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담는 보자기
절망에 대한 그리움 (앵커는 닻을 내리지 않는다) 백지연, 문예당
홍콩의 지저분한 뒷골목 노천 식당에서 재벌 회장과 그의 친구는 마냥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등걸이도
없는 작은 의자에 앉아 조촐한 안주를 하나 놓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 술집 앞에는 최고급차가 세워져 있고
운전기사가 차의 먼지를 닦아 내고 있다. 이 장면은 세계적인 경제 잡지 중의 하나인 <포춘>지에 게재된 한 자동차 광고다.
보통 사람들은 이 광고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금방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성공한 기업가들은 그것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향수는 무엇일까? 모순같지만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
'절망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더 정확하게 말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그 시절의 용기와 인내, 고통을 이기고 미래에 대한
도전 의지를 불태우게 만든 분노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취재 중 만난 한 기업인은 아주 힘들 땐 자신이
가장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고향이나 장소로 혼자 찾아간다고 했다. 옛날 온 가족이 세 들어 살던 그 집의 담장을 더듬어 보거나,
형제끼리 서로 몸을 밀어붙이면서 이불싸움을 하던 방, 아직도 부모님의 한숨이 벽 속에 묻어 있는 것 같은
그 집을 둘러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몇 십 년 동안 잊고 살았던 옛날의 절망이 되살아나면서 다시 희망이 솟구치고 용기가 생긴다고 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어릴 적 자신이 첫 행상을 했던 시장을 한 번 돌아보고, 그렇게 먹고 싶었지만 사 먹을 수 없었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을 수북이 앞에 쌓아 놓고 있으면 '지금 난 정말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런 고난과 절망도 이겨 왔는데 무엇인들 이겨 내지 못하랴!
내가 그 광고와 성공한 기업가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나 또한 '절망'을 느끼고 미래가 암담했던 순간이
있었기 땜누이다. 고통이 없었던 사람에게 강함이 있을 리 없으며 아파 보지 않은 사람에게 어찌 인내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보다 더 힘들었을 때를 생각하고 새롭게 마음을 다지곤 한다.
한 입씩 깨물어 먹는 이야기
한 가난한 화가가 결혼을 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자 경제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그는 그림 값으로 1백 프랑을 가져온 화랑 주인인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 가족은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네". "여보게 , 예술도 중요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결국 그는 친구의 권유로 나체화를 그리게 되었다. 다행히 그 그림ㄷ르이 비싼 가격에 팔려 음식을 배불리 사 먹을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화랑에서 자신의 그림을 두고 몇몇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이 화가는 돈만 밝히는 자리네.
요새는 나체화만 그린다니까". 충격을 받은 화가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고통을 참아 줄 수 있다면 이제부터는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그는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 파리 동남쪽의 바르바종이라는 시골로 이사했다.
작은 농가를 얻은 그는 헛간을 화실 삼아 그림을 그리며 틈틈이 농사를 지었다. 그 뒤 그는 <만종>,<씨 뿌리는 사람>, <이삭줄기>와
같은 훌륭한 작품을 그릴 수 있었다. 이 화가가 바로 밀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