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젓갈 사랑- 젓갈과 장류(醬類)
객지에 떠돌아 다닌지 우금 40년을 넘다보니 원래 산골 촌놈이었던 나의 입맛이 객지 음식에 길들어지게 되었으니 그 중 하나가 젓갈 사랑이다.
주방에 아예 젓갈용 냉장고를 따로 비치해 놓고 아침 마다 한 두 가지 씩 꺼내어 입맛을 돋우곤 한다.
젓갈은, 단백질 공급원이 수렵이나 가축에서 물고기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 변질을 막기 위해 염장(鹽藏)을 하여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생겨난 음식이다. 따라서 북쪽 보다는 남쪽으로 갈수록 젓갈이 발달되어있다.
우리나라도 북한에는 젓갈 문화가 없고 남한도 전남지방과 제주도등 따뜻한 지방에서 발달되었으니, 광주에 가면 어느 식당이든 김치가 맛있고 장(醬)이 맛나다.
서양에도 염장 문화가 있으니, 이를테면 스페인의 하몽(돼지 뒷다리 절임; 내 안주), 이테리의 보따르가(어란과 유사; 역시 내 안주)
네델란드의 청어절임(맛만 보았음, 빵에 싸서 먹음), 스웨덴의 슈르스트뢰밍(냄새가 고약하기로 유명한 청어 썩힌 것이나, 맛도 보지 못했음) 등이 유명하다.
동남아 지방, 특히 메콩강 일대의 태국이나 베트남 등지에서는 민물고기를 말려서 훈연한 뒤 이를 소금에 절여 어간장을 만들어 먹는데,
매운 고추와 함께 곁들인 어간장 쌀국수는 참 맜있다.
이번 겨울엔 특별한 어간장을 만들었다.
우선 시중의 것은 믿을 수 없다하여 아는 사람을 통해서 백령도에서 직접 만든 까나리 액젓을 5리터 짜리 세통을 구했다.
이를 항아리에 붓고 처가에서 잘 띠운 우리콩 메주를 넣고 염도를 20보메로 맞춰서 봉한 후 베란다에 내다놓았다.
1년쯤 지난 후 메주를 꺼내면 맛있는 된장이 될 것이요, 그 물은 훌륭한 어간장이 될 것이다. 지금은 비록 어간장을 사서 먹지만 해가 갈수록 내가 직접 담근 어간장이 더욱 맛있어질 것이다.
거기에 고춧가루 마늘 파등의 양념을 해서 두부에 얹어 먹거나, 쌀국수 양념으로, 아니면 각종 요리의 부재료로 쓰면 더 이상 좋은 양념이 없을 것이다. 계란을 터뜨리고 어간장만으로 밥을 비벼도 맛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젓갈 이야기를 해보자.
편의상 내가 먹은 걸로, 또 우리집에 있는 것으로 북쪽에서부터 이야기를 꺼낸다.
1. 꽃게장
봄은 꽃게탕, 가을엔 꽃게장이다.
봄엔 알이 들어서 탕이 맛있고 가을엔 살이 꽉 차서 장이 맛있다. 장에는 간장 게장과 양념 게장이 있는데, 인천에 이모님이 계서서 계절에 따라 즐길 수 있어 좋다. 밴댕이와 밴댕이 젓갈이 유명하나 가시가 많아서 싫다.
2. 어리굴젓
서산지방 간월도산이 유명하다. 크기가 콩알만큼 작은 굴을 고운 고춧가루와 함께 삭힌 것으로 밥을 비비면 참 달고 맛있고 향이 좋다. 어린 굴을 썼다하여 어리굴젓이라 한다.
3. 조게젓
달고 독특한 향이 좋다. 조게 싫어하는 넘이 있을까? 바지락 상합 백합 고무락등 종류도 많다.
4. 토하젓
전북 김제, 전남 담양 강진 등이 유명한 토하젓 산지다. 저수지나 둠벙 수로등에서 채취한 민물 새우로 담근 젓갈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독특한 흙내가 나고 역시 밥에 비벼서 먹는다.
5. 참게젓
뻑 가게 맛있는 젓갈이다. 그 노란 알이 참 고소하여 밥을 비비면 그릇에도 노란 것이 묻어난다. 섬진강 하동이 알아주고, 탕은 임진강 돛배 나루가 유명하다. 젓을 담은 간장 조차 맛있다.
6. 아귀속젓
마산에서만 희귀하게 구할 수 있다.
물고기를 그대로 삼키는 아귀의 뱃속에서 나온 생선으로 만든 젓갈이다.
소화효로로 반쯤 소화가 된 것으로 만들고 온갖 잡어가 다 들어가서 참으로 맛있으나 현지인이 아니면 구하기가 힘들다.
7. 새우젓
광천 토굴 육젓이 최고다. 희고 알이 굵고 그리 짜지 않다. 오젓이나 추젓은 살이 없고 잡어가 많고 짜다. 각종 양념의 재료가 되어 애호박이나 계란 두부와 잘 어울리는 것이 새우젓이다.
8. 갈치속젓
남도나 제주도에서 유명한 젓갈이다.
주로 쌈용으로 이용되는데 너무 강한 맛 때문에 난 별로인데 마누라는 좋아한다.
9. 자리젓
내가 좋아하여 먹고 싶어도 약국에서는 모두 그 냄새를 싫어하여 집에서만 먹는다. 아침 입맛을 돋우는 대는 그만이다. 제주에서는 밭일을 하는데 빠져서는 안될 반찬이다.
가시가 여간 억센 것이 아니어서 조심해야한다.
맛과 향은 최고다. 요즘은 갈아서 쌈용으로도 나온다. 글 쓰는 동안에도 군침이 돈다.
10. 멸치젓
기장 멸치젓을 최고로 치는데, 굵은 멸치를 형태가 허물어지지 않도록 삭혀서 가시를 발라
내고 살만 먹는다. 바알간 속살이 일품이다.
포항에 가면 그걸로만 반찬을 내놓는 유명한 식당도 있다.
초 가을이면 우연히 작은 멸치떼가 바닷가로 밀려오기도 하는데 반도를 들이대면 무척 많이 건질 수 있다. 작은 전어떼는 줄줄이 낚시나 투망으로 잡고, 여름날에는 아지떼가 몰려 다니며 다투어 낚시에 걸리는데, 이런 것은 잡아서 잘 씻은 후 직접 젓갈을 담근다.
소금은 간수를 뺀 신안 천일염이나 유럽 암염을 쓴다. 두 소금이 다 미네랄이 풍부하고 많이 짜지 않다.
이젠 나이도 들었으니 먹는 것과 구경 다니는 게 최고다.
이번 설에는 아일랜드에서 공수한 청어알을 고춧가루와 매운 풋고추 약간의 생강과 마늘로 젓갈 50통을 담아서 여러 곳에 보내서 호평을 받았다. 짜지 않게 하여 밥에 비벼도 먹고 비빈 것을 김에 싸서 먹도록 권했다.
못 보낸 친구들에겐 미안하다.
丙申 立春後 豊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