 노숙을 보며 놀란다.
노숙은 단상으로 올라와, 예를 표하며 말한다.
"주공, 지금 파릉 전선에 다녀오는 길인데, 형주로 진격했던 육만 군사는 모두 원대복귀 했습니다."
"아니? "
주유가 노숙에게 격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질을 하였다.
노숙이 주유에게 돌아서며 말한다.
"공근, 유비는 한실의 종친이라 그를 죽이면 한실과 적이 될 것이오. 지금 천하는 조조를 역적으로 여기고 있는데, 우리가 지금 유비를 제거한다면, 천하가 우리를 역적으로 여길 것이오. "
"유비가 한실에 종친이란 것은 허명이 아니오? 유비는 조조와 똑같이 난세의 효웅이오. 인의를 앞세워 천하를 노리는 인물이란 말이오. 그러니 지금처럼 지지세력이 약할 때 없애야만 하오. 이러다가 그의 세력이 커지면 그때는 없애고 싶어도 없앨 수가 없다는 것을 왜 모르시오? 지금 없애지 않으면, 그는 분명히 우리 동오의 적으로 남게 될 것이오!"
노숙은 주유의 이같은 소리를 듣자, 그를 설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손권을 향해 돌아서며 말한다.
"주공! 작금의 정세는 삼자의 대립인데, 강한 조조를 앞에 두고 약한 손유가 서로 싸운다면 조조는 천하를 얻게 될 것이고 우린 포로가 될 것입니다. 부득이한 사정이 생기더라도 제갈양과 교전을 해서는 안됩니다. "
"주공!"
주유도 노숙과 마찬가지로, 노숙을 말로써 설득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손권이 결정을 하라는 의미로 불렀다.
그러자 이들의 논쟁을 아무런 대꾸없이 뒤로 돌아서 듣고만 있던 손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아니하고 한참을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이윽고 입을 열어 말한다.
"듣기로는 공근이 유비를 멸하려는 것이, 제갈양에게 굴복하기 싫어서라는데, 그건, 전혀 근거없는 말이오. 공근은 탁월한 식견으로 한실의 혈통을 자처하는 유비를 꿰뚫고 있소. 호랑이는 기르면 후환 뿐! 유비란 자는 교묘한 수단으로 처신하는 자라, 그를 받아 준 사람은 누구든 고역을 치뤄야 했소. 과거 서주의 도겸에 의탁해서, 곧바로 도겸으로 부터 서주를 빼앗았고, 원소에 의탁한 뒤엔 그를 배신해서 조조에게 당하게 했소. 뿐만 아니라 유표에게 의탁해서는 그를 망하게 했소. 헌데 지금와서는 말 끝 마다 우리와 연합을 한다 하니, 그가 우리 동오에 무슨 해를 입히려 하는지 어찌 안단 말이오?"
"주공! 서주성은 도겸이 자청해서 넘겨 준 것이고, 원소는 유비의 조언을 듣지 않다가 조조에게 당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표가 망한 것은 장자를 후사로 옹립하지 않아 발생한 내란이 외환으로 번져서 망한 것이지, 유비가 그들을 망하게 한 것은 아닙니다."
"노숙! 지금 나 한테 하는 소리요? 무엄하다!"
손권은 노숙을 가리키며 대놓고 말했다.
"아!...."
노숙이 뒤로 한발 물러나 허리를 숙였다.
주유는 이런 두 사람의 대화를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이런 주유를 흘끔 쳐다본 손권은,
"며칠간 많는 생각을 했소. 애초에 당신 말만 안 들었어도, 형주를 잃지는 않았을 것이오. 제갈양이 파릉을 취하러 군사를 일으켰다는데,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으란 말이오? 그리고 노숙, 당신은 제갈양과 교분이 두텁다는 이유로 그러는 것이오?"
"주공!... 신이 제갈양과 교분이 있다해도, 서로 각자의 주군이 있습니다. 일단 양국이 교전하는 순간, 제갈양은 저의 적일 뿐입니다. 방금 제갈양을 거론하며 공근을 말씀하셨는데, 공근은 그를 단지 원수로 여길 뿐만 아니라, 제 일의 천적으로 여깁니다. 공근의 제갈양에 대한 증오는 이미, 국적 조조에 대한 증오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주공! 이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원한이 있더라도 이를 자제할 수 없다면, 반대로 그것은 우리를 스스로 해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공근이 사적인 원한 때문에 천하를 돌보지 않는 것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
노숙의 말을 표정의 변화 없이 대범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던 주유가 비로서 입을 열어 말한다.
"자경, 제갈양이 뭐라고 생각하시오?"
"적이자 벗이지요."
노숙은 주유를 향해선 이렇게 말한 뒤에, 손권을 향해 말한다.
"주공, 적이든 벗이든 상대하긴 쉬우나, 적이면서 벗이라면 상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는 언제든지 강적이 될 수도 있고, 언제든 맹방이 될 수도 있지요. 그를 적으로 여길지 벗으로 여길지는 우리의 지혜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공근의 고집만 듣고 결정하신다면, 오명만을 남기고 강동은 멸망하고 맙니다."
"노숙, 그 말대로라면, 나와 공근은 하나는 몽군이고 하나는 간신이로군!"
손권이 노숙에게 손가락질를 해가며 말했다.
노숙은 그 말을 듣자, 두 손을 올려 보이며,
"주공! 저의 뜻을 헤아려 주십시오."
하고, 허리를 굽히며 말하였다.
그러나 손권은,
"노숙! 무엄하도다! "
하고, 진노를 하는 것이었다.
"주공!"
노숙이 두 무릅을 꿇고 앉았다.
그러나 손권의 노여움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간의 노고를 생각하여 가만 두었지만 참군 도위직을 내려놓으시오."
하고, 매몰찬 명을 내렸다.
그러자 정작 놀란 사람은 주유였다.
그리하여 손권의 앞에 그도 무릅을 꿇으면서,
"주공! 고정하십시오. 자경의 언사가 과격했으나, 충심에서 나온 말이니 명을 거둬 주십시오."
하고, 아뢰었다.
그러나 손권은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결정했으니, 더 이상 권하지 마시오!"
하고, 말하면서, 노숙과 주유를 곁눈으로 돌아 보며, 덧붙여 말하기를,
"나를 군주로 안 보는데, 내가 어찌 신하로 보겠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노숙의 두 눈이 <퀭>하게 변하면서, 머리가 저절로 바닥으로 향했다.
"망극하옵니다! "
하고, 말하는 노숙의 눈에서는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르면서, 명을 거두기 바라는 주유의 안타까운 시선이 손권을 향하여 쏟아졌다.
그러나 군주의 대답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잠시후, 노숙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손권에게 예를 표하고, 천금 만금 무거운 발걸음으로 단하로 내려갔다.
이를 지켜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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