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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른쪽 멀리가 소백산 비로봉
輕陰軟綠細如紗 옅고 연한 녹음은 비단처럼 고우며
裛露花香襯紫霞 이슬 젖은 꽃향기는 노을에 어울리네
蠟屐春衫隨意去 납극과 봄 적삼으로 마음대로 가노라니
不知行入下伽陀 나도 몰래 하가타암으로 발길 들어섰네
―― 금계 황준량(錦溪 黃俊良, 1517~1563, 조선 전기의 문신), 「소백산 욱금 길을 가다가 회암의 시에
차운하다(小白山郁錦路中次晦菴韻)」중 ‘하가타암(下伽陀庵)으로 가는 도중에(下伽陀路中)’
주1) 욱금은 황준량이 살았던 경북 영주시 풍기읍 욱금리를 말한다.
주2) 회암은 주희(朱熹)의 호다.
주3) 납극은 밀랍을 칠하여 광택이 나게 한 나막신. 동진(東晉) 때 조약(祖約)은 재물을 좋아하고, 완부(阮孚)는
신(屐)을 좋아하여 둘 다 누(累)가 되는 일이긴 하나 누가 좋고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이가 조약의
집에 가 보니 조약은 마침 돈을 세고 있다가 손님이 이르자 세던 돈을 농 뒤로 치우고 몸을 기울여 가리면서
매우 부자연스러운 표정이었고, 완부의 집에 가 보니 그는 마침 나막신에 밀랍을 칠하다가 스스로 탄식하기를
“내 일생에 이 신을 얼마나 더 신을는지 모르겠다.” 하며 기색이 자약하였으므로, 여기에서 비로소 승부가 판가
름이 났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晉書 卷49 阮孚列傳》
주4) 소백산에 있던 암자이다. 소백산에는 상가타암(上伽陀庵), 중가타암(中伽陀庵)도 있었다.
ⓒ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 강성위 (역) | 2014
▶ 산행일시 : 2022년 5월 7일(토), 오전에는 흐리다 오후에 갬, 바람 세게 붐
▶ 산행인원 : 신사산악회 34명
▶ 산행코스 : 죽령, 제2연화봉(기상관측소), 연화봉, 제1연화봉, 비로봉, 어의곡
▶ 산행시간 : 6시간 45분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16.4km
▶ 갈 때 : 신사역 출발, 죽전, 치악휴게소 들렀다가 죽령으로 감
▶ 올 때 : 어의곡 출발, 여주휴게소, 죽전 들렀다가 신사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7 : 40 - 신사역 출발
10 : 25 - 죽령, 산행시작
12 : 08 - 연화봉(蓮花峰, 1,376.9m)
12 : 42 ~ 13 : 00 - 1,320m봉, 점심
13 : 25 - 제1연화봉(1,395.0m)
13 : 40 - 1,374m봉
14 : 22 - ┫자 천동리 갈림길
14 : 35 - 소백산 비로봉(△1,439.7m)
14 : 50 - Y자 국망봉 갈림길
17 : 10 - 어의곡주차장, 산행종료
17 : 33 - 어의곡주차장 출발
20 : 16 - 신사역, 해산
2. 소백산 개념도
소백산 철쭉 산행이라기에 흔쾌히 따라나선다. 신사역에서 평소보다 40분 늦은 7시 40분 출발이라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고 갈 수 있을까 한 걱정은 기우였다. 아니나 다를까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전용차로가 있었다. 훤히 트인 차로를 우리는 고속으로 신나게 달린다. 영동고
속도로도 마찬가지고, 산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올 때도 그랬다. 대통령당선자의 위세가 이랬을 것. 기분 좋다.
터널 지날 때마다 일기가 변한다. 차창 윈도우브러시가 바쁜 걸 보니 비가 내리는 모양이다. 기상예보에 없던
비다. 소백산도 이럴까 조금은 불안하다. 우장을 준비하지 않았다. 죽령 가는 도중 치악휴게소에 들른다. 이제
는 휴게소가 500원짜리 커피자판기를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안다. 건물 맨 왼쪽이든 맨 오른쪽 코너를 돌아가면
있다. 내게 커피전문점의 커피는 턱없이 비싸기도 하지만 밍밍하여 도무지 아무런 맛이 없다.
죽령. 곧 비가 내릴 듯이 하늘이 잔뜩 흐리다. 1팀은 죽령에서 비로봉을 올랐다가 어의곡으로 하산하고, 2팀은
천동리에서 비로봉을 오르고 어의곡으로 하산한다. 산행인원 34명(?) 중 15명이 죽령에서 내린다. 이 많은 인원
이 죽령에서 산행을 시작한다니 산행대장이 먼저 놀란다. 우리가 늦게 도착해서 그런지 죽령이 텅 비었다. 산행
은 자유산행으로 7시간을 주겠다고 한다. 어의곡 17시 30분이 데드라인이다.
왜 ‘죽령(竹嶺)’이라고 했을까? 영남인들이 서울로 과거를 보러갈 때 죽령을 넘는 건 대가 미끄러워 낙방할
우려가 있고, 추풍령은 추풍에 낙엽 떨어지듯 그렇게 떨어질 우려가 있어 피했다고 한다. 문경새재를 넘는 영남
대로가 과거 길이었다. 『대동지지』에는 “신라 아달왕 5년(158)에 죽죽(竹竹)이 개설했다.”고 수록되어 있다
한다. 또한 『삼국사기』에 “아달라왕 5년(158) 3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는 기록에서 ‘죽령’이라는 지명
이 처음 나타난다고 한다.
『삼국사기』의 관련 내용이다.
三國史記 卷 第二. 新羅本紀 第二.
<阿達羅>尼師今
五年, 春三月, 開<竹嶺>. <倭>人來聘.
(5년 봄 3월, 죽령이 개통되었다. 왜인이 예방해왔다.)
그렇다면 이 고개를 개설한 죽죽(竹竹)의 이름을 따서 ‘죽령(竹嶺)’이라 하지 않았을까? 중국 진(秦)나라 때 대대
적인 관개사업으로 120km에 달하는 수로를 뚫은 ‘정국(鄭國)’의 이름을 따서 그 수로를 ‘정국거(鄭國渠)’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죽령은 예전에 무척 험했던 모양이다. 다음은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의 시 「죽령
(竹嶺)」의 일부다. 오늘도 음침한 날씨에 한기가 서려 봄을 느끼지 못하겠다.
石棧盤回危且險 꼬불꼬불 바위 잔도(棧道) 위태롭고 험하여서
行行脅息頻側望 걸음마다 숨죽이고 자주 옆을 바라보네
三月嶺上見積雪 삼월에도 고개 위엔 눈이 아직 쌓여 있고
高處寒凝未暄暢 높은 곳엔 한기 서려 봄을 느낄 수 없구나
3. 연화봉 가는 길, 안개가 자욱하고 안개비가 내렸다
4. 연화봉 가는 등로 주변
5. 연화봉 정상 표지석
6. 홀아비바람꽃, 연화봉 내리는 도중에
7. 홀아비바람꽃 화원, 안개비에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대부분 움츠렸다
8. 연화봉 내려 제1연화봉 가는 길
9. 연화봉 서쪽 산등성이
10. 연화봉을 가린 안개구름이 점차 걷힌다
11. 연화봉 서쪽 골짜기 주변
버스에 내리자마자 쏜살같이 뛰쳐나간다. 콘크리트 포장한 완만한 대로다. 갓길에 등산객의 통행을 위해 야자
매트를 깔았다. 곧바로 안개 속에 든다. 바람이 불어 안개가 걷히는가 했더니 다른 데의 안개를 이곳으로 모는
것은 아닌가 의심한다. 산행대장이 발이 빠른 사람들은 국망봉까지 갔다 오기가 충분할 거라고 했다. 그렇다고
국망봉에서 늦은맥이재로 가서 어의곡으로 내려오는 길은 너무 멀어 시간에 대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갈등이 인다. 죽령에서 비로봉까지 11.3km다. 거기를 3시간 정도 걸려 오른다면 가능하다. 일단 속도를 낸다.
안개 속이라 보이는 것이 없고 안개비가 내리니 걷기는 좋다. 의식적으로 내 앞선 사람들을 추월하기 시작한다.
1시간이 걸려 내가 맨 선두로 나서기 시작한다. 그런데 산행복장과 말투에서 산꾼 냄새가 짙게 밴 두 사람과
약 10m 거리를 계속 유지하며 걷는 중에 듣게 되는 그들의 대화가 귀에 거슬린다.
그들은 일상의 일을 둔탁한 고성으로 때로는 화를 내듯이 내지른다. 산이 울린다. 슬그머니 짜증이 난다. 힘이
좋은 그들은 산행시작과 동시에 이야기를 시작하여 1시간이 넘도록 조금도 쉬지 않는다. 내가 더 멀리 앞서지
못하여 마치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다. 안개는 쉬이 걷힐 것 같지 않다. 이대로라면 계속 줄달음해서 국망봉을
갔다 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거기에 희귀한 야생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로봉에서
보지 못하는 특출한 조망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제2연화봉은 소백산 기상관측소가 있다. 대로는 ┣자 갈림길로 거기로도 가지만 들르지 않고 곧장 연화봉을 향
한다. 조금은 서운하여 제2연화봉에서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있을까 예의 살폈더니 다행히 없다. 걸음
걸음 고심하다 국망봉을 내려놓는다. 비로봉이나 느긋이 가자고 마음먹는다. 비로소 주위 경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길섶은 물론 가까운 사면에 수놓은 풀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안개 속 풍경 또한 가경이다.
도랑에 내려가고 길섶에 엎드리는 회수가 잦아진다. 진달래가 안개비에 젖었어도 곱다. 천문대 지나고 박석 깐
길을 잠깐 오르면 연화봉이다. 낯익은 정상표지석이라 반갑다. 대로는 이 연화봉까지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내
린다. 이제 산을 가는 것 같다. 연화봉 내리는 등로 주변의 너른 사면은 홀아비바람꽃 일색의 화원이다. 국망봉
을 내려놓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을 내 모른 채 하고 내달을 뻔했다.
아직은 안개 속 하늘 가린 숲속길이다. 시끄럽던 이야기꾼 두 사람과 헤어지고 나니 천지가 적막하다. 소설가
김훈의 말마따나 이래야 산이다. 금줄을 두르지 않은 데가 나오면 사면에 슬쩍 들어가 본다. 박새는 아직 앳된
모습이다. 앵초도 큰연령초도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는 곰취가 나오려면(곰취가 자생하는지 의문이지만) 멀었
다. 하늘 가린 숲속 길은 연화봉을 다 내리고 안부 지나 데크로드를 오를 때 끝난다.
12. 연화봉과 제1연화봉 사이 동쪽 골짜기
13. 멀리는 연화봉
14. 오른쪽은 연화봉, 왼쪽 뒤는 도솔봉
15. 멀리 오른쪽은 비로봉
16. 소백산 주릉, 멀리 오른쪽은 비로봉
17. 비로봉 동릉 자락
18. 흐릿한 산은 용산봉(?)
19. 멀리 오른쪽은 비로봉
20. 비로봉 가는 길에 뒤돌아본 소백산 주릉, 멀리 가운데는 도솔봉
21. 비로봉 가는 길에 뒤돌아본 소백산 주릉, 멀리 가운데는 도솔봉
바람의 노력이 컸다. 안개구름이 걷히기 시작한다. 조망이 트인다. 그러나 미세먼지가 많아 원경은 흐릿하다.
국망봉을 갔다 오기에는 이미 늦었다. 놓아버리고 나서 너무 해찰을 부렸다. 사방 경관이 트여 무더기진 철쭉꽃
을 볼 수 있으려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빈 눈이다. 신사산악회에서 설마 소백산에 철쭉이 아직 필 생각조차 안
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철쭉이 할 일(손님 맞는)을 진달래가 대신하고 있다.
제1연화봉 정상은 등로를 약간 벗어났다. 잡목 숲 헤치고 들른다. 바람이 워낙 세게 불어대 정상의 오종종한
바위에 올라서기가 겁난다. 다시 등로에 들고 사면 숲속을 기웃거린다. 여느 산과는 다르게 소백산에서는 등로
옆에 이곳에서 자라는 동식물에 대한 안내에도 퍽 신경을 썼다. 모데미풀이 소백산의 깃대종이라고 한다. 깃대
종(flagship species)은 유엔환경계획이 만든 개념으로서, 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할 수 있는 주요 동·식물을
뜻한다고 한다.
안내판의 설명이다.
“모데미풀은 소백산국립공원의 깃대종이자 특산식물로 세계적으로 희귀하고 보전가치가 매우 높은 종으로서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명종의 우려가 있습니다. 모데미풀은 깊은 산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4~5월
에 흰색의 꽃이 피며, 꽃 밑에는 총포가 크게 자라 잎처럼 보입니다. 소백산국립공원에는 가장 많은 개체가
자생하고 있습니다.”
소백산에는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모데미풀 이외에도 홀아비바람꽃, 노랑무늬붓꽃 등도 흔하게 보인다. 눈이
바쁘다. 봉봉을 오르면 장쾌 무비한 소백주릉을 감상하고, 안부에 내려서는 기화이초를 살핀다. 천동리를 오가
는 ┫자 갈림길부터는 황량한 벌판을 건너는 철망로드다. 비로봉 0.6km, 그다음 국망봉 갈림길 0.4km가 철망로
드고 걸음걸음 경점이다. 못 볼 것도 본다. 지난겨울 화려한 눈꽃으로 비로봉을 한껏 드높였던 철쭉이 앙상한
모습이다.
비로봉. 한산하다. 많은 등산객이 올랐으나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대 동쪽의 데크계단으로 옹기종기 피했다. 그
러고 보니 세월이 흘러도 비로봉의 칼바람은 여전하다. Y자 국망봉 갈림길에서 국망봉을 일별하고 어의곡으로
발길을 돌린다. 데크로드 한참 내리고 잣나무 숲을 지난다. 울창한 잣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에서 능선을 벗어나
오른쪽 사면으로 직각방향 꺾어 데크계단을 내린다. 가파른 내리막이다.
사면을 들를 틈이 없다. 산죽 숲이거나 잣나무 숲이거나 너덜이고, 이들을 벗어나면 목책을 둘렀다. 펑퍼짐한
사면의 연속이라 뭇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도 어렵다. 얌전히 돌길인 등로 따른다. 버스시간에 맞추어 내리려
니 발걸음을 빨리 하는 것도 힘들지만 발걸음을 일부러 늦게 하는 것은 그보다 더 힘들다. 벤치 놓인 쉼터가
나와도 5분 휴식하면 그만 지루해진다. 등로 옆 이끼 낀 너덜 사이 피나물, 천남성, 족도리풀, 노루삼 그리고
관중들로 파적(破寂)한다.
어의곡주차장. 지난겨울 빙하이던 계류는 암반 두드리며 봄을 노래한다.
22. 멀리 가운데는 연화봉
23. 비로봉 가는 길에 뒤돌아본 소백산 주릉
24. 가운데는 연화봉, 지난겨울 앞 벌판의 철쭉에 핀 눈꽃은 무척 고왔다
25. 비로봉 동릉 자락
26. 비로봉에서 바라본 국망봉
27. 비로봉에서 바라본 연화봉, 멀리 왼쪽 뒤는 도솔봉
28. 비로봉에서 바라본 소백산 주릉
29. 비로봉에서 바라본 소백산 주릉
30. 국망봉
첫댓글 소백산 철쭉은 아직 이르지요...? 아마 5월 말은 되어야...어제 산에서 본 야생화 군락이 홀아비바람꽃이었네요. 무리 지어 피었던데요...
철쭉꽃 본다고 철 모르고 댓바람에 따라갔습니다.^^
그래도 많은 야생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2주 연짱 따뜻한 봄인데 산은 아직 봄이 아닌가 봅니다. 찬바람에 고생하셨어요.
소백산은 내내 추웠습니다.^^
곰취도 없고 덕순이도 없고...
홀로 다녀오셨군요...지난 겨울에는 빙하같은 얼름장을 시원스레 바라봤는데, 이젠 봄을 맞이했는데도 철쭉은 아직 필 생각이 없군요,,수고하셨습니다. 저녁은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추억으로 가는 산길이었습니다.
저녁은 집에 와서 먹었습니다.^^
흐림과 맑음을 오가는 산행이었네요. 오랜만에 소백산을 악수님 산행기로 가보았습니다.^^
등로가 신작로 수준이라서 산에 가는 맛은 별로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들쑤시고 다니기는 보는 사람이 많아서 어렵고요. ^^
바삐 가시느라 모데미풀을 못보신듯~ 요즘 소백은 모데미보러 가는덴데...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