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이 마음 초(抄) 1
박 재 삼 (1933∼1997)
〈1〉수정가(水晶歌)
집을 치면 정화수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선선한 우물집이었을래.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평상의, 갈앉은 뜨락의, 물내음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래. 서방님은 바람 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 올 따름, 그 옆에 순순(順順)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이 마음이 아니었을래.
하루에 몇 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 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때마다 일렁여 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 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진실로, 우리가 받들 산신령은 그 어디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의 만 리 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춘향은 바람에 어울린 수정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2〉바람 그림자를
어지간히 구성진 노래 끝에도 눈물 나지 않던 것이 문득 머언 들판을 서성이는 구름 그림자에 눈물져 울 줄이야
사람들아 사람들아
우리 마음 그림자는, 드디어 마음에도
등을 넘어 내려오는 눈물이 아니란 말가.
문득 이 도령이 돌아오자, 참 가당찮은
세월을 밀어 버리어, 천지에 넘치는 바람
의 화안한 그린자를 春香은 눈물 속에 아로새겨 보았을 줄이야.
〈3〉매미 울음에
우리 마을을 비추는 한낮은 뒷숲에서 매미가 우네.
그 소리도 가지가지의 매미의 울음,
머언 어린 날은 구름을 보아 마음대로
꽃이 되기도 하고 친한 이웃 아이 얼굴이 되기도 하던 것을.
오늘은 귀를 뜨고, 아아
임의 말소리, 미더운 말소리, 또는 대님
푸는 소리로까지 어여삐 기뻐 그려낼 수 있는
〈4〉화상보(華想譜)
참말이다. 春香이 일편단심을 생각해 보아라. 원이라면 꿈속엔 훌륭한 꽃동산이 온전히 제 것이 되었을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꾸는 슬기 다음에는 마치 저 하늘의 달이나 비길 것인가, 한결같이 그 둘레를 거닐어 제자리 돌아오는 일이나 맘대로 하였을 그것이다. 아니라면 그 많은 새벽마다를 사랑치고 그렇게 같은 때를 잠 깨일 수는 도무지 없는 일이란 말이다.
* 抄 : 베낄 초
- 시집〈춘향이 마음 초(抄)1〉(1956)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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