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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갈라디아서6:6-10
자연계에는 자연의 법칙이 있듯이 영적인 세계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자연계의 법칙도 그렇지만 영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따라해보시겠습니다.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거둔다는 이 단순한 진리는 자연계에서나 영계에서나 동일한 진리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농부와 같고 인생살이는 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구약성경에 무려 3만가지가 넘도록 심는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말씀하셨고 약속하셨고 맹세하셨습니다. 금생에는 100배, 내세에는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자녀된 우리는 이 약속된 복을 상속받을 자격이 있다고 성경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롬8:17) 이는 마치 부모님으로부터 재산을 상속받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된 복들을 많이 거두어들일 수 있는 추수의 법칙이 나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이 추수의 법칙을 잘 배우시고 인생을 하나님을 위하여 투자하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추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위하여 심어야 합니다.(8)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심고 있습니까? 우리는 외식하고 쇼핑하는데 십만원은 아까워하지 않고 씁니다. 그런데 주님의 일을 위해서는 십만원이 어쩐지 아까워서 인색합니다. 8절을 보시면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 믿는 자들이 자신의 죄된 육체를 가꾸고 먹이기 위하여 물질을 아낌없이 쓰고 시간을 드리고 마음을 바친다면 우리도 세상 사람과 마찬가지로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됩니다. 갈5:19에는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하였고 로마서에는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요한복음6:27절에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5장에서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세상사람들은 육체의 안락한 삶을 위하여 수입의 대부분을 먹고 마시고 캠핑가고 해외로 놀러가는데 씁니다. 물론 이렇게 사는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주님을 위해서는 물질과 시간과 마음을 드리기를 아주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육체를 위해서는 아끼지 않고 쓰면서도 주님위해 쓰는 것은 너무나 인색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게 됩니다. 귀족병인 당뇨가 오고 비만으로 인해 각종 성인병이 생깁니다. 육체를 위해 심을수록 갖가지 가정파탄, 형제간의 분쟁이 생기고 건강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성령 즉 하나님을 위해 심는 자는 영이 살게 되고 또한 반드시 이 땅의 복도 많이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 보물들을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다 쌓아야 합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6:20)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물질과 시간과 마음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국 은행에다 나를 위하여 차곡차곡 적립이 되는 것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둬들이게 되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심으면 믿음이 오고 각종 복과 영생을 거둬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의 일을 위하여 심고자 할 때, 때로는 힘들고 어려워서 눈물이 날 수도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 심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없다고 안드릴 것이 아니라 없어도 과부처럼 두렙돈(삼천원)의 물질을 드리고 오병이어의 시간을 드리고 끝까지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시편126:5절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많이 거두어들이자면 눈물이 나더라도 주의 일에다 보물을 많이 심어야 합니다. 우리는 씨를 심다가 힘들어져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야 하나” 하는 회의가 생겨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둬들이기 때문입니다. 당대에 못거둬들이면 자녀세대, 자녀세대에 못 거둬들이면 손자세대에 거두어들이게 됩니다. 하나님 잘 믿고 잘 심은 분들은 3대째에 가서 인물들이 꼭 나오는 것은 기독교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이 거두기 위해서는 눈물이 나오더라도 주님을 위하여 부지런히 씨를 뿌려야 합니다. 전도와 제자양육이야 말로 가장 큰 기쁨으로 거두어들이는 투자입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십일조와 각종 예물을 심어야 합니다. 직장일 하랴, 가정일 하랴, 하나님의 일하랴, 너무 힘들어도 주님을 위하여 시간과 마음을 심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만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는 것은 만고불변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눈물을 흘리며 심어야 할 씨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1)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심어야 그 열매인 생명을 거두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말씀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얻었고 소망도 얻었고 권세도 얻었습니다. 우리는 먼 선교 일선에까지 나가서 씨를 뿌리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전도의 씨를 부지런히 뿌려야 합니다. 로마서10:14절을 보면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고 했습니다. 누군가 말씀을 전해야 들을 수 있고 들어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나라 이 민족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말씀의 씨를 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4:2절에서 “하나님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이요 이런 분들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2) 물질입니다. 예수님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하시면서 재물에 대한 유혹 때문에 말씀이 자라지 못하고 신앙이 자라나지 못하여 기운이 막혀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재물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데 이르게 됩니다. 3) 시간입니다.
우리성도님들은 여러 면으로 힘들지라도 성령을 위하여 심음으로 많이 많이 거두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열매를 많이 거두려면 많이 심어야 합니다.(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연계의 법칙이나 영의 세계의 법칙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둡니다. 팥을 심고 콩을 거둘 수는 없습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게 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우리성도님들은 복을 많이 추수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많이 심으십시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둡니다.
이러한 원리는 도덕적, 영적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욥기 4:8절을 보면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화가 나서 욕을 하게 되면 욕을 거두게 되고, 칭찬을 하게 되면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자신이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이는 마치 메아리와 같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야 나쁜 놈아!” 하고 소리치면면 “야 나쁜 놈아!”라고 되돌아 옵니다. “사랑한다.”라고 외치면 “사랑한다.”라고 되돌아 올 것입니다. 미움을 심으면 미움의 열매를 거둘 것이요, 사랑을 심으면 사랑의 열매를 거둡니다. 원망과 불평을 일삼으면 원망과 불평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요,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게 되면 감사와 기쁨의 열매를 거둡니다. 하루 종일 음란한 생각을 하고 좋지 못한 영상물을 보고 게임을 즐기게 되면 인격이 파탄되고 삶이 파괴될 것입니다. 장윤기 사건에서 본바와 같이 단순 살인 사건인줄 알았더니 집을 조사해보니 리얼돌을 칼로 훼손한 것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집에 밤낮으로 음란한 것 보고 음란한 행위를 하였으니 그 열매가 끔직한 범죄로 나타난 것입니다. 듣고 보는 것은 마음에 심는 것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되고, 성령을 위하여 심으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5:16-26절에서 육체의 소욕과 성령,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에 대해 대조했습니다. 그리고 6:8절에서는 육체와 성령을 밭에 비유하여 어디에 무엇을 심는가에 따라 열매가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5장에서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고, 6장에서는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성령의 밭에 심지 않고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본성이나 기질 또는 환경이나 인간조건에 의해 자신의 생애가 좌우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애는 우리의 행동 양식에 의해 크게 좌우됩니다. 그런데 행동은 생각에 의해 좌우됩니다. 로마서 8:5,6절을 보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옛말에 ”생각을 심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어 습관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심는 씨앗은 우리의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부정적이고 운명적이고 인간적인 생각을 하면 그 인생이 부정적이고 운명적인 열매를 맺게 되고, 매사에 밝고 긍정적이고 영적인 생각을 하면 밝고 긍정적이고 영적인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세상 것을 생각하고 세상 것을 추구하게 되면 세상으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되지만,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추구하게 되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만고불변의 법칙으로서 속일 수 없습니다. 만일 육을 심고 신령한 것을 거두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요, 하나님을 시험하고 우롱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씨앗을 심습니다. 말의 씨앗을 심고 생각의 씨앗을 심습니다.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심은 씨앗이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지 않습니다. 어떤 소년이 자신을 비관하다가 철로에 뛰어들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자세히 알아본즉 어머니가 평소에 화가 나면 “밖에 나가서 죽어라 죽어” 라고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이 소년의 마음에 심기어져 죽음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만은 이 법칙에서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스스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만홀히 여기다”는 “ 비웃다” “조롱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결코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거나 우롱당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이시고 틀림없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사람들이 보나 안 보나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살며 영적인 말을 하고 영적인 생각을 하기에 힘써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는 것은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자기육체를 위하여 많이 심었습니다. 그래서 저세상에서는 받을 것이 없었습니다.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눅16:25) 우리성도님은 육을 위하여 많이 심지마시고 하나님을 위하여 많이 많이 심으심으로 많이 많이 거두어 들이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행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위로하고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절망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삶의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선행입니다. 죄로 인해 고통하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서 그 영혼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주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주고 복음을 전해 줌으로써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은 선행 중의 선행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데 낙심하기 쉽고 피곤하기 쉬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선행을 하는 데에는 희생이 따르고, 희생하더라도 열매가 맺혀지면 기쁨으로 감당하겠는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열매가 쉽게 맺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선한 일을 하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때로는 사람들로부터 오해받고 핍박을 받게 될 때 낙심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의욕을 상실하고 선행을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곡식을 심으면 최소한 한 철을 기다려야 하고 유실수 같으면 3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서 초여름에 곡식을 거둘 수는 없습니다. 전도서3:1-2절에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확신이 없어서 처음에는 잘 심다가 도중에 복이 오는 것 같지 않아서 낙심이 되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때 선을 행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끝까지 선을 행하다보면 마침내 그 열매를 거둘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우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하며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해 중간에 뒤로 물러서거나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선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결과가 나빠진다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선을 행함으로 거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행에는 서로 격려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마치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선행을 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기회 있는 대로”라는 말은 기회가 없으면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기회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찾아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특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가까이 있는 믿음의 가정들에게 착한 일을 하기에 힘쓸 때 아름다운 공동체가 형성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인생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심습니다. 우리성도님들은 어디에다 나의 인생을 심을 것인가 어디가 확실히 좋은 땅인가? 생각해보시고 썩어 없어질 육체를 선택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위하여 심으시기 바랍니다. 많이 많이 심으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인내하며 심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심는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심는 가정마다 그 일마다 그 자녀들에게 각종 지혜와 명예와 존귀와 영광을 넘치게 거두게 하여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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