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6일(월), 맑음, 미세먼지, 부천 원미산 진달래 공원 외
부천 원미산 진달래가 곱다기에 어제 진달래 축제가 끝났지만 그 끝물이라도 보러갔다. 부천
은 송내 포도밭 시절에 그 옆 상동에서 5년 가까이 살았던 데라서 각별한 애정을 느끼는 도
시이기도 하다. 귀로에 아예 서울 남산을 들러 남산한옥마을공원으로 내갔다. 한옥마을만은
월요일에 쉰다. 공원의 멋진 정자인 청류정(聽流亭)에서 쉬다가 주련을 살펴보았다. 주련의
출전을 올린다.
陶潛有徑眄庭柯
靈運無詩得池草
사가정 서거정(四佳亭 徐居正, 1420~1488, 조선 전기의 문신)의 「재차 앞의 운을 사용하
여 이첨정에게 부치다(再用前韻。寄李僉正。)」의 3수 중 제2수에 나온다.
(제1수)
잠깐 새에 계절이 덥고 서늘함 바뀌었으니 轉頭時序變涼炎
봄 적삼 가져다 옛 적삼 갈아 입어야겠네 須把春衫換舊衫
오래 앉았자니 그늘은 깊은 골에서 생기고 坐久輕陰生邃壑
누워 듣자니 낙숫물은 처마에서 뚝뚝 듣네 臥聞新溜響疎簷
춘대에선 요양을 노래함이 기쁘거니와 春臺正喜謌堯壤1)
장맛비는 알괘라 부암에서 일어나겠지 霖雨知應起傅嵒2)
못 물의 깊이는 몇 자나 되는지 보려고 要見池塘深幾尺
아침에 손 가는 대로 주렴을 열어젖히네 朝來信手爲開簾
주1) 춘대는 《노자(老子)》 제12장에 “세속의 중인들은 화락하여 마치 푸짐한 잔칫상을 받
은 듯, 다스운 봄날 높은 누대에 올라 사방을 조망한 듯 즐거워한다.(衆人熙熙 如享太牢 如登
春臺)” 한 데서 온 말로, 태평성대의 화락한 기상을 말한다. 요양(堯壤)은 요(堯) 임금 때에
한 노인이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며 흙덩이를 치면서(擊壤) 노래하기를, “해가 뜨면 나가
서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가서 쉬도다. 우물 파서 물을 마시고 밭 갈아서 밥을 먹거니, 임금
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何有於我
哉)”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이 또한 태평성대의 구가를 의미한다. 《高士傳》
주2) 부암(傅嵒)은 은 고종(殷 高宗)의 현상(賢相) 부열(傅說)이 일찍이 은거했던 지명인
데, 고종이 부열을 등용하고는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만일 큰 냇물을 건너려거든 그대를 사
용하여 배와 노로 삼을 것이며, 만일 해가 큰 가뭄이 들거든 그대를 사용하여 장맛비로 삼을
것이다.(若濟巨川 用汝 作舟楫 若歲大旱 用汝 作霖雨)”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어진 재
상을 가리킨다.《書經 說命》
(제2수)
봄날이 잔뜩 흐리고 새벽 추위는 쌀쌀해 春陰漠漠曉寒多
노년에 병이 점점 더침을 문득 깨닫겠네 斗覺殘年病轉加
영운은 시 못 짓다가 지당의 풀을 얻었고 靈運無詩得池草3)
도잠은 오솔길 있어 뜰 나무를 바라봤지 陶潛有徑眄庭柯4)
나는 쇠한 백발에 전토만 있을 뿐인데 吾衰白髮田猶在
자네는 청운에 오를 길이 멀지 않구려 子去靑雲路不賖
이제부턴 편히 늙을 계책을 이미 정했노라 從此已成終老計
덧없는 이름은 끝내 하찮은 것이 아니던가 浮名畢竟正幺麽
주3) 지당(池塘)의 풀이란,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이 일찍이 영가
(永嘉)의 서당(西堂)에서 온종일 시를 생각했으나 이루지 못했다가, 꿈에 족제(族弟)인 사
혜련(謝惠連)을 만나서 ‘못가에 봄풀이 난다(池塘生春草)’는 시구를 얻고 나서 대단히 만족
하게 여겼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훌륭한 시구를 의미한다.
주4) 도잠이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으로 있다가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면서 지은 귀거
래사(歸去來辭)에 “세 오솔길은 묵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남아 있도다. …… 술잔 끌
어다가 스스로 술 따라 마시고, 정원 나뭇가지 바라보며 얼굴을 펴네(三逕就荒 松菊猶存
…… 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한 데서 온 말이다.
(제3수)
직함이 맑기가 흡사 한 조각 얼음 같거니 頭銜淸似一條氷
훈업이 어찌 재상의 지위에 이르렀던가 勳業何曾到股肱
기탄 없이 읊조린 시는 때로 고상하지만 放膽有時詩偃蹇
창자 더듬는 덴 많은 날 술에 의탁하노라 搜腸多日酒憑陵5)
세 번 떠나야 함은 스스로 결심했거니와 此心自斷三宜去6)
세상일엔 모든 게 무능함을 잘 알고말고 於世深知百不能
나라 빛낸 자네 문장 솜씨가 사랑스러워라 愛子文章華國手
훌륭한 명성이 예부터 어찌 헛 칭찬이던가 盛名終古豈虛稱
주5) 당(唐)나라 시인 노동(盧仝)의 주필사맹간의기신다(走筆謝孟諫議寄新茶) 시에 “첫째
잔은 목과 입술을 적셔 주고 둘째 잔은 외로운 시름을 떨쳐 주고 셋째 잔은 메마른 창자를 더
듬어서, 뱃속엔 문자 오천 권만 남았을 뿐이오.(一椀喉吻潤 二椀破孤悶 三碗搜枯腸 惟有文字
五千卷)” 한 데서 온 말로, 창자를 더듬는다는 것은 술이나 차를 마셔서 시사(詩思)를 촉진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주6) 송대(宋代)의 학자이며 명상(名相)인 구양수(歐陽脩)의 육일거사전(六一居士傳)에서
온 말로 그는 “대저 선비가 젊어서는 벼슬하고 늙어서는 물러나 쉬어서 나이 70을 기다리지
않은 이들이 있었는데 내가 평소 그들을 사모했으니, 이것이 마땅히 떠나야 할 조건의 한 가
지요” 등 세 가지를 들었다,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06
溪聲徐疾短長吟
岳色淡濃朝暮態
용재 이행(容齋 李荇, 1478∼1534, 조선 중기의 문신)의 「영통사1) 벽에 걸린 시에 차운한
중열2)의 시에 차운하다(次仲說次靈通寺壁上韻)」 시에 나온다.
우연히 가랑비 속에 총림을 물으니 偶乘微雨問叢林
맑고 서늘한 골짜기 고목이 우거졌네 洞府淸寒古木陰
묽고 짙은 산의 빛깔은 아침저녁 모습 岳色淡濃朝暮態
늦고 빠른 시냇물 소린 길고 짧은 시런가 溪聲徐疾短長吟
백년 전의 천석이 도무지 어제만 같은데 百年泉石渾如昨
하루 즐기는 풍류 다시 오늘이 있어라 一日風流更有今
술잔이고 찻잔이고 다 나쁘지 않지만 酒盞茶瓢俱不惡
석양이 서쪽에 잠길까 외려 걱정이로세 却愁殘景迫西沈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하 (역) | 1999
주1) 영통사(靈通寺)는 경기도 개풍군(開豐郡) 오관산(五冠山) 아래에 있던 절로, 고려 현
종(顯宗) 18년에 창건된 뒤로 인종(仁宗), 의종(毅宗) 등 고려의 역대 왕들이 자주 거둥하
여 분향하였다 한다.
주2) 중열(仲說)은 읍취헌 박은(挹翠軒 朴誾, 1479~1504)의 자다.
이행이 차운한 박은의 「영통사 벽에 걸린 시에 차운하다(次靈通壁上韻)」라는 시다.
산꽃이라 철쭉이 절로 숲을 이루었고 山花躑躅自成林
고사에 솔숲은 맑은 날도 어둑하여라 古寺松杉晴亦陰
나무꾼에게 분부해 자리 다투게 하고 分付樵人與爭席
골짜기 새 따르며 함께 시를 읊고저 追隨谷鳥要同吟
두타는 한 번 웃고 더 말이 없는데 頭陀一笑更無語
천석은 백 년토록 늘 오늘과 같으리 泉石百年應似今
세모에는 반드시 향화사를 찾으리니 歲晩會尋香火社
종전엔 진토 속에 부질없이 부침했구나 從前塵土謾浮沈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하 (역) | 2006
귀룽나무
애기금어초
애기금어초
庭花不斷四時香
樽酒足供千日醉
이행(李荇)의 「침류당, 진천의 운을 사용하다(枕流堂 用晉川韻)」 3수 중 제2수에 나온다.
(제1수)
이 어른 무소유로 오연히 은거하니 丈人高臥無長物
달빛은 맑은 강에 바람은 집에 가득해 月滿淸江風滿堂
반평생 벼슬살이 참으로 한바탕 꿈 半世簪纓眞夢幻
한 구역 화류 속에 몸 숨길 만하여라 一區花柳可迷藏
한가할 땐 붓 찾아 창호지에 시 적고 閑餘索筆題窓紙
흥 일면 낚싯대 쥐고 거룻배에 오른다 興至持竿上釣航
날이면 날마다 동이 술에 흠뻑 취하니 日日䨟尊須醉倒
천고에 길이 만랑의 풍류를 이야기하리 風流千古說漫郞1)
주1)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형해(形骸) 밖을 방랑하는 문사(文士)를 뜻하는 말이다.
(제2수)
한강 남쪽엔 맑은 경치 참으로 많은데 漢陰淸致儘多方
향로엔 한 가닥 향이요 거문고 한 벌일레 一炷爐薰琴一張
동이에 술이 넉넉히 천 일을 취할 만하니 樽酒足供千日醉2)
뜰의 꽃은 사철 내내 향기 아니 끊이지 庭花不斷四時香
공명일랑 이미 이 몸 밖에 던졌나니 功名已付形骸外
어조는 자연 속에서 한가로이 노는구나 魚鳥相忘雲水鄕
이소(離騷)를 읊조리고 침상에 기대 누우니 吟罷楚騷欹枕臥
달은 밝고 어부의 젓대소리 창파 너머 들린다 月明漁笛隔滄浪
주2) 전설상 고대 중산(中山) 사람 적희(狄希)가 만들었다는 천일주(千日酒)를 뜻하는바,
이 술을 마시면 취해 천 일 동안 잠든다고 한다. 여기서는 매우 좋은 술을 뜻한다.
황매화
황매화
(제3수)
자심한 그 풍류 일세를 기울이니 藉甚風流傾一世
동고는 그야말로 백 년의 사람이로세 東皐政爾百年人
하늘에 잇닿아 가는 물 돌아오지 않고 接天逝水無回派
땅에 널린 시든 꽃 다시 피지 못하는구나 委地殘花不復春
사부가 남긴 자취 눈물 흘릴 만하고 謝傅遺蹤堪墮淚3)
소선의 귀중한 필적 먼지가 앉았어라 蘇仙寶墨已棲塵4)
평생을 두고 가장 마음 맞는 벗은 平生最是知音者
만년에 바윗골에 밭갈이한 정자진이지 晩節耕巖鄭子眞5)
주3) 사부는 동진(東晉) 중기의 명신(名臣)인 사안(謝安)으로, 그의 증직(贈職)이 태부(太
傅)였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그가 출사(出仕)하기 전 동산(東山)에 은거하였던 고사를 인용
한 것이다.
주4) 소선(蘇仙)은 동파(東坡) 소식(蘇軾)을 가리킨다.
주5) 정자진(鄭子眞)은 서한(西漢) 말엽의 고사(高士)로, 지조를 굽히지 않고 곡구(谷口)란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그 이름이 경사(京師)를 진동하였다 한다. 《法言 問神》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하 (역) | 1998
앵초