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생활성서 – 소금항아리]
머리가 주님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몸이 기억하고 영혼이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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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2/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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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복음 1장 46-56절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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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 깊이 새겨진 기억
병자 영성체를 다니다 보면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당신 이름도 잊어버리고,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당장 5분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지요. 그런데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을 통해 놀라운 상황을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시면서 어떻게 된 게 로만 칼라를 한 사제는 알아보신다는 겁니다. 그분들은 멀리서도 저를 알아보시고는 정성껏 성호를 그으시고, 함께 기도할 때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등 주요 기도문을 또박또박 외우십니다. “그리스도의 몸” 이라는 말에 정확한 자세로 “아멘!” 하고 응답하시고는, 정성을 다해 성체를 영하시는 걸 보면 ‘치매 환자가 아니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병으로 지난 세월 쌓아온 날들에 대한 기억은 잃으셔도 신앙 안에서 몸에 밴 삶만은 잊히지 않는 것이 새삼 놀랍고 경이로운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설령 머리가 잊을지라도 주님을 찬미하며 살아왔던 기억들은 몸이 기억하고 영혼에 새겨지는 걸 눈앞에서 목격하니 기도하고 찬미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습니다. 그래야 모든 기억이 사라질 때 주님에 대한 사랑과 찬미만큼은 오롯이 살아 나를 통해 다시 주님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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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대건안드레아 신부(대전교구)
생활성서 2022년 12월호 '소금항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