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에 대한 엘리바스의 판단과 권면
(욥기 5장 1-11절)
1-2.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거룩한 자는 욥기 1장 6절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욥이 자신에게 닥친 고난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대해 분노와 시기를 터뜨리며, 이로 말미암아 결국 악인과 마찬가지로 멸망하게 되리라는 내용이다.
그동안 엘리바스는 욥을 직접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으나 이 시점에 이르러 욥이 죄를 범했다고 하는 것이다. 욥이 고난 중에 다소 불신앙적인 것처럼 보이는 저주와 한탄을 토한 것은 사실이나 그가 하나님을 저주하거나 믿음을 상실하지는 아니했으므로 엘리바스의 말은 지나친 것이다.
3-5.내가 미련한 자가 뿌리 내리는 것을 보고 그의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그의 자식들은 구원에서 멀고 성문에서 억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그가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덫에 걸린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
엘리바스는 자신의 경험을 언급함으로써 욥의 상황에 대한 인과응보의 결과를 입증하려고 한다. 뿌리 내리는 것에 대해서, 나무가 튼튼히 뿌리를 박고 무성해 가는 것처럼 종종 악인이 현세에서 번성한다는 뜻이다.
“그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내가 미련한 자의 번성을 보아왔다. 그래서 내가 당장 그 집을 보고 저주를 하였다 라는 것이다. 악인이 멸망하자 그것이 하나님의 저주인 줄 알고 엘리바스도 저주했다는 것이다.
“그의 자식들은 구원에서 멀고 성문에서 억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가족에게 임할 재앙을 묘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아비의 죄가 삼사대까지 간다는 말을 한다. 아비의 범죄가 그 자손에게 악 영향을 미쳐 그 역시 아비와 동일한 범죄를 자행하여 심판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성문은 법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미련한 자의 자녀가 재판에서 불의한 판결을 당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성문은 성전을 의미하며, 죄를 대속해 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가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덫에 걸린 것도 빼앗으며
악인의 가족이 받는 재앙을 묘사한 엘리바스가 이번에는 그가 받을 재산상의 손해를 언급하고 있다. 즉, 악인은 그 재물을 불의한 방법으로 획득하기 때문에 그것이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또한 그것을 방비하기 위해 아무리 계책을 마련한다 할지라도 잃을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
올무는 악인의 재산을 빼앗는 침입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욥이 불의의 약탈자, 즉 스바 사람과 갈대아인에 의해 그 재산과 자녀를 잃은 사건을 연상시킨다. 아마 엘리바스는 이러한 암시적인 사건을 예로 제시하며 욥의 은밀한 죄를 추궁하려 하는 것이다.
6-7.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엘리바스는 재난이 외부적인 원인이 아닌 인간 내부의 원인에 의해 발생되는 것으로, 그것은 자연 발생적으로 생기는 것이나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문제(죄의 부패성)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인생은 곧 고난이다 라는 논리를 통해 고난이 모든 인간들에게 임함을 역설하고 있다. 즉, 인간 모두는 이 고난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의인이라 칭하는 욥이라는 특수한 한 개인을 모든인생이 죄인이라는 범주에 포함시켜 그의 고난을 정당화시키고 따라서 욥으로 하여금 자신의 고난에 아무런 불평없이 무조건 순응하기만을 요구했던 것이다.
불꽃(레쉐프)에서, 레쉐프는 레쉐프의 아들들이다. 고대 가나안 신화에 의하면 역병과 파괴의 신이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는 불, 역병, 번갯불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불이 탈 때 그 재가 항상 위로 치솟는 것처럼 인생의 고난이 피할 수 없는 자명한 것임을 나타내 주는 비유이다.
8-11.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엘리바스의 욥에 대한 강한 질책의 태도가 어느 정도 완화되어, 권면을 시작하고 있다. 즉, “너는 쓸데없이 불평을 터뜨림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구나, 나 같으면 이런 일을 일을 그만 두고 하나님께 기도하겠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엘리바스가 인간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엘리바스는 비(물)를 하나님의 은혜(섭리)로 이해하고 있다. 즉 메마른 땅과 밭이 비를 받아 소성하듯. 인간 역시 영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살아간다는 뜻이다.
“애곡하는 자”는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고 앉아 극심한 슬픔을 나타내는 자를 가리킨다. 즉 죽은 자를 일으키는 부활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요약 정리)
욥기 5장 1-11절은 욥의 고난과 그의 친구 엘리바스의 권면을 통해, 욥의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로 인식되며, 하나님께서 낮은 자를 높이고 슬퍼하는 자를 일으키신다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나타낸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을 찾고 징계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고 고난을 겪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겨야 한다고 권면한다.
오늘날 신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어 의인으로 칭함을 받는 자라 할지라도, 육적인 옛사람은 그대로 남아있다. 비록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정체성의 변화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영적인 부분은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라 칭함을 받을지라도, 육으로 비롯된 모든 것은 자기가 행한 일로 인한 인과응보로 나타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려움과 불행이 닥칠 때, 자신을 바라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고, 돌이켜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라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