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이 처한 상황에 친구 엘리바스의 위로의 말
(욥기 4장 1-21절)
1-5.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싫증을 내겠느냐,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이제 이 일이 네게 이르매 네가 힘들어 하고 이 일이 네게 닥치매 네가 놀라는구나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싫증을 내겠느냐,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엘리바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친구의 불행을 보고 권면, 위로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토로한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함으로써 욥이 자신의 말을 불쾌히 여기지 말 것과, 욥에 대한 자신의 우정을 확인하여 자신이 말할 내용을 부드럽게 해준다.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엘리바스는 과거에 욥이 행한 선행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의 변론의 서두를 시작한다. 욥이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 빠진 사람들을 보살피고 가르친 것에 대한 칭찬이 주를 이룬다. 이처럼 엘리바스가 욥의 긍정적 측면을 먼저 부각시킨 것은 현재 고난에 빠진 욥을 위로하고자 하는 이유에서이기도 하지만 현재 욥에게 닥친 재난이 인과응보의 결과임을 암시하려는 의도에서이기도 하다.
욥이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계하여 왔음을 가리킨다. 욥이 죄인된 이웃을 책망하여 선한 길로 강하게 이끌었음을 시사해 준다.
손은 능력, 보호, 도움 등을 상징한다. 따라서 손이 늘어진 자는 용기를 잃고 낙담한 자를 비유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허약한 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넘어지는(가샬) 자는 비틀거리다, 빼앗기다, 쇠하다 등의 뜻을 가진다. 하나님의 징계로 멸망해 가는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욥이 죄를 짓고 멸망해 가는 사람들을 권고하여 생명의 길로 돌이켰다는 뜻이다.
무릎이 약한 자는 자기 스스로 몸을 지탱하지 못하는 자, 즉 신체 허약자를 가리킨다. 이 말은 정신적 허약자, 힘이나 담력을 상실하여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소외계층을 의미할 수도 있다.
욥이 자신의 현재 처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타인들에게는 격려와 용기를 주었으나, 이제 자신에게 재앙이 임하자 낙담과 불신앙에 빠졌다는 뜻이다. 엘리바스가 욥의 지난날의 의로운 행적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로 하여금 현재의 불행에서 일어나도록 권면, 위로했다는 뜻이다.
6-9.네 경외함이 네 자랑이 아니냐 네 소망이 네 온전한 길이 아니냐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욥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이 그의 행위의 선함에 기초해 있다는 엘리바스의 주장이다. 엘리바스가 본 신앙이란 하나님께서 의인에게는 축복을 주시되 악인에게는 징벌을 주신다는 권선 징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욥 자신도 이런 생각을 지녔기 때문에 자신의 고난에 대해 스스로 의아하게 생각했다.
엘리바스의 변론은 선악의 보응에 대한 원리를 욥의 고난이라는 특수한 영역에 적용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악이 징계받고 선이 보응받는 것이 일반적 원리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이다. 엘리바스는 바로 이런 측면을 고려함 없이 욥의 고난을 이해하려 했다는 것이다. 심은대로 거둔다고 하는 보편 원리를 내세우고 있으며, 콧김은 악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0-11.사자의 우는 소리와 젊은 사자의 소리가 그치고 어린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사자는 사냥한 것이 없어 죽어 가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
사자는 용맹성으로 인해 담대한 의인, 권위를 상징하기도 했으나 그 파괴적 성향으로 인해 악인, 죄인 등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젊은 사자, 늙은 사자, 새끼 사자는 모든 악인을 상징한다. 따라서 엘리바스는 본절에서 남녀 노소 빈부 귀천을 불문하고 악인은 그 누구도 공히 심판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엘리바스는 악인이 결국 열매가 없으므로 인해 멸망할 것을 나타내고자 한다.
12-14.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어떤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의 초기 단계를 표현한다. 사람의 청각이 하나님을 감지할 듯 말 듯한 세미한 음성이 주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사가 과부의 죽은 아이를 살릴 때도 미세한 음성을 듣는 장면이 있다.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깊이 잠들 즈음은 무의식 상태가 인간의 의도적 능력이나 방편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초월적 간섭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초월적 임재에 의해 무의식 상태에 빠짐으로써 계시를 받을 준비를 위했던 것이다.
생각이 번거로울 때는 초월적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그의 마음이 크게 동요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라고 말하므로, 하나님의 초월적 임재에 접한 엘리바스가 그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인해 온몸에 전율을 느꼈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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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9.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으니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그 때에 영(루아흐)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루아흐는 영, 바람, 생명 등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으나 하나님과 관련하여서는 영을 뜻한다.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눈으로 보는 형상이 아니라, 영광에 찬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한 목소리를 들으니 사람(하에노스:이쉬)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하에노스는 깨어지기 쉽다, 병들다 등을 뜻하는 동사 아나쉬에서 유래하여 연약한 인간,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성을 지닌 인간을 가리킨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영원한 분이신 하나님 앞에서 절대 의로울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유한성과 부패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종은 하나님을 수종드는 자, 곧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의 무리를 가리킨다. 천사들은 인간보다 성결하여 하나님 가까이에서 수종드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믿지 않고 미련하다고 하신 것은 타락한 천사의 영이 흙에 들어가 인간이 된 존재를 비유하여 말씀한다.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흙은 가끔 죄를 상징하기도 한다. 흙 속에 갇힌 영은 옥에 갇힌 상태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시기 전에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서 전하였다는 베드로전서 3장 19절의 의미이다. 흙을 티끌로 표현했다. 흙의 시작이 티끌이라는 것이며, 인생의 유한함과 허무를 나타낸다.
하루살이에 해당하는 아쉬는 그 생명의 짧음과 연약성을 나타낸다. 인간의 나약함을 나타내고 있다.
20-21.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가 없으리라 장막 줄이 그들에게서 뽑히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은 지혜가 없이 죽느니라
아침에 태어났다 저녁에 죽는 것 같은 인간 생명의 덧없음과 짧음을 과장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짧은 인생이 어떻게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 앞에서 의를 주장할 수 있겠는가 라는 반문이 본문 속에 내포되어 있다.
장막 줄은 인간의 육체와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생명을 가리킨다. 장막을 지탱하고 있는 줄을 뽑을 때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바스는 인간 육체의 유한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한 바 있으며 지혜를 언급함은 인간의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대해서 무지함을 나타낸다.
(요약 정리)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욥이 처한 상황이 결국 인과응보의 결과로 생각하며, 유한한 인간은 영원하신 하나님에게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욥을 의로운 자라고 칭하셨는데, 사탄이 욥을 치므로, 그 상황이 친구의 눈에는 욥을 의로운 자로 인식하기에는 너무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흙에 갇힌 영적 존재,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의 의를 받을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