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부라면 학이라도' 라는 속담을 증명하듯 정부와 가계가 일제히 돈을 빌리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가채무와 가계채무를 합한 금액이 처음으로 3000조원을 넘어섰다. 올해 4~6월 말 기준으로 3042조 1000억원(약 326조엔)였다. 지난해 2401조원였던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27%에 이른다.
채무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국가 차원에서는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게 된다. 2010년대 초기의 남유럽이 그랬다. 북유럽만큼의 능력도 없으면서 국민을 위한 복지라는 이름으로 선심성 정책을 계속하다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졌다. 정치인들은 온갖 명목의 복지제도를 도입해 재정이 파탄날 때까지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스에서는 재정 파탄으로 경제 위기가 밀려왔다. 전 국민 임금이 줄면서 연금 삭감에 의료보험 중단이 이어졌다. 결국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이 전 세계에 공개됐다. 그리스 사태는 공짜 밥은 없다는 경제 상식을 확인시켜줬다. 국가부채로 주는 경제체제는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불변의 법칙이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정권이 3년 연속 긴축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전임 문재인 정권이 국가채무를 불과 5년 사이에 400조원 이상이나 늘린 만큼 긴축재정은 고육지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스처럼 관광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베네수엘라처럼 석유가 나오는 것도 아닌 한국으로서는 건전한 재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물론 지금은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이기 때문에 재정출동으로 경기를 부양할 시기라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재정을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 국민 25만원 혜택 같은 현금 퍼주기 정책으로는 경제에 활력을 줄 수 없다. 굳이 이 정책을 쓴다면 김동연 경기지사나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방안처럼 선별 지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더 크게 보면 정치인들은 이런 대중영합적 정책을 넘어서야 한다. 숨 막히는 규제를 피해 해외로 공장을 옮긴 기업이 유턴할 수 있도록 투자환경을 개선하면 25만원을 뿌리지 않아도 일자리가 늘어나고 경제는 활기를 띠게 된다. 그러나 국회는 움직임이 없다. 한국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법안조차 정쟁에 휘말려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개인의 부채 문제도 심각하다. 올해 4~6월 말 기준으로 가계신용(가계부채)은 1900조원에 육박하는 1896조 2000억원을 기록했다. 미국에서 금리인하가 본격화되면 한국에서도 금리인하가 예상되기 때문에 연초부터 가계부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20대 신혼부부가 6월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14억 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해 양가에서 3억원을 증여받고 그동안 모은 약 2억원으로 주택담보대출 10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나 심각한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대출을 받은 주택 구매자의 6%가 10억원 이상을 빌렸다는 통계도 나왔다.
풍요로운 생활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 대출로 주택을 구입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거품경제가 절정에 달했던 1989년경 집값은 하룻밤이 지나자 올랐다. 은행에 가면 향후 집값 상승분까지 고려해 대출을 해줬다. 이런 마구잡이 투자 뒤에는 '잃어버린 30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끝없는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빈집이 속출했다.
한국은 어떤가. 기업을 살리는 법안 마련과는 거리가 있는 현실을 보면 추세적인 저성장에 들어간 한국 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 고령화 속도를 봐도 그렇다. 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부동산 투자로 기대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건설업계에서는 1인 가구 증가가 정점을 지나 하강하는 2040년부터는 집값 하락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부동산 불패의 끝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잉 대출은 부채 폭탄을 스스로 떠안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부채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한 정책당국의 실책은 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5.5%까지 정책금리를 인상하는 동안 한은은 3.5%에서 멈췄다. 이에 따라 한은은 현재 금리인하를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됐다. 정부는 대출 규제를 너무 완화했다. 다가오는 금리인하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면 정책 실패가 아닐 수 없다. 뒤늦게 다잡고 있지만 대출이 늘어나는 흐름에 제동이 걸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