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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570) - 이순신 백의종군길 이음 도보 대행군 참가기(3)
1. 충무공의 혼이 서린 아산(1)(평택~아산 32km)
8월 18일(금), 구름 끼고 약간 더운 날씨다. 아침 6시 반, 숙소에서 가까운 곳의 음식점(전주식당)에서 조반을 들었다. 숙소(짬모텔)와 아침 식당 모두 5년 전 남한일주 때 들렸던 곳, 나이 지긋한 식당 주인은 예약 차 들른 선상규 회장을 알아보고 반긴다.
오전 7시, 평택역 광장에서 아산을 향하여 4일차 행군을 시작하였다. 이곳에 사는 안두옥(67세, 목사) 씨가 신문(온양신문) 보도를 통하여 행사내용을 알았다며 1일 참가자로 합류하였다. 출발 후 20여분, 안성천의 군문교를 건너 아산 방향으로 접어들자 들판의 벼이삭이 길손을 반기고 길가의 무궁화 꽃이 장도를 축하하듯 해맑은 미소를 보낸다.
한 시간 걸어 도착한 곳은 팽성 객사, '숨 쉬는 600년 객사 잠들어 있는 문화재가 깨어나다'고 적힌 객사의 분위기가 우아하다. 이곳에서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는 향토 인물들과 반갑게 조우, 하루 이틀 조용하던 대열에 활기가 솟는다. 기다리고 있던 인사는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보존회의 박승운 회장과 한유자 사무국장, 아산향토연구회의 천경석 회장으로 오랫동안 충무공의 위업과 행적을 탐구하고 선양하는 전문가들이다. 오늘과 내일 아산 일대를 행군하는 동안 동행하며 안내와 탐사에 큰 도움을 주러 나선 것, 발벗고 나선 향토의 권위자들이 고맙다.
잠시 후 팽성119안전센터를 지난다. 5년 전 한일 걷기 동호인들이 한국일주행사로 이곳을 지날 때 큰 비가 내려 힘들었다.폭우에 마땅히 쉴 곳이 없어 길 옆의 안전센터를 찾아 용무를 보고나니 따뜻한 차를 대접하여 고마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옆을 지나며 나그네에게 물 한 잔 대접하는 호의도 이처럼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것임을 새긴다.
두 시간쯤 걸으니 평택을 벗어나 충남 아산시 둔포면에 접어든다. 작은 하천을 경계로 행정구역이 바뀌는 초입에서 백춘기 둔포면장과 지역유지들이 일행을 맞는다. 그곳에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길' 이라 새긴 비석이 있다. 이곳을 비롯하여 아산으로 가는 길의 여러 곳에서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길 보존회가 세운 같은 내용의 비석과 만난다.
비문에는 '1597년 4월 1일(음) 옥문을 나와 숭례문 밖 윤간의 종의 집에 이르러 아들, 조카, 친지들과 옥중에 지친 몸을 추스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4월 2일까지 머무시다. 4월 3일 일찍 남쪽으로 길을 떠나 경기 과천, 수원, 오산, 송탄을 거쳐 평택 팽성(객사) 근처 이내은손 집에 투숙하고 4월 5일 해가 뜨자 길을 떠나 선산(아산시 음봉면삼거리 산 2-1번지)으로 가시던 길목(난중일기 중)'이라 적혀 있어 우리 일행이 4일간 이곳까지 걸어온 행정을 되새기게 한다. 향토사학자 천경석 씨는 이내은손 집에 묵었다는 내용을 고증하기가 어렵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아산은 빠르게 발전하는 지역, 둔포면 일대에 테크노밸리가 들어서며 야산이 없어지고 옛길도 많이 바뀌어 장군의 선산과 예전에 살던 현충사 일대로 가는 길을 정확하게 찾기어렵다는 향토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들의 안내로 가능한 옛길의 흔적을 따라 가는 길, 공사 중으로 끊긴 곳의 흘탕길에서는 진흙에 신발이 뻐지기도.
산업단지와 들판을 지나 둔포면을 뻐져나오니 아산 현충사로 이어지는 큰 도로명이 충무로라 표기되어 있다. 출발 지점의 생가(명보극장) 인근이 서울 충무로였는데 묘소와 사당가는 길도 충무로, 그길을 되밟는 발걸음이 뜻깊다. 12시 경 충무공의 묘소가 있는 음봉면에 들어서니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길' 비석이 세워진 지점에서 김희원 음봉면장, 엄윤식 파출소장, 오순임 자치위원장, 이종인 이순신 장군 13대손 등이 일행을 맞는다. 잠시 환담 후 음봉면 소재지의 식당(동의보감)에서 구수한 갈비탕으로 점심, 종친회에서 식사대접을 하여 감사하다.
오후 1시, 음봉면사무소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이충무공묘소르 향하였다. 1598년 11월 19일(음력) 노량해전에서 돌아가신 충무공의 유해는 삼도수군통제영인 고금도를 거쳐 아산 현충사 부근에 3개월여 가묘로 모신 후 음봉면 금성산으로 모셔졌다. 그 후 16년 지나서 1614년 음봉면 어라산에 이장 후 현재에 이르렀다. 묘소관리는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사무소, 넓직한 산록에 수목이 울창한 묘역은 여느 왕릉보다 웅장하고 품위 있는 모습이다. 일행 모두 도열하여 경의를 표한 후 박승운, 천경석 씨의 안내로 인근에 있는 첫 묘소 금성산 묘역도 찾았다.
묘소참배를 마치고 음봉사거리로 돌아와 삼거교, 동천리 등을 거쳐 교통량이 많은 큰 길을 피하여 안전한 산길로 접어들어 현충사로 향하였다. 조용한 산길 지나 현충사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가깝다. 걸은 거리는 33km, 이번 일정 중 가장 긴 거리다. 현충사에서는 아산시청의 이상득 문화관광과장과 관계공무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나와 일행을 맞는다. 30만평이나 되는 경내는 고급 수목들과 윤기 있는 잔디로 품격 높은 정원의 분위기, 충무공의 초상이 있는 사당을 찾아 분향과 경례로 백의종군길 대행군의 예를 갖추었다. 방명록에 적은 글, '충무공의 애국애민 정신을 받들어 백의종군길 걸음 그 고귀한 뜻을 체득하겠습니다. 2017. 8. 18 한국체육진흥회 백의종군길 이음단 일동'
품격이 느껴지는 현충사 사당
현충사 방문을 마치니 저녁 6시가 가깝다. 한국체육진흥회 충남지부에서 저녁식사에 초대, 곧장 약속장소로 향하였다. 식당은 경관이 좋은 호수변에 있는 오월의 꽃수레, 맥주와 소주를 곁들인 깔끔한 퓨전한정식이 입맛을 돋운다.
식사 중 진지한 토론이 이어진다. 백의종군의 의미는 무엇이며 복식이나 행장은 어떠하였고 동행자는 누구였는가? 말을 타고 이동하였다니 일상으로 연상되는 힌옷차림은 아니지 않겠는가, 금부 도사와 나졸이 동행하였을테니 숙식도 간단하지 않은 일이겠다. 영화 등에서는 경상좌수사 배설이 악역으로 등장하는데 그가 가져온 12척이 없었다면 명량해전을 치를 수 있었을까. 백의종군보존회의 박승운 회장은 이 일을 맡은지 25년, 향토사학자 천경식 씨는 역사적 고증에 일가견이 있어서 대원들과 수준 높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특히 박승운 회장은 여러 차례 백의종군 행사를 가지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이번 대행군이 성사된 것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다.
열심히 걷고 정중히 맞아주며 열띤 대화로 분주한 하루, 일행과 관계자 모두 수고하였습니다.
*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의 나라사랑 정신을 널리 알리고 이를 되새기기 위한 곳이다. 1706년(숙종 32년)에 아산 유생들이 조정의 허락을 받아 세운 사당이며, 1707년 숙종이 현충사(顯忠祠)라는 현판을 내렸다. 충무공 종가에서 관리해오던 것을 1966년부터 1974년까지 정부주도의 성역화 사업을 통해 현재의 현충사가 들어섰고 해마다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여 이곳에서 다례행사를 치른다.
2. 이순신의 혼이 서린 아산(2)(현충사~ 게바위 왕복 29km)
8월 19일(토), 전날에 이어 구름 끼고 약간 더운 날씨다. 아침 6시, 숙소(베르사체 모텔)를 나서 승합차에 올랐다. 아침식사 장소는 현충사 가는 길목의 도로변에 있는 전주콩나물국밥집, 전날 저녁에 반주도 곁들인 터라 적절한 메뉴다. 식사를 마치고 현충사에 도착하니 7시가 가깝다.
전날 안내를 맡았던 이들(박승운, 천경식)과 아산시청의 이상득 과장 일행이 행군에 동행하러 먼저 와서 기다린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충무공의 휘호를 새긴 큰 비석 앞에서 기념촬영, 자리를 함께 한 이곳 출신의 이명수 국회의원이 출발에 앞서 격려의 말을 보탠다. ‘안보가 간절한 시점, 충무공의 호국애민정신을 새기며 백의종군길을 걷는 발걸음이 뜻깊다. 휘호에 적힌 대로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신념으로 서로 진력하기를 다짐하자.’
게바위로 출발 전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휘호를 새긴 비석 앞에 선 일행
오늘은 이순신이 백의종군길 아산체류 중 어머니의 죽음을 맞은 비운의 시기를 인고의 정신과 불굴의 기개로 충과 효의 절묘한 본보기를 보인 학습장을 탐사(현충사~게바위를 왕복)하는 코스다.
그 전후 사정은 이렇다. 1598년 3월, 정유재란 때 일본 측의 계략에 빠진 모함으로 파직 당한후 의금부에 갇힌 이순신은 4월 1일에 석방되어 백의종군길에 나선다. 이순신의 임지인 고금도의 삼도수군영에 머물던 어머니 변 씨는 배편으로 고금도를 떠나 아산으로 향한다. 4월 5일 아산에 도착한 이순신은 4월 13일 어머니를 맞으러 아산 바닷가에 나가 기다리고 있던 중 종으로부터 어머니의 뜻밖의 부고를 전해 듣는다. 향년 83세, 몸부림치며 달려가 어머니의 시신을 인계 받는 곳이 인주면 해암리의 게바위(蟹巖)다. 그곳에서 시신을 수습한 후 4월 16일 배편으로 중바위까지 운구, 당일 아산 집으로 모셨다. 의금부 도사는 갈 길을 재촉, 4월 18일에 이순신은 미처 장례를 치르지 못한 체 어머니를 하직하고 길을 떠난다.
오전 7시에 현충사를 출발한 일행은 향토사학자 천경식 씨의 안내로 아산에서 서해안으로 흐르는 곡교천(국가하천)을 경유하여 오가는 왕복 30여km를 주변 지세와 하천의 경로에 대한 심도 있는 설명을 들으며 왕래하였다. 현충사에서 게바위까지는 약 15km, 제방 길을 따라 인주면 해암리의 게바위에 도착하니 오전 11시다. 게바위 주변을 공원처럼 가꾼 박승운 회장의 설명, ‘이곳은 사유지인데 3년 전에 독지가의 후원으로 이를 사들여 나무를 심고 비석도 세우는 등 정비를 하였다. 충무공의 충효정신을 기리는 뜻깊은 장소로 가꾸어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그 숭고한 뜻을 새기는 장소가 되기 바란다.’고 말한 후 게바위를 향하여 넓죽 절을 올린다. 일행 중 강호갑 대원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이 떠오른다며 뒤따라 절을 올리기도.
게바위가 있는 인주면 해암리 마을
한국체육진흥회는 이식하기 좋은 가을에 적당한 수종을 택하여 기념식수하기로 뜻을 모으고 식수할 장소를 점찍었다. 30여분 게바위에 머문 후 갔던 길을 되짚어 나오니 12시가 가깝다. 돌아오는 길, 들판 건너 도로변에 집밥이라 간판을 단 뷔페식당이 있다. 식당에 들어서니 외딴 곳인데도 찾는 이들이 많다.
오후 1시, 점심을 들고 제방 길 따라 아산 시내까지 내쳐 걸으니 오후 3시 넘어 은행나무 길로 알려진 현충사 인근의 문화광장에 이른다. 그곳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로 목을 축이고 나오려니 카페 출입구에 놓인 책자에 눈길이 간다. 달포 전인 7월 22일에 아산에서 열린 2017년 국제학술심포지엄, ‘제1회 독립과 평화를 위한 아산 담론’ 책자다. 표지에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이순신, ‘위국헌신군인본분’의 안중근 휘호가 인상적이고 수록된 글 중 ‘임진왜란 시기 이순신의 아산지역 활동에 관한 소고’(순천향대학교 노승석 교수)의 발제가 때에 맞게 잘 정리되어 있다.
그 첫부분과 마지막 부분, ‘이순신(1545~1598)은 자가 여해, 시호는 충무이다. 1545년 3월 8일에 한양 건천동(중구 인현동 1ㅣ가 31-2)에서 이정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이순신의 집안은 본래 유학을 업으로 했던 집안이었다. 21세 때 아산 백암리에 거주하던 전 보성군수 방진의 외동딸과 혼인했다. 방진은 무과출신으로 활쏘기를 잘했다. 이순신은 방진의 집에서 처가살이를 하였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무예를 연마하기 시작하여 무과에 합격하기까지 10년 동안 여기에서 수련하였다....
이순신은 전란 중에 어머니를 잃었다. 죄인의 몸이 상제가 되는 악순환의 상황에서도 왕명을 받들어 전쟁터로 나아가야 했다. 어머니의 죽음과 전쟁 사이에서 인간의 도리를 다해야하는 진퇴유곡의 어려운 현실, 그러나 부디 나라의 치욕을 씻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당부 말씀을 따르는 것이 효도이자 충성이라는 생각으로 먼 출정의 길에 올랐다. 백의종군기간 중 특히 아산에 머무는 동안(4월 5일~18일) 이순신이 보여준 인고의 정신과 백절불굴의 모습은 7년 전쟁 중에서 가장 위대했다. 고난과 슬픔으로 점철된 자신의 비운적인 운명을 국난극복의 대의를 실현하는 모습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또한 어떠한 위기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초극의 의지를 보임으로써 범인이 미칠 수 없는 경지의 위대성을 드러내었다. 아산은 이순신의 선산이 있는 곳이자 어머니의 고향으로서 전란 중 이순신에게 항상 불굴의 의지를 지탱케 했던 그의 정신적 본산이었다.’
이 글을 통하여 문인 거주지인 건천동의 어린 시절 학습과 장인을 통한 무예 수련 등 그의 선비정신과 무인의 자질이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쳤음을 일깬다.
현충사에 도착하니 오후 4시 반, 동행한 인사들과 작별한 후 숙소에 도착하니 피곤이 몰려온다.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에도 연일 걷기에 적당한 날씨여서 다행, 이틀간의 아산 탐사가 알차게 이루어진 것이 감사하다. 푹 쉬고 내일 또 좋은 행군이기를.
첫댓글 이토록 많은 분들이 그 분의 뜻을 기리고 발자취를 좇아 걷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게 신기합니다.
세대를 아우르는 그 분의 리더쉽에는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하는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