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두레박 신부의 영적일기(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화해는 존중이라는 말...
어느 날 아주 형제애가 좋기로 소문난 형제가 함께 길을 가다가..동생이 금덩어리를 하나 주었습니다.
형제는 무척 기뻤습니다.
형이 그 금덩어리를 이리 저리 만져보면서 말합니다.
“우리 이제 고생은 끝이다. 이거면 우리 둘이 평생 먹고 살만한 재산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형제는 정말 좋아하면서 서로 번갈아 가면서 금덩어리는 만져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강을 만났습니다.
형제는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형이 갑자기 그 금덩어리를 물속에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동생이 펄쩍 뛰면서 “내가 주운 것을 왜, 형이 물에다가 던지느냐?” 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형이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잠깐만!!! 어떤 말을 했을까요? 잠시 눈 감고 침묵해보시기를...)
“그 금덩어리가 내 손에 있을 때에는 욕심이 생기고, 그 금덩어리가 동생, 네 손에 있을 때에는 미움이 생기더라.”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 생각해주고 서로 사랑했는데, 그 금덩어리가 우리 사이를 이렇게 만드는 것 같아서 물에 던져 버렸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저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그런데 “먼저 화해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먼저” 라는 말은 희랍어로 “프로토스”라는 말로 영어로 “퍼스트” “첫째”라는 말입니다.
근본적으로 “최우선이라는 의미”에서 “먼저” “첫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화해’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그 뒤에 일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해’가 제단에서 하느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 보다 먼저요, 기도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화해’라는 것”입니다.
즉, “화해가 없는 제사, 화해가 없는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보면...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 먼저 화해하고 용서할 때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고운님들!
기도의 기본자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용서(容恕)입니다. 용(容)은 얼굴, 즉 마음의 거울이고, 서(恕)는 용서하다 뜻과 어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용서”라는 뜻은 “얼굴과 마음에 남의 허물을 갖지 않고 놓아 흘려보냄으로써 어짊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용서는 남의 허물을 담아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예전에 누가 이런 말을 합니다.
“언니 집 갔더니 과일을 박스 채 사두고 먹네.
우리 언니 시집 잘 가서 잘 사는 모습 너무 좋구나!
오빠 집엘 갔네. 여기도 과일을 박스 채 사두고 먹네.
아이고..올케언니 울 오빠 등 꼴 다 빼먹네.
가을볕엔 딸 내보내고 봄볕엔 며늘 아가야. 네가 나가거라!”
‘화해’라는 것에 또 다른 이름이 ‘존중’이라고 합니다.
“세상은 돌고 돌아 고운님들이 언니이고 올케인걸!
고운님들이 딸이고 며느리 인 것을...!!!” 아멘.
영적일기를 마무리 하면서...
남의 허물을 담아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마음으로...남을 먼저 존중해주는 마음으로...그리고 고운님들이 먼저 주님의 자비를 충만하게 베풀고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고운님들께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