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현지시간) 110세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늘 호기심이 충만했던 미국인의 뇌를 과학자들이 연구하기로 했다고 일간 USA 투데이가 14일 전했다.
주인공은 1914년 뉴욕의 유대인 이민자 부모 아래 태어난 모리 마코프. 학교 교육이라곤 8학년을 겨우 마쳤을 뿐이다. 그럼에도 배우는 자세로 평생을 살았다. 기계공 훈련을 받고 서부로 이주, 1938년 부인 베티과 결혼한 뒤 본인의 사업을 시작했다.
80년 결혼 생활을 이어갔는데 세상 여느 부부보다 다복했다. 두 아이를 기르며 멕시코, 중국, 일본, 옛 소련 등 세계 곳곳을 누볐다. 부부는 90대가 돼서도 매일 4.8km를 나란히 걸었다. 베티는 2019년 103세를 일기로 먼저 세상을 떴다.
딸 주디스 핸센(81)은 "부친 곁에서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 마음에 많은 것을 남겼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었다"고 말했다. 마코프의 마음에도 정말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그는 조각을 했고, 블로그도 열심이었다. 99세에 책을 집필했다. 궁금하면 곧바로 위키피디아 검색 창에 단어를 두들기는 등 일생 동안 지적 호기심이 샘솟는 듯했고, 방대한 정보 량을 자랑했다.
유족도 허락해 마코프의 뇌는 노화 과정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과학자들이 연구하기로 했다. 과학자들은 왜 몇몇 사람은 치매나 인지 저하를 겪는데 마코프 같은 노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총명함을 잃지 않는지 규명하려 한다.
딸은 정신적인 활력을 유지한 것이 부친의 장수 비결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뇌 기증 프로젝트의 티시 헤벨 최고경영자(CEO)는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격렬한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주로 발병하는 만성외상성뇌병증(CTE), 기타 신경퇴행 증상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뇌 연구 못지 않게 건강한 뇌 연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른바 슈퍼 에이저(super ager) 연구도 긴요하다는 것이다.
뇌 기증 프로젝트는 헤벨의 부친으로 루이소체 치매 (Lewy Body Dementia) 로 숨진 진 아르멘트라웃을 기리고 뇌 기증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18년 설립됐다. 뇌는 신장, 췌장, 심장 같은 다른 장기와 달리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연구 목적으로만 사용된다. 보통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장기 기증은 누군가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기 전에 선행해야 할 일들이 있다.
헤벨은 "뇌를 기증하는 일은 별도의 과정이며 우리 가운데 장기 이식에 쓰일 수 있는 방식으로 죽는 이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한다"며 "뇌는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사망자의 소원을 충족시키는 데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발 나아가 헤벨은 "뇌는 개인 정체성의 원천"이라며 그런 이유로 많은 이들이 뇌를 기증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고인은 100세를 넘겨서도 활력을 전혀 잃지 않았다. 세상 모든 일에 참견하려 했고 흥미를 느꼈다. 세상 곳곳을 여행하며 모든 곳을 사진으로 남겼다. 두 사람 모두 정규 교육을 많이 받지 않았으나 누구나 붙잡고 정치나 현안들을 놓고 토론했다.
조부모, 증조부모가 된 뒤에도 로스앤젤레스 자택 근처 호수를 둘은 손을 꼬옥 잡고 걸었다. 99세 되던 해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사진 취미를 접고 대신 집필에 몰두했다. 부인을 여읜 뒤 마코프는 요양보호사 로사리오 레예스의 돌봄을 받았는데 시애틀에 거주하는 핸센은 레예스 덕분에 부친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냈다며 그녀를 천사라고 불렀다.
팬데믹 기간 핸센은 루이소체 치매로 죽어가는 남편을 돌보는 틈틈이 부친도 잘 지내는지 수시로 점검했다. 레예스는 그의 부친이 더 이상 인쇄된 것을 읽지 못해 아이패드로 LA 타임스 기사를 읽는 것이 낙이었다고 말했다.
부친이 그렇게 오랫동안 인지 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핸센은 "세상과 긴밀히 묶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한 뒤 "많은 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세상과의 접촉을 줄이려고 한다. 하지만 엄마아빠는 가족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에 주파수를 맞추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 했다. 그들은 늘 호기심으로 충만해 있었다"고 덧붙였다.
고인은 죽음을 맞기 전 짧은 시간 호스피스 병동에서 돌봄을 받았다. 핸센은 임종을 할 수 있었는데 뇌 기증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들을 부친에게도 읽어주고 헤벨에게도 직접 와보라고 연락했다. 그는 자신의 뇌가 연구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무척 기뻐했다. 핸센은 농담도 건넸다고 했다. "있잖아요 아빠, 아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아빠 뇌를 연구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만한 가치가 있어서 모리 마코프의 뇌를 연구하기로 했다는 것이 딱 들어맞는 설명이라고 신문은 결론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