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
“아빠 때문에 엄마가 죽었잖아!”
난 딸아이의 말에 대답을 못했다. 머리를 숙이고 눈물만 흘렸다.
딸아이의 말이 맞는 말이니까.
난, 오로지 딸 아이의 건강만이 걱정이었다. 백혈병에서 겨우 회복되어서 진행 과정이니까.
변명도 하기 싫었다. 딸아이의 슬픔이 나를 향해서 해소 된다면 그만이었다.
딸아이가 중학생 때, 아내가 아이들이 불한해 한다는 거였다. 매일 집에서 허름한 옷차림으로 놀다가, 밤에는 술이 취해서 들어오는 아빠가 불안하다는 거였다. 아내도 역시 마찬가지 였으리라.
오버추어 마케터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던 나는,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남는 시간은 책만 읽고 글을 쓰다가, 밤에 술이 땡기면,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술 먹고 들어왔으니까.
내 돈이 어떻게 쓰여지는데는 관심도 없었다. 벌어서 주었으니 알아서 하겠지 정도.
나는 프래그래머를 하다가, 홈페이지 만들어 주는 것이 지겨워, 한국 검색 환경의 일대 변화를 몰고 온, 키워드 클릭당 광고 방식, 즉 CPC 방식으로 한국 인터넷 광고 시장을 장악하던, 야후의 자회사 오버추어의 마케터 시험을 봐서 돈을 벌던 시절이었다.
마케터가 돈을 벌기 위한 것은, 먼저 고객의 홈페이지를 간섭하는 것이다. 그래야 효율적인 광고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니까.
그래서 고객이 내 말에 따라준다면, 광고를 시작한다. 광고비는 검색 포탈에게 들어가지만, 나는 고객의 광고비에서 검색 포탈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그것이 내 수입이었다.
내가 제일 힘들었던 것은, 고객 즉 광고주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프래그래머가 아무 생각도 없이 만들어 놓은 홈페이지로는 광고 효율이 떨어질 것은 뻔했다.
그대로 진행된다면, 광고비의 낭비가 뻔하게 보였고, 시간이 지나서 고객들이 돈을 벌지 못하면, 광고를 중단 할 거고 나는 수수료를 받지 못해 나의 수익이 줄어들 것이 뻔하니까.
우연히, 금진항에 들려서 회를 먹다가, 횟집 주인이 무한으로 갖다주던 대게를 먹게 되었다.
금진항에서도 대게가 잡힌다는 거였다. 그것도 포획 금지기간 5월이 지나면 판매가 않되서 그물에 걸리면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줄 수 밖에 없다는 거다.
그래서, 인터넷 쇼핑몰을 직접 하기로 했고, 대박이 났다.
홈페이지 만드는 것이 귀찮아 다음 카페로 운영했지만, 회원수가 200,000 만명이 넘어갔다.
빗발치는 전화에 감당이 되지 않았다.
돈을 너무 벌었던 같다.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대학들어가고, 나중에 첫째 딸아이의 백혈병 치료비 까지 아무 부담도 없이 해결하고도 남아서, 아내가 죽고나서도 10 억이나 있었으까.
돈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나로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운이 좋았다.
묵호항에서 대게 장사를 하면서, 어느 정도 괘도에 오른 것을 확신하고, 나의 만행이 시작되었다.
모든 것을 아내에게 맏겼다.
전화 받고 송장을 쓰고 어판장에 내려가서 물건을 부치고, 택배회사에 확인을 하고 고객의 불만 전화도 받고 수 없이 많은 일들은 아내의 몫이 었다.
아내가 죽고 나서, 통장을 정리하니 10억을 모아놓았다. 얼마 벌고 얼마나 쓰고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무관심에 비해서는 아내는, 대단한 돈을 모은 셈이다.
아내가 죽고 나서, 내가 한 짓은, 10억 중에 딸 둘에게 2억씩 나누어 주고, 나머지 돈을 탕진 하는 거였다.
아내가 죽었다는 슬픔을 가장하면서.
묵호에서 제일 잘나가는 룸싸롱, ‘여궁’ ‘아테네’ 에 4,5 억은 갖다 바친거 같다.
술을 너무 퍼먹어서 병원에 수도 없이 들락거리고, 심지어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서도 룸싸롱에 갔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강제 퇴원 당하기 하고.
딸 아이의 말은 맞는 말이다. 나는 아내가, 아무 말 없이, 나에게 아무 불평도 없이 나의 사업을 키워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아무 불만이 없다.
그렇지만, 내가 아내에게 감사하는 것은 따로 있다.
시간에 대해서다.
나만의 시간을 갖도록 허락해준 아내의 마음이다.
아내가 어판장으로 가고 나서, 사실 내가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약속도 없다.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가끔 카페에 들러서 가입 인사 댓글만 달아주는 것이다. 물론 광고 계정도 관리 했지만, 그건 세팅만 잘 해놓으면 자동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딸아이의 말에 대답을 못했다.
그런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도 없었고, 그것을 이해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니.
아내는 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나만의 시간을 최고로 중요시 한다는 것을, 내가 가진 것 모두를 남에게 줄 수 있지만, 나의 시간 만큼은 절대로 고수 한다는 것을.
아내가 죽고 나서, 술집을 돌아다니다, 사람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여자를 만났다.
술 너무 마셔 엉망이던 나는 술집에서 쓰러지고, 그런 나를 강릉에서 묵호까지 매일 찾아와서 청소하고 밥해주고 건강식품 갖다 바치고 우울증이 있는 나를 병원까지 태워다 주고
심지어 그녀는 아내도 하지 않던, 발바닥 갈라진 내 발 뒤꿈치 까지도 닦아주었다.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남은 돈을 주고 지금 강릉역 앞에서 대게 직영점을 한다.
나는 그녀에게 선행을 베푼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나의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의 흑심을 알고 있을까?
나의 시간 만큼은 절대로 양보 안한다. 나누지도 않는다. 그래서, 쓸데 없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미리 약속 된 특별한 만남이 아니면 안나간다.
나만의 시간을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