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야, 청산 가자 / 문성해
청산을 아니? 나비야, 네 맘속에 하루 종일 상스런 욕을 해대는
누에를 따라 네 발목을 잡는 온갖 향기의 꽃들 뿌리치고
나비야, 청산 갈 수 있겠니? 그곳에 사는 꽃이란 꽃은 모가지째
뭉텅뭉텅 베어다 청강(靑江)에다 뿌리고, 가시 울타리에 날개가
찢긴 나비들 그중 가장 모질게 찢긴 나비가 그날의 여왕이 되는
곳, 왼갖 잡새들 모두 그 아래 머리 조아리는 곳,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영혼이 대접받는 곳으로 나비야, 청산 가지 않겠니?
그곳은 엄격히 말하면 푸른 탱자 가시들이 창궐한 곳, 멀리서
보면 푸름이 하늘에 탑처럼 닿아 있어. 나비야, 내 영혼이
폭발할 것 같애. 그곳만 생각하면 여름날 들판에서 맞닥뜨린
소낙비 냄새가 나, 비가 고함을 치는 것을 보았니?
멀리 고함을 치는 청산이 무서워 설레설레 뒤걸음질치는
나비야, 그곳에선 네 날개에 화려한 문양을 새길 필요가 없단다.
가시 울타리에 슬쩍슬쩍 긁힌 상처들이 처연한 문양이 되는 곳,
피의 문양은 가문 대대로의 영광이로세, 이 봄날 자욱하게
돋아나는 아지랑이 들판을 가로지르는 나비들아, 청산 가자,
봄만 되면 어김없이 사타구니를 벌리는 꽃들에게선 이제
매독 내가 나, 가다가 지쳐 공중에서 투두둑, 떨어지는 나비들아,
얼래! 내 몸도 허공을 떠다니기 시작한다. 갑자기 영혼으로
화한 몸들이 가볍게 청산 가는 이 봄날!
- 문성해 시집 <자라>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